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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하얼빈 의거 100년 안중근 부활
하얼빈 의거 100년 안중근 부활(포커스신문, 09.10.22)
음악의 정치학, 감격시대-무엇이 한국인을 감격시켰나-산케이(07.10.29)
음악의 정치학, 감격시대-무엇이 한국인을 감격시켰나 한반도가 일본의 지배에서 해방된 지 50주년인 1995년 8월 15일, 한국에서는 정부주최의 대대적인 기념행사가 벌어졌다. 그 하이라이트가 일제통치시대의 조선총독부 건물로, 그 뒤 한국의 국립중앙박물관이 된 건물의 해체 및 철거였다.식전은 야외에서 이루어져 시민들도 많이 몰려들었다. 식전에 앞서 브라스밴드의 퍼레이드 등으로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그때 밴드의 연주곡 중 중심이 된 것이 대중가요로 잘 알려진 ‘감격시대’였다. 밝고 경쾌한 축하 퍼레이드에 안성맞춤인 곡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뒤에 큰 문제가 되었다. 가요사의 전문가들에 의하면 “그 곡은 일제의 대륙침략의 노래가 아닌가. 그런 곡을 광복절 기념식전에 쓰다니!”라는 것이다.많은 국민들은 깜짝 놀랐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감격시대는 일본지배에서 해방된 후 그 기쁨을 부른 노래라고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밝고 경쾌하게 ‘불러라 불러라 내일의 청춘아-’라며 희망에 넘치는 젊은 인생의 기쁨의 노래 감격시대는, 일본지배에서 해방된 ‘감격의 시대’를 부른 것이 아니었는가?감격시대는 사실 일제가 한창인 1939년에 인기가수 남인수가 불러 대 히트한 곡이다. 시대적 배경은 만주국 건국을 비롯한 일본의 대륙진출이었다. 이른바 만몽개척의 구호 아래 많은 일본인이 만주(현재의 중국, 동북 3성)로 건너갔다. 당시 많은 한국인들도 또한 일본의 국책에 따라 만주로 향했다. 감격시대는 당시 이러한 한국인들에게 대륙비약의 꿈과 희망을 안겨 준 노래였던 것이다.그렇다 해도 많은 한국인들을 조국해방의 감격의 노래라 오해시킬 정도로 이 노래는 밝고 경쾌하다. 일제는 한국인에 있어 꿈도 희망도 없는 암흑만은 아니었던 듯하다. 감격시대는
종묘ㆍ덕수궁 중화전은 아직도 일제소유?-헤럴드뉴스(07.10.26)
종묘ㆍ덕수궁 중화전은 아직도 일제소유? 정부의 늑장 대응으로 조선왕조의 역사와 정신이 살아 숨쉬는 종묘와 덕수궁이 아직도 일제 소유인 것으로 드러났다.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종묘(사적 125호) 영녕전과 덕수궁 중화전(보물 819호)의 소유권이 일제강점기 이왕직(李王職)장관으로 70~80년째 등재돼 있음에도 문화재청이 이를 아직도 바로잡고 있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국회 문광위 소속 손봉숙 의원(민주당)은 25일 문화재청 국정감사에서 국유재산인 종묘의 영녕전과 두 채의 전각, 덕수궁의 중화전이 등기부등본상 일제의 이왕직장관 소유로 돼 있다며 관련자료를 공개했다. 이왕직은 일제가 대한제국을 이왕가(李王家)로 격하시키고, 이왕가 재산을 관장하기 위해 세운 관청. 이왕직은 광복 후 구황실사무청으로 바뀌었고, 1961년 문화재관리국으로 개편됐다가 1999년 문화재청으로 승격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손봉숙 의원이 이날 공개한 종묘 등기부등본에 의하면 종묘 영녕전은 1928년 이왕직장관 소유로 등기된 후 네 차례에 걸쳐 직제가 개편되는 동안 한번도 소유권 변경이 이뤄지지 않았다. 덕수궁 중화전 역시 1935년 이왕직장관을 소유자로 등기한 뒤 72년간 고쳐지지 않았다. 