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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공화국 시대, 황실의 비극-한겨레21(07.01.23)

2007년 1월 26일 428

공화국 시대, 황실의 비극 고종의 아들딸들이 힘겹게 통과해야만했던 근현대사, 불행은 손자들에게도… 이구씨 사망으로 적통 끊어졌지만 황실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혼란스럽기만 ▣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만화가 박소희씨가 쓴 <궁>은 “물론 이것은 가상의 이야기입니다”라는 말로 첫 페이지를 시작한다. “지금 일본과 영국의 많은 나라는 아직도 왕실이 존재하는 입헌군주제를 택하고 있습니다.                    △ 2005년 7월 이구 황손의 죽음으로 고종에게서 내려온 대한제국 황실의 적통은                역사에 종말을 고했다. 하지만 우리의 궁궐들은 주인을 잃은 채 쓸쓸하게 비어 있지요. 일제와 열강의 탄압으로 왕가의 맥이 끊어지고 말았던 겁니다.” 조선시대 정궁이었던 경복궁은 이제는 헐리고 없는 조선총독부 건물에 밀려 대부분이 파괴됐고, 경운궁(덕수궁)은 주변에 들어선 각국 공사관들에게 터를 내주고 쪼그라들었으며, 창덕궁은 놀이터로 탈바꿈하는 치욕을 겪었고, 서울시 역사박물관 터에 자리하고 있던 경희궁은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그마나 제 모습을 조금이라도 간직하고 있는 궁궐은 조선의 마지막 황제 순종이 머물렀던 창덕궁뿐이다. 고종의 9남4녀 중 어른으로 성장한 이는 넷황손들의 운명도 궁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고종은 정비였던 명성황후를 포함한 8명의 부인에게서 9남4녀를 뒀지만 어른으로 성장한 것은 순종(1874~1926), 의친왕 이강(1877~1955), 영친왕 이은(1897~1970)과 덕혜 옹주(1912~1989) 넷뿐이었다. 이른 죽음에 사연이 없을 리 없다. 영보당 이씨가 낳은 고종의 맏이 완화군 이선은 13살 때 홍역을 앓다가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명성황후의 독살설이 전한다. 명성황후가 1871년에 낳은 원자는 대원군이 내려보낸 산삼을 먹고

[전담부] 서울고검 송무부-법률신문(07.01.22)

2007년 1월 26일 475

[전담부] 서울고검 송무부 “국고손실 막아라”… 국가상대 소송 지휘  서울고검 송무부는 국고손실을 막는 파수꾼 역할을 하고 있다. 송무부는 현재 박영렬(사법연수원 13기)부장검사를 중심으로 정명호(〃13기) ·염웅철(〃15기) ·박상우(〃16기) 부장검사, 김성렬(〃23기) 부부장검사 등 부장검사 5명과 27명의 공익법무관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행정소송이나 국가를 상대로 한 민사소송을 수행하고 있다. 최근 국가를 상대로 한 민사소송과 행정소송이 급증하며 이들의 활동은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최근 들어 대표적인 것이 ‘금지금(金地金·순도 99.5%이상 금괴) 변칙거래를 이용한 탈세사건이다. 지난해 이사건은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을 정도로 국민적 관심을 끌었다.이 사건은 조세관련 행정소송을 수행하면서 이상한 점이 발견되어 지난해 4월 서울고검 송무부 주관으로 고검 공판부, 중앙지검 형사4부, 국세청, 관세청의 실무자들이 특별대책회의를 열고 수사에 착수했다. 이후 고검 송무부가 주도하는 송무팀에서는 지금까지 금지금을 이용해 조세를 포탈한 사범에 대한 행정소송에서 10건의 승소를 거두었으며 현재까지 승소합계액만 919억원에 달한다. 또 수사팀에서는 수출 판매를 위해 수입되는 ‘금지금’ 등에 대해 면세혜택을 주는 제도를 악용해 5,600억원의 부가가치세를 포탈·환급받은 탈세조직 5개파 34명을 적발, 이중 30명을 구속기소했다.또 2005년 12월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이 시행됨에 따라 지난해 1월부터 6월까지 3회에 걸쳐 친일파 후손이 제기한 친일재산 소송 10건에 대해 소송중지 신청을 했다.이와 함께 친일파 후손 명의의 재산 8건을 찾아내 처분금지가처분 신청을 제기했으며 지난해 7월 친일파 후손이 제기한 소유권보존등기 말소 청구소송에서 패소를 예상한 친일파 후손의 소취하에 대해 부동의 지휘로 적극

