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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친일문제 이분법으로 그리고 싶지 않았다

2010년 9월 28일 262

친일문제 이분법으로 그리고 싶지 않았다(연합뉴스, 10.09.26)

[역사 속의 인물] 박영효는 친일파였을까?

2010년 9월 28일 444

[역사 속의 인물] 박영효는 친일파였을까?(매일신문, 10.09.25)

한상범 전 소장, 제16회 사월혁명상 수상

2005년 4월 16일 1012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소 소장을 역임한 한상범 동국대 교수가 4월혁명회로부터 제16회 사월혁명상 수상자로 선정됐다.시상식은 2005년 4월 18일 오후 2시, 흥사단 강단에서 열린다. 한상범 교수는 2001년 3월부터 의문사진상규명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기지 전까지인 2002년 4월까지 연구소 제2대 소장직을 역임하였다. 한상범 교수는 평소 법조계의 친일청산문제는 물론 사회 전반의 친일청산 운동의 누구보다도 앞장 선 것이 이번 수상의 이유로 알려지고 있다.      관련기사 – 한겨레신문(2005.04.18)    제16회 4월혁명상 받는 한상범 전 의문사위원장 “독립투사가 전과자…명예회복 시급” “해방된 지 60년이 지났지만 일제 잔재는 청산되지 않고 있습니다. 일제 잔재 청산 없이는 민주화가 안되고 민주화 없이는 인권도 보장될 수 없습니다.” 4·19 혁명 45돌을 맞은 올해 제16회 ‘4월혁명상’ 수상자로 선정된 한상범 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동국대 명예교수)은 “과거 청산을 안하면 독재정권에 기생하던 세력이 대한민국의 주류로 계속 남아 민주화가 안 된다”며 “과거 청산은 시대가 부과한 과제”라고 힘주어 말했다. 4·19는 우익 위장 친일파에 대한 항거군사정권 밀실체결 한-일협정 개정해야 한상범 교수는 4·19 혁명과 관련해 “반공과 이승만에 대한 지지를 대가로 면죄부를 얻은 친일파들이 자신들을 반대하면 무조건 빨갱이로 몰아 탄압했다”며 “4·19 혁명은 단순한 민주화운동이 아니라 15년간 찌든 친일파 구도에서 민족적 양심을 되찾고, 민족 분열을 초래한 매카시즘에 대한 항거”라고 평가했다. 4월 혁명이 일어난 1960년 조선대 전임강사로 현장에서 4·19를 겪은 그는 한일협정 반대, 3선 개헌

한국, 슬픔과 연민 (Le Monde, 4월 13일자)

2005년 4월 16일 1389

          Le Monde Philippe Pons 기자     다음은 4월 13일자 ‘르 몽드(Le Monde)’에 실린 ‘한국의 친일청산에 관한 특집기사’ 전문을 번역한 것이다. 조중동은 이 기사를 연합기사로 받아 가볍게 처리하면서 자신들과 관련된 사항은 의도적으로 배제했다. 이 기사는 주불 한국대사관의 협조로 번역된 것을 연구소 주섭일 지도위원이 입수, 연구소에 보내온 것이다.        여자와 돌 그리고 바람이 많다고 해서 ‘三多島’라 명명되는 한국남단의 제주도는, 무엇보다도 그 화려한 경관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곳은,  비극적 한국역사를 축약해서 보여 주는 깊은 상흔이 남아 있는 땅이기도 하다. 매년 4월3일이 되면, 제주시민의 절반은 1948년 봄의 무장봉기사건 (일본의 식민통치 멍에를 벗어낸 후, 미국에 의해 배치된 집권당에 대항) 당시에 학살당한 인척들을 기리며 눈물짓는다. 그 해 몇 주만에 학살된 주민들의 수는  3-4만명에 이르는데, 남자나 여자나 어린아이까지 마구잡이로 처형되었고 마을들은 약탈당하고 불태워져 버렸다. 하지만 그후 연이어진 독재정권들은, 이러한 유혈의 역사를 명백히 밝혀내는 일을 철저히 거부했다.           제주도의 이 비극적 사건을 비롯한 상처들은 세월이 지나면서 아물기는 커녕 오히려 골이 깊어지고 있는 까닭에, 한국은 중국의 경우와 같이 역사의 암울한 장들을 다시 들추어보기로 결정한 것이다. 한국인들은, 일본이 군국주의적 과거와 그에 동반된 잔혹한 행태들을 단순하고 간편하게 그저 자신들 좋을대로 해석하며 스스로 그 죄의 짐에서 벗어나려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분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자국

“친일파여, 떨 것 없이 한민당으로 오라!”

2010년 9월 28일 447

“친일파여, 떨 것 없이 한민당으로 오라!”(프레시안, 10.09.22)

日지자체, 왜곡 교과서로 일본사 필수화?>

2010년 9월 28일 333

日지자체, 왜곡 교과서로 일본사 필수화?>(연합뉴스, 10.09.28)

