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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친일재산 국가귀속’ 취소訴 패소 판결

2010년 4월 15일 360

‘친일재산 국가귀속’ 취소訴 패소 판결(매일신문, 10.04.15)

“사월혁명의 정신으로 나아가겠습니다”

2010년 4월 14일 459

‘사월혁명상’ 수상소감 사월혁명의 정신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사월혁명 50년이 되는 뜻 깊은 해에 사월혁명을 기리는 영예로운 상을 받게 되어 연구소로서는 큰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연구소가 수상자로 결정된 것은, 20년간 변함없이 학술연구와 실천운동을 병행하면서 역사정의 실현에 매진해왔으며, 숱한 난관을 뚫고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하였다는 점을 높이 평가받았기 때문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친일인명사전 발간 목적 중 하나는 일제에 협력한 친일세력이 한국사회의 주류 기득권 세력으로 재편되어가는 구조를 개별 인물들의 구체적 행적으로 입증하는 일이었습니다.  친일파는 비단 나라와 민족을 배신한 매국노요 반역자였을 뿐 아니라 가혹한 식민통치와 부도덕한 침략전쟁에 복무하면서 파시즘 천황제를 유지·팽창시킨 반인도적 전쟁범죄자이기도 했습니다. 이들이 다시 해방된 조국의 주인이 되어 독립운동세력을 탄압하고 독재와 인권유린을 일삼을 때, 이 땅의 민중들은 사월혁명으로 변혁운동의 새 이정표를 세웠습니다. 사월혁명기 반민주인사로 지목된 절대 다수의 인사가 친일세력이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진실일 것입니다.  사월혁명의 목표가 아직 달성되지 않았듯이 우리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친일문제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미결 과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친일인명사전이 사월혁명의 정신을 실천적으로 계승하는 길에 조그만 디딤돌이 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봅니다.  수상의 기쁨을 오랜 기간 노고를 아끼지 않은 편찬위 관계자들 그리고 연구소의 회원 동지들과 함께하면서, 앞으로도 연구소가 민족사정립과 올바른 가치관의 확산에 혼신을 다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수상을 계기로 연구소의 역할과 책임이 더욱 막중해짐을 실감하면서 자랑스러운 ‘사월혁명상’ 수상자로 선정해주신 사월혁명회와 심사위원

[잠깐읽기] 여인열전 / 임종국-부산일보(06.11.20)

2006년 11월 21일 366

[잠깐읽기] 여인열전 / 임종국   한발짝 앞서간 조선의 여성들  친일문제 연구에 평생 몸을 바친 고 임종국 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해 낸 ‘임종국 선집’ 8권 중 7권이다. 친일문제와 조선민중의 생활사에 천착해온 선생이 당대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했던 여성들을 한 권의 책에 다시 모았다.열전(列傳)답게 여러 여인들의 삶을 속도감 있게 소개한다. 그들의 삶에서도 특별히 고갱이만 담았다. 김마리아,윤심덕,나혜석 등 일제강점기 때 시대보다 한발짝 앞서 간 신여성들이 먼저 등장한다. 조선시대 기생들,세계여성 이야기가 뒤를 따른다. 남편의 소유물이었거나,이름도 없던 옛 여성들의 슬픈 역사는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총 4부.구한말 기생들에 대한 평가가 솔깃하다. 지은이는 일본에 나라를 뺏긴 대감들로 하여금 재산마저 탕진케 해 자본주의 사회의 무능력자로 만들었지만 자유연애 기반을 다지고,전통문화를 계승했다고 치켜세운다. 남성 위주의 역사서술에 대한 반성이지만 동서를 오가는 이야기가 다소 산만하다. 1989년 타계한 임 선생의 뜻을 이은 민족문제연구소가 책을 냈다. 아세아문화사/1만4천원.

토지조사사업 이후 김성수 집안, ‘만석꾼’ 변신-오마이뉴스(06.11.20)

2006년 11월 20일 657

토지조사사업 이후 김성수 집안, ‘만석꾼’ 변신   김성수는 민족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김성수가 자란 환경은 과연 민족주의자를 낳을 만한 환경이었을까? 그가 어렸을 때에 고부에서는 소작농민들이 동학농민전쟁(1894년)을 일으켰다.그리고 소작농민의 군대는 지주계급과 일본의 연합군대에 의해 분쇄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소작농민으로 대표되는 조선 민중에 대한 사랑이 생길 수 있었을까? 게다가 그는 일본식 교육을 받은 사람이다.이 같은 집안 내력을 볼 때에, 그에게는 친일 행위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기 자신과 집안의 이익이 일본제국주의의 이익과 일치하기 때문이다.‘김성수 선생의 친일행위는 부득이한 것이었고, 실제로 그분은 조선 민중을 사랑하셨다’고 옹호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가 조선 민중을 진정으로 사랑하였다면 그의 친일행위 역시 재평가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그의 친일행위에도 무언가 부득이한 사정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그가 학교를 세웠다는 것만으로는 겨레 사랑을 증명할 수 없을 것이다. 김성수 집안의 민중 사랑을 검증하는 방법 중 하나는 그 집안이 소작인들을 어떻게 대했는지를 조사하는 것이다. 농업사회에서 사람의 인격을 파악하려면, 농업과 얽힌 인간관계를 조사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 점이 이번 제3편 기사에서 잘 드러날 것이다. <기자 주> 식민시기에 차곡차곡 재산 불어난 김성수 집안1910년대는 일제의 토지조사사업이 진행된 시기다.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은 토지조사사업이 조선의 근대화를 위한 것이었다고 변호한다. 하지만, 조선 땅이 근대화되는 것과 조선 민중이 근대화되는 것은 분명히 구별돼야 한다. 일제가 벌인 근대화사업이 조선 땅을 위한 것이었을지는 몰라도, 그것은 조선인이