손 의원은 “종묘와 덕수궁의 핵심 문화재인 중화전이 아직도 일제 이왕직장관 소유라는 것은 대단히 치욕스러운 일”이라며 문화재청을 질타했다.이에 대해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두 건물이) 문화재청 소유인 줄 알았다. 문화재청 산하 국유재산이 방대해 소유권 전환이 이뤄지지 않은 곳이 더러 있다”며 “조속히 변경하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문화재청장이 주요 문화재가 아직도 일제 소유로 등기돼 있는 것을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는 점은 문제다.문화재청 고도보존과의 조송래 사무관은 “1920, 30년대 일제가 등기했던 국유재산을 1960년대 정부가 일괄 등기했고,
[단신]안중근의사 의거 100주년 국제학술대회 外
[단신]안중근의사 의거 100주년 국제학술대회 外(경향신문, 09.10.21)
독립운동가 뉴욕 입국기록 찾아낸 금교혁씨
독립운동가 뉴욕 입국기록 찾아낸 금교혁씨(연합뉴스, 09.10.22)
‘기억과 계승’ 2007 모란민주통일문화제
민족문제연구소 행사자료 내려받기 때 : 2007년 10월 27일(토) 10:00-16:30곳 : 남양주시청, 마석 모란민주묘역 ■ 주최 2007 모란민주통일문화제 조직위원회■ 주관 (사)민족문제연구소 수도권지부연합, 남양주 시민추진위원회■ 후원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통일맞이, 계승연대, 추모연대, 통일시대민족문화재단■ 협찬 한강 CSD, 불광문고 2007 모란민주통일문화제 조직위원회 구성 조직위원장 권오헌 민가협 양심수후원회장, 민가협 공동의장 상임집행위원장 문만기 민족문제연구소 경기동북지부장 공동집행위원장 김철희, 김영훈, 김하욱, 김성호, 송진복, 이호헌, 윤천근 집행위원 김대웅, 김용석, 김재민, 김진효, 김학규, 김현숙, 리복재 박삼호,신용승, 안중걸, 윤국재, 이건, 이기훈, 이광우, 이철민 장이근,정광식, 황현대 문화제 총감독 장성갑 중앙대학교 교수 남양주시민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 이광호 남양주시의원, 안택상 시인 남양주시민추진위원회 위원 강준하, 공정배, 김기욱, 남성운, 박삼호, 유은열, 임용석, 이흥석,이경완, 이미자, 양정옥, 조경삼, 이성수, 이상구, 추양호 외 26인 글쓰기그림그리기 대회 심사위원장 시부문 : 박상률 숭의여대 교수, 평화문학포럼 사무처장그림부문 : 조은정 한국정보벤처대학원대학 교수, 미술평론가 2007 모란민주통일문화제를 열며 1. 개 요「역사적 의미들을 미래 세대까지 온전하게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문화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Gramsci,1992;Huzinga,1938)는 말처럼, 모란 묘역에 모셔져 있는 문익환 목사님, 계훈제 선생님, 박종철, 전태일, 김귀정 열사 등 이 땅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온몸으로 노력하다 가신님들의 시대정신을 일상 속에 기억하고 후세에 널리 알리기 위해, 매년 다양한 형태의 문화행사를 개최함으로써 정기적인 기념사업으로 정착시키고자 함.2. 추진방식항일독립운동의 전통에서부터 민주화운동, 민족통일운동으로 이어지는 근·현대한국사의 올바른 지향을 잇고 실천하기
유치환의 친일행적 추가발굴에 대한 논평
