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회원마당]
하얼빈 역사 기행 답사기
김윤슬 윤슬국어학원장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민족문제연구소의 문을 두드린 지 15년이 훨씬 넘었다. 서울에서 지낼 땐 그래도 민족문제연구소 활동에 관심을 두기도 했는데 제주라는 작은 섬에 온 뒤로는 연구소 활동은 보내주시는 소식지로 접하는 것이 전부였다.
대학 입시를 위해 한국사는 30점 이상만, 4등급 이내에 만들면 된다고 말하는 학생들을 보며, 이 아이들에게 교과서에서 알려주지 않는 역사도 알려주고 싶었다. 선조들이 피와 눈물로 지켜주신 이 나라의 이야기를 단순히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님을 알려주고 싶었다. 이런 내 생각을 지지해주시고 응원해 주신 제주지부의 많은 분과 방학진 실장님을 비롯하여 연구소 식구들 덕분에 올해 초에는 제주의 강태선 지사님도 뵙고, 역사 교과서에 기록조차 없는 법정사 항일 무장 운동을 공부하고 60명이 넘는 학생들과 2회에 걸쳐 답사도 다녀올 수 있었다.
또 『끝나지 않는 석정의 노래』의 저자이자 밀양 독립운동사연구소 최필숙 선생님을 모셔 의열단의 삶과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강연을 들은 아이들 또한 직접 밀양과 난징에 가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뜻깊은 시간이었다.
제주에서 난징은 서울 가는 거리와도 비슷하므로 꼭 한번 추진해 보고 싶다고 생각하던 중 민족문제연구소와 HURA에서 주관하는 신흥무관학교 옛터 답사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안중근 의거 116주년과 이석영 선생 탄생 17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라고 했다. 116년이 흐른 2025년 10월 26일에 내가 하얼빈역에 설 수 있다는 생각에 설릣다. 그리고 그 자리에 서서 감사하다고, 목숨 걸고 지켜주신 이 나라의 변화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방관하고 있어서 죄송하다 말씀드리고 오겠다는 생각으로 답사를 신청하게 되었다.
수능까지 보름 조금 남은 상황에서, 고3 학생들을 두고 가는 답사가 걱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잘 다녀와서 내년엔 자신들과 후배들 데리고 꼭 다시 가자는 말에 힘을 얻어 다녀올 수 있었다.
출발 전날, 안중근 의사를 만난다는 설렘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1909년 10월 24일, 안중근 의사께서도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셨겠지? 라는 마음으로 하얼빈 영화도 다시 보며 아침을 기다렸다.
제주에서 아침 첫 비행기를 타고 김포로 향했다. 김포에서 다시 인천으로 인천에서 하얼빈으로의 긴 여정이었지만, 빨리 안중근 의사를 만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하얼빈에 도착하여 처음 간 곳은 정율성 기념관이었다. 중국에서조차 중국 영웅 100인이라고 인정하는 분을 나는, 그리고 우리는 알지 못했다. 인터넷에서조차 한국계 중국인(나무위키)이라고 기록하고, 해방 이후 북한 관련 활동이 너무 명백하다는 비판적인 평가가 다수였다. 광주에서 태어나신 분을 중국인이라고 하다니, 이념이 뭐길래 이런 평가를 받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다름을 틀림으로 보는 태도, 이것이 많은 독립운동가의 피와 눈물을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렸다는 것에 화가 날 뿐이었다. 혼란과 격변의 시기, 이념의 대립, 독립을 위해 싸웠던 그들에게 누가 옳고 그르다고 말할 수 있는가, 지금 내 이념과 다르다고, 그들이 틀렸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 또한 태어날 때 이념을 선택해서 태어난 것이 아닌데 다름이 틀림이 되는 세상에서 아이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전달할 수 있을까? 우리가 전달하는 역사 속에 옳지 못한 생각과 마음이 담긴 것은 아닐까 우려 섞인 걱정을 해 보았다.
정율성기념관에서 차를 타고 조린 공원으로 이동했다. 안중근 의사는 사형 집행을 앞두고 두 동생에게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할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안장해다오.”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말하는 ‘할빈 공원’이 지금의 조린 공원이다. 이곳에 있는 안중근 의사의 유묵비를 보며 독립을 간절히 염원했던 30살 젊은 청년 안중근의 마음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하얼빈역으로 가기 전 우리는 731부대 옛터를 방문했다. 731 부대의 만행을 담은 731이라는 영화가 개봉 첫날 2억 명이 예매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끈 뒤라 방문객이 매우 많았다.
입장 시간 전에 도착했음에도 한 시간 반 넘는 기다림 끝에 입장할 수 있었다. 일본의 만행이 담긴 기록물이 이렇게 많이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인정하지 않고, 사과조차 없는 일본의 태도가 후안무치로밖에 달리 말할 수 없었다. 기념관 곳곳을 둘러보고 나오던 길 끝에서 판매하고 있는 흰 국화꽃을 보고 나는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 국화꽃은 이곳에서 스러져간 많은 사람을 위해 헌화하라는 의미에서 판매하는 꽃이었다.
