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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환의 친일행적 추가발굴에 대한 논평
민족문제연구소 최근 경남대학교 박태일 교수에 의해, 일제의 괴뢰국인 만주국의 기관지 <만선일보> 1942년 2월 6일자에 실린 청마 유치환의 산문이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대동아전쟁과 문필가의 각오’라는 제목의 이 글은 비록 그 분량이 짧긴 해도 총동원체제기의 전형적인 선전선동의 양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로써 베일에 싸여있던 유치환의 만주에서의 행적이 추가로 들어날 가능성이 대단히 높아졌다. 관련기사 청마 유치환 ‘친일 산문’ 공개 일파만파(노컷뉴스, 07.10.19)청마 유치환 친일산문 첫 발견(연합뉴스, 07.10.19)유치환의 ‘대동아전쟁과 문필가의 각오’(연합뉴스, 07.10.19)만선일보에 실린 유치환의 친일 산문(연합뉴스, 07.10.19)청마 유치환 친일산문 첫 발견(쿠키뉴스, 07.10.19)유치환 친일 산문 첫 발견(한국일보, 07.10.19) 그간 우리 연구소는, 유치환의 경우 현재 알려진 친일행적만으로도 기념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친일행위에 대한 심도있는 조사가 필요한 인물이라는 견해를 거듭 밝혀왔다. 따라서 해당 지자체와 관계자들에게 여러 차례 기념사업의 중단 또는 유보를 요청하였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합리적인 요구는 일방적으로 묵살되어 왔다. 더욱이 우리가 분노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그들이 기념사업을 강행하는 한편으로, 정당한 문제제기를 하는 시민 활동가들에게 갖은 협박과 모욕을 가하는 등 인격 모독을 넘어서는 몰상식적인 행위를 일삼아 왔다는 점이다. 연구소는 이번 추가 자료 발굴을 계기로, 유치환에 대한 부적절한 기념사업이 즉각 중단되어야 함을 다시 한번 역설하면서, 관련자들이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애써 오도하지 말고 반성하고 자숙하기를 거듭 촉구한다. 자료: 1. 거제군의 청마 유치환 친일행적 자료
안창호 등 독립운동가 뉴욕항 입국 기록 발견
안창호 등 독립운동가 뉴욕항 입국 기록 발견(연합뉴스, 09.10.22)
위안부할머니들의 새로운 ‘러브 하우스’
위안부할머니들의 새로운 ‘러브 하우스’(연합뉴스, 09.10.22)
[원주]정미의병 100주년 기념 행사 열린다-강원일보(07.10.24)
[원주]정미의병 100주년 기념 행사 열린다 26일 기념 학술발표회·기념비 제막식속보=1907년 원주에서 처음 봉기한 정미의병 100주년을 기리는 행사가 기념비 건립장소 이견 논란으로 지연(본보 9월5일 18면 보도)된 후 한 달여 만에 열린다.연세대 근대한국학연구소는 26일 오전9시30분 원주문화원에서 ‘원주 정미의병의 전개와 역사적 의의’를 주제로 정미의병 100주년 기념 학술발표회를 개최한다. 이날 학술발표회는 1907년 고종의 강제 퇴위와 대한제국 군대 해산을 거부하며 일어난 정미의병을 재조명하면서 같은해 9월15일(음력 8월5일) 오후2시 강원감영터에서 봉기한 원주진위대의 역사적 가치를 살펴보는 자리다.오영교 연세대교수가 사회를 맡으며 이상찬 서울대교수가 ‘한국독립운동사에서 원주의병의 위치’, 왕현종 연세대교수가 ‘원주진위대의 봉기와 정미의병의 전개’, 구완회 세명대교수가 ‘원주의병부대와 13도 창의군의 관련성’을 각각 주제 발표한다. 또 심철기 친일재산조사위원회조사관이 ‘원주의병 국내·외 기록 자료의 활용’을 발표하며 배항섭 성균관대교수가 ‘원주의병기념관의 건립과 활용방안’을 발제한다. 시는 이어 오후2시 원주 종각 옆 민긍호의병장 기념상 옆에서 유족 후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정미의병 100주년 기념비 제막식’을 거행한다.기념비에는 “김덕제·민긍호 의병장이 지휘한 원주의병부대는 영월과 횡성, 평창, 강릉, 양양에 이르기까지 순회하며 용사를 모았으며 9월초에는 이인영 의병장이 원주에서 재봉기해 전국 13도, 각국 영사관과 해외동포에게 창의를 선언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종묘의 소유자가 일제 장관?’-연합뉴스(07.10.25)
