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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민족사랑 2018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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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강제동원 희생자 유골봉환 문제 대응을 위한 시민사회단체 긴급 기자회견
[보도자료] [다운로드] “돌아오지 못한 조선인 유골, 한일 정부가 책임져야” “강제동원 희생자 유골 131구, 창고로 보낼 수 없습니다” 강제동원 희생자 유골 문제에 대한 일본시민사회의 노력에 한일 정부는 최소한의 성의를 보이고, 근본적으로 양국 정부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1.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 희생자 유골문제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많은 유족들이 제사도 올리지 못하며 유골을 찾아다니고 있고, 일본과 한국 양국정부가 이를 2005년부터 조사한다고 하였지만,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2. 이런 가운데 일본 사이타마현 토코로자와시 ‘곤죠인 사찰’의 유골131구가, 유족을 찾지 못한 채 임의로 처리될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해방 이후 배를 마련해 귀향길에 나섰던 조선인들이 태풍 등으로 인해 조난을 당했고, 이 유해가 이키 섬과 스시마 섬의 해안으로 떠밀려와 매장되었습니다. 1976년 이키 섬과 1983년 스시마 섬에서 유해가 발굴되었고, 이 유골 131구가 현재 ‘곤죠인 사찰’에 모셔져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곤죠인 측에서 더 이상 희생자들의 유해를 모실 수 없는 상황이고 이 유해들을 옮길 마땅한 곳을 3월 30일까지 찾지 못할 경우에는 후생노동성 창고로 옮겨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유골은 한국으로 돌아오기가 더욱 어려워질 뿐더러, 유족을 찾게 되기는 거의 불가능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3. 이에 대해 일본 시민사회에서는, 곤죠인 사찰에 더 이상 유골을 모시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이키섬의 ‘텐토쿠지’에 유골을 다시 모시겠다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4. 이에 한국의 시민사회단체는, 이 유골에 대해 일본정부가
민족문제연구소, 박정희 동상건립 반대 청원서 제출
오경환 서울시의원, 청원서 의회 안건으로 올려 사단법인 민족문제연구소가 박정희기념도서관 내 박정희 동상 건립을 반대한다는 내용의 청원서를 제출했다. 서울시의회 오경환 의원(더불어민주당, 마포4)은 19일 민족문제연구소의 ‘박정희기념도서관 내 박정희 동상 건립 반대’에 대한 청원서를 받아 서울시의회 안건으로 올렸다고 밝혔다. 박정희기념도서관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후보시절 ‘역사화해’ 차원에서 박정희기념관 건립을 약속했다. 행정안전부가 200여억원을 지원했고 당시 고건 서울시장이 시유지 무상지원을 밝혔다. 여기에 기념재단이 모금한 500억원이 더해져 박정희기념도서관은 2010년 첫 삽을 떴다.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측은 시유지인 이 땅을 무상으로 사용하고 있고, 부지 내 동상 건립을 추진해 논란이 되어 왔다. 박정희 동상설립 신고는 지난 1월31일 서울시에 접수됐다. 공공미술위원회는 2개월 이내인 오는 31일 이 전에 심의를 시작해야 한다. 이와 관련 민족문제연구소는 “대한민국헌법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명시하고 있는 한 박정희는 청산의 대상이 될지언정 기념의 대상을 될 수 없다”며 “박정희 동상을 서울시민의 땅에 세우겠다는 준동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청원서를 직접 서울시로 제출하면 단순민원 처리 된다. 하지만 시의회에 제출함에 따라 오경환 의원이 소개 의원으로 대표 발의에 나섰다. 본회의 의결 후 서울시 집행부로 보내면 이와 관련한 답변을 제출해야 한다. 오 의원은 “박정희 동상 건립문제는 법적·행정적 문제와 정서적으로 찬반여론이 얽혀 있어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며 “박정희 동상은 상암동과 역사적으로 아무런 관련이 없어 동상건립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2018-03-20> 뉴스1 ☞기사원문:
게임인재단-민족문제연구소, 게임 통한 역사 대중화 나선다
게임인재단x민족문제연구소x통일시대민족문화재단 게임인재단이 역사 연구 기관과 손잡고 게임을 통한 역사 대중화에 나선다. 재단법인 게임인재단은 3월16일 사단법인 민족문제연구소, 재단법인 통일시대민족문화재단과 함께 ‘게임을 통한 역사 대중화’ 협약식을 했다. 각 기관은 이번 협약으로 대중문화로 자리 잡은 게임을 활용해 역사 인식을 높이고 일반 대중들에게 역사를 친숙한 형태로 알려 나가기로 뜻을 모았다. 특히, 교육에만 초점을 맞춘 게임에서 벗어나 재미와 몰입도를 갖춘 형태로 역사를 쉽게 알리는 방법을 다양하게 모색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각 기관은 게임과 역사의 가교 역할을 하면서 각종 지원 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해나가기로 했다. 게임인재단은 2013년 게임 업계 종사자를 주축으로 문화 산업으로서 게임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설립됐다. 민족문제연구소와 통일시대민족문화재단은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하고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을 주도하는 등 한일 과거사 청산 운동의 핵심 역할을 해온 역사 연구 단체다. 두 단체의 만남이 어떤 결과물을 끌어낼지 주목되는 부분이다. 게임인재단은 “이번 협약을 계기로 게임이 대중문화를 넘어, 사회적 역할과 시대적 메시지를 담아낼 수 있는 보다 크고 넓은 그릇이 되는 첫걸음이 될 수 있도록 역할을 다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게임이 양적인 성장을 넘어 영역을 확장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전했다. 민족문제연구소 측은 “그동안 영화 <암살>, 드라마 <각시탈>, 다큐멘터리 <백년전쟁> 등 주로 영상 영역이 역사의 대중화를 이끌어 왔다”라며 “이번 협약은 게임과 역사가 만나 역사 대중화의 지평을 넓히는 새롭고 신선한 시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18-03-16> 블로터닷넷
“일제 수탈 보여줄 식민지역사박물관 5월 문 엽니다”
<2018-03-02> 한국일보 ☞기사원문: [인터뷰] 식민지역사박물관 개관 앞둔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
국방부 현관에 걸렸던 베트남戰 묘사 그림에 무슨일이?
‘친일’ 논란 김기창 화백이 그린 ‘적영’ 국방부 1층 로비서 철거 “예술품 재배치 중”…확대해석 경계 또 다른 베트남전 묘사 작품은 그대로 [이데일리 김관용 기자] 국방부 청사 현관에 들어서면 정면에 가로 2m 세로 3m 크기의 그림 한점이 있었다. 운보 김기창(1913~2001) 화백의 작품 ‘적영’(敵影·적의 그림자)이다. 그러나 국방부는 지난 16일 이 그림을 떼어냈다. 국방부는 청사 내 예술품 재배치 계획에 따른 것이라고 했지만, 이 그림을 그린 운보가 ‘친일’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인물인 것과 문재인 대통령의 베트남 순방을 앞두고 이뤄진 것이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그림은 베트남 파병 당시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 알려진 638 고지전을 화폭에 담은 것이다. 은밀하게 적진에 침투하는 우리 맹호부대 장병들을 묘사하고 있다. 매섭고 긴장한 눈빛이 생생하다. 긴박했던 전투 상황을 생동감 있게 그려냈다. 운보는 1972년 베트남을 방문한 후 월남전쟁기록화전에 적영을 출품했다. 당시 국무위원들은 이 그림을 구입해 국방부에 기증해 국방부 현관에 걸리게 됐다. 적영 그림에는 얽힌 이야기들이 많다. 1979년 12월 12일 국방부를 습격한 군사쿠데타 세력이 쏜 총탄에 그림이 훼손됐다. 당시 총탄은 그림 속 국군 병사의 눈을 관통했다고 한다. 군은 나중에 훼손된 부분을 복원했다. 한국과 베트남이 수교한 이후 2001년 팜 반 짜 당시 베트남 국방부 장관 방한 당시 국방부는 이 그림 때문에 고민을 했다. 베트남 국방장관이 이 그림의 배경을 알게 되면 불편해 할 수 있기
