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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보도자료] 『결국, 뿌리로 산다-후손의 기억으로 본 독립운동가와 가족의 삶』 발간

2026년 6월 9일 224

☞ 다운로드: [보도자료] 결국 뿌리로 산다-후손의 기억으로 본 독립운동가와 가족의 삶 발간 결국, 뿌리로 산다 –후손의 기억으로 본 독립운동가와 가족의 삶 민족문제연구소 펴냄 | 383쪽 | 18,000원   바로가기 >>>☞ [도서구매] 올해는 6⸱10만세운동 100주년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한 각계 움직임이 활발하다. 그런데 6⸱10만세운동을 놓고 순수한 민족적 성향의 학생들이 계획하고 실행한 운동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반공 이데올로기에 짓눌려 온 우리 사회 분위기 탓에 만세운동의 계획과 준비, 진행에서 사회주의 계열의 주도적 움직임을 의도적으로 외면했기 때문이다. 6⸱10만세운동의 기획자는 조선공산당이었다. 1926년 4월 25일 순종이 사망했을 때, 전 해 일제의 탄압으로 무너졌던 조직을 다시 정비한 조선공산당은 만세운동을 기획했다. 그들은 천도교 구파 쪽과 협력하고 조선학생과학연구회를 통해 학생들과도 연계해 만세운동을 준비했다. 그렇지만 결행일을 코앞에 두고 위조지폐범인을 찾던 경찰의 눈에 우연히 인쇄물이 발견되어 계획이 어긋나 버렸다. 조선공산당 지도부를 비롯해 많은 이들이 경찰에 체포됐다. 그러나 모든 움직임을 막지는 못했다. 체포를 피한 사람들에 의해 1926년 6월 10일 순종 장례 행렬을 따라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6⸱10만세운동은 민족주의 세력과 사회주의 세력이 실천적으로 연대해 항일운동을 전개한 새로운 경험이었으며, 1927년 2월 신간회가 성립할 수 있게 한 디딤돌이었다. 그런데 오랫동안 6⸱10만세운동이 순수한 학생운동으로만 기억돼 온 것처럼 우리 사회에서는 사회주의 이념을 발판으로 항일투쟁,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독립운동가들을 외면해 왔다. 외면에만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우리 사회 바깥으로 밀어내 왔다.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성명] 식민지배 책임 부정하고 동아시아 평화 위협하는 다카이치 수상 규탄한다. 한일 정부는 군사협력 중단하고 역사정의와 평화실현을 위해 노력하라

2026년 5월 19일 433

☞ 다운로드: [성명] 식민지배 책임 부정하고 동아시아 평화 위협하는 다카이치 수상 규탄한다 오늘 안동에서 개최되는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수상의 한일정상회담을 앞두고, 우리는 식민지배의 역사를 부정하고 동아시아 평화를 위협하는 다카이치 총리를 규탄하며 동아시아 평화를 위협하는 한일 군사협력 강화 움직임에 깊은 우려를 밝힌다. 다카이치 수상은 과거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행위를 ‘자위권 행사’라 미화하고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되풀이하며 역사부정론을 고집해왔다. 특히 지난 4월 21일,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을 봉납한 것은 침략전쟁의 망령을 부활시키려는 도발이자, 유족 동의 없이 무단 합사된 2만 1천여 명의 조선인 희생자들을 다시 한번 모욕하는 행태이다. 일본 정부와 야스쿠니신사는 한국인 무단 합사를 즉각 철폐하고 역사부정 시도를 당장 중단하라. 다카이치 수상은 동아시아 평화를 위협하는 평화헌법의 개정 시도를 즉시 중단해야 할 것이다. 또한 한일 정부는 동아시아에 전쟁의 위기를 부르는 군사협력 시도를 중단해야 한다. 현재 일본 정부는 평화헌법 9조를 폐기하고 ‘전쟁 가능한 국가’로 나아가기 위해 살상 무기 수출 허용과 국방비 증액 등 군사대국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한일상호군수지원협정(ACSA) 체결 시도와 한·미·일 군사역량 통합을 위한 ‘킬 웹(Kill Web)’ 구상은 한반도와 동아시아를 전쟁의 위험 속으로 몰아넣는 위험천만한 시도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미국의 압박과 일본의 군사대국화 움직임에 동조하는 군사협력을 중단하고, 국민의 생명과 평화 주권을 지키는 당당한 외교에 나서야 한다. 일본 정부는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취재요청서] 한일정상회담에 즈음한 시민사회 기자회견