문화재위원회 15일 충의사 현판 복원 여부 결정

2005년 4월 14일 590

      민족문제연구소       관련기사 문화재위원회의 상식적인 판단을 기대합니다.(05.03.18)     12일(화) 홍성지원 황문섭 판사는 충의사 현판을 철거한 양수철 회원(서천문화원장)에 대한 선고 공판에서 징역 6월을 선고한데 대한 비난 여론이 드높은 가운데 문화재위원회는 15일(금) 오후 2시 회의를 열어 충의사 현판을 박정희 글씨 복원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당초 지난 달 18일 열린 회의에서 이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었으나 다른 논의 안건이 많아 이번 회의로 미뤄진 바 있다. 한편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최소한 단 하루라도 원형으로 복원한 후에 정식으로 절차를 밟아서 교체하는 것이 옳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한편 연구소 서울 남서지부 문병준 지부장과 경기동북지부 문만기 지부장 등은 회의가 열리는 옛 국립중앙박물관 앞에서 오후 1시부터 충의사 현판을 박정희 글씨로 복원하는 것을 반대하는 1인 시위를 진행한다. 이 날 회의에 참석하는 문화재위원회 사적분과 위원은 고혜령 국사편찬위원회 연구원, 김동욱 경기대 교수, 김정동 목원대 교수, 노중국 계명대 교수, 이성무 전 국사편찬위원회위원장, 장석하 경일대 교수, 전형택 전남대 교수, 정영화 영남대 교수, 정재훈 한국전통문화학교 석좌교수, 조유전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 최규성 상명대 교수, 한영우 서울대 교수 등 모두 12명이다.

우리안의 친일이 만들어낸 양수철씨의 징역6개월

2005년 4월 14일 703

          오마이뉴스 고태진(ktjmms) 기자     독일은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은 독일 연방하원 주요인사 초청 만찬에서 “독일은 부끄러운 과거를 솔직히 인정하고 진정하게 반성할 줄 아는 양심과 용기,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실천을 통해 국제사회의 신뢰를 회복했다”며 “독일의 과거사 청산 방식을 존경한다”고 말했다.이미 국내에서 일본의 역사 왜곡과 독도 문제에 대해 직설적인 비판을 마다하지 않았던 노 대통령이 독일을 방문해서는 일본에 대한 얘기는 이미 국내에서 다 했다며 독일에서는 독일 얘기만 하겠다고 하였다. 그렇지만 독일의 과거사 청산을 찬양하는 방식으로 우회적으로 일본을 비판하는 행보는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의 극우는 일본대사관 앞의 종군위안부 할머니를 일컬어 북한의 간첩이라느니 하며 여전히 ‘개 짖는 소리’를 멈추고 있지 않다. 또한 고이즈미 총리를 비롯한 일본 정부 인사들도 이들을 묵인하는 태도를 보여줌으로써 전혀 물러날 뜻이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개 짖는 소리’ 묵인하는 일본 정부노 대통령은 독일을 방문했기 때문에 독일 얘기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사실 우리에게 더 귀감이 되는 것은 프랑스가 아닐까 한다. 독일이 철저하게 말뿐이 아니라 행동으로써 과거사 반성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은 독일에 의해 피해를 입은 주변 국가들의 철저한 과거 청산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알다시피 프랑스는 1944년 8월 나치에서 해방된 후 곧 과거 청산에 들어가 약 2년 간에 걸쳐 조국을 배반하고 나치에 협력한 1만여 명의 부역자들을 처형했다. 나치 점령의 부역자들을 철저하게

“할머니들이 살아계실 때 위안부 문제 해결해야”

2010년 9월 28일 298

“할머니들이 살아계실 때 위안부 문제 해결해야”(천지일보, 10.09.25)

일본은 조선인 징용자들을 두 번 죽였다

2010년 9월 27일 1347

관동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아라카와 학살현장·관음사 위령비를 가다 김영조·이윤옥 1) 도쿄 요코아미쵸공원 안에 있는 관동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 ▲ 지하에 여전히 조선인 유골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 도쿄도위령당에서 ⓒ 김영조  관동대지진과 도쿄대공습 때 희생당한 사람들의 위령당이 있는 요코아미쵸공원(橫網町公園)은 여름철 불꽃놀이로 유명한 스미다가와구 요코즈나 2정목(墨田區橫綱2丁目)에 있다. 주소에 보이는 요코즈나는 우리말로 ‘천하장사’를 뜻하며 이곳은 일본의 인기스포츠 ‘스모경기장’이 있어 이곳을 모르는 일본인은 없을 테지만 이곳 한 모퉁이 요코아미쵸공원 안에 위령당이 있는 것을 아는 일본인은 적을 것이다. 언뜻 보면 평범한 공원으로 지나치기 십상이지만 한 발짝만 안으로 들어서면 이곳이 예사로운 공원이 아님을 알게 된다. 이곳은 관동대지진과 도쿄대공습 때 수많은 사람이 피해를 당한 곳으로 공원 안쪽에 위령당과 부흥기념관이 있다. 리히터 지진계로 7.9도를 기록한 대지진으로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에 일어난 지진을 가리켜 일본에서는 관동대진재(關東大震災)라 부르고 한국에서는 관동대지진이라 부른다. 이 공원은 일제 때 육군피복창 자리로 이른바 군수공장이 있던 곳이다. 위령당은 관동대지진 때 사망한 58,000명의 유골안치를 위해 1930년에 지어진 것이지만 1945년 3월 10일 미군에 의한 도쿄 대공습으로 사망한 사람들의 유골들도 화장하여 함께 안치하는 납골당으로 쓰고 있는 것이다. 이곳 위령당의 72%는 대지진으로 죽은 사람들이 아니라 도쿄대공습 때 죽은 사람들이다. 자연재해보다 전쟁으로 말미암아 죽은 사람이 훨씬 많다. ▲ 겉보기에는 평범한 공원(왼쪽)으로 무슨 위령당인지 모호한 <도쿄도위령당>이라고 써둔 요코아미쵸공원 입구 ⓒ 김영조   대지진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