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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강제병합 100년] 연재를 끝내며 – 전문가 좌담
[한일 강제병합 100년] <31ㆍ끝> 연재를 끝내며 – 전문가 좌담(한국일보, 10.08.31)
한일 강제병합 100년을 돌아보며…
한일 강제병합 100년을 돌아보며…(경북일보, 10.08.30)
[초대합니다]한일공동다큐 “안녕, 사요나라 あんにょん サヨナラ-야스쿠니 신사를 말한다” 시사회
민족문제연구소 ▲ 한국 주인공 이희자씨 ▲ 인생의 전환점이 된 오키나와를 찾은 일본 주인공 후루카와씨 ▲ 눈 내리는 겨울의 야스쿠니신사 ▲ 야스쿠니신사 합사취하소송을 함께 벌이는 이희자씨와 일본인 유족들이 도쿄의 무명전몰자묘역을 찾았다. ▲ 한국인 강제동원피해자들의 대일소송을 지원하는 오사카 회원들과 김치를 만들며 환하게 웃는 후루카와씨와 이희자씨 ▲ 지난 5월, 일본의 과거청산을 요구하는 국제연대협의회 동경대회 직후 야스쿠니신사 앞에서 열린 집회. ‘조센징은 돌아가라’며 시위대를 막은 일본 우익들에게 항의하는 후루카와씨. ▲ 60년 만에 찾아간 부친의 사망장소(중국 광서성)에서 오열하는 이희자씨와 후루카와씨.. 한일공동다큐 “안녕, 사요나라 あんにょん サヨナラ” 시사회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해방 60주년, 을사륵약 100주년, 강제병합 95주년이 되는 올해는 한일 양국이 모두 과거사를 진지하게 성찰해보는 의미 있는 한해가 되어야 할 것으로 믿습니다. 그러나 가해자인 일본의 다수 정치인들과 극우세력들은 무자비한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에 대해 반성하기는커녕 오히려 군국주의의 향수에 젖어 과거로 회귀하고 있습니다. 일본 사회의 이 같은 우경화 흐름 속에서도 양심적인 시민운동세력은 역사왜곡교과서 채택을 저지하고 평화헌법을 수호하며 강제동원피해자들을 지원하는 활동을 맹렬하게 전개하고 있습니다.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 한일 양국 시민운동의 역할과 협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입니다. 역사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한일양국의 시민단체들이 힘을 모아 갈등의 상징이 되고 있는 야스쿠니신사 참배 문제를 새로운 시각에서 조명해보는 다큐멘터리를 공동으로 제작했습니다. 실타래처럼 얽힌 한일관계를 푸는 지혜를 실천
이광수 체포한 반민특위 조사관 정철용 선생 입원
민족문제연구소 ▲ 반민특위 조사관으로 활동했던 정철용씨(오른쪽)가 강만길 위원장의 손을 잡고 격려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반민특위 조사관이었던 정철용 선생(80)이 현재 지병 악화로 서울아산병원에 2주 넘게 입원 중이다. 선생은 전립선염으로 하반신이 심하게 부어 거동이 불가능한 상태이며 식사와 의사 소통도 어려운 지경이다. 반민특위 당시 중앙사무국 제2조사부(문화·교육부문)에서 활동하면서 1949년 2월 7일 대표적인 친일 문인 춘원 이광수를 직접 체포하기도 했다. 1949년 6월 6일에는 이승만의 지시를 받은 친일 경찰들에 의해 반민특위가 불법적으로 습격 당한 현장에서 고초를 당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반민특위 해체 이후 한국전쟁 등을 거치며 반공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선생은 반민특위 요원이었다는 사실 자체를 숨긴 채 살아와야 했다. 