
민족사랑
임시정부의 파수꾼 동암 차리석 선생 80주기 추모식 거행
[초점] 임시정부의 파수꾼 동암 차리석 선생 80주기 추모식 거행 임시정부의 마지막 비서장으로 ‘임시정부의 파수꾼’이라 불리는 동암 차리석 선생의 80주기 추모식이 지난 9월 9일 서울 용산구 효창원 임정요인묘역에서 거행되었다. 매년 가족과 연구소 관계자들만 참석해 조촐하게 진행되던 추모식에 올해는 특별한 손님들이 함께했다. 선생의 모교인 평양 숭실학교의 후신, 숭실고등학교 재학생 20명이 참석해 그 의미를 더했다. 차리석 선생이 평양 숭실학교 1회 졸업생(1904년)인 만큼, 80년 만에 처음으로 후배들이 참배를 오자 아들인 차영조 선생은 반가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추모식에는 특별한 헌정식도 이어졌다. 그래피티 작가 레오다브(LEODAV)가 차리석 선생과 아들 차영조 선생이 함께 있는 모습을 그린 작품을 기증해 큰 박수를 받았다. 이제는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아진 아들의 모습은 깊은 울림을 주었다. 숭실고 학생들의 첫 추모식 참석을 주선한 이미경 은평구의원은 “차리석 선생의 검소한 삶과 독립운동 정신을 되새기며, 그 숭고한 정신을 은평구에도 심겠다”고 다짐했다. 이번 추모식은 독립운동가들의 희생과 헌신을 기억하고 그 정신을 미래 세대에게 전달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번 추모식을 계기로 숭실고는 차리석 선생과의 인연을 더욱 돈독히 하기 위해, 10월 2일 열리는 숭실기념관 개관식에 차영조 선생 등을 공식 초청했다. 차리석 선생은 1919년 3·1운동 직후 상해로 망명한 이래 줄곧 독립운동에 진력해왔는데 광복 전후 임시정부 마지막 비서장으로 중국 충칭에서 환국 준비를 하던 중 과로로 1945년 9월 9일 순국했다. • 김무성 기획실 회원사업부팀장
태극기 또는 태극 문양이 새겨진 우리나라 우표
[소장자료 톺아보기 74] 태극기 또는 태극 문양이 새겨진 우리나라 우표 우리나라 근대적 우편제도의 시작은 1884년 갑신정변과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다. 개화파의 일원인 홍영식이 일본과 미국의 근대 우편제도를 시찰하고 돌아온 후, 고종의 명을 받아 1884년 3월 우정총국(郵征總局)을 창설했다. 이후 인천분국을 설치하고 우정국사무장정, 우정국직제장정 등을 제정해 체계적인 기반을 마련했다. 또한 일본 대장성 인쇄국에 위탁해 그해 8월 최초 한국 우표 원판 5종을 완성했고 11월 18일(음력 10월 1일) 우정 업무를 개시하여 2만여 장의 우표를 제작, 유통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12월 4일 우정총국 낙성식 축하연에 즈음해 김옥균·박영효·홍영식 등의 개화파가 일본의 지원하에 정변을 일으켰으나 결국 삼일천하로 끝나고 말았다. 이때 우정총국 총판을 맡은 홍영식이 피살되어 우정총국은 개설 20일 만에 폐쇄되었다(1884.12.8). 갑오개혁의 일환으로 1895년 5월 우체사(郵遞司)가 개설되면서 우편업무가 재개되었다. 서울을 중심으로 인천, 부산, 원산 등 주요 항구에 우체사가 설치되었으며, 1900년에는 만국우편연합(UPU)에 가입하며 국제적인 우편 서비스를 제공하였다. 이 시기에 태극(太極)보통우표, 전위첨쇄(錢位添刷) 보통우표, 이화(李花)보통우표, 독수리보통우표 등 다양한 일반우표가 제작되었다. 대한제국의 우편업무가 정비되어갈 무렵 일제는 을사늑약 체결을 강요하기에 앞서 한국의 통신권을 먼저 빼앗았다. 즉 1905년 4월 1일 한일통신기관협정(韓日通信機關協定)을 강제 조인하여 대한제국의 통신권을 박탈한 것이다. 이에 따라 모든 우편 기구가 일본인 손으로 넘어가고 대한제국의 우표와 엽서도 6월까지만 이용하고 이후에는 일본 우표와 엽서만을 사용토록 강제하였다. 1945년 해방 후 미군정은 미군정청 통신부를 설립하여 우편 행정을 관리하였고
