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회원마당]
조병옥 생가에 제주4·3학살 책임 묻는 안내판 설치
박진우 후원회원, 시민기자

민족문제연구소 충남지역위원회(위원장 최기섭)와 천안지회, 그리고 (사)제주4·3범국민위원회(이사장 백경진)는 11월 9일(일) 천안시 동남구 병천읍에 조성된 조병옥 생가 앞에 해방과 정부수립과정에서 경무부장 조병옥이 행한 학살의 진실을 밝히는 안내판을 설치했다.
시민단체들은 ‘조병옥의 역사적 과오를 기록하다’라는 제목으로 천안시(1995년 천안군수)가 세운 조병옥을 찬양하는 안내판 옆에 학살의 진실을 설명하는 안내판을 설치하여 방문자들이 조병옥의 ‘공’과 ‘과’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지난 4월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 제221차 집행이사회가 제주4·3의 학살과 진실을 밝히는 기록을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한 바 있다.
국가유산청 누리집 <한국의 세계기록유산> 내 ‘제주4·3기록물’에는 제주4·3기록물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세계적 냉전이 전 지구적으로 확산, 지역적으로 압축되는 양상을 하나의 사건을 통해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냉전시대의 희귀한 기록물이며, 대한민국 행정·입법·사법부, 미군정 및 미군, 봉기세력 등 제주 4·3 당시 이해 당사자들이 각자 생산한 기록물, 사건의 서사적 진실을 담고 있는 희생자와 유족의 피해신고서와 구술증언, 그리고 민간과 정부기관의 진상규명과정 기록 등을 모두 포함하고 있어, 제주 4·3의 완전한 기록물로 볼 수 있다. 제주 4·3의 해결 과정은 국가폭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라는 폭력성을 넘어 화해와 상생이라는 인간성을 보여주는데, 이러한 점에서 제주4·3기록물은 전 세계 과거사 해결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인권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의미 있는 기록으로 볼 수 있다.
제주4·3 세계기록유산은 ‘진실을 밝히다: 제주 4·3기록’이라는 명칭으로 등록되었으며, 1948년 군법회의 수형인 명부와 옥중 엽서 등 수형인 기록(27건), 제주도의회와 제주4·3연구소 등의 희생자 및 유족의 증언(1만 4601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 운동 기록(42건), 대한민국 정부의 진상조사 관련 기록(3건) 등 1948년 제주도민의 항쟁부터 정부의 공식 진상조사보고서가 발간된 2003년까지 1만 4673건의 역사적 기록을 담아 제출하여 지정된 것이다.
그럼에도 대한민국 정부는 제주4·3학살 가해자에 대해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학살자들은 국립서울현충원과 국립대전현충원에 묻혀 역사적 책임을 피해가고 있는 현실이다.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전과 수립 후 대한민국 국군의 통제권을 지휘했던 미국에 대해 어떠한 책임도 묻고 있지 않으며, 제주특별자치도의 도지사나 도의회도 책임있는 노력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시민단체의 안내판은 그 의미가 크다 할 것이다. 최기섭 민족문제연구소 충남지역위원회 위원장은 “조병옥은 인권을 무시하고 제주4·3을 비롯해 민간인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지른 사람으로 과오가 더 많은 사람인데도 천안시는 주요 관광지 8개소에 조병옥 박사 생가지를 포함해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데 77년 만에 학살에 대한 과오를 알리는 안내판으로 단죄를 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밝히며 “천안을 빛낸 인물로 조병옥을 홍보하는 사업을 중지하라”고 촉구했다.
민족문제연구소 천안지회는 지난 2021년도에도 병천면 아우내 독립만세 기념 공원 내에 있던 ‘그날의 함성’ 조형물에 있던 조병옥 동상 철거 운동을 추진하여 철거 및 교체하는데 큰 역할을 한 바 있다(관련기사: 학살의 주범을 역사의 감옥에 가두다 https://omn. kr/1xv42).
안내판 설치에 공동으로 참여한 (사)제주4·3범국민위원회 백경진 이사장은 “조병옥을 비롯해 제주4·3의 강경 진압을 주창한 자들은 제주도민 30만을 다 죽여서라도 제주도를 진압하라는 말을 서슴지 않았는데 진실이 은폐된 대표적인 사례가 조병옥이다. ‘빈대 잡기 위해 초가삼간 태울 수 없다’는 기존 안내판은 기가 막히다. 지난해 겨울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은 청산되지 않은 과거가 불러온 참사지만 성숙한 시민 의식이 이를 분쇄했다. 이번 안내판은 시민들의 힘으로 역사 바로 세우기를 실현하는 과정으로 실천운동 하나하나가 모여 역사가 바르게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밝혔다.
시민단체가 설치한 안내판에는 이렇게 써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신간회, 광주학생운동 배후 혐의, 수양동우회 사건 등으로 5년간 수감되었고 해방 후 미군정청 초대 경무국장이 되었다. 조병옥은 친일경찰을 pro-JAP(친일파)가 아닌 pro-JOB(직업인)이라고 옹호하면서, 친일경찰들이 미군정을 거쳐 한국 경찰의 주류가 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조병옥의 지휘를 받은 경찰들은 대구 10월항쟁, 제주 4·3, 여수·순천 10.19사건 당시 수많은 민간인 학살을 자행하였다. 제주 4·3 당시 조병옥은 평화적 해결에 반대하고 강경 진압을 주장하며, 서북청년단을 제주도민 학살에 대거 동원하였다. 조병옥은 ‘(제주) 주민 90%가 좌익’이라 규정하고, ‘제주도 사람들은 사상적으로 불온함으로 건국에 저해가 된다면 싹쓸어 버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조병옥 생가 앞 안내판은 이승만 정권이 제주도에 “해안선에서 5km 이외 지점을 통행하는 자는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총살하겠다”며 발령한 포고령인 1948년 10월 17일에 즈음하여 설치하려고 준비했으나 이날 설치하였다.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 의하면 제주4·3항쟁은 1947년 3월 1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7년 7개월동안 일어났으며, 정부가 인정한 공식 희생자만 1만 4935명, 추정되는 희생자는 최소 3만 명(제주도민 1/10)에서 최대 9만 명(제주도민 1/3)까지이며, 희생자의 33%는 노인이나 어린이, 여성이다.
단재 신채호는 청산하지 못한 역사나 잊혀진 역사가 반복될 수 있음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영토를 잃은 민족은 재생할 수 있어도 역사를 잃은 민족은 재생할 수 없다.”
• <오마이뉴스> 2025.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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