2026년 5월 18일 305

☞ 다운로드: [취재요청서] 260519_한일정상회담에_즈음한_시민사회_기자회견 <한일정상회담에 즈음한 시민사회 기자회견> 식민지배 책임 부정하고 동아시아 평화 위협하는 다카이치 수상 규탄한다 한일 정부는 군사협력 중단하고 역사정의와 평화실현을 위해 노력하라 2026년 5월 19일(화) 오전 11시 경북도청 동문에서 <한일정상회담에 즈음한 시민사회 기자회견>을 개최합니다. 이번 기자회견에서는 식민지배 책임을 부정하고 군사대국화를 추진해 온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수상을 규탄하고, 한일 양국 정부에 군사협력 중단과 역사정의·동아시아 평화 실현을 촉구할 예정입니다. (1) 일시 : 2026년 5월 19일(화) 오전 11시 (2) 장소 : 경북도청 동문 (3) 주최 : 민족문제연구소, 안동시민단체연대회의,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대구경북자주통일평화연대 (4) 순서 – 발언 1. 김헌택 안동시민연대 대표 – 발언 2. 김재하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공동대표 – 발언 3.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처장 다카이치 수상은 침략전쟁 미화, 야스쿠니신사 공물 봉납, 독도 영유권 주장 등 역사부정 행보를 지속해 온 인물입니다. 또한 일본 정부는 평화헌법 개정과 군비 증강,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를 추진하며 동아시아 긴장을 높이고 있습니다. 이에 시민사회는 한일 양국 정부에 군사협력 확대 중단과 식민지배·침략전쟁에 대한 책임 인정, 강제동원 및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들에 대한 사죄와 배상 이행, 역사정의와 평화 실현을 위한 실질적 조치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합니다.

[보도자료] 한상언영화연구소 신간 ‘천리마 북한 영화’ 안내

2026년 5월 14일 222

☞ 다운로드: [보도자료] 보도자료_한상언영화연구소 신간 소개-천리마 북한 영화 천리마 북한 영화 한상언 지음 175×245 | 무선 | 450쪽 | 발행일: 2026년 4월 20일 | 39,000원 ISBN: 979-11-93408-04-9 (93680) 문의 : 한상언영화연구소 (010-5532-2866) / didas@naver.com ∎ 책소개 『천리마 북한 영화』는 해방 직후부터 김정일의 『영화예술론』이 발간된 1973년까지 북한 영화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북한 영화사의 전반부에 해당하는 이 시기 동안 북한은 영화 제작의 인적, 물적 기틀을 마련했다. 특히 항일 무장 투쟁 영화를 비롯해 전쟁 영화, 천리마 시대의 현실을 주제로 한 영화 등 북한 영화를 상징하는 영화 장르를 완성했다. 1960년대 후반 이후 김정일이 영화 부문을 책임지게 되면서 북한 영화는 유일사상체계 확립을 위한 주체 영화의 시대로 이행했다. 이 과정에서 북한 영화의 토대를 다진 많은 영화인이 영화사 서술에서 배제되거나 그 기록이 삭제되었다. 『천리마 북한 영화』는 그동안 연구되지 않은 주체 영화 이전 북한 영화의 발전 과정을 조명하여, 독자들이 북한 영화를 더욱 상세히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 본격적인 북한 영화사 저서 1970년 이전 제작된 북한 영화 대부분을 관람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영상 자료의 공백을 메워줄 문헌 자료조차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이러한 제약 때문에 초기 북한 영화를 연구하는 것은 연구자들에게 크나큰 도전 과제였다. 『천리마 북한 영화』는 전 세계 아카이브에 흩어진 자료와 중국 및 일본의 고서점에서

