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랑

경기도 일제강점기 기념비 탁본전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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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경기도 일제강점기 기념비 탁본전시회

경기도청 1층 로비에서 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가 주최하고 경기문화재단과 식민지역사박물관이 후원하는 일제강점기 기념비 탁본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전시기간은 3월 11일부터 22일까지로 평일에만 관람할 수 있다. 친일파로 이름난 ‘송병준’, ‘송종헌’, ‘윤덕영’의 이름과 ‘팔굉일우’의 제국주의 구호가 새겨진 탁본 등 40여 점의 탁본을 Ⅰ부와 Ⅱ부로 나누어 전시하고 있다.

Ⅰ부는 일제강점기 친일행적으로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오른 사람들. 그들을 칭송하고 고마워하며 찬양하는 화려한 미사여구의 글귀를 검은 먹바탕에 새하얗게 돋아올렸다.

이들에 대한 칭찬이 4·4조의 대구를 이루며 비면 가득히 채워져 있다. ‘선정’, ‘영세기념’, ‘치적’, ‘시혜불망’, ‘애민불망’, ‘청덕불망’ 등의 수식어들이 비석의 주인공 이름 뒤에 이어지며 그들의 추악한 이면을 감추고 있다.

한편 뭉개져서 판독할 수 없는 글자들이 듬성듬성 있다. 이름자 앞 성씨이거나 연도 앞 연호들인데, 창씨명과 쇼와(昭和)·다이쇼(大正) 같은 일왕의 연호가 여지없이 지워진 것이다. 비석에 새겨진 큰 글자와는 대조적으로 오른쪽 한켠에는 작은 글씨로 주인공의 행적을 소개한다. 『친일인명사전』에 실려 있는 일제강점기 그들의 삶의 발자취를 요약한 것이다. 군수, 도평의원, 조합장, 면장뿐만 아니라 조선귀족, 중추원 의원, 국방금품헌납자, 일본제국 수훈자를 두루 거친 이들이 많다. 화려한 미사여구 이면의 어두운 흑역사를 분명하게 알 수 있게 해준다.

Ⅱ부의 탁본은 식민통치 관련 기념비를 대상으로 한 것이어서 대체로 비의 면적이 크고 비석 네 면에 글자가 빼곡히 채워져 있다. ‘권업모범장’, ‘치산치수’, ‘수룡수리조합’, ‘기동보린사’ 비에는 식민통치의 기간산업인 농업과 관련된 내용이 주로 새겨져 있다. 이미 강제병합 이전부터 일본농법의 이식과 품종개량을 목표로 세워진 시범농장과 그 책임자로 장기간 조선에 머물렀던 일본인 농업기술 관료의 흉상(권업모범장), 일본인 도지사의 글씨를 뚜렷하게 새긴 식민통치의 역점 사업인 치산치수의 완성을 기념한 비석(치산치수비), 수원·용인의 대지주들이 앞장서 농업용수를 공급할 수 있도록 저수지를 만든 후 세운 식민통치 미화기념물(수룡수리조합비), 여주, 양평 등의 경기동부지역의 유력자 500명 이상이 출자하여 영세농민을 구제하여 생활을 안정시키고 농촌진흥을 꾀하며 준관변단체 역할을 한 재단법인(기동보린사 창립기념비) 등이 대표적이다.

전시된 탁본들을 통해서 일본제국주의가 식민지 조선에서 펼친 농업 수탈정책과 그들의 화려한 선전 뒤에 감춰진 가혹한 통치의 일면을 다시 한번 곱씹게 한다. 또한 일본제국주의의 선전 구호가 담긴 ‘팔굉일우’비는 엄청난 돌의 크기는 물론 ‘백작야전종헌’이 썼다고 새겨 매국적 송병준의 아들로 뼛속부터 친일파였던 그의 위세등등함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이번 전시회가 친일파나 식민통치 관련 기념물의 탁본을 전시한, 최초의 시도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크다.

• 임무성 상임교육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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