<국감현장> ‘종묘의 소유자가 일제 장관?’ (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사적 제125호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종묘(宗廟)는 물론 덕수궁의 일부 건물이 아직도 일본강점기 ‘이왕직(李王職) 장관’의 소유로 돼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민주당 손봉숙 의원은 25일 국회에서 열린 문화재청 국정감사에서 국유재산인 종묘의 영영전과 두 채의 전각, 덕수궁의 중화전이 등기부 등본상 이왕직 장관의 소유로 돼있다며 관련 자료를 공개했다.이왕직은 일본 식민지 시기 대한제국 황실을 이왕가(李王家)로 격하시키고 이왕가의 재산과 사무를 관장하기 위해 일본 황실령으로 설치한 관청이다.이왕직 장관으로는 조선총독부 자문기관인 중추원 부의장을 지낸 민병석 자작, 이재극 남작 등 친일파를 비롯해 시노다 지사쿠(篠田治策) 등 일본인도 임명됐다.이왕직은 광복 직후 구황실사무청으로 바뀌었고 1955년 구황실재산사무총국으로 개편됐다. 이어 1961년 문교부 산하의 문화재관리국으로 개편됐다가 1999년 문화재청으로 승격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그러나 손봉숙 의원이 이날 공개한 종묘의 등기부 등본에 따르면 종묘 영영전은 1928년 1월 이왕직 장관 소유로 등기된 이후 네 차례에 걸쳐 직제가 개편되는 동안 한 번도 소유권 변경이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덕수궁 중화전은 1935년 이왕직 장관을 소유자로 등기한 뒤 72년 동안 소유권 변경이 이뤄지지 않았다.손봉숙 의원은 “국유재산인 종묘가 일본강점기 조선왕실의 일을 맡아보던 이왕직 장관의 개인소유라는 것은 치욕스러운 일”이라며 “문화재청의 권리보전조치 현황이 목표대비 51.3%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권리보전조치는 재산의 국가 소유를 명확히 하기 위해 등기부 등의 장부에 등기하는 행위를 뜻한다.이에 대해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문화재청 소유의 국유재산이 방대해 미처 소유권
“日 궁내청 명성황후 국장기록 공개”
“日 궁내청 명성황후 국장기록 공개”(연합뉴스, 09.10.22)
獨출판업계 ‘동해’ 병기 확산
獨출판업계 ‘동해’ 병기 확산(연합뉴스, 09.10.22)
[부산광역시청] 부산시,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관련 학술심포지움 열려-연합뉴스(07.10.25)
[부산광역시청] 부산시,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관련 학술심포지움 열려 내일(10.26,金) 10:00 국제신문사 중강당, 부산경남사학회 주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관련 학술 심포지움 열어 학문적 성과에 대한 비판적 검토와 새로운 전망 제시부산시는 내일(10.26) 오전 10시 국제신문사 중강당에서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 시·도 실무직원, 부산경남사학회 회원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일제강점하 강제동원의 출발지이자 광복 후 귀환지로 역사의 진실을 간직한 부산에서 전국 최초로『일제 강점기 강제동원 관련 학술심포지움』이 열린다고 전했다.