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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절절한 인간애 토로한 ‘시인’ 문익환
‘두 손바닥은 따뜻하다’, 탄생 100주년 기념 출간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이게 누구 손이지/어두움 속에서 더듬더듬/손이 손을 잡는다/잡히는 손이 잡는 손을 믿는다/잡는 손이 잡히는 손을 믿는다/두 손바닥은 따뜻하다/인정이 오가며/마음이 마음을 믿는다/깜깜하던 마음들에 이슬 맺히며/내일이 밝아 온다” 민주화와 통일운동의 상징 문익환(1918∼1994) 목사가 쓴 시 ‘손바닥 믿음’ 전문이다. 만주 북간도에서 태어나 1955년부터 한국신학대학 교수이자 목사로 활동한 그는 1968년부터 구약성서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는 첫 시집 ‘새삼스런 하루’에 후기로 쓴 글에서 시인이 된 과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문학작품 중의 문학작품이라는 구약성서를 어떻게 훌륭한 작품으로 옮겨 내느냐는 생각이 처음부터 나의 가슴을 무겁게 눌렀소. ‘특히 그 시들을 어떻게 하느냐?’ 처음에는 한국 시단을 총동원할 심산이었는데, 그것이 뜻대로 안 되더군요. 그러고 보니 나는 궁지에 몰리게 된 셈이었소.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내가 시 공부를 시작할 밖에 없었던 것이오.” 사회운동가의 모습으로만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시인 문익환을 만날 수 있게 해주는 시집이 나왔다.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출간된 시집 ‘두 손바닥은 따뜻하다'(사계절). 그가 생전 펴낸 시집 5권(‘새삼스런 하루’, ‘꿈을 비는 마음’, ‘난 뒤로 물러설 자리가 없어요’, ‘두 하늘 한 하늘’, ‘옥중일기’)과 신문·잡지에 발표한 시 가운데 70편을 뽑아 묶었다. 문학평론가이자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인 임헌영은 문 목사를 “일흔여섯 생애 중 여섯 차례에 걸쳐 11년 2개월을 옥중에서 보냈던 우리 민족의 겸허한
정세현 “북한 도와야 핵문제 해결…전쟁공포 없이 사는 길”
“북, 미국이 종전·불가침만 약속하면 핵 포기할 것” “남북정상회담은 북미회담으로 가려는 북한 기획의 연장선” (서울=연합뉴스) 김지헌 기자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18일 “북한은 미국이 종전과 불가침만 약속하면 핵을 포기할 것”이라며 “북한을 도와야 핵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정 전 장관은 이날 서울 용산구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열린 ‘4·27 판문점 선언과 한반도의 미래’ 특별대담에서 “북한은 남북정상회담에 응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북미정상회담으로 나아가려 한 것”이며 이렇게 진단했다. 그는 “이번 남북회담은 김정은 위원장이 북미정상회담을 하려고 처음부터 기획적으로 벌인 일의 연장선상에서 성사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그동안은 북한이 무시해도 좋을 만한 정도의 핵 능력만 갖췄으므로 압박과 제재로 나서려 했다”며 “지난해 11월 29일 북한이 사거리 1만3천㎞짜리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에 성공한 이후로는 김정은과 북한을 만만하게 보지 못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김 위원장은) 남북정상회담은 과정과 수단으로 생각하지 그 자체가 최종목적은 아니다”라며 “평창올림픽에 참가하고 싶다고 해놓고는 왜 여동생을 시켜서 친서를 보냈을까. 