‘씨알 사상 학제적 연구’ 함석헌 학회 창립

2010년 4월 14일 382

‘씨알 사상 학제적 연구’ 함석헌 학회 창립(연합뉴스, 10.04.13)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4월혁명 50주년 기념토론회

2010년 4월 14일 332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4월혁명 50주년 기념토론회(뉴시스, 10.04.13)

김성수 집안, 일본과 동반 상승하다-오마이뉴스(06.11.19)

2006년 11월 20일 363

김성수 집안, 일본과 동반 상승하다   “대의에 죽을 때에 황민의 책무는 크다”-1943년 11월 6일자 <매일신보> 논설문의 제목. 학병제를 고무하기 위하여 김성수가 쓴 논설문.“나는 교육자의 양심에서 말한다. 제군아, 의무에 죽으라.”-학병제를 고무하는 위 논설문 중에서.친일청산을 방해하는 세력들은 하나의 심리적 특징을 갖고 있다. 그것은 마치 박정희를 존경하듯이 일본을 그렇게 존경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무능한 조선 정부보다는 일본 총독부가 조선 민중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했으며, 일본이 아니었다면 오늘날의 한국도 없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그들이 사회적 비난을 무릅쓰면서까지 자신들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는 것은 바로 그러한 내면적 신념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 무엇이 그들에게 그토록 강한 신념을 심어 주었을까? 그들에게 친일 신념이 생긴 시초는 1876년 개항 때부터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왜냐하면, 그때 이후로 조선에서는 일본 덕분에 먹고 사는 사람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대일(對日) 미곡 수출로 재산을 축적한 일부 지주 계층이 바로 그들이다. ‘조선이 일본의 덕을 보았다’는 논리가 일제시대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것은, 이처럼 개항 이후로 일본의 덕을 본 지주세력이 조선 사회를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러므로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이사, 조선임전보국단 감사, 국민총력조선연맹 기획위원 등을 지낸 김성수라는 대표적 친일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지 일제시대만 살펴볼 것이 아니라 그 이전 시기인 개항 시기 때부터 추적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것이 친일파들의 심리적 경향을 이해하는 한 가지 방법이 될 것이다. <기자 주>. 전라도

-연합뉴스(06.11.18)

2006년 11월 20일 261

<“문학인 절대 다수가 친일행각”>     한일 진보학자들 ‘비교문학 세미나’ 종전 이후 문학적 성과와 비전 성찰(서울=연합뉴스) 이준삼 기자 = “문학인 절대다수가 친일 행각자였다.”(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진보 지식인조차 일본 제국주의 성찰에 취약했다.”(윤건차 일본 가나자와대 교수) 한일 양국의 진보학자들이 모여 종전(終戰) 이후 양국의 문학적 성과를 되짚어보는 학술세미나가 18일 오후 한양대 국제학술정보관 6층 국제회의실에서 진행됐다.양국의 종전 문학이 2차세계대전과 일제의 한반도 강점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반영했는가를 되짚어보는 자리로 한국학자들은 친일과 이념 문제를 꼬집었고 일본학자들은 전쟁에 대한 지식인 사회의 반성문제를 성찰했다.세미나에는 한국문학평론가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이도흠(한양대), 이경수(고려대), 윤건차(일본 가나자와대), 하라 히토시(아시아대) 교수, 고바야시 코우키치 ‘천년기문학’ 편집장 등 한일 학자 6명이 참석했다.먼저 임 소장은 ‘한국문학과 동아시아 과거사 청산’이라는 논문을 통해 “해방 이후 좌우익 문학단체가 모두 ‘민족문학’을 거론하면서도 친일파 청산문제를 교묘하게 비켜갈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문학인 절대다수가 친일행각을 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그는 “그런 점이 바로 남한에서는 극우 친일문학이 주류를 형성하는 계기가 됐고, 북한 역시 철저하지 못한 과거사 청산으로 문학의 정치화 현상을 가중시켰다”면서 “동아시아가 다시 전운에 휩싸일 것인가, 평화를 구축할 것인가 중요한 시점인 지금 다시 8.15의 개념을 설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이에 대해 윤건차 교수는 일본의 유명한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인 토오마 세이타를 집중적으로 거론하며 전후 일본 지식인들의 허약한 역사주의 의식에 대해 비판적 의견을 개진했다.그는 “토요마와같은 진보적 지식인조차 일본 제국주의와 전쟁의 책임에 대해 조국,

국토부, 부동산 공적장부 오류 일제 정비

2010년 4월 13일 305

국토부, 부동산 공적장부 오류 일제 정비(뉴시스, 10.04.12)

일제 신사에 세운 현충탑… 양촌 마산리로 이전 건립

2010년 4월 13일 409

일제 신사에 세운 현충탑… 양촌 마산리로 이전 건립(경인일보, 10.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