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랑

민족문제연구소 회원여러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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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민족문제연구소 회원여러분 고맙습니다

이희자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공동대표

민족문제연구소와 21년째 동행

2001년 2월 23일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보추협)라는 이름으로 닻을 올린 지 23년이 지났습니다. 우리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들의 한(恨) 보따리를 끌고 민족문제연구소 울타리에 둥지를 튼 지도 올해로 21년입니다. 피해자들이 세상에 기댈 언덕 하나 없이 광장에 나섰을 때 우리의 손을 맞잡아 준 것이 민족문제연구소입니다. 연구소에 책상을 마련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년을 훌쩍 넘겼네요. 오십 전후의 나이였던 우리 유족들이 팔십을 넘긴 지금까지 쉼없이 활동해 올 수 있었던 것도 오직 연구소라는 든든한 배경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회원여러분들의 한결같은 응원의 힘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법원 승소 판결, 민족문제연구소 덕분입니다

그 덕분에 우리 강제동원 피해 유족들은 그동안 많은 일들을 펼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보추협이 진행한 강제동원 피해 소송운동은 올해 초까지 한국 대법원에서 모두 승소 판결을 이끌어내는 큰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일본에서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했던 것은 모두 패소 또는 기각으로 끝났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2000년 5월 1일부터 한국 법원으로 그 투쟁의 장을 옮겨 소송운동을 다시 시작한 것도 보추협이었습니다.

2001년부터 민족문제연구소와 여러 시민단체가 연대하고 보추협이 앞장서서 추진한 일제강제동원진상규명특별법 제정운동은 2004년 특별법 제정의 값진 결과를 낳았습니다. 한국보다 먼저 오랜 기간 강제동원 진상규명 활동을 해오던 일본 시민사회에서도 상상하지 못한 「일제강제동원진상규명특별법」은 모든 피해자들의 잃어버린 인권회복을 위한 중요한 첫걸음이었습니다.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는 2005년부터 피해자 신고를 받아 진상규명 조사와 정부 위로금 지급 사업을 진행하였습니다. 하지만 보추협은 정부가 해주기만을 바라지 않고 스스로 피해자의 권리 회복을 호소하기 위해 국내 소송을 이어갔습니다. 2000년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국내 소송에 이어 2005년 신일본제철(현 일본제철)에 동원된 징용 피해자 소송을 새롭게 시작하였습니다. 원고들을 찾기 위해 전국을 다니며 피해자 조사를 했고, 피해자 진술청취를 바탕으로 원고 참여자를 모아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그리고 후지코시 근로정신대 피해자분들이 일본에서 제기한 소송을 2003년부터 이어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재판장에 참석하지 못하는 원고들을 대신해 보추협 유족들이 진실 어린 판결을 촉구하는 법정투쟁에 함께 해왔습니다. 법정 안과 밖에서, 피해자의 목소리를 내야 하는 투쟁의 현장마다 우리 보추협 회원들과 민족문제연구소가 있었고, 강제동원 피해 원고분들의 든든한 지원군이자 투쟁의 동반자 역할을 다해 왔습니다. 그러니 이 역사적인 대법원 판결은 감히 민족문제연구소 회원들의 후원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적 판결, 피해자 권리의 첫 인정

이 소송들은 사실 2012년 5월 24일 대법원 파기환송 때 1차로 결실을 거둔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러나 국정농단 세력이 대법원 판결을 6년이나 지연시키는 바람에 원고들은 끝내 대법원 판결을 보지 못하고 거의 다 돌아가셨습니다. 우리 피해자들은 참으로 안타깝고 억울한 마음을 인내하며 속절없이 시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우여곡절에 논란도 많았지만 2018년 10월 30일 드디어 대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아냈습니다. 줄기차게 싸워왔던 피해자의 권리를 처음 인정받은 판결이었습니다. 우리 피해자들이 20여 년 넘게 싸워왔고, 거듭된 패소에도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투쟁해왔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얻어내기 위한, 비로소 피해자가 처음으로 승리한 판결이고 이 판결로써 더 많은 피해자의 권리회복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판결은 단지 소송에 참여하신 원고분들만의 것은 아닙니다. 한국 사법부가 일제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지적하였고, 그로 인한 불법적인 강제동원 피해사실과 일본 기업의 책임을 인정한 역사적 판결이라고 전문가들이 평가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비록 원고들이 그 판결을 다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더라도 일본 정부와 기업이 잘못했다는 사실을 명명백백하게 밝힌 것, 그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소송을 시작한 계기는 다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원고분들이 하신 이야기가 있습니다. 일본의 잘못을 공식적으로 인정받고, 진정한 사과를 받고 싶다는 뜻이 가장 컸습니다. 식민지 시대에 태어난 죄로 사지에 끌려가 당한 고통과 억울한 심정을 보상받을 길이 무엇이 있겠어요. 반드시 일본의 사죄를 받는 길만이 그 한을 푸는 길이라고 피해자 어르신들은 늘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도 귀담아 듣지 않는 억울한 사연을 원고들은 소송을 해서라도 당당히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살아남은 우리가 죽은 동료들을 대신해서 소송이라도 하는 것이라고. 그래서 우리가 죽더라도 포기하지 말라고, 그게 후손인 우리 유족들의 숙명이라고 힘주어 말씀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대법원 판결을 인정하지 않는 정부