[보도자료] 민족문제연구소 창립 35주년 기념식 및 창립 35주년 기획전 <세상을 바꾼 시민, 함께 만든 역사>

2026년 2월 27일 492

☞ 다운로드: [보도자료] 민족문제연구소 창립 35주년 기념식 및 창립 35주년 기획전 <세상을 바꾼 시민, 함께 만든 역사> 민족문제연구소 창립 35주년 기념식 및 창립 35주년 기획전 <세상을 바꾼 시민, 함께 만든 역사> 2026년 2월 28일(토) 오후 3시, 한국순교복자수녀원/식민지역사박물관 1991년 2월 27일, 임종국 선생의 뜻을 이어 첫발을 내디딘 민족문제연구소가 2026년 2월 창립 35주년을 맞았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지난 35년 동안 한국 사회의 오랜 바람인 친일인명사전(2009년)을 세상에 내놓았고, 오로지 시민의 힘으로 식민지역사박물관(2018년)을 세우는 등 망각과 침묵에 맞서 사회적 금기를 깨는 질문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미완의 친일 청산이라는 역사적 무게를 짊어지고 식민지의 긴 그림자를 걷어내 민주주의를 뿌리내리는 실천으로 세상을 바꾼 시민들이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만든 35년의 역사를 돌아보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창립 35주년 기념식은 2026년 2월 28일(토) 오후 3시 민족문제연구소 옆 한국순교복자수녀원 강당(서울 용산구 청파로47나길 14)에서 열리며(민족문제연구소 유튜브에서 생중계), 창립 35주년 기획전 <세상을 바꾼 시민, 함께 만든 역사>는 2월 28일(토)부터 8월 2일(일)까지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열립니다. 또한, 온라인에서도 민족문제연구소 35년 역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 민족문제연구소 창립 35주년 기획전 온라인 전시 https://readmore.do/minyeon35th

[보도자료] 민족문제연구소 4대 소장에 김민철 경희대 교수

2026년 2월 12일 935

☞ 다운로드: [보도자료] 민족문제연구소 4대 소장에 김민철 경희대 교수 [보도자료] 민족문제연구소 4대 소장에 김민철 경희대 교수 사단법인 민족문제연구소(이사장 함세웅)는 2월 3일 임시 이사회를 열고 제4대 소장으로 김민철 경희대 교수를 선출하였으며, 11일 열린 사원총회는 이를 추인했다. 2003년부터 연구소를 이끌어온 임헌영 3대 소장은 지난 1월 8일 국립한국문학관 관장으로 임명되었으며, 정부의 기관장 겸직 금지 원칙에 따라 1월 7일 소장직을 사임했다. 신임 김민철 소장은 1991년 민족문제연구소 창립 때 발기인으로 참여한 이래 책임연구원과 연구실장,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으로 일하면서 연구소와 인연을 이어왔으며,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기획총괄과장과 국사편찬위원회 편사부장을 역임하고 현재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소장 이취임식은 2월 28일 오후 3시 용산구 청파동 연구소 인근 순교복자수녀회 강당에서 열리는 창립 35주년 기념식에서 진행된다. 김민철 소장 〈경력〉 1963년 부산에서 출생(63세) 1981년 부산고등학교 졸업, 경희대학교 사학과 입학 2008년 경희대학교 대학원 한국사 전공(문학박사) 2005년~2009년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기획총괄과장 2021년~2024년 국사편찬위원회 편사부장 1991년~현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 연구실장, 연구위원 2003년~현 경희대학교 겸임교수, 객원교수, 후마니타스 칼리지 조교수 * 일본교과서바로잡기운동본부 집행위원장,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운영위원장,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집행위원장, 한일시민선언실천협의회 운영위원장, 강제동원문제 해결과 대일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 운영위원장, 근현대사기념관 관장 등 역임 〈주요 논저〉 『기억을 둘러싼 투쟁』(2005), 『기로에 선 촌락─식민권력과 농촌사회』(2012), 『친일파99인』(1993, 공저), 『친일파란 무엇인가』(1997, 공저), 『식민지 유산, 국가 형성, 한국 민주주의』(2012, 공저),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2017, 공저), 『우리는 시민입니다』(2020, 공저), 『조선총독부와

