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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창] 아베 퇴진과 일본의 우경화-한겨레신문(07.09.16)

2007년 10월 16일 452

[세계의창] 아베 퇴진과 일본의 우경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퇴진을 표명했다. 그 사임 방식은 너무 정도가 심하다. 그는 7월 말 참의원 선거에서 “나와 오자와(민주당 대표), 어느쪽이 총리에 어울리는지를 판단하는 선거”라고 큰소리를 치며 싸웠다. 그리고 역사적 참패를 당하자 “정책은 틀리지 않았다”고 강변하며 사임을 거부했다. 제2차 아베 내각을 발족했지만 농림수산상이 스캔들로 사임하고 또다시 궁지에 몰리자, 테러대책특별조처법의 연장에 “직을 걸고 임하겠다”고 선언했다. 국회 소신표명 연설에서도 ‘개혁 계속’에 불퇴전의 결의를 보여, 드디어 야당과 전면 대결을 하는 게 아닌가 하고 국민이 주시하는 순간 정권을 내던지고 말았다. 내정과 외교 면의 모든 약속은 휴짓조각 버리듯 했다. 언론 여론조사에서는 이런 사임 표명이 ‘무책임하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70% 안팎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연하다고 생각한다.아베라는 정치가가 젊은 나이에 총리감으로 떠오른 것은 2002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방북 뒤부터였다. 일본인 납치 사건과 관련해 대북 강경론을 상징하는 존재가 된 게 계기였다. 언론들이 ‘싸우는 정치가’ 등으로 그를 추켜세우고, 그 자신도 그것을 판매전략으로 삼았다. 그는 △‘전후체제로부터 탈피’를 내세우며 평화 헌법과 교육기본법 개정 추진 △역사 왜곡에 앞장서 온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에 가까운 역사관 견지 △도쿄전범재판 비판 등으로 우파 세력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최고권력자의 지위에 오른 것이다.그런 의미에서 아베 총리의 전격 사임으로 가장 배신을 당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쪽은 일본의 우파 세력일지 모르겠다. 아베 총리의 용감한 슬로건이 실은

나는 이래서 이토를 죽였다

2009년 10월 21일 500

<안중근의거 100년> 나는 이래서 이토를 죽였다(연합뉴스, 09.10.21)

세계에 울린 여섯 발의 총성

2009년 10월 21일 521

<안중근의거 100년> 세계에 울린 여섯 발의 총성(연합뉴스, 09.10.21)

역사속의 오늘-작곡가 현제명 작고-매일신문(07.10.16)

2007년 10월 16일 752

역사속의 오늘-작곡가 현제명 작고  ‘희망의 나라로’ 작곡가 현제명이 1960년 10월16일 향년 58세로 사망했다.그는 1902년 대구에서 태어나 대구 종로초등학교, 계성학교를 거쳐 숭실전문에 입학, 피아노·바이올린을 배웠다. 1923년 졸업 후 전주 신흥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1925년 미국으로 건너가 본격적으로 음악학교에서 공부하고 귀국했다. 그가 음악적 소양을 키운 것은 제일교회를 다니면서 교회음악을 통해서 서양음악의 자질을 키워갔다. 지금도 대구 동산에는 희망로와 현제명나무가 그와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그는 홍난파와 더불어 서양음악을 이 땅에 뿌리내리게 한 제1세대 음악인. 현제명은 지금까지도 우리 음악계의 대표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친일 어용단체인 조선음악가협회, 경성후생실내악단을 결성해 친일활동을 한 것은 오점으로 남아있다.미국에서 5년동안 음악공부를 하고 돌아와 연희전문 영어교수로 부임한 그는 귀국 초기에는 독창회를 갖거나 가곡 등을 취입하는 등 주로 성악 활동에 전념했으나 곧 작곡에 힘을 쏟았다. 광복전에는 조선음악가협회를, 광복후에는 서울대 음대와 고려교향악단을 창설하는 등 음악계의 기틀을 세우는데도 발군의 능력을 보였다. 한국 최초의 창작 오페라 ‘춘향전’을 작곡ㆍ총지휘하는 등 척박했던 우리 음악계에 큰 공적을 남겼다. ▶806년 합천 해인사 창건 ▶1981년 88올림픽고속국도(대구-광주) 기공

우리의 아리랑, 일본에 스며들다-노컷뉴스(07.08.04)

