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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왕실에 ‘의궤’ 5종 더 있다
일 왕실에 ‘의궤’ 5종 더 있다(경향신문, 10.04.13)
민족문제연구소 ‘사월혁명상’
민족문제연구소 ‘사월혁명상’(세계일보, 10.04.09)
서울시 ‘중명전’ 사적 지정 추진-뉴시스(06.11.16)
서울시 ‘중명전’ 사적 지정 추진 서울시는 1904년 경운궁(사적 127호 덕수궁) 대화재 이후 고종 황제가 기거하고 집무하며 주요 사신들을 알현하는 장소가 된 ‘중명전(重明殿)’을 국가문화재(사적) 지정을 신청했다고 16일 밝혔다.시는 이날, 조사과정에서 최초로 발굴된 중명전의 건립 당시 사진도 공개했다. 중명전은 현재 주한 미국대사 관저 서쪽에(중구 정동 1-11번지)에 자리하고 있는 지하 1층, 지상 2층의 벽돌 건물로 현재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53호로 지정돼 있다.중명전은 1901년과 1925년 2차례의 화재로 건축적으로 외형과 내부가 다소 변형되기는 했으나 우리나라 최초창기 근대건축의 풍모를 간직하고 있는 몇 안 되는 건축물 중 하나로서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지역의 근대건축 유입과 변천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는 등 건축사적으로도 큰 의미를 가지는 건물로 평가되고 있다.1905년 11월17일 일본 군인들이 대궐에 대포를 매설하고 총검으로 무장 시위하는 가운데 이토 히로부미의 강압 아래에서 외부대신 박제순이 고종황제의 의사에 반하고, 참정대신(오늘날 총리)이던 한규설의 저항을 무릅쓰며 을사조약을 조인한 곳도 바로 중명전이다.또 을사조약 체결 이후 일본 군인들에 의해 황궁이 포위되고 황실의 동정이 통감부에 낱낱이 보고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고종황제가 자신이 체결에 동의한 적 없는 을사조약은 무효임을 국제사회에 지속적으로 호소하던 중 통감부의 압력을 받은 친일파 신료들에 의해 1907년 7월19일 퇴위하게 되는 곳도 바로 이 중명전이다.한편 중명전은 1896년 고종황제가 러시아공사관으로 거소를 잠시 옮긴 후 본격 조성한 경운궁 안에 1897년경 황실도서관(Library Imperial)으로 건립됐고, 황실의 귀중 도서,
최원식 교수 “일부행적 지목해 전체 친일 규정은 잘못”-‘동아'(06.11.16)
최원식 교수 “일부행적 지목해 전체 친일 규정은 잘못” “일부를 들어 한 인간 또는 그 기관 전체를 친일로 규정하려는 유혹으로부터 놓여나 백지 반 장의 차이도 분간하려는 미시적 자세가 요구된다.”최원식 인하대 교수가 ‘창작과 비평’ 겨울호에 실릴 ‘친일문제에 접근하는 다른 길’이라는 글을 통해 현재 논의되고 있는 친일 청산 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최 교수는 개인별 적발을 통해 청산 대상을 확장하는 식이 아니라 그 참담한 진실의 내면을 읽어내는 방향으로 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최 교수는 먼저 친일청산론을 비판한 유종호 전 연세대 교수의 글을 ‘합리적 변호론’으로 보고 그에 대응하는 ‘합리적 청산론’을 제기하고 싶다고 밝혔다.유종호 교수는 ‘문학과 사회’ 2005년 봄호에서 “살기 위해 허드레 선전 문건 몇 편을 썼던 문인들에게 ‘친일(親日)’의 낙인을 찍는 게 과연 정의인가”라며 친일청산론의 맹목성을 비판한 바 있다.최 교수는 친일청산론자들이 ‘전가의 보검’처럼 휘둘렀던 프랑스의 나치 청산이 초기엔 초법적으로 진행되다 후기에는 반공을 내세운 대사면으로 끝났다는 점에서 결코 한국의 모범이 될 수 없음을 명확히 밝혔다. 이어 그는 민족문학작가회의가 2002년 8월 발표한 친일문인 42인의 명단 중 채만식이 포함된 것을 대표적 오류로 꼽았다. “친일의 행위나 글의 수량보다는 신념 여부 또는 그 질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 최 교수의 논지다.“더구나 그는 광복 직후 유일하게 자신의 친일을 고백함으로써 친일문제를 공론에 부쳤다. ‘역로’(1946)와 ‘민족의 죄인’(1948)에서 거듭 제기했으나, 좌익도 우익도 모두 묵살했다.”그는 “일제에 타협하지 않은 오세창의 천도교
민족문제연구소 ‘사월혁명상’ 수상
민족문제연구소 ‘사월혁명상’ 수상(경향신문, 10.04.09)
[뉴스 파일] ‘제21회 사월혁명상’에 민족문제연구소
[뉴스 파일] ‘제21회 사월혁명상’에 민족문제연구소(국민일보, 10.04.09)