‘육삼정(六三亭) 의거’ 85주년 기념식, 제천 박달재 정상서 열려
[중부매일 서병철 기자] 주중공사 유명길(아리요시 아카라) 암살 미수사건인 ‘육삼정(六三亭) 의거’ 85주년 기념식이 17일 제천시 봉양읍 원박리 박달재 정상에서 열렸다. 민족문제연구소 제천·단양지회(지회장 리학효)는 한국인과 중국인에게 항일의식을 심어준 ‘육삼정 의거’를 되새기기 위해 지난해부터 행사를 갖고 있다. 1933년 항일독립군을 공격하기 위해 유길명을 중심으로 한 비밀회의가 상하이에 있는 ‘육삼정’이라는 고급 음식점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이를 눈치 챈 흑색공포단은 암살을 시도하려 했지만, 밀정에 의해 정보가 유출되며 실패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 사건은 중국과 한국의 대일항전의 새로운 전기가 됐으며, 대일 항전기의 해외 3대 의거로 평가받고 있다. 일본 검찰은 육삼정 의거 주역인 원심창·백정기 선생에게 사형을, 이강훈 선생에게 15년형을 구형했다. 육삼정 의거 현장에는 직접 투입되지 않았지만, 제천출신인 이용준 선생은 폭탄과 권총을 입수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날 행사에서 리학효 민족문제연구소 제천지회장은 “85년 전 육삼정 의거가 모두에게 여전히 살아 있길 간절히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준식 독립기념관장도 “의열투쟁은 성공보다 실패가 많았지만, 우리의 독립운동과 항일투쟁을 세계 만방에 알렸고 해방으로 이어지게 했다”며 “우리는 독립운동과 의열투쟁에 나선 분들을 기억해야 할 책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행사에는 제천 출신 독립운동가 이용태·이용준 선생과 충주 출신 류자명, 육삼정 의거 주역인 원심창(경기 평택)·백정기(전북 정읍)·이강훈(강원 철원), 연병호(충북 증평) 선생의 후손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한편 행사가 열린 박달재 정상에는 이용태·이용준 선생의 흉상과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서병철 기자 bcsu113@jbnews.com <2018-03-09>중부매일 ☞기사원문: ‘육삼정(六三亭) 의거’ 85주년 기념식,
식민지역사박물관 5월 개관…”민중들의 역사 담을 것”
어렵게 부지 구했지만 건립기금 여전히 부족일본에서도 성금, 자료 기부 이어지기도 국내 최초로 식민지 시기 역사에 초점을 맞춘 박물관이 5월 개관한다. 정부의 지원 없이 순수하게 민간 시민단체의 기금마련과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모금 활동이 박물관 건립의 주춧돌이 됐다. 민족문제연구소는 5월 식민지역사박물관 완공을 목표로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1일 밝혔다. 2007년 역사관 준비위원회가 발족한 지 11년 만에 이뤄낸 결실이다. ◇어렵게 구한 박물관 부지 “하늘에서 독립군이 도운 듯” 박물관 건립의 가장 큰 난관은 먼저 박물관이 될 건물을 구입하는 것이었다. 51억원을 건물비로 잡았지만 서울 시내 사대문 안에서 박물관 건립을 위해 연면적 500평 이상의 건물을 구입하는 것을 하늘의 별따기였다. 연구소의 박물관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강동민 자료팀장은 서울 용산구 청파동에 있는 현재의 박물관 건물을 구입할 수 있었던 것을 ‘하늘에 계신 독립운동가들이 도우신 것’으로 밖에 설명할 수 없다고 했다. 본래 이 건물을 소유하고 있던 건물주는 강 팀장 등 연구소 관계자들의 말을 듣고는 “이제야 이 건물이 주인을 찾은 것 같다”라며 흔쾌히 거래를 받아들였다. 이어 건물주는 “건물에 역사박물관이 들어서면 내가 자식들에게 내세울 게 생기는 것 같다”며 기뻐했다. 용산구가 가지는 의미도 박물관의 위치를 더 의미 있게 했다. 일제강점기 조선에 주둔했던 일본군의 사령부가 바로 용산구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용산 지역은 식민역사의 고통과 상처를 담아내기에 가장 적합한 지역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강 팀장은 종국에는 식민역사박물관이