북미수교까지 생각하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트럼프를 소개해 달라고 하는 것 말고는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김 위원장은 미국이 종전과 불가침만 약속하면 핵은 폐기하겠다, 포기하겠다는 것이며 경제적으로 넉넉하게 살고 싶다는 것”이라며 “북미수교까지 끌어내면 아시아개발은행(ADB)이나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의 장기저리차관이 쉽게 들어올 여건이 조성돼 경제적 여건이 좋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 전 장관은 “북한을 돕는 것이 북핵 해결의 길을 여는 것”이라며 “북한에 돈이 들어간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민족사랑 2018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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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세에 길이 전한다”… 포천 ‘전두환 공덕비’를 아시나요
경기북부 시민단체들 “43번 국도 전두환 친필 비석 철거해야”… 철거 민원 처리는 ‘오리무중’ 5.18 광주민주화운동 38주년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경기 북부의 시민사회단체들이 포천시에 있는 ‘전두환 공덕비’에 대한 철거운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 수년간 해마다 5.18 기념일이 다가오면 포천시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역사 바로 세우기’ 차원에서 공덕비를 철거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다. 이 비석은 경기도 의정부~포천을 연결하는 43번 국도변 축석고개에 있다. 지난 1987년 43번 국도를 확포장하면서 전두환 전 대통령의 공덕을 기린다면서 세워졌다. 이 비석은 높이 5m, 폭 2m의 대형 화강암으로, 비석 몸체 전면에 한자로 ‘호국로’라고 새겨져 있다. 43번 국도가 완공되면서 전씨가 직접 호국로라고 이름 붙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친필로 호국로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으며 ‘대통령 전두환’이라는 문구가 나란히 있다. “이 길은 전두환 각하의 분부로…” 비석 앞면과 뒷면의 녹색 받침돌에는 “개국 이래 수많은 외침으로부터 굳건히 나라를 지켜온 선열의 거룩한 얼이 깃들인 이 길은 전두환 각하의 분부로 건설부와 국방부가 시행한 공사로서 호국로라고 명명하시고 글씨를 써주셨으므로 이 뜻을 후세에 길이 전한다”라고 적혀 있다. 일종의 찬양 문구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공덕비의 측면에 “이 길은 6천만 민족의 민족통일 염원과 전두환 대통령 각하의 호국 의지 그리고 12만 포천군민의 애향심이 만나는 민족웅비의 활로이다. 1987년 12월 10일 국회의원 이한동”이라는 글귀를 새긴 조형물이 있었으나 현재는 찾아 볼 수 없다. 포천시에 따르면, 지난 2011년 5월부터 도로 확장
국채보상운동 벌인 아버지,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아들
너무나 초라한 서상돈의 무덤… 부자의 행적이 왜 이렇게 다를까 1904∼1905년 러일전쟁의 승리와 1905년 을사늑약 등으로 한반도에서의 정치적·군사적 지배권을 장악한 일본은 한국을 경제적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차관을 강요한다. 한국의 경제 발전을 위한 차관이 아니었다. 일본은 한국에 식민지를 건설하는 데 소요되는 경비를 모두 한국 정부에 부담시켰고, 차관은 그 수단이었다. 강제로 빚을 우리나라에 떠안긴 일본 1907년 2월 21일 대구 광문사의 사장 김광제(金光濟, 1866.7.1.∼19 20.7.24.)와 부사장 서상돈(徐相敦, 1850.10.17~1913.6.30) 등이 앞장서서 국채보상운동을 본격화했다. 이 무렵 우리나라가 일본에 진 빚은 1300만 원이었다. 그러던 것이 1910년에는 일본에 갚아야 할 국가 부채가 4400만 원을 훌쩍 넘어섰다. 1907년의 1300만 원은 당시 우리나라의 1년 예산에 해당되는 금액이었다. 국가의 1년 예산과 견줘보는 것은 1300만 원과 4400만 원이 어느 정도 규모의 부채인지를 쉽게 가늠할 수 있는 좋은 잣대가 되기 때문이다. 민간에서 시작된 나라빚 갚기 운동 금연을 해서 모은 돈으로 나라빚을 갚자는 국채보상운동이 시작되자 호응이 뜨거웠다. 일제는 언론 중 가장 적극적으로 이 운동을 이끌어간 대한매일신보의 양기탁을 모금한 돈을 횡령했다고 누명을 씌워 1908년 7월 21일 구속했다. 양기탁은 9월 29일 무죄로 석방되지만 그 사이 국채보상운동은 활기를 잃고 시들어버렸다. 일제의 간교한 술책이 마침내 성공을 거두었던 것이다. 서상돈의 묘소는 수성구 범안로 120, 즉 범물동 산227-1의 천주교 모역 안에 있다. 본래 달성군에 있었는데 1974년 이곳으로 이장되었다. 서상돈 가문이