우리나라에도 일제가 만행을 저지른 곳이 많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서대문 형무소도, 내가 사는 제주 곳곳에도, 그러나 그 어느 곳에서도 방문객에게 헌화를 권하는 곳은 없었다. 또 헌화해야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이 국화 한 송이가 우리나라가 역사 후진국임을 알려주는 것 같아 너무 부끄러웠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한다. 우리는 역사를 잊은 걸까? 아니다. 우리는 역사를 배우지 못했고 역사를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잊을 역사조차 없는 것이다.
역사를 모르는 아이들에게 농담 삼아 “친일파도 너희보다 역사 많이 알겠다.”라고 말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이런 사소한 태도조차 갖추지 못한 내가, 역사를 모르는 아이들을 탓할 수 있을까? 이들을 탓하기 전 나는, 혹은 우리는 이들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던가? 역사 교과서의 왜곡조차 바꾸지 못한 우리가, 이념이라는 이유로,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바른 목소리조차 내길 주저했던 우리가,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이 시대를 살아갈 청소년들에게 역사를 모른다고 비난할 자격이 있을까? 서대문 형무소에 국화꽃 한 송이조차 들고 갈 생각을 안 했던 내가 부끄럽고 또 부끄러웠다.

나의 이러한 부끄러움은 매일의 답사를 통해 더해지고 더해졌다. 하얼빈에 있는 안중근 기념관에서도, 신흥무관학교 옛터에서도, 양세봉 선생의 흉상을 보면서도…
내가 매일 만나는 우리 학생들보다 고작 조금 더 역사를 아는 것뿐이었는데, 알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부끄러운 어른이면서, 행동할 줄 모르고 비난만 했던 나이 많은 꼰대일 뿐이었는데 그것이 부끄러운 줄도 몰랐던 내 태도가 부끄럽고 미안했다. 제주에 돌아가면 아이들과 함께 역사에 대해 더 많이 공부해야겠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내가 보고 온 이 모든 것을 보여줘야겠다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이 답사를 다녀올 즈음, 많은 학교가 수학여행을 가거나 수학여행을 왔다. 제주 아이들은 서울로 수학여행을 간다. 서울 지리를 잘 모르는 아이들이라 자유시간에 어딜 가야 할지, 뭘 해야 할지 모른다.
제주에 산 지 10년이 넘었어도 나는 아직 육지것이어서 아이들에게 서울의 위치와 지리 맛집 등을 알려준다. 매번 아이들의 수학여행 일정표를 보지만, 롯데월드, 에버랜드를 빠트리는 학교는 없다. 제주를 방문하는 수학 여행팀들이 애월 한담해변과 아쿠아플라넷을 빠트리지 않는 것과 같다.
서울로 수학여행을 가는 제주의 많은 학교 중 서대문형무소나 효창공원을 방문하는 학교는 본 적이 없다, 서대문형무소 도보 20분 거리의 비싼 호텔에 묵으면서도, 서대문형무소든 식민지역사박물관이든, 효창공원이든 방문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다.
제주로 수학여행을 오는 학생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모두가 오는 성산일출봉 아래에도 여러 개의 일제 진지 동굴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지 않는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 유명 까페에서도 보이는 그 동굴이 그저 원래 있었던 동굴이었던 것처럼 관심조차 없다.
이러한 역사 무관심의 문제가 다만 관심을 두지 않는 학생들만의 문제일까? 아니다. 방관하고 안일했던 우리의 문제이다. 서대문형무소에서 헌화조차 하지 않도록 가르친,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쳤어도 이념이라는 이유로 비난하거나 지워버렸던 우리의 문제이다. 좋은 점수만 받으면 되니 역사는 적당히 암기해서 시험 봐도 된다고 말한 우리의 문제이다. 친일파 청산조차, 4·3 가해자 명단조차 하지 못하고 만들지 못했던 우리의 잘못이다. 친일하면 3대가 배부르고 독립운동하면 3대가 굶주리는 현실을 만든 우리의 잘못이다.
내년 여름, 제주의 아이들과 함께 내가 봤던, 내가 경험하고 나를 변화시킨 이 답사를 다시 진행할 것이다. 답사 중 만났던 모 지역 학생들처럼 구청의 지원 프로그램으로 답사를 다녀올 순 없겠지만, 한 명의 아이에게 올바른 역사를 알려줄 수 있다면, 내 사비를 들여서라도 꼭 다시 갈 것이다.
안중근 의사의 동상 앞에서 감사 인사를 전할 수 있도록, 양세봉 선생의 흉상 주위의 잡초를 뽑고 무너진 돌무더기를 정리하며 바른 역사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아이들과 함께 배워 나가고 싶다.
내가 이러한 생각과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답사 내내 나의 궁금증을 해결해 주시느라 고생 많으셨던 조세열 이사님, 방학진 실장님, 김재운 실장님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 인사를 전한다.
또한 여행 내내 불편한 곳은 없을지 하나하나 신경 써주신 이민아 대표님, 김명 가이드님께도 감사드린다.
수능 보름 앞두고, 중간고사 피드백도 하지 않은 채 이 답사를 다녀오는 것이 나에게는 큰 부담이었다. 하지만 보지 않았다면 느끼지 못할, 배우지 못할 것이 너무 많은 답사였기에 다른 답사도 꼭 참여하고 싶다.
추신 : 중간고사, 기말고사, 방학 등의 일정을 고려하여 답사 일정을 짜 주시면 너무 좋겠습니다. 내년에 꼭 제주 출발 프로그램!!! 함께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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