민족문제연구소 최근 경남대학교 박태일 교수에 의해, 일제의 괴뢰국인 만주국의 기관지 <만선일보> 1942년 2월 6일자에 실린 청마 유치환의 산문이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대동아전쟁과 문필가의 각오’라는 제목의 이 글은 비록 그 분량이 짧긴 해도 총동원체제기의 전형적인 선전선동의 양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로써 베일에 싸여있던 유치환의 만주에서의 행적이 추가로 들어날 가능성이 대단히 높아졌다. 관련기사 청마 유치환 ‘친일 산문’ 공개 일파만파(노컷뉴스, 07.10.19)청마 유치환 친일산문 첫 발견(연합뉴스, 07.10.19)유치환의 ‘대동아전쟁과 문필가의 각오’(연합뉴스, 07.10.19)만선일보에 실린 유치환의 친일 산문(연합뉴스, 07.10.19)청마 유치환 친일산문 첫 발견(쿠키뉴스, 07.10.19)유치환 친일 산문 첫 발견(한국일보, 07.10.19) 그간 우리 연구소는, 유치환의 경우 현재 알려진 친일행적만으로도 기념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친일행위에 대한 심도있는 조사가 필요한 인물이라는 견해를 거듭 밝혀왔다. 따라서 해당 지자체와 관계자들에게 여러 차례 기념사업의 중단 또는 유보를 요청하였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합리적인 요구는 일방적으로 묵살되어 왔다. 더욱이 우리가 분노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그들이 기념사업을 강행하는 한편으로, 정당한 문제제기를 하는 시민 활동가들에게 갖은 협박과 모욕을 가하는 등 인격 모독을 넘어서는 몰상식적인 행위를 일삼아 왔다는 점이다. 연구소는 이번 추가 자료 발굴을 계기로, 유치환에 대한 부적절한 기념사업이 즉각 중단되어야 함을 다시 한번 역설하면서, 관련자들이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애써 오도하지 말고 반성하고 자숙하기를 거듭 촉구한다. 자료: 1. 거제군의 청마 유치환 친일행적 자료
안창호 등 독립운동가 뉴욕항 입국 기록 발견
안창호 등 독립운동가 뉴욕항 입국 기록 발견(연합뉴스, 09.10.22)
위안부할머니들의 새로운 ‘러브 하우스’
위안부할머니들의 새로운 ‘러브 하우스’(연합뉴스, 09.10.22)
[원주]정미의병 100주년 기념 행사 열린다-강원일보(07.10.24)
[원주]정미의병 100주년 기념 행사 열린다 26일 기념 학술발표회·기념비 제막식속보=1907년 원주에서 처음 봉기한 정미의병 100주년을 기리는 행사가 기념비 건립장소 이견 논란으로 지연(본보 9월5일 18면 보도)된 후 한 달여 만에 열린다.연세대 근대한국학연구소는 26일 오전9시30분 원주문화원에서 ‘원주 정미의병의 전개와 역사적 의의’를 주제로 정미의병 100주년 기념 학술발표회를 개최한다. 이날 학술발표회는 1907년 고종의 강제 퇴위와 대한제국 군대 해산을 거부하며 일어난 정미의병을 재조명하면서 같은해 9월15일(음력 8월5일) 오후2시 강원감영터에서 봉기한 원주진위대의 역사적 가치를 살펴보는 자리다.오영교 연세대교수가 사회를 맡으며 이상찬 서울대교수가 ‘한국독립운동사에서 원주의병의 위치’, 왕현종 연세대교수가 ‘원주진위대의 봉기와 정미의병의 전개’, 구완회 세명대교수가 ‘원주의병부대와 13도 창의군의 관련성’을 각각 주제 발표한다. 또 심철기 친일재산조사위원회조사관이 ‘원주의병 국내·외 기록 자료의 활용’을 발표하며 배항섭 성균관대교수가 ‘원주의병기념관의 건립과 활용방안’을 발제한다. 시는 이어 오후2시 원주 종각 옆 민긍호의병장 기념상 옆에서 유족 후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정미의병 100주년 기념비 제막식’을 거행한다.기념비에는 “김덕제·민긍호 의병장이 지휘한 원주의병부대는 영월과 횡성, 평창, 강릉, 양양에 이르기까지 순회하며 용사를 모았으며 9월초에는 이인영 의병장이 원주에서 재봉기해 전국 13도, 각국 영사관과 해외동포에게 창의를 선언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