[팟캐스트] ‘내역사’ 시즌 2: “조선공산당 1편”
[바로듣기] ☞ ‘내역사’ 시즌2: 역전다방” “조선공산당 1편_조선공산당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 ‘내역사’ 시즌2: 비하인드 히스토리 “금기의 70년, 제주 4.3” ☞ ‘내역사’ 시즌2: 역전다방 “최초의 비밀결사 신민회 2편_데라우치 암살미수 사건” ☞ ‘내역사’ 시즌2: 미식가 경복궁 수난사 – ‘조선물산공진회’ ☞ ‘내역사’ 시즌2: 역전다방 “최초의 비밀결사 신민회 1편_입헌공화국을 꿈꾸다” ☞ ‘내역사’ 시즌2: 비하인드 히스토리 “친일파가 그린 충무공 표준영정” ☞ ‘내역사’ 시즌2: 미식가(미리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가다)2회 “파이팅은 일제 잔재인가” ☞ ‘내역사’ 시즌2: 역전다방 3회 임시정부와 3.1혁명 3편 – 임시정부는 어떤 나라를 세우려고 했나?” ☞ ‘내역사’ 시즌2: 비하인드히스토리 “경희대학교의 뿌리 신흥무관학교??” ☞ ‘내역사’ 시즌2: 역전다방 2회 임시정부와 3.1혁명 2편 – 3.1혁명의 이름없는 영웅들” ☞ ‘내역사’ 시즌2: 미식가(미리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가다)1회 식목일의 기원 ☞ ‘내역사’ 시즌2: 역전다방 1회 임시정부와 3.1혁명 1편 – “왜 3.1운동이 아니라 3.1혁명인가”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 2 “우리 역사의 뿌리가 친일독재 세력에 의해 흔들리고 훼손되었습니다. 우리가 지난 겨울 촛불을 들고 싸운 상대는 과연 누구였을까요. 역사적폐의 주범들의 실체와 이들이 저지른 역사범죄의 동기를 파헤쳐보고자 합니다.”
1980년 5·18진압 적극 가담자 10명은 누구?
민족문제연구소 광주 금남로에 현수막 17일 5·18 전야제가 열리는 광주 동구 금남로에 5·18 진압 적극 가담자 인명사전 현수막이 설치됐다. 5·18 시민난장 행사 중 하나로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가 설치한 현수막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을 비롯해 10명의 사진과 당시 이력 등이 담겼다. 전 전 대통령의 경우 ‘하나회 회장, 육사 11기, 쿠데타 통수권자, 12·12 쿠데타 이후 중앙정보부장 서리, 5·18 당시 최고 명령권자로 광주를 짓밟고 권력 찬탈’이라고 작성돼 있다. 명단에는 당시 육군참모총장이었던 이희성 계엄사령관과 전차와 무장헬기를 동원해 광주를 진압한 황영시 육군참모 차장이 포함돼 있다. 또 정호용 특전사령관, 이학봉 보안사 대공처장, 박준병 20사단장, 최세창 3공수 여단장, 신우식 7공수여단장, 최웅 11공수여단장, 서의남 505보안부대 대공과장 등의 이름이 올라와 있다. 시민들은 이를 지켜보면서 혀를 차기도 했고, 당시 상황을 떠올린 듯 화를 내는 모습도 보였다. 일부 시민들은 “빨리 5·18의 진실이 밝혀졌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 관계자는 “5·18의 진실을 알리고, 5·18을 잘 모르는 후세들이 당시 어떤 사람들에 의해 5·18이 벌어졌는지 교육하기 위해 현수막을 설치했다”며 “앞으로도 진실을 밝히기 위한 자료를 수집하는 등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친일인명사전과 같이 꾸준한 조사를 통해 5·18 진압 적극 가담자 인명사전을 발간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junwon@ <2018-05-17> 뉴스1 ☞기사원문: 1980년 5·18진압 적극 가담자 10명은 누구? ※관련기사 ☞연합뉴스: ‘1980년 5월 그날’…주먹밥 나누고 아리랑 울려 퍼진 금남로 ☞뉴스프리존:
[보도자료] 올해 강만길연구지원금, 고려대 유바다 박사에게 수여