민족사랑 2025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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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로드2000km〉 출간 후기
[후원회원마당] 항일로드 50여 곳 중 딱 한 곳만 꼽으라면 바로 여기 <항일로드2000km> 출간 후기 김종훈 오마이뉴스 기자 지난 22일, <항일로드 2000km> 이름의 새 책이 나왔습니다. 소회를 묻는 질문에 ‘더 잘 쓰지 못했기에 아쉬움은 남지만 더 잘 쓸 수 없기에 후회는 없다’고 했습니다. 정말로 마음 다했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다섯 번째 책인데, 처음으로 온라인서점 알라딘에서 북펀딩이란 것도 해봤습니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선전했고, 덕분에 출간과 동시에 알라딘에서 종합베스트셀러 3위(역사·여행 분야 1위)라는, 다소 믿기 어려운 결과도 마주했습니다. (중략) 50여 곳의 현장 중 딱 한 곳만 꼽으라면 저는 주저하지 않고 이곳을 고를 겁니다. 위도 36° 31′ 30.11″, 경도 136° 40′ 17.9″의 땅, 1932년 12월 19일 오전 7시 27분 천하영웅 윤봉길 의사가 순국한 곳입니다. 그때도 그랬지만 광복 80주년을 맞은 2025년 현재도 술 한 잔 올릴 수 없는 금단의 땅입니다. 윤 의사가 순국했을 당시에는 일본군 제9사단이, 2025년 현재는 일본 육군 자위대가 주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위대가 해당 지역을 사격장으로 활용하고 있어 허가받은 인원을 제외하고는 한국인, 일본인 가릴 것 없이 접근이 제한됩니다(단, 부대 앞 개활지를 주말에 한해 민간에 개방). 1932년 12월 19일 오전 7시 27분의 의미 1932년 12월 19일 일제는 십자가 목재 형틀에 윤 의사의 양쪽 팔을 네 번에 걸쳐 묶고 눈을 헝겊으로 가렸습니다. 현장에 있던 간수가 무릎 꿇려진 윤
서울시의회에 울려 퍼진 외침, “친일파를 청산하라”
[후원회원마당] 서울시의회에 울려 퍼진 외침, “친일파를 청산하라” 광복 직전 마지막 의열투쟁, 부민관 폭파 의거 80주년 기념식 열려 이정윤 독립운동가 백기환 선생 후손 오늘도 많은 사람들은 광화문에 위치한 서울특별시의회 앞을 무심히 지나친다. 마치 친일 청산의 숙제를 잊은 듯. 하지만 80년 전 이곳에서 총독부와 친일파를 겨냥해 다이너마이트를 던졌던 청년들은, 우리에게 조용히 말하고 있다. “친일파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역사 앞에서, 우리는 그렇게 무심해선 안 된다.” 바로 이곳, 서울시의회 건물 안에서 개최된 부민관 폭파 의거 80주년 기념식에서 이와 같은 외침이 울려 퍼졌다. “친일파를 청산하라! 대한민국 만세!” 7월 24일 오후, 서울특별시의회 본관에서 열린 이 기념식은 민족문제연구소와 광복회 서울특별시지부의 공동 주최, 광복회 화성시지회의 후원으로 진행되었으며, 시민 100여 명이 함께했다. 조선 청년 3인, 친일파에 맞서다 부민관 의거를 주도한 조문기, 유만수, 강윤국 세 청년은 20대 초반의 나이에 일본 가와사키 군수업체 일본강관주식회사(日本鋼管株式會社)에 훈련공으로 자원했던 인물들이다. 이들은 현장에서 조선인 노동자에 대한 혹독한 차별과 강제 동원 실태를 직접 겪고, 함께 파업을 주도한 뒤 일본 경찰에 지명수배되면서 귀국하게 된다. 1945년 초 귀국한 이들은 조직적인 무장 항일 투쟁을 준비하며 비밀결사인 ‘대한애국청년당’을 결성했다. 이들의 목표는 총독부와 친일 인사들을 응징하고, 전쟁 말기 조선 청년들을 전장으로 몰아넣는 친일 선전활동을 저지하는 것이었다. 애초에는 박춘금을 비롯한 친일 거두 암살과 총독부 폭파 등의 계획을 세웠으나, 실행 가능성과 피해 최소화를 고려해