‘강제 징용의 아픈 역사’ 고국 땅 못 밟은 유해 아직 많다
해방 73년 됐지만 타국에 방치 ‘유텐지’ 700구·‘콘죠인’ 131구 “시민단체, 문제해결 힘쓸 것”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해방된 지 73년이 지났지만 일제강점기 강제 동원으로 희생된 수많은 사람의 유골이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유골은 일본과 동남아시아 각국, 그리고 태평양제도에 이르기까지 그대로 방치돼 있다. 이와 관련, 동아시아시민네트워크 도노히라 요시히코 대표는 지난 2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한국인 강제동원 희생자 유골봉환을 위한 국제회의’에서 발제를 통해 전쟁 후의 현 실태와 향후 과제에 대해 설명했다. 도노히라 대표는 “36년간 일제의 식민지 지배로 많은 조선인이 강제적 노동에 연행됐다”며 “이후 조선인은 중국인 노동자와 함께 홋카이도를 포함한 일본 전역에서 사망했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 정부는 중국인 노동자 유골조사는 진행했으나 조선인 노동자 유골 조사는 하지 않은 채 오랜 시간이 흘러왔다”고 전했다. 도노히라 대표에 따르면, 오늘날 상징적인 두 곳에 조선인 유골이 남아있다. 첫 번째 장소는 도쿄 메구로구에 유텐지라는 불교 사원이다. 경내의 한켠에 납골당이 있으며 지금도 700구의 조선인 군인·군속(군무원) 유골이 남겨져 있다. 아직 봉환되지 못한 조선인 군인·군속의 유골은 전쟁 후 후생성(현재는 후생노동성)이 관리해 왔다. 1971년에 참배를 쉽게 하기 위한 조치로 유텐지에 맡겨지게 됐다고 한다. 두 번째 장소는 토코로자와시에 있는 콘죠인이다. 이곳에는 조선인 유골 131구가 모셔져 있다. 일본이 전쟁에 진 1945년 당시, 강제노동에 동원됐거나 다른 여러 가지 이유로 남게 된 조선인은 200만명이 넘었다. 8월 15일 이후
“백범도 친일파와 묻히기 원치 않아”…효창공원 묘소이장 논란
민주당 민주연구원 국립현충원 이장 추진 “친일인사와 함께 모실 수 없다” 반대 거세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일본 관동군 헌병으로 복무하며 독립투사 소탕에 앞장섰던 김창룡(1902~1956)은 대전 국립현충원에 묻혀 있다. 바로 맞은편 묘역에는 백범 김구 선생(1876~1949)의 모친 곽낙원 여사(1858~1939)와 장남 김인(1917~1945)이 잠들어 있다. 친일논란 대상인데다 백범 암살사건의 배후라는 의혹을 받는 인물과 독립투사의 유족이 마주보고 있는 셈이다. 더불어민주당이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김구 선생의 묘소를 국립현충원으로 이장한다는 구상을 밝히면서 비슷한 우려가 나온다. 민주당 민주연구원의 김민석 원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다는 의미에서 효창공원에 안장된 김구 선생과 윤봉길·이봉창·안중근 열사를 국립현충원으로 이장을 추진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도 2017년 8월15일 광복절에 효창공원을 직접 찾아 참배해 임정 법통을 강조한 바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에 따르면 현재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친일인사는 서울에 37명, 대전에 26명이다. 2009년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결과, 친일반민족 행위자로 규정된 인물 중에는 서울에 7명, 대전에 4명이 묻혔다. 이 때문에 친일인사의 이장을 위해 국립묘지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은 “여당이 임시정부 주석을 예우하기 위해 고민한다는 건 일리가 있다”면서도 “김창룡을 비롯해 친일인사들이 국립현충원에 남아있는데 그곳에 백범을 모시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반문했다. 박 실장은 “역사적폐 청산 차원에서도 친일독재를 반대한 민족인사를 반민족인사와 함께 모신다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이장 반대의사를 밝혔다. 김구 선생은 생전 자신이 세상을 떠나면 효창공원 독립운동 동지들 곁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