심포지움은 홍순권 부산경남사학회장 개회사에 이어 이경훈 부산시 정무부시장 축사, 이이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 상임공동 대표의 기조강연에 이어 발표와 토론이 1, 2, 3부로 나누어 진행될 예정이다.제1부는 부산외국어대학교 최경숙 교수가 사회를 맡아 “강제동원 관련자료 실태와 자료관 운영”이란 주제로 진행하며 부산외국어대학교 김문길 교수가 ‘일제 강점기때의 육군위안소의 창설과 위안부 모집에 관한 사료 연구’를, 부산대학교 김광옥 교수가 ‘강제동원 자료관의 설립과 운영’에 대해 주제 발표한다.제2부에서는 신라대학교 이송희 교수가 “강제동원과 군위안부”라는 주제로 사회를 맡아 진행하며,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 한혜인 조사관이 ‘국가동원체제와 강제징용’을, 김인덕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가 ‘여수지역의 강제연행 사례연구’를, 일제강제동원진상규명위원회 강정숙 조사관이 ‘군위안부 강제동원 실태와 사례’에 대하여 주제 발표한다.마지막 제3부에서는 2부에 이어 신라대학교 이송희 교수의 사회로 약 1시간동안 종합토론이 있을 예정이다.한편, 이경훈 부산시 정무부시장은 축사에서『일제강제동원 사료관 설립과 운영』에 관한 논의가 이루어지는 것은 시의적절하며 사료관 설치장소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면서 사료관 부산 유치를 피력했다.부산시 관계자는 오늘 심포지움에는
[지평선] 팔과 찬드라보스-한국일보(07.08.27)
[지평선] 팔과 찬드라보스 인도의 시성 타고르가 1929년에 쓴 시 <동방의 등불>은 식민지 조선에 커다란 위안과 희망을 던졌다. 당시 타고르의 주된 방일 목적 가운데 하나가 망명 독립운동가 수바시 찬드라보스(1897~1945)와의 만남이었다. 이 시가 탄생한 계기인 동아일보 도쿄 지국장과의 만남도 찬드라보스가 주선했다.찬드라보스는 무장투쟁 색채가 강한 독자적 노선을 걸은 인도 독립운동의 영웅이다. 독일의 대영 전쟁과 일본의 태평양전쟁을 지지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적의 적은 동지’라는 판단과 식민지 해방에 대한 기대가 작용했다.■1946년 4월에 시작돼 2년 반 동안 열린 도쿄 전범재판에서 11명의 재판관 가운데 유일하게 일본에 대해 무죄를 주장했던 라다비노드 팔(1886~1967)도 타고르나 찬드라보스와 같은 콜카타(캘커타) 출신이다. 그는 생전에 여러 차례 일본 우파의 초청을 받았고, 야스쿠니(靖國) 신사의 유슈칸(遊就館) 앞에 공적비도 세워져 있다.그러나 이런 점만으로 그를 침략전쟁 옹호자로 내몰기는 어렵다. 실정법주의자이자 평화주의자인 그의 ‘일본 무죄론’은 소급입법으로 전쟁범죄를 재단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게 핵심이었다.■즉, 도쿄 전범재판이 규범으로 삼은 ‘극동군사재판 헌장’에 규정된 ‘평화에 대한 죄’, ‘인도(人道)에 대한 죄’는 사후입법에 지나지 않아 재판규범으로 삼을 수 없고, 따라서 범죄를 재단할 규범이 없으므로 무죄라는 것이었다.많은 오해와 달리 그는 난징(南京) 대학살에 대해 “관련 증언이나 기록에 담길 수 있는 과장을 참작하더라도 잔학행위가 있었다는 증거는 명백하고 압도적”이라고 보았다. 미국의 원폭 투하를 나치의 홀로코스트에 비교하며 비난했던 것도 절대적 평화사상과 끊어서는 제대로 설명하기 어렵다.■지난 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안중근 의거 100주년…그를 재조명하다
안중근 의거 100주년…그를 재조명하다(매일경제, 09.10.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