[기고] 채만식문학상 부활돼야-경향신문(06.11.15)
[기고] 채만식문학상 부활돼야 최근 민예총 사무총장과 공동대표,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장을 역임한 신경림 시인은 친일과 월북이 문학성 평가의 잣대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요지의 말을 했다. “친일을 했다고 미당 서정주의 작품을 폄훼한다면 과거 정지용을 월북 시인이라고 매도했던 것과 다른 게 뭐냐”고 말한 것이다.그 말은 지난해 중단되었던 채만식 문학상 부활과 관련, 다시 논란이 일고 있는 요즘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논란의 핵심은 군산시와 채만식 문학상 운영위원회가 채만식 문학상을 재개하려는 방침에 대해 ‘친일청산을 위한 전북시민연대’가 “친일작가 채만식을 기리는 어떤 문학상도 시행되어선 안된다”고 반대한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사실 교과서를 통해 채만식 소설을 학생들에게 직접 가르치는 교사 입장에서 언론에 보도되는 논란은 매우 곤혹스럽다. 현재 고교 국어(상)와 18종의 문학교과서에 실려 있는 채만식의 소설은 장편 ‘태평천하’와 단편 ‘논 이야기’ ‘치숙’ 등이다.그 정도 수록이라면 전국 모든 고교의 교사들은 채만식 가르치기에서 난처함을 느낄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있는 그대로의 역사다. 요컨대 교과서에 실릴 정도라면 현대문학에서 업적과 친일행각 모두를 알려주고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따라서 시민단체의 문학상 및 기념사업 중단 촉구는 온당해 보이지 않는다. 원조와 아류, 경중의 차이야 있겠지만 일제침략기에 죽지 않고 살아 남았다는 자체가 친일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따지면 살아남은 죄, 침묵한 죄 역시 아무렇지 않게 넘길 문제가 아니다.어차피 우리는 친일파 청산에 실패한 부끄러운 역사를 이어왔다. 친일파를 끌어안은 이승만을 초대 대통령으로 받아들였다. 일본군
친일 연구의 선구자 ‘임종국 평전’ 출간-연합뉴스(06.11.13)
친일 연구의 선구자 ‘임종국 평전’ 출간 (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나는 평생 중뿔난 짓만 하면서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남들이 흔히 하는 독립운동사를 외면한 채 침략사와 친일사에만 매달리고 있다…지금의 나는 5평 서재 속에서 글을 쓰는 자유밖에 가진 것이 없다”한국 현대사에서 의도적 은폐와 무관심에 묻힌 금단의 구역이었던 친일 행적 발굴을 파헤치는 데 평생을 보낸 고(故) 임종국(1929-1989)의 말이다.그가 개척한 일은 음지에서만 음미되다가 노무현 정권 출범과 더불어 추진된 ‘과거사청산’의 밑거름이 되어 부활하고 있다.그의 사망 17주기인 11월12일에 맞춰 임종국의 업적과 일생을 되짚는 평론집 ‘임종국 평론(시대의창)’이 출간됐다. 저자는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사무처장 정운현 씨. 그 역시 임종국의 뜻을 계승한 제자 중 한 명이다.정씨는 서문을 통해 “1990년 100매 분량으로 그의 약전을 1차로 썼고, 8년 뒤에 다시 그를 200매 분량으로 소개했다. 다시 8년 뒤에 제대로 된 평전을 내놓게 됐다. 해묵은 숙제를 겨우 마친 기분이다”라며 그의 평전을 내놓은 감회를 밝혔다.저자는 임종국의 직계 가족 모두를 직접 만나고 대학 선후배, 문학인 등 20여 명의 주변인물을 밀착 취재했다.그러고도 “나는 겨우 시간을 내고 다리품만 팔았을 뿐이다. 그가 쓴 책도 많고 글도 많아 참고할 자료도 넉넉했다. 모든 걸 발품을 팔아 손수 베껴야 했던 그와는 딴판인 환경이었다”라고 고백한다.저자는 제1부 ‘잘못 끼워진 첫단추’, 제2부 ‘문학도의 꿈’, 제3부 ‘갈등 속의 집념’, 제4부 ‘끝내 이루지 못한 꿈’의 4장으로 나눠 임종국의 궤적을 탐색했다.제1부에서는
[양국 시민활동가, 100년을 말한다](1) 개인청구권은 소멸되었는가
[양국 시민활동가, 100년을 말한다](1) 개인청구권은 소멸되었는가(경향신문, 10.04.11)
[양국 시민활동가, 100년을 말하다]치유 안된 기억, 미래를 위한 기록
[양국 시민활동가, 100년을 말하다]치유 안된 기억, 미래를 위한 기록(경향신문, 10.04.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