2007년 10월 16일 607

우리의 아리랑, 일본에 스며들다아리랑학교 추억의박물관 특별전, 8/13~10/31 일제강점기 36년 동안 ‘아리랑’은 한민족의 한(恨)과 울분을 달래주는 정신적 버팀목이었다.일제는 ‘아리랑’으로 대변되는 한국문화를 말살하려 했지만 오히려 ‘아리랑’은 일본으로 흘러들어가 일본인들에 의해 불려지며 일본 문화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게 된다.강원도 정선군에 위치한 아리랑학교 추억의 박물관(www.ararian.com)은 일제강점기에서 1990년대까지 일본에 전파된 아리랑의 산 역사를 보여주는 ‘아리랑, 일본에 스며들다’ 특별전을 오는 13일부터 10월 31일까지 개최한다.이번 전시는 일제가 탄압하고 금지곡으로 삼기까지 했던 아리랑이 일본으로 흘러들어가 파급되는 과정을 100여 종이 넘는 희귀 자료를 통해 살펴볼 수 있는 이색 전시회이다.임진왜란 때 일본에 끌려간 조선인 포로들이 구마모또(熊本)현의 이츠키라는 오지에 들어가 살면서 조국을 그리며 부른 노래로 ‘일본의 아리랑’이라고 할 만큼 일본의 대표적인 민요로 평가받는 ‘이츠키의 자장가(五木の子守り唄)’ SP음반과 이츠키 목각 인형이 선보인다.또한, 일본에서 ‘청하 아리랑’으로 유명한 아라이에이치(新井英一)의 음반을 보릿해 192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일본에서 나온 다양한 형태의 아리랑 자료들이 전시된다.특히, 일제강점기에 한국 가수가 오케, 콜롬비아, 다이헤이, 기린레코드 등에서 취입한 유성기 음반과 아리랑을 배운 일본 가수들이 낸 유성기 음반, 컬러와 흑백이 아름다운 아리랑 노래 엽서 세트, 일본에서 활동을 한 장세정, 패티김 등이 취입한 아리랑 음반, 조총련의 지원으로 일본에서 나온 북한 아리랑 음반과 비디오테잎 등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많은 자료도 공개된다.이와 함께, ‘일본 속의 아리랑’을 주제로 한 강좌와 좌담회, 어린이들이 부모와 함께 일제강점기 유행하던 아리랑을 배워보는 시간도 마련된다.

日 장관, 4년 만에 북방 4개섬 시찰

2009년 10월 21일 520

日 장관, 4년 만에 북방 4개섬 시찰(한국일보, 09.10.21)

아소 다로 前자민당 총리, 야스쿠니신사 참배

2009년 10월 21일 542

아소 다로 前자민당 총리, 야스쿠니신사 참배(아시아경제, 09.10.20)

[김효순칼럼] 오키나와에서 본 한반도-한겨레신문(07.10.02)

2007년 10월 16일 487

[김효순칼럼] 오키나와에서 본 한반도    지난달 29일 일본 오키나와에서는 대규모 군중집회가 열렸다. 후텐마 미 해병대 항공기지가 있는 기노완시 해양공원에서 열린 집회의 이름은 ‘교과서 검정의견 철회를 요구하는 현민대회’로, 주최 쪽은 11만명이 참가했다고 말한다. 오키나와 본도의 인근 섬에서 따로 열린 집회에 나온 사람까지 합치면 11만6천명이다. 1995년 10월 미군 병사의 소녀 성폭행 사건의 규탄대회 때 모인 9만을 넘어섰으니 앞으로 상당기간 72년의 오키나와 반환 이래 최대 집회로 기록될 것이다.한마디로 오키나와의 분노가 터진 것이다. 태평양전쟁 말기인 45년 3월 말부터 석 달 동안 지속된 오키나와 전투 때 일어난 주민 집단자결에 관한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이 촉매작용을 했다. 당시 현지 주민을 전장에 집단 동원한 일본군은 이들이 미군에 투항할 것을 우려해 전황이 불리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수류탄을 나눠주는 등 집단자살을 강요했다. 문부성은 지난 봄 2008년도에 사용될 고교용 역사교과서 검정과정에서 집단자결에 일본군의 명령이나 강요가 있었다고 언급한 일곱 가지 교과서에 대해 실태를 오해할 우려가 있다며 수정을 요구했다. 그 결과 모든 교과서에서 군이 집단자결을 강요했다는 부분이 사라졌다. 오키나와 주민들이 항의대표단을 꾸려 도쿄로 보냈으나, 문부성이 대꾸도 하지 않자 규탄대회 개최로 이어진 것이다.규탄대회가 열리기 한 1주일 전쯤 필자는 오키나와에 머물면서 현지의 독특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나하시 현청 앞 공터에는 집회 참가를 독려하는 대형 펼침막이 걸렸고, 기노완 시청사 1층에는 교과서의 왜곡 내용을 비교하며 역사적 진실을 왜곡하지

국회, 조선인 마을 우토로 매입 예산안 심의-쿠키뉴스(07.10.15)

2007년 10월 16일 572

국회, 조선인 마을 우토로 매입 예산안 심의  외교통상부는 15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서 일본 교토 우토로 51번지에 있는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자 마을 우토로의 매입대금으로 예산 16억원을 책정했다고 보고했다. 우토로 관련 예산은 통외통위와 예결특위 심의를 거쳐 이르면 6일 본회의에 회부될 전망이다.우토로대책회의는 “30억원으로 예상되었던 정부지원금이 15억원으로 편성됐다”며 “예산심의 과정에서 예산이 30억원으로 늘어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우토로대책회의는 토지의 약 2분의 1에 해당하는 1만여㎡를 약 40억원에 매입하기로 지난달 말 토지소유자인 서일본식산과 합의한 상태다.시민 14만여명이 참가한 우토로 주민돕기 성금은 지난달 말까지 5억1200여만원이 모금됐다. 대책회의는 부족분 마련을 위해 시민들을 대상으로 모금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아소 전 총리도 야스쿠니 참배…의원 집단 참배

2009년 10월 21일 827

아소 전 총리도 야스쿠니 참배…의원 집단 참배(ytn, 09.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