올 5월 31일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현판식에 초대된 선생은 남다른 감회에 졌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선생의 마지막 소원은 반민특위에 대한 법적 명예회복이다. 이를 위해 우리 연구소는 지난 2월 김원기 국회의장과 오영교 행정자치부 장관 앞으로 반민특위 명예회복 조치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낸 바 있다. 1949년 당시 반민특위는 제헌의회 소속 기관이었기 때문에 현재의 17대 국회가 명예회복의 조치를 취해야 할 주체이다. 또한 당시 반민특위를 습격한 기관은 당시 이승만의 지시를 받은 중부경찰서 소속 경찰들이었으므로 오늘날 행정자치부와 경찰청이 공식 사과의 각 당사자가 된다.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국회에서는 우리 연구소가 보낸 공문에 대해 국회 행정자치위원회 송부했다는 회신 뿐 이며
재일조선인은 사람이 아니었다
시모노세키 똥굴동네와 재일동포 2세 배동록 할아버지의 처절한 증언 김영조·이윤옥 “2004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신 후 몇 번이나 그만두려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지금까지 지원해주신 양심적인 일본선생님들 그리고 강연할 때마다 나에게 보내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써내려간 아이들의 감상문에 힘을 얻어 지금까지 해낼 수 있었습니다.” 늙으신 어머니와 함께 일본의 초,중,고등학교를 돌며 재일조선인들의 강제연행과 재일동포의 피눈물 나는 역사를 증언하고 다니는 배동록 씨는 2006년 <조선대학교동창회장려상> 수상 소감에서 이렇게 ‘증언’의 고달픔을 토로했다. 동포 2세인 배동록(67살) 씨는 1995년부터 어머니와 증언 일을 시작해 오는 2010년 11월 10일 치쿠호의 우스이초등학교에서 700번째 증언을 맞이한다고 했다. 그는 살아있는 재일조선인의 역사 그 자체였다. 그의 비썩 마른 야윈 몸이 무려 15년째 해오는 ‘억압과 차별’의 증언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말해준다. 몇 가닥 남지 않은 머리칼 하며 퀭하니 들어간 눈동자는 그가 살아낸 세월의 고단함을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지만 그래도 눈빛만은 광채가 났다. 어머니와 단짝을 이룬 모습이 흡사 한 쌍의 기러기처럼 다정해 보였던 두 모자는 그러나 2004년 어머니의 작고로 외로운 기러기가 되어 그날도 ‘전쟁에 광분했던 일제의 만행’을 증언하고 있었다. ▲ 답사단을 태운 전세 버스 안에서 어머니 사진을 들고 재일조선인의 삶을 증언하는 동포 2세 배동록 씨 2010년 8월 9일 오전 9시 나가사키의 추도식을 마치고 시모노세키로 향하는 버스에서 답사단은 도시락으로 늦은 아침을 때웠다. 그리고는 시간을 아껴 재일 동포 2세 배동록 씨의 버스
만주국군 대위 출신 김동하 흉상, 마사회 본관 앞에 서 있어
민족문제연구소 ▲ 한국마사회 앞에 설치되어있는 김동하 흉상 만주국이 세운 신경군관학교 1기생으로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김동하의 흉상이 경기도 과천 한국마사회 본관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이 최근 연구소 회원의 제보로 밝혀졌다.1919년 함북 무산에서 태어난 김동하는 1942년 신경군관학교를 1기로 졸업했으며 1941년 7월에는 국세조사기념장을 받고 1945년 8월 일제 패망 당시 만주국군 대위로 복무하고 있었다. 귀국후 해병대 창설요원으로 참가했으며 5.16 쿠데타에 가담해 정부 요직을 두루 거쳤다. 이후 한국마사회 회장과 5.16 민족상 이사를 지내기도 했다. 이 흉상은 1996년 당시 마사회장인 오경의와 임직원들이 세운 것으로 기록되어있다.