『후광학, 김대중의 정치철학-후광학 창시를 제안한다』 (행동하는 양심, 2025.7) 출간의 변
[후원회원마당] 『후광학, 김대중의 정치철학-후광학 창시를 제안한다』 (행동하는 양심, 2025.7) 출간의 변 황보윤식 함석헌평화연구소 소장 1. 후광(後廣) 김대중(金大中, 1924~2009)은 대한민국 정치환경에서 너무나 어려운 정치 역경을 감내해 왔다. 그는 대한민국의 민중정치 토착화 운동(이를 ‘민주화운동’이라고 부른다)의 선구자다.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많은 고통과 함께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희생이 강요되기도 하였다. 김대중의 이러한 민중정치 토착화 운동은 개인의 역사이면서 이 나라의 상징적인 정치자산이 된다. 김대중은 일제강점기에 ‘민중지도자’의 산실인 목포에서 태어나(1924.1.6.) 분단 해방기, 6·25전쟁으로 조국 분단이 고착화되는 시대 속에서 내내 ‘도덕적 지도자/주류’로 살아왔다. 그는 자신이 왜 정치를 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자문자답을 한다. 그것은 “세상을 바꾸기 위함”(사회변혁)이었다고. 2. 이제까지 대한민국의 정치권력은 신라가 사국을 통합한 이후 주로 경상도 출신 정치인들이 장악해 왔다. 이들을 부도덕한 정치권력이라고 한다. 이들을 부도덕한 정치세력이라고 말하는 것은 주로 친일파 정치세력과 뉴라이트 지식인들의 비호를 받으면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부문에 걸쳐 독점해 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한민국의 부도덕한 정치권력에 맞서 김대중이 등장한다. 이 책은 김대중이라는 큰 정치 인물을 놓고 그의 정치철학이 형성되어 가는 정치적 배경과 그의 정치철학은 어떤 것인지를 기술한 정치사상서다. 따라서 이 책은 크게 두 분으로 나누어 기술하였다. 1부에서는 콘텐츠 제공 차원에서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환경역사학’과 주권자 민중의 시각에서 재해석하였다. 이렇게 한국 현대사를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김대중의 정치철학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김대중의 정치 여정과 연결시켜 보았다. 제2부에서는 김대중이 이승만,
더 중요한 것은 제가 강제동원 활동가의 놀라운 헌신과 열정에 깊은 영감을 받은 것
[인턴 체험기] 더 중요한 것은 제가 강제동원 활동가의 놀라운 헌신과 열정에 깊은 영감을 받은 것 서가온 안녕하세요, Williams College에서 비교문학과 미국학을 공부하는 서가온입니다. 지난 여름 동안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인턴으로 일했습니다. 처음에는 가족에게 들은 이야기를 통해 한국역사, 특히 일제 식민지시기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은 두 분 다 한국인이지만 저는 미국 남부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일본 식민지배는 한글학교에서 한국 속담, 한국어 문법을 배울 때 단편적으로 들은 것으로, 한국인의 정체성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던 제게는 부당한 폭력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때부터 