정부,日에 조선왕조 문서 반환요청 검토

2010년 2월 8일 487

정부,日에 조선왕조 문서 반환요청 검토(머니투데이, 10.02.08)

조선왕실 문서 반환 요청, 금주 한·일 외무회담서 제기키로

2010년 2월 8일 359

조선왕실 문서 반환 요청, 금주 한·일 외무회담서 제기키로(뉴스천지, 10.02.08)

이이화 “우리 역사에 너무 소홀, 정체성 혼란 걱정”-노컷뉴스(07.01.22)

2007년 1월 26일 336

이이화 “우리 역사에 너무 소홀, 정체성 혼란 걱정” [손숙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재야 역사학자 이이화   평생을 삐딱하게 살아왔고, 남이 다 가는 넓은 길에서 튕겨 나와 좁고 가파른 길로 멀리 돌아왔다.그 흔한 대학졸업장도 없고 학위도 없지만 명문대 정통코스를 거쳐 교수나 박사를 하는 사람들도 이 사람을 만만하게 보지 못한다.후배들 사이에서 작은 거인으로 통하는, 158cm에 48kg, 작은 몸 어디에 그런 깡다구가 있나 싶게 말 힘, 글 힘이 아주 센 이 사람.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는 민중을 역사의 주인공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대중화에 힘쓴 재야 역사학자 이이화 씨를 22일 방송될 CBS ‘손숙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에서 만났다. -위암수술을 받으셨다는데. ▲”1년5개월 전에 받았습니다. 체중이 건강할 때 48kg이었는데 요새는 그것보다 적게 나갑니다. 그래도 초기여서 생명에 지장은 없었어요.”-파주 헤이리 쪽으로 이사하셨죠?▲”올해 초에 이사 갔지요. 지난 3년간 사회활동을 많이 한 편이라 금년에는 글 쓰는 데 매진하려고 일부러 장소를 바꿔보았지요.”-2004년 5월에 22권짜리 ‘한국사 이야기’가 완간되었는데 간단히 소개 부탁드립니다.▲”10년 걸린 작업이었지요. 22권이니까 개인이 쓴 분량으로서는 제일 많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제 나름대로 ‘역사는 엄숙주의에서 벗어나야 된다, 또 아카데미즘에서 벗어나야 된다. 대중과 호흡을 해야 된다, 그래서 문장이나 내용 구성이나 우리 생활이라든지 감각에 조금 더 밀착된 것으로 구성을 해야 된다’는 각도에서 역사의 대중화를 위해 관심을 많이 기울이면서 그 책을 썼지요.”일선 학교서도 국사는 뒷전,

소설가 이문열 “참 멋진 보수 되고싶어”-한국일보(07.01.22)

2007년 1월 26일 2394

소설가 이문열 “참 멋진 보수 되고싶어”   [100℃ 인터뷰 전문] “보수꼴통이란 말에 충격…” ◆인터뷰에 너무 흔쾌히 응해주셔서 의외였습니다. “이거(100°C 인터뷰) 막 혼내키고 되게 무섭다카데요.(웃음) 그래서 예상문제도 만들고, 모범답안도 만들어 왔는데, 막상 만나니까 한 개도 생각이 안 나네. 사실 하도 고약한 경우를 많이 당해서 겁나요. 대충 세보니까 내가 안 한 말로 오해 받고 있는 게 19가지나 되더라고요.” ◆무슨 오해를 그렇게 받으셨다는 겁니까.   “몇 년 전 고약한 경우를 당했어요. 책 장례식 할 당시 11월 부산 해운대 모 호텔에 강연을 갔었어요. 10월 즈음부터 책 장례를 주동한 사람들이 부산 사람들이었는데, 내가 어릴 적에 부산서 5년간 살았거든요. 그래서 강연장에서 “이만 하면 저도 부산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요?”라고 물었더니 다들 “부산 사람이라 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내가 아는 바로는 책 반환운동 하면서 책 모으고 있다는 사람들은 부산 사람 아닌 것 같다. 부산사람들은 성격이 급하고 직정적이어서 한 권씩 책 모아서 불태우고 하지 않을 것 같다” 그렇게 말했어요. 그랬더니 책 장례식의 주동격인 사람이 찾아와서 “선생님, 그럼 내가 부산 사람 아니면 어디 사람입니까? 전라도 사람이란 말입니까?”하더라구요. 그때 내 실수가 “어느 지역이든지 간에”라고 했어야 하는데 “그럴 수도 있지”라고 한 게 실수예요. 그랬더니 그 사람이 “내가 할아버지 때부터 함안서 살았고 아내도 전라도가 아니다” 하길래 내가 그런가 보다 했어요. 그런데 그 사람이 ‘내가