친일파 시리즈 3편 DVD로 출시
민족문제연구소 [편집자주] 임종국선생기념사업회 운영위원이기도 한 정길화 PD (현 문화방송 홍보심의국장)가 연출한 <이제는 말할 수 있다-친일파>관련 3편이 DVD로 출시되었다. 아래는 DVD ,출시를 맡은 비트윈(주)에서 작성한 보도자료이다. 정길화 PD는 오랫동안 친일문제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온 몇 안 되는 방송인으로 문화방송의 대표적인 시사 교양프로그램인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등을 맡아오면서 시청자들에게는 낯익은 인물이기도 하다. 정길화 PD 누리집 http://www.jungpd.co.kr 비트윈㈜에서는 광복 60주년을 앞두고 <이제는 말할 수 있다-한국전쟁과 포로>편에 이은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시리즈 중 <이제는 말할 수 있다-친일파>편을 출시한다. 역사적 사건에 대해 진실을 밝히고 이에 대한 평가를 재해석하여 주목을 받은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7년간 100회를 방영한 정통 현대사 다큐멘터리로 한국방송대상, 삼성언론상, 민주언론상, 통일언론상, 한국언론대상, 앰네스티언론상, 안종필자유언론상, 프로그램 공익상 등을 수상하며 프로그램의 작품성을 확고히 인정받은바 있다. 8월 4일 출시되는 <이제는 말할 수 있다-친일파>편에는 방송대상 작품상을 수상하고 첫방송 이후 5차례나 재방송된 ‘반민특위-승자와 패자'(연출 정길화 작가 김윤양)편을 비롯하여, 심야 교양프로그램으로는 이례적인 시청률 11% 기록하며 시청자들의 많은 관심을 끌었던 ’53년 만의 증언, 친일경찰 노덕술'(연출 정길화 작가 김미라)편, 국회의 친일파 인명사전 예산 삭감 논란, 이승연의 위안부 누드 파동 등으로 대한민국의 여론이 뜨거울 때 방영돼 화제가 됐던 ‘만주의 친일파'(연출 정길화 작가 김미라)편 등 각각 다른 시기에 방송되었으되 일관된 주제의식으로 제작된
광복60년 바로알고 바로잡아야 할 일제문화잔재 시민제안공모 선정작 발표
문화관광부 광복60주년기념문화사업추진위원회 문화관광부 광복60주년기념문화사업추진위원회(위원장 황병기, 이하 추진위)는 지난 5월 2일부터 7월 15일까지 접수한 ‘일제문화잔재 바로알고 바로잡기’ 시민제안공모의 심사결과 45건을 선정해 8월 10일 발표했다. 이 시민공모는 광복 60주년을 맞아 시민들이 직접 생활 속 일제문화의 잔재들을 찾아 제안하는 사업으로, 뿌리 깊은 일제문화잔재에 대한 국민적 환기와 그 지혜로운 극복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기획됐다. 총 시민제안건수는 606건이며, 유형별로 보면 문화관련 잔재 15건, 생활잔재 28건, 언어잔재 135건, 교육관련 잔재 11건, 유형잔재 90건, 제도관련 잔재 17건, 지명잔재 305건과 기타가 5건이었다. 추진위는 총 3차례에 걸쳐 각 분야별로 고증심의위원회를 개최, 제안된 일제잔재의 타당성 및 근거사유들을 검토해 후보작 70건을 추렸으며, 최종심의(심의위원 명단 별첨)에서 으뜸상 1건, 버금상 4건, 특별상 1건, 최다제안상 1건, 누리상 29건을 최종 선정했다. 관련기사 일제 수탈의 상징 ‘가마니’, 알고 쓰시나요?(오마이뉴스, 05.08.12) 으뜸상으로 우석대 조법종 교수가 제안해주신 “만경강 영산강”이 선정됐다. 이 제안은 일제가 우리 역사와 문화를 말살하기 위하여 인명(人名)과 지명(地名)만 바꾸고 훼손한 것이 아니라 생명의 원천인 강의 이름까지도 바꾸었음을 확인시킨 것으로, 심의위원회는 우리역사를 바로세우고 과거일제의 잔재를 청산하는 광복60주년을 기념하는 대표적 사업으로 지명개정과 함께 강 이름 개정도 명확히 행할 것을 제안했다. 심사위원들은 우선 만경강․영산강이라는 익숙한 이름이 전통 지지류에는 나타나지 않는 일제 잔재임을 입증하고 제안자가 강 이름 조사를 호남 전역으로 넓히고 있으며 나아가 전국에 걸쳐 전면적인
나가사키의 오카마사하루 씨를 아시나요?
