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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하얼빈역..100년 후 오늘
<안중근의거 100년> 하얼빈역..100년 후 오늘(연합뉴스, 09.10.21)
“다양한 면모의 사상가”
<안중근의거 100년> “다양한 면모의 사상가”(연합뉴스, 09.10.21)
“전주 한옥마을에 일본식 건물 70여채”-연합뉴스(07.10.16)
“전주 한옥마을에 일본식 건물 70여채” 전주문화재단 발간 ‘전주 근대생활조명, 100년’ 지적(전주=연합뉴스) 장하나 기자 = 전통 문화도시인 전북 전주의 대표적 관광지 중 하나인 풍남동 한옥마을에 일본식 건물이 70여채나 남아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16일 전주문화재단이 발간한 ‘전주 근대생활 조명, 100년(1907∼2006) : 제1권 일제 식민시대 구술실록 (1907∼1945)’에 따르면 재단측이 전수 조사를 벌인 결과 작년 말 현재 한옥마을로 불리는 전주 풍남동에 일본식 건물 74채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이 중 원형 그대로 보존된 일본식 주택만 모두 11채에 달했다.또 풍남동 주변 경원동과 다가동 등을 비롯, 전주 도심에 남아 있는 일본식 건물은 주택과 상점, 사무실 등 모두 465채인 것으로 조사됐다.전북도 산업장려관과 전북도 금융조합연합회, 전북일보사 구(舊) 사옥, 전주시장 관사, 무진회사 사옥 등 일본식 형태가 온전히 남아 있는 건물이 54채나 됐고 나머지 건물도 건물 지붕이나 벽 등 일부가 남아 있거나 지붕 등 외부는 변했지만 내부 목구조는 그대로 보존돼 있었다.책을 집필한 장명수 재단 이사장은 “전통 문화도시라고 자부했는데 전주에 이렇게 많은 식민지 흔적이 남아 있는 줄 몰랐다”며 “특히 풍남동은 일제 강점기 고급 관사와 호화 사택이 장관을 이루고 있던 곳이어서 여전히 왜식(倭式) 흔적이 남아 있는데도 아무런 문제 제기 없이 한옥마을로 부르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장 이사장은 “풍남동의 일본인 주택을 기념물이 아니라 역사의 기록으로 남길 것인지를 판가름할 때”라며 “이들 건물에 대해 근대 유산 여부를 따져 보존할 것인
[세계의창] 아베 퇴진과 일본의 우경화-한겨레신문(07.09.16)
[세계의창] 아베 퇴진과 일본의 우경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퇴진을 표명했다. 그 사임 방식은 너무 정도가 심하다. 그는 7월 말 참의원 선거에서 “나와 오자와(민주당 대표), 어느쪽이 총리에 어울리는지를 판단하는 선거”라고 큰소리를 치며 싸웠다. 그리고 역사적 참패를 당하자 “정책은 틀리지 않았다”고 강변하며 사임을 거부했다. 제2차 아베 내각을 발족했지만 농림수산상이 스캔들로 사임하고 또다시 궁지에 몰리자, 테러대책특별조처법의 연장에 “직을 걸고 임하겠다”고 선언했다. 국회 소신표명 연설에서도 ‘개혁 계속’에 불퇴전의 결의를 보여, 드디어 야당과 전면 대결을 하는 게 아닌가 하고 국민이 주시하는 순간 정권을 내던지고 말았다. 내정과 외교 면의 모든 약속은 휴짓조각 버리듯 했다. 언론 여론조사에서는 이런 사임 표명이 ‘무책임하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70% 안팎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연하다고 생각한다.아베라는 정치가가 젊은 나이에 총리감으로 떠오른 것은 2002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방북 뒤부터였다. 일본인 납치 사건과 관련해 대북 강경론을 상징하는 존재가 된 게 계기였다. 언론들이 ‘싸우는 정치가’ 등으로 그를 추켜세우고, 그 자신도 그것을 판매전략으로 삼았다. 그는 △‘전후체제로부터 탈피’를 내세우며 평화 헌법과 교육기본법 개정 추진 △역사 왜곡에 앞장서 온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에 가까운 역사관 견지 △도쿄전범재판 비판 등으로 우파 세력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최고권력자의 지위에 오른 것이다.그런 의미에서 아베 총리의 전격 사임으로 가장 배신을 당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쪽은 일본의 우파 세력일지 모르겠다. 아베 총리의 용감한 슬로건이 실은