[오솔길]조선왕실의궤 반환을 바라며

2010년 2월 8일 571

[오솔길]조선왕실의궤 반환을 바라며(강원일보, 10.02.08)

정부, 日보관 조선왕조 문서 반환 요청 검토

2010년 2월 8일 348

정부, 日보관 조선왕조 문서 반환 요청 검토(헤럴드경제, 10.02.08)

흥선대원군 고손 “증ㆍ조부 친일파 아니다” 소송-헤럴드경제(07.01.16)

2007년 1월 26일 298

흥선대원군 고손 “증ㆍ조부 친일파 아니다” 소송    흥선대원군의 고손(高孫)인 이모씨가 구한말 자신의 증ㆍ조부의 행적을 친일행위로 규정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결정을 취소해 달라며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18일 서울행정법원에 따르면 이씨는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가 증조부와 조부의 행위를 일제 강점기하에서의 친일반민족 행위로 결정한 근거법률인 반민족특별법이 위헌이기 때문에 이 결정은 효력이 없어 취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이씨는 소장에서 자신의 증조부와 조부들이 친일행위를 했다는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의 설명만을 첨부하고 위원회의 결정이 왜 위헌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추후 제출할 위헌심판제청신청서에서 자세하게 밝히겠다고만 덧붙였다.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는 지난해 9월11일 흥선대원군의 아들 이재면씨가 1910년 8월22일 한일합병조약 체결에 관한 회의에 황족대표로 참석해 조약체결에 동의하고 일제로부터 포상을 얻었으며 이재면씨의 아들인 이준용 씨 역시 일본의 내선융화정책과 일선동조론을 옹호한 단체인 ‘신궁봉경회’의 총재직을 수행하며 일제의 포상을 얻었다는 점을 들어 친일반민족행위로 결정했다.

“[中동북공정 52% 한국관련]고구려-발해 역사왜곡에 집중”-‘동아'(07.01.26)

2007년 1월 26일 508

“[中동북공정 52% 한국관련]고구려-발해 역사왜곡에 집중”   中동북공정 연구과제 107개중 56개 ‘한국관련’ ‘뒷부분 한국사’는 몰라도 되나 2002년 2월 시작된 중국의 동북공정이 31일을 끝으로 당초 계획된 5년간의 공식 활동을 일단 마무리한다.동북아역사재단의 이인철 책임연구위원이 지금까지 그 전모가 확인되지 않은 동북공정 연구과제 114개(공문 7개 포함)를 추적해 이를 분석한 자료는 동북공정의 전체 그림을 그리는 데 큰 도움을 준다.중국사회과학원 변강사지연구중심은 2002∼2004년 홈페이지를 통해 동북공정 연구과제를 공모했다. 연구과제는 크게 일반 공모를 거치는 일반과제와 연구자를 지정해 위탁하는 위탁과제로 나뉜다. 위탁과제는 공개되지 않는다.이들 연구과제는 △고대중국강역(국경)이론 △동북지방사연구 △동북민족사연구 △고조선·고구려·발해사 등 한국고대사 △한중 관계 △중-러 관계 △공문서·문헌정리와 번역 등 7개 계열로 나눌 수 있다.7개 계열 아래 다시 2002년 1차연도 기초연구분야 27건 등 총 52건, 2003년에는 20건, 2004년에는 15건 등 세부과제가 공시됐으며 연구신청서를 받아 심사를 통해 공식 채택되면 공식 ‘연구과제(입항·立項 과제)’로 등록된다. ○ 동북공정의 주제별 분석 이 책임연구위원이 확보한 것은 이들 연구과제의 목록과 연구자 이름, 소속기관의 정보다. 연구과제는 2002년 50개, 2003년 45개, 2004년 7개, 2005년 12개 등 모두 합쳐 114개다. 2005년과 2006년 연구과제는 모두 위탁과제였기 때문에 공개되지 않았는데 이 연구위원은 2005년 연구과제도 입수했다. 변강사지연구중심이 사실상 2006년 후반기에 동북공정을 마무리 지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기 때문에 2006년 연구과제는 많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이번 조사결과는 “동북공정의 성과물이 100권이 넘을 것”이라는 동북공정 실무 책임자 마다정(馬大正) 변강사지연구중심 동북공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