[보도자료] 학암 이관술 독립유공자 서훈신청… 2026년 서훈 기대 부풀어

2026년 1월 29일 357

☞ 다운로드: [보도자료] 학암 이관술 독립유공자 서훈신청…2026년 서훈 기대 부풀어 학암이관술기념사업회(회장 손문호)는 항일혁명가 이관술의 독립운동 선양과 명예회복을 위해 2019년 창립 이후 지속적인 노력을 해왔습니다. 학암 이관술은 울산 범서 입암마을이 고향으로 동경고등사범학교를 졸업 한 후 동덕여자고등보통학교 교사로 지내다 1930년 경성학생독립운동에 나선 제자들을 보호하며 독립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1933년 경성반제국주의 동맹사건으로 옥고를 겪었고, 1934년 이후 경성트로이카에서 지도부를 맡았고 1939년 경성콤그룹을 결성해 해방 직전까지 일제에 항거했습니다. 이관술은 고문왕 노덕술의 고문에도 굴하지 않은 불사조라는 칭호를 받았으며, 해방 후 첫 정치여론조사에서 여운형, 이승만, 김구, 박헌영에 이어 5위에 오를 만큼 존경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1946년 위조지폐범이란 누명을 뒤집어쓴 후 무기형을 받고 한국전쟁이 발발한 직후에 대전 골령골에서 학살당한 후 독립운동가 서훈은 커녕 명예회복이 막힌채 70여년을 지나왔습니다. 그러나 작년 12월 22일 “정판사위폐사건 재심(2023재고합12)”에서 피고인 이관술이 무죄를 선고받아 확정이 되었기에, 이관술의 외손녀 손옥희가 2026년 1월 28일 국가보훈부에 정식으로 독립유공자 서훈신청을 진행했습니다. [보도자료] 학암 이관술 독립유공자 서훈신청… 2026년 서훈 기대 부풀어 외손녀 손옥희, 1월 28일 국가보훈부에 공적조서 접수 “정판사위폐사건” 재심 무죄확정으로 서훈 걸림돌 없어 울산 출신 항일혁명가 학암 이관술 선생(1905~1950)에 대한 독립운동 국가유공자 서훈을 위한 공식 접수가 이루어졌다. 학암이관술기념사업회는 유족을 대표해 외손녀 손옥희가 1월 28일(수) 정부세종청사의 국가보훈부를 방문해 독립유공자 포상신청서를 접수했다. 이관술 선생은 울산 울주군 범서 출신으로 서울 중동고와 동경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동덕여고보 교사시절인

[취재요청서] 강제동원 손해배상청구소송 상고심 판결 선고 주식회사 구마가이구미 (박**, 대법원 2024다257348)

2026년 1월 28일 530

☞ 다운로드: [취재요청서] 강제동원 손해배상청구소송 상고심 판결 선고 주식회사 구마가이구미 (박**, 대법원 2024다257348) 2026년 1월 29일(목) 오전 10시 주식회사 구마가이구미를 상대로 한 강제동원 손해배상청구소송 상고심 판결 선고와 관련하여 아래와 같이 알려드립니다. 취재를 부탁드립니다. (1) 대법원 입장 : 오전 9시 30분 대법원 법정 입장 (2) 판결 선고 : 오전 10시, 대법원 2호 법정 (3) 입장 발표 : 판결 직후 법정동 입구 – 김성주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강제동원 소송 대리인단)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소송 사무국) 이 소송은 주식회사 구마가이구미를 상대로 처음으로 내려지는 상고심 판결입니다. 강제동원 손해배상청구소송 대법원 판결 선고 관련 (구마가이구미 강제동원 소송, 박**, 대법원 2024다257348) 1. 사건 개요 – 원고 : 망 박**(강제동원 피해자)의 유족 1명 – 피고 : 주식회사 구마가이구미 ○ 사건 개요 및 피해 사실 – 피해자 망 박**(1922. 5. 7. ~ 1945. 2. 9.) 이 사건의 피해자 박** 님은 1944년 10월 30일경 일제에 의하여 강제동원되어 1945년 2월경까지 주식회사 구마가이구미가 운영하는 일본 후쿠시마현 소재 누마노쿠라 구마가이구미 다나카사무소에서 강제노동하다 1945년 2월 9일경 사망하였다. 피해자는 강제동원으로 가족과 이별하여 가족으로부터 보호를 받거나 가족을 부양할 기회를 빼앗기고, 신체에 위해를 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열악한 환경에서 위험한 노동에 종사하였고, 일본 정부의 혹독한 전시 총동원체제 하에서 외출을 제한당하고 상시 감시를 당하였으며, 교육의 기회나 직업선택의 자유를

[보도자료] 야스쿠니 한국인 합사 철폐 소송 제소 기자회견 “일본 정부와 야스쿠니는 내 아버지를 해방시켜라!”