독학으로 한국역사를 공부하기 시작했고, 특히 미군 점령 시기와 한반도 분단에 대한 역사를 관심 깊게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제가 그 시대에 살지는 않았지만, 그 역사에 대한 깊은 상실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 역 사는 한글학교에서든 정규 교육에서든 학교에서 배운 적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두 점령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유는, 이 시기의 역사가 한국 근대 역사 전체와 미래를 정의하는 중요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일제 식민시기의 역사가 한민족이 겪은 비극적 서사로만 이야기되고 가르쳐질 때, 미국의 한반도 남부 점령과 그 이후 한국 독재정권의 어두운 역사를 가리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일본 식민지배에 대해 배운 것들을 통해 한국역사와 현재 한국사회에 대한 저의 이해가 깊어졌음을 느낍니다. 지난해 여름 내내 상설 전시 설명문을
언더우드 동상을 밀쳐낸 자리에 대신 들어선 ‘흥아유신기념탑(1942년)’
[이 땅에 남아있는 저들의 기념물 18] 언더우드 동상을 밀쳐낸 자리에 대신 들어선 ‘흥아유신기념탑(1942년)’ 미나미 총독의 휘호일자를 1941년 12월 8일로 소급하여 표시한 까닭 이순우 특임연구원 “섭섭함을 불금(不禁)” [중추원 부의장 이진호(李軫鎬, 창씨명 李家軫鎬)] “정(情)은 떠날 수 없다” [중추원 고문 한상룡(韓相龍)] “불후(不朽)의 공적 찬연(功績 燦然)” [연희전문학교 교장 윤치호(尹致昊, 창씨명 伊東致昊)] “내선일체(內鮮一體)에 큰 공적(功績)” [조선귀족회장 이해승(李海昇) 후작] “영원(永遠)히 못 잊을 자부(慈父)” [화신 사장 박흥식(朴興植)] “좀 더 모시고 싶었다” [경성방직 사장 김연수(金秊洙)] “통치사(統治史)에 획기적(劃期的)” [중추원 참의 이병길(李丙吉) 후작] 여기에 소개하는 내용들은 『매일신보』 1942년 5월 30일자의 지면을 장식한 기사의 소제목(小題目)이다. 제7대 조선총독(재임 1936.8.5~1942.5.29)이던 미나미 지로(南次郞; 1874~1955)가 현직에서 물러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여러 친일인사와 친일귀족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는 꼴이 그의 치적을 찬양하고 칭송하는 말을 뱉어내는 것이었다. 원래 기병장교(騎兵將校) 출신으로 조선군사령관 (1929.8.1~1930.12.22), 육군대신(1931.4.14~1931.12.13), 관동군사령관(1934.12.10~1936.3.6)을 거친 미나미 총독은 ‘전시체제기’와 맞물려 무수한 시국구호와 시정방침을 탄생시켰고 식민지 조선에 대해 내선일체를 앞세운 황민화정책과 병참기지의 역할을 지속적으로 강요했던 인물이었다. 대표적으로 그는 1937년 4월 20일 제2차 도지사회의의 석상에서 국체명징(國體明徵), 선만일여(鮮滿一如), 교학진작(敎學振作), 농공병진(農工倂進), 서정쇄신(庶政刷新)을 시정근본방침으로 내세웠는데, 이것이 흔히 ‘미나미즘(南イズム, Minamism)’으로 일컫는 5대 정강(五大政綱)이다. 여기에 더하여 그는 이른바 ‘지나사변(支那事變, 중일전쟁)’이 개시된 직후 1937년 7월 13일에 총독부 제2회의실에서 열린 재성(在城; 재경성) 신문통신사 대표자 간담회 석상에서는 “내선융화(內鮮融和)는 이미 과거사이며 이제는 내선일체(內鮮一體)를 구현해야 할 시기”라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강변하기도 했다.