그런데 한국정부는 마치 피해자분들의 소송 목적이 오로지 돈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 해법을 내놓았습니다. 이러한 정부의 해법은 해서는 안 되는 정치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원고분들과 소송투쟁을 함께 시작한 저는 생존피해자 어르신들이 어떤 마음으로 이 투쟁을 시작했는지 속속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원고로 참여한 생존 피해자분들은 일본 정부와 기업의 잘못을 밝히는 싸움이 기에 해야만 했고, 살아남은 자들의 책임이라며 법정투쟁을 해오셨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소송을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이기는 싸움이라고 생각하셨습니다. 피해자들의 법정투쟁으로 이뤄놓은 대법원 판결을 우리 정부는 일본 정부와 기업에 면죄부를 주는 방식으로 둔갑시키고 말았습니다. 원고분들의 간절한 마음을 짓밟고 악용하면서 한편으로는 피해자들을 도와주는 척 하는 정부의 태도에 이미 돌아가신 많은 원고분이 간절하게 생각이 납니다. 늘 법과 원칙, 공정과 상식을 입버릇처럼 말하는 대통령이 대법원 판결을 이런 식으로 무시해도 되는 것인가요? 이런 ‘해법’이 과연 해결책이고, 최선책일까요? 평생 열 세 번이나 대통령이 바뀌었지만, 요즘은 제가 너무 오래 살았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우리가 죽더라도 포기하지 말라

요즘은 우리 곁을 이미 떠나신 피해자 어르신들이 더욱 그립습니다. 그분들은 강제동원 피해 유족들에게 아버지 대신이었고, 강제동원에 대한 역사 선생님이었습니다. 강제동원 피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내 마음에 쌓이는 분노가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나침반이요, 외롭고 힘들면 기댈 수 있는 언덕이었습니다. 지금도 백세를 전후한 나이에 정정하게, 떳떳하게 목소리를 높이시는 생존 피해자분들이 계시기에 우리는 일본 정부와 기업에 앞으로도 사죄를 촉구해 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생존 어르신들이 ‘우리가 죽더라도 포기하지 말라’고 하신 당부대로, 그 뜻이 제대로 실현되도록 노력해 나가고 싶습니다.

보추협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줄기차게 활동을 펼쳐 왔습니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하면서 저는 당당하게 일본에 사죄받을 때까지 계속 해나가겠다고 다짐했었습니다. 독립운동가들이 나라도 없고, 말도 뺏기고, 재산과 가족이 없어도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을 한 것에 비하면 우리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사무실도 있고, 우리 피해자의 손과 발과 입과 귀가 되어주는 민족문제연구소 상근활동가들과 많은 일본의 활동가들이 있는데 뭐가 두렵겠습니까. 일본과 한국의 변호사와 전문가, 시민들이 도와주시는데 왜 포기하겠습니까. 보추협을 이끌며 저는 피해자들이 가고자 하는 길에 씨앗을 뿌리고 싹을 틔워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일본 정부와 기업에 강력하게 항의하고 소송을 확대하면서 한일 시민 연대 활동도 폭넓게 벌여왔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응원해 주세요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에 길잡이가 되어준 연구소 회원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다 표현할 길도, 전할 길도 없어 민족사랑에 이렇게나마 제 마음을 담고 싶었습니다. 한일 양국 정부가 피해자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에도 민족문제연구소 회원 여러분과 같은 시민들이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셨고, 응원해 주신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외롭지 않았고, 지금껏 활동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보추협은 강제동원 문제 해결을 위해 우리가 활동으로 뿌린 씨앗이 열매를 맺을 때까지 피해자 단체로서 그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우리가 비록 독립운동은 못했지만 일본에 진정한 사죄를 받는 운동을 이 목숨 다하는 날까지 열심히 해 나갈 것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 회원 여러분! 앞으로도 함께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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