거짓의 현장과 진실의 현장이 공존하는 나가사키 김영조·이윤옥 기타큐슈의 치쿠호(筑豊) 탄광일대를 둘러보고 난 이튿날 아침(8월 8일) 답사단은 나가사키로 가는 도중 미군기지 도시 사세보에 들렸다. 사세보(佐世保)하면 네덜란드 마을로 알려진 ‘하우스텐보스’를 떠올릴 사람이 많은데 하우스텐보스(Huis Ten Bosch)란 네덜란드어로 ‘숲의 집’이란 뜻으로 네덜란드의 베아트릭스 여왕이 살던 하우스텐보스 궁전을 재현해 놓은 데서 붙은 이름이다. 나가사키 하우스텐보스는 최근 한국 여행사들이 단독 상품으로 만들어 관광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다녀왔거나 들어본 적이 있는 알려진 관광지이다. 그러나 사세보전체에 83%를 차지하는 미군기지 시설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해발 364미터에 있는 유미하리다케 전망대에 오르니 사세보 미군기지 시설이 한눈에 들어온다. 무더웠지만 쾌청한 날씨 덕에 탁 트인 바다가 일품이다. 바로 코앞에는 긴 타원형 해안에 자리한 군함들이 시야에 들어왔고 반듯하게 꾸며진 미군시설이 손에 잡힐 듯 들어온다. 이날 사세보 미군기지를 안내해준 사람은 미야노유미코 씨와 미군범죄피해자구호협회 도유사 사무국장이었다. 그는 재일동포 3세였는데 사세보에 있어서의 미군기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해주었다. 사세보에는 미군기지와 일본 자위대 기지 등이 있으며 이와 더불어 요코스카 해군기지, 아츠기 해상자위대, 요코다 공군사령부와 오키나와 후텐마, 가데나, 화이트비치까지 일본 내의 주요 미군기지와 태평양에서의 미군의 역할 등에 비교적 소상한 설명을 들려주었다. 하지만 푹푹 쪄대는 날씨에다가 군사시설과 작전이란 것이 워낙 복잡하고 어려워 ‘미군기지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는 미야노 씨 이야기에 답사단은 더 많은 관심을 보이는 듯했다. 미야노
“죄 없는 식민지화는 없다”
“죄 없는 식민지화는 없다” [2010.08.20 제824호] [기고] 반성도 책임도 없는 일본 총리의 한일병합 100년 담화…식민지배 자체가 범죄행위라는 인식 선행돼야 기억에 관한 실험 가운데 인상적인 게 있다. 정상인과 기억상실증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이다. “당신은 지금 해변의 모래사장 위에 서 있습니다. 앞에 무엇이 펼쳐져 있을지 3분간 상상해보세요. 뭐가 보이나요?”라는 질문을 했다. 정상인은 별문제 없이 미래를 상상했지만, 기억상실증 환자는 미래를 상상하는 데 심각한 어려움을 겪었다. 이 연구는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미래를 상상하지 못한다는 실험 결과를 도출했고, 이는 ‘기억의 존재 이유’를 새롭게 해석하게 만들었다. 기억은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기록해두는 대뇌 활동이 아니라 매 순간 변하는 현재와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경험의 질료’라는 것이다. 따라서 과거를 다시 드러내는 것은 현재적 관점에 따라, 또는 미래를 위해 과거를 다시 구성하는 일이기도 하다. 8월10일 일본 간 나오토 총리의 담화가 우리의 관심을 끌었다. 올해가 제국 일본이 조선의 주권을 빼앗아 식민지로 만든 때로부터 100년이 되는 해인 만큼 일본 총리의 담화는 어떤 형태로든 의미가 있을 수밖에 없다. 간 총리는 담화에서 “식민지 지배가 가져다준 많은 손해와 고통에 대해 여기에 다시 한번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의 기분(심정)을 표명”한다면서 실천 방안으로 재사할린 한국인 지원과 유골 반환 지원, <조선왕실의궤> 등 문화재 반환을 내놓았다. 큰 기대를 한 건 아니지만, 담화 내용은 매우 실망스러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