[보도자료] 제11회 강만길연구지원금 수여식 올해 강만길연구지원금, 고려대 유바다 박사에게 수여 내일을여는역사재단(이사장 함세웅)이 신진 학자들의 도전적 탐구 정신을 격려하고 한국 근현대사 연구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2007년 제정한 <강만길연구지원금>이 어느덧 11회에 이르렀다. 내일을여는역사재단은 2월 20일 예비심사위원회를 열고 2016년 후기(8월)와 2017년 전기(2월)에 국내 역사 관련 학과에서 통과된 한국근현대사 전공 박사학위 논문 총 17편 중에서 3편을 강만길연구지원금 수여 후보로 선정하였으며, 이어 4월 9일 열린 심사위원회 본심(위원장 : 서중석 성균관대 명예교수 / 위원 : 지수걸 공주대 교수, 최기영 서강대 교수)에서 고려대에서 《19세기 후반 조선의 국제법적 지위에 관한 연구》로 학위를 받은 유바다 박사를 수혜자로 최종 결정했다. 《19세기 후반 조선의 국제법적 지위에 관한 연구》는 개항 이후 만국공법 체제하 조선의 국제법적 지위를 새로이 조명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심사위원회는 “이 박사학위 논문이 광범위한 자료를 섭렵한 위에 거둔 주목할 만한 성과로, 한국사는 물론 국제법 분야의 연구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 연구지원금은 원로 역사학자 강만길 전 상지대 총장이 출연한 기금으로 운영되며 지원금은 2천만원이다. 수여식은 5월 18일 오후 6시 숙명여대 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린다. 수상자 주요이력 및 연구업적 • 주요이력 –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학사, 석사, 박사 졸업 – 국무총리소속 동학농민혁명참여자명예회복심의위원회 조사원 – 문화체육관광부 특수법인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근무 – 고려대학교 한국사연구소 보조연구원 – 고려대학교 BK21Plus 한국사학미래인재양성사업단 연구교수 • 연구업적 「1883年 金玉均의 借款交涉과 淸·日의 朝鮮保護論」, 2009,
‘한반도의 봄’ 그 뿌리는 민중…남북 역사학계 교류 기대
ㆍ전봉준 장군 동상 건립 주도 ㆍ재야 역사학자 이이화씨 “여기가 1894년 동학농민혁명을 일으킨 전봉준 장군이 수감된 전옥서가 있던 자리예요. 이곳에서 만민공동회가 열렸고, 곧이어 3·1운동이 일어났지요.” 지난 2일 역사학자 이이화씨(81)가 전봉준 동상이 세워진 서울 종로 네거리에 서서 생각에 잠겼다. (사)전봉준장군동상건립위원회 이사장으로 최근 동상 제막을 주도한 그는 120여년 전의 민중운동에서 ‘오늘’을 읽어냈다. “해방 후에는 반독재 민주주의 운동 4·19, 신군부 폭정에 항거한 5·18과 6월항쟁이 차례로 일어났고, 이런 흐름이 촛불혁명으로까지 연결된 거예요. 근현대사의 여러 혁명을 지나 마침내 통일의 길목으로 가고 있다고 봅니다.” 동학에서 ‘통일의 길목’까지, 그가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하나로 풀어낸 것은 역시나 남북정상회담 때문이다. 역사학계 원로이자 전쟁을 겪은 세대의 일원으로서 그에게 정상회담의 의미는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학자로서 나는 자주의 역사, 민중의 역사를 강조해왔습니다. 과격한 민족주의자는 아니지만, 우리가 외세에 시달리며 식민과 분단을 겪어야 했던 현실이 늘 안타까웠어요.” 그가 줄곧 평화협정을 체결해 한반도에서 갈등을 종식할 것을 주장하고, 북한 역사학자들과의 교류에 적극 참여했던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판문점에서 지난달 27일 만난 남북 정상이 손을 맞잡고 ‘전쟁 없는 한반도’를 선언하면서 남북관계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원로 역사학자는 보수정부 9년을 지나며 단절됐던 남북 역사학계 교류가 재개될 것이란 기대감을 나타냈다. 그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추진했다가 중단된 개성 만월대 공동 발굴사업을 재개해야 한다”며 “남북이 공동으로 연구하고 대응할 문제들이 많다”고 말했다. 40여년 동안 동학을
[호소문]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에 함께 해 주십시오
■ 발기인(10만원 이상)·후원회원 참여 우리은행 1006-401-235747 (시민역사관건립) ■ 시민참여 우리은행 1005-703-038353 (시민역사관) ※발기인으로 참여하시려면 아래 첨부파일의 <동의서>를 작성하여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대표메일: minjok@minjok.or.kr 팩스: 02-965-8879 ※클릭 다운로드 ▣ [PDF – 동의서] l [한글 – 동의서] l [워드 – 동의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