식민지역사박물관, 광복절 80주년 행사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 진행
[초점] 식민지역사박물관, 광복절 80주년 행사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함께해요’ 진행 식민지역사박물관은 광복절 80주년을 맞아 다양한 체험 행사를 진행하였다. 〈내가 드리는 상장 만들기〉는 2층 상설전시실에 전시되어있는 다양한 독립운동가와 인권·평화운동가들을 찾아보고, 감사의 마음을 담아 직접 상장을 만들어보는 시간이었다. 여성독립운동가 허은 여사에게는 ‘독립군의 어머니상’, ‘아직 알려지지 않은 우리의 숨은 영웅상’을, 친일파 연구의 선구자 임종국 선생에게는 ‘국민의 목소리상’, ‘애국연구상’ 등을 수여했으며 그 외에도 관람객들이 직접 만든 다양한 상장이 만들어졌다.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에게는 아픔에 공감하며 연대를 약속하는 쿠폰을 만들었다. ‘증언과 노력의 감사 쿠폰’, ‘아내와 아이와 행복하게 아빠로 사는 쿠폰’ ‘행복한 기억으로 가득하길 쿠폰’, ‘가족과의 행복한 시간 선물 쿠폰’ 등 많은 참가자가 강제동원 희생자들이 누리지 못했던 가족과의 행복을 바라는 쿠폰을 만들며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피해자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시간을 가졌다. 〈공개수배〉 활동지 체험은 제대로 처벌받지 않은 일제 침략자와 친일파를 찾아 그들의 죄를 적는 방식이었다. 죄명 외에도 어떻게 벌을 받아야 하는지를 꼼꼼히 적어 남겨두었다. 참가자들은 제대로 친일 청산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다짐을 되새겼다. 그리고 광복절 하루 동안 세 번의 특별해설을 진행하였다. 강동민 자료실장, 김승은 학예실장, 김영환 대외협력실장이 각 한 차례씩 진행했는데, 〈내가 드리는 상장 만들기〉 체험과 연계하여 상설전시실에 전시된 각 인물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현재 박물관은 10인 이상의 단체일 경우 해설 신청이
광복 80주년기념 국회도서관 특별전 〈오늘 다시 보았네, 우리 태극기〉개최
[초점] 광복 80주년기념 국회도서관 특별전 〈오늘 다시 보았네, 우리 태극기〉개최 민족문제연구소는 8월 13일 광복 80주년을 맞아 국회도서관 1층에서 특별전 <오늘 다시 보았네, 우리 태극기>를 개최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기획한 이 전시는 5·18민주화운동 제45주년 기념 서울행사위원회와 국회 역사정의포럼(공동대표: 이수진·김용만 국회의원), 국회도서관이 주최했으며 서울시가 후원했다. 기념행사가 열린 8월 18일에는 우원식 국회의장과 역사정의 포럼 소속 국회의원, 함세웅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황정근 국회도서관장, 소설 ‘소년이 온다’의 실제 주인공 문재학 열사의 어머니 김길자 여사가 참석했다. 애국지사 신영호 선생의 외손자인 배성우 배우와 배성재 아나운서, 5·18민주화운동 단체 회원들이 많이 참석하였으며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이희자 대표와 박진부 회원도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본 전시는 전체 3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1부 ‘독립의 염원을 담아’, 2부 ‘다시 찾은 우리 태극기’, 3부 ‘휘날리는 영광의 깃발’이라는 주제로 한국 역사의 흐름 속 민중과 함께 한 태극기의 모습을 담아냈다. 1부 ‘독립의 염원을 담아’에서는 태극기의 원형을 알 수 있는 도안을 소개하며 대표적인 태극기 중 몇 가지를 선정해 전시했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태극기로 알려진 ‘데니 태극기’를 시작으로, 불원복(不遠復) 태극기, 남상락 자수 태극기, 진관사 태극기,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태극기, 뉴욕 윌도프 아스토리아 호텔 게양 태극기, 김구 서명 태극기, 한국광복군 서명 태극기까지 독립을 갈망하던 한국인의 염원을 담은 다양한 태극기가 전시되었다. 2부 ‘다시 찾은 우리 태극기’ 도입부에서는 갑작스럽게 해방을 맞은 한국인들이 해방을 축하하며 손수 준비한 태극기를 꺼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