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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학암 이관술 독립유공자 서훈신청… 2026년 서훈 기대 부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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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암이관술기념사업회(회장 손문호)는 항일혁명가 이관술의 독립운동 선양과 명예회복을 위해 2019년 창립 이후 지속적인 노력을 해왔습니다.

학암 이관술은 울산 범서 입암마을이 고향으로 동경고등사범학교를 졸업 한 후 동덕여자고등보통학교 교사로 지내다 1930년 경성학생독립운동에 나선 제자들을 보호하며 독립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1933년 경성반제국주의 동맹사건으로 옥고를 겪었고, 1934년 이후 경성트로이카에서 지도부를 맡았고 1939년 경성콤그룹을 결성해 해방 직전까지 일제에 항거했습니다.

이관술은 고문왕 노덕술의 고문에도 굴하지 않은 불사조라는 칭호를 받았으며, 해방 후 첫 정치여론조사에서 여운형, 이승만, 김구, 박헌영에 이어 5위에 오를 만큼 존경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1946년 위조지폐범이란 누명을 뒤집어쓴 후 무기형을 받고 한국전쟁이 발발한 직후에 대전 골령골에서 학살당한 후 독립운동가 서훈은 커녕 명예회복이 막힌채 70여년을 지나왔습니다.

그러나 작년 12월 22일 “정판사위폐사건 재심(2023재고합12)”에서 피고인 이관술이 무죄를 선고받아 확정이 되었기에, 이관술의 외손녀 손옥희가 2026년 1월 28일 국가보훈부에 정식으로 독립유공자 서훈신청을 진행했습니다.

[보도자료]
학암 이관술 독립유공자 서훈신청… 2026년 서훈 기대 부풀어
외손녀 손옥희, 1월 28일 국가보훈부에 공적조서 접수
“정판사위폐사건” 재심 무죄확정으로 서훈 걸림돌 없어

울산 출신 항일혁명가 학암 이관술 선생(1905~1950)에 대한 독립운동 국가유공자 서훈을 위한 공식 접수가 이루어졌다. 학암이관술기념사업회는 유족을 대표해 외손녀 손옥희가 1월 28일(수) 정부세종청사의 국가보훈부를 방문해 독립유공자 포상신청서를 접수했다. 이관술 선생은 울산 울주군 범서 출신으로 서울 중동고와 동경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동덕여고보 교사시절인 1930년 부터 항일운동에 뛰어들었다. 이관술은 1932년부터 1945년 해방 때까지 경성반제동맹, 경성트로이카, 경성콤그룹을 이끌며 독립운동의 최전선에서 활동했다. 그 과정에 두 차례 옥고를 치렀으며, 탈출을 거듭하며 7년 이상 수배 명단에 올라 일본 경찰의 최우선 체포 대상이었다.

그결과 해방 후 잡지 <선구>의 정치여론조사에서 최고의 지도자 순위 중 여운형, 이승만, 김구, 박헌영에 이어 5위에 오를 정도로 대중의 신망이 높았다. 하지만 1946년 ‘조선정판사위조지폐 사건’의 주모자로 몰려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한국전쟁 발발 직후 1950년 7월 3일에 대전 골령골에서 학살당했다.

이관술의 독립유공자 서훈신청은 이번이 두 번째다. 2020년, 첫 신청 때는 서훈심사에서 “독립운동은 확실하지만 해방 후 행적으로 보류한다”는 결과를 통보받았다. 바로 정판사위폐사건 연루였다. 하지만 작년 12월 22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재심에서 최종 무죄를 선고받고 확정됐다.

현재 역사학계에서는 이관술이 빠르면 올해 8월 광복절, 늦어도 11월 순국선열의 날에 맞춰 독립유공자 서훈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이관술기념사업회 역시 정판사위폐 사건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됐기 때문에 더 이상 서훈에 있어 걸림돌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접수를 받은 보훈부 심사관계자는 오늘 유족이 신청하기 전에 이미 다른 단체에서 신청이 접수돼있다고 확인해줬다. 그리고 이관술 재심이 무죄로 확정된 이후 각지에서 전화문의가 답지했다는 사실도 전했다. 단 신청이 워낙 많은 관계로 서훈 시점이 늦어 질 수 있다고 전했다. 따라서 늦는 경우 11월 17일 순국선열의 날에 맞춰 서훈이 될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독립유공자 서훈 절차는 신청서 접수 이후 1 · 2차 심사와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최종 결정된다.

한편, 이관술기념사업회는 2월 11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김용만 국회의원과 함께 ‘학암 이관술 선생 재심 무죄 판결과 역사 정의 운동의 과제’를 주제로 국회 토론회를 개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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