나는 이래서 이토를 죽였다
<안중근의거 100년> 나는 이래서 이토를 죽였다(연합뉴스, 09.10.21)
세계에 울린 여섯 발의 총성
<안중근의거 100년> 세계에 울린 여섯 발의 총성(연합뉴스, 09.10.21)
역사속의 오늘-작곡가 현제명 작고-매일신문(07.10.16)
역사속의 오늘-작곡가 현제명 작고 ‘희망의 나라로’ 작곡가 현제명이 1960년 10월16일 향년 58세로 사망했다.그는 1902년 대구에서 태어나 대구 종로초등학교, 계성학교를 거쳐 숭실전문에 입학, 피아노·바이올린을 배웠다. 1923년 졸업 후 전주 신흥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1925년 미국으로 건너가 본격적으로 음악학교에서 공부하고 귀국했다. 그가 음악적 소양을 키운 것은 제일교회를 다니면서 교회음악을 통해서 서양음악의 자질을 키워갔다. 지금도 대구 동산에는 희망로와 현제명나무가 그와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그는 홍난파와 더불어 서양음악을 이 땅에 뿌리내리게 한 제1세대 음악인. 현제명은 지금까지도 우리 음악계의 대표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친일 어용단체인 조선음악가협회, 경성후생실내악단을 결성해 친일활동을 한 것은 오점으로 남아있다.미국에서 5년동안 음악공부를 하고 돌아와 연희전문 영어교수로 부임한 그는 귀국 초기에는 독창회를 갖거나 가곡 등을 취입하는 등 주로 성악 활동에 전념했으나 곧 작곡에 힘을 쏟았다. 광복전에는 조선음악가협회를, 광복후에는 서울대 음대와 고려교향악단을 창설하는 등 음악계의 기틀을 세우는데도 발군의 능력을 보였다. 한국 최초의 창작 오페라 ‘춘향전’을 작곡ㆍ총지휘하는 등 척박했던 우리 음악계에 큰 공적을 남겼다. ▶806년 합천 해인사 창건 ▶1981년 88올림픽고속국도(대구-광주) 기공
우리의 아리랑, 일본에 스며들다-노컷뉴스(07.08.04)
우리의 아리랑, 일본에 스며들다아리랑학교 추억의박물관 특별전, 8/13~10/31 일제강점기 36년 동안 ‘아리랑’은 한민족의 한(恨)과 울분을 달래주는 정신적 버팀목이었다.일제는 ‘아리랑’으로 대변되는 한국문화를 말살하려 했지만 오히려 ‘아리랑’은 일본으로 흘러들어가 일본인들에 의해 불려지며 일본 문화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게 된다.강원도 정선군에 위치한 아리랑학교 추억의 박물관(www.ararian.com)은 일제강점기에서 1990년대까지 일본에 전파된 아리랑의 산 역사를 보여주는 ‘아리랑, 일본에 스며들다’ 특별전을 오는 13일부터 10월 31일까지 개최한다.이번 전시는 일제가 탄압하고 금지곡으로 삼기까지 했던 아리랑이 일본으로 흘러들어가 파급되는 과정을 100여 종이 넘는 희귀 자료를 통해 살펴볼 수 있는 이색 전시회이다.임진왜란 때 일본에 끌려간 조선인 포로들이 구마모또(熊本)현의 이츠키라는 오지에 들어가 살면서 조국을 그리며 부른 노래로 ‘일본의 아리랑’이라고 할 만큼 일본의 대표적인 민요로 평가받는 ‘이츠키의 자장가(五木の子守り唄)’ SP음반과 이츠키 목각 인형이 선보인다.또한, 일본에서 ‘청하 아리랑’으로 유명한 아라이에이치(新井英一)의 음반을 보릿해 192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일본에서 나온 다양한 형태의 아리랑 자료들이 전시된다.특히, 일제강점기에 한국 가수가 오케, 콜롬비아, 다이헤이, 기린레코드 등에서 취입한 유성기 음반과 아리랑을 배운 일본 가수들이 낸 유성기 음반, 컬러와 흑백이 아름다운 아리랑 노래 엽서 세트, 일본에서 활동을 한 장세정, 패티김 등이 취입한 아리랑 음반, 조총련의 지원으로 일본에서 나온 북한 아리랑 음반과 비디오테잎 등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많은 자료도 공개된다.이와 함께, ‘일본 속의 아리랑’을 주제로 한 강좌와 좌담회, 어린이들이 부모와 함께 일제강점기 유행하던 아리랑을 배워보는 시간도 마련된다.
日 장관, 4년 만에 북방 4개섬 시찰
日 장관, 4년 만에 북방 4개섬 시찰(한국일보, 09.10.21)
아소 다로 前자민당 총리, 야스쿠니신사 참배
아소 다로 前자민당 총리, 야스쿠니신사 참배(아시아경제, 09.10.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