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자료관 5]
이른바 ‘철도파괴범’ 처형장면 목격담
이순우 특임연구원

일제 패망 직전에 조선총독부 정보과에서 펴낸 『새로운 조선(新しき朝鮮)』(1944)이라는 선전책자의 첫머리에는 이러한 구절이 나온다.
“禿山の赤土山の山つづき 悲しき國をつくれるもの哉(벌거숭이 붉은 흙산의 산줄기가 슬픈 나라를 만든 것일까)”
일찍이 어느 가인(歌人)이 탄식했듯이 자토색(赭土色)의 민둥산과 빨래하는 백의부인(白衣婦人), 이것이 20년 전 혹은 10수년 전까지의 조선의 인상(印象)이자 슬픈 현실이었다. …… 일찍이 ‘슬픈 나라’라고 읊었던 가인은, 지금 이 싸우는 조선(戰ふ朝鮮)의 격렬한 기백과 늠름한 현실을 직시하고 과연 뭐라고 노래할 것인가. 조선은 전진(前進)한다. 그 목표는 단 하나 ‘황국일본(皇國日本)의 무궁(無窮)한 발전(發展)과 함께’ 조선은 전진한다. 당당(堂堂)하고, 또 역강(力强)한 2,600만 동포(同胞)의 밀물 같은 전진의 공음(跫音, 발소리)에, 우리 잠시 귀를 기울여보지 않겠는가.
여기에 “어느 가인(歌人)”이라고 적어놓은 이의 정체는 야마지 하쿠우(山地白雨, 1879~1914) [본명은 야마지 쥰이치(山地純一)]이다. 그는 현직 체신서기(遞信書記; 경성우편국 근무)이면서 이런저런 문필활동을 했던 작가이기도 했다. 그러한 그가 심장마비로 급작스레 죽자 절친했던 — 신문기자 출신이자 언론출판인으로 활동했던 — 호소이 하지메(細井肇, 1888~1934)의 손으로 그의 유고문집이 만들어지는데, 그것이 곧 『슬픈 나라(悲しき國を)』(1922)이다.
이 책을 뒤적이다 보니 「총형(銃刑)」이라는 제목의 글이 퍼뜩 눈에 띈다. 이것은 이른바 ‘철도파괴범’ 처형(1904년 9월 21일 집행) 당시의 목격담인데, 러일전쟁 당시 이 땅에 주둔한 일본군에 의해 김성삼(金聖三), 이춘근(李春勤), 안순서(安順瑞) 등 3인의 조선인이 억울하게 ‘철도파괴범’으로 몰려 마포 공덕리 부근에서 공공연하게 포살(礮殺)로 처형된 바 있다.
이 사건에 관해서는 앞서 『민족사랑』 2019년 12월호에 게재한 「[식민지 비망록 53] 이른바 ‘철도파괴범’ 처형장면의 현장, 도화동 공동묘지 — 그들의 죽음은 어떻게 일제의 선전도구로 활용되었나?」를 통해 자세히 정리한 적이 있으나, 그 당시에는 이 목격담을 미처 확인하지 못한 불찰이 있었다. 그것을 보충하는 의미도 있고, 더구나 — 그리 긴 내용은 아니지만 — 현장에서 직접 목격한 생생한 기록이니만큼 자료로서의 가치도 충분하지 않을까 하여 그 내용을 여기에 소개하여 두고자 한다.
| 야마지 하쿠우(山地白雨), 『슬픈 나라(悲しき國)』(1922), 「총형(銃刑)」(77~80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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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월 모일(某月 某日) 마포가도 만리장(麻浦街道 萬里莊)에서 아무개 아무개 등(某某等) 한인(韓人) 3명(三名)을 군법(軍法)에 의해 총형(銃刑)에 처(處)함. 이러한 의미(意味)의 고시(告示)가 경성(京城)의 요소요소(要所要所)에 첩출(貼出)되었다. 나[僕]는 소년(少年)이던 시절에 조부(祖父)에게서 누누이 마츠하라(松原)의 수참(首斬) 이야기를 듣고 미숙한 호기심(好奇心)이 솟구쳤던 일이 있었는데, 때마침 그 옛이야기를 지금의 세상에서 보는 것 같은 셈이었으므로 이날 아침 일찍부터 견물(見物, 구경거리)을 찾아 외출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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