2025년 12월 24일 695

☞ 다운로드: [보도자료] 야스쿠니 한국인 합사 철폐 소송 제소 기자회견 2025년 12월 23일 일본의 침략전쟁에 군인과 군속으로 강제로 동원되어 죽음에 이른 한국인 희생자 10명의 유족은 일본 정부와 야스쿠니신사의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는 ‘야스쿠니 한국인 합사 철폐 소송’을 시작합니다. 이 소송은 2001년부터 일본 법정에서 일본 정부와 야스쿠니신사의 책임을 묻기 위해 싸워 온 희생자 유족들이 일본 법원이 외면한 인권과 존엄의 회복, 정의의 실현을 위해 일본 정부와 야스쿠니신사를 상대로 한국 법정에 처음으로 제기하는 소송입니다. [붙임5. 원고 대표 발언] “내가 한국에서 일본 정부와 싸우는 이유” 야스쿠니 한국인 합사 철폐 소송을 한국 법원에 제기하기까지 25년이 걸렸습니다. 제 아버지가 돌아가신 1945년으로부터 꼭 80년 만에 그 억울한 죽음에 대한 문제를 한국 법원에 제기하게 된 것입니다. 올해가 광복 80주년이라지만 아직도 야스쿠니에 갇혀 계신 우리 아버지들은 해방을 맞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들의 자식인 우리는 여전히 일본과 야스쿠니신사의 식민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여기 모인 우리 원고들은 모두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고 평생 한을 품고 살아온 유가족입니다. 1990년대에 들어서야 피해자들이 스스로 일본 정부를 향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피해 사실에 관한 기록을 하나씩 찾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증거로 야스쿠니 무단 합사 철폐를 요구하는 법정 싸움(재한 군인군속 소송)을 시작한 것이 2001년 6월부터입니다. 그 소송투쟁 과정에서 우리 유족들은 대한민국이 엄연한 독립국으로서 존재했던 1959년에 우리

[보도자료] 정판사위폐사건 재심(2023재고합12) 최종선고 결과에 대한 입장 보도자료

2025년 12월 22일 714

☞ 다운로드: [보도자료] 정판사위폐사건 재심(2023재고합12) 최종선고 결과에대한 입장 보도자료 학암이관술기념사업회(회장 손문호)는 일제강점기 항일독립운동에 투신하고 학암 이관술 선생이 해방 후 1946년 7월, 위조지폐 주동자로 누명을 쓴 소위 “정판사위폐사건”에 대한 재심 선고에 맞춰 공식입장을 발표합니다. 그리고 이관술의 외손녀로 재심을 신청한 손옥희가 선고 결과에 대한 소회를 밝히고자 합니다. 학암 이관술은 울산 범서 입암마을이 고향으로 동경고등사범학교를 졸업 한 후 동덕여자고등보통학교 교사로 지내다 1930년 경성학생독립운동에 나선 제자들을 보호하며 독립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1933년 경성반제국주의 동맹사건으로 옥고를 겪었고, 1934년 이후 경성트로이카에서 지도부를 맡았고 1939년 경성콤그룹을 결성해 해방 직전까지 일제에 항거했다. 이관술은 고문왕 노덕술의 고문에도 굴하지 않은 불사조라는 칭호를 받았으며, 해방 후 첫 정치여론조사에서 여운형, 이승만, 김구, 박헌영에 이어 5위에 오를 만큼 존경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1946년 누명을 뒤집어쓴 후 무기형을 받고 한국전쟁이 발발한 직후인 1950년 7월 3일, 대전 골령골에서 학살당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법원은 2015년 이관술이 불법처형을 당했다는 사실을 인정했으며,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승소한 바 있습니다. 이번 정판사위폐사건 재심(2023재고합12)은 재심의 피고인 이관술 뿐 아니라 항일혁명가들의 명예를 회복하는 자리입니다. 지난 12월 15일 검찰이 무죄를 구형했고 재심 재판부(제21형사부)가 무죄를 선고해 확정이 된 것과 같습니다. 별첨 1) 정판사위폐사건 재심선고 공식입장문과 유족소회 [입장문] “역사에 정의가 살아있음을 보여준 정판사위폐사건 무죄 선고를 뜨겁게 환영한다!” 학암이관술기념사업회는 오늘 대한민국 사법부가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