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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중명전’ 사적 지정 추진-뉴시스(06.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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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중명전’ 사적 지정 추진





서울시는 1904년 경운궁(사적 127호 덕수궁) 대화재 이후 고종 황제가 기거하고 집무하며 주요 사신들을 알현하는 장소가 된 ‘중명전(重明殿)’을 국가문화재(사적) 지정을 신청했다고 16일 밝혔다.

시는 이날, 조사과정에서 최초로 발굴된 중명전의 건립 당시 사진도 공개했다. 중명전은 현재 주한 미국대사 관저 서쪽에(중구 정동 1-11번지)에 자리하고 있는 지하 1층, 지상 2층의 벽돌 건물로 현재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53호로 지정돼 있다.

중명전은 1901년과 1925년 2차례의 화재로 건축적으로 외형과 내부가 다소 변형되기는 했으나 우리나라 최초창기 근대건축의 풍모를 간직하고 있는 몇 안 되는 건축물 중 하나로서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지역의 근대건축 유입과 변천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는 등 건축사적으로도 큰 의미를 가지는 건물로 평가되고 있다.

1905년 11월17일 일본 군인들이 대궐에 대포를 매설하고 총검으로 무장 시위하는 가운데 이토 히로부미의 강압 아래에서 외부대신 박제순이 고종황제의 의사에 반하고, 참정대신(오늘날 총리)이던 한규설의 저항을 무릅쓰며 을사조약을 조인한 곳도 바로 중명전이다.

또 을사조약 체결 이후 일본 군인들에 의해 황궁이 포위되고 황실의 동정이 통감부에 낱낱이 보고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고종황제가 자신이 체결에 동의한 적 없는 을사조약은 무효임을 국제사회에 지속적으로 호소하던 중 통감부의 압력을 받은 친일파 신료들에 의해 1907년 7월19일 퇴위하게 되는 곳도 바로 이 중명전이다.

한편 중명전은 1896년 고종황제가 러시아공사관으로 거소를 잠시 옮긴 후 본격 조성한 경운궁 안에 1897년경 황실도서관(Library Imperial)으로 건립됐고, 황실의 귀중 도서, 인장, 어진(御眞 , 왕들의 초상화) 등이 보관되던 장소였음이 이번 서울시 조사로 확인됐다.

건립 당시 명칭은 수옥헌(漱玉軒)이었는데 ‘책고(冊庫)’로도 불려졌다. 그러나 1904년 4월14일 경운궁 함녕전에서 발생한 불로 경운궁의 주요건물들이 대부분 불에 타버리자 고종 황제가 수옥헌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종래의 황실도서관에서 황제의 집무실 겸 외국 사절들의 알현실로 그 기능이 바뀌게 됐다.

1906년 후반기에는 이러한 궁궐 내 위상에 걸맞게 명칭도 ‘수옥헌’에서 ‘중명전’으로 변경됐다. 이밖에 중명전은 1907년의 황태자비(훗날 순종의 2번째 황후인 순정효황후) 간택과 영친왕의 황태자 결정 등 당시 대한제국의 중요한 국가적 대사들이 모두 이루어진 곳이다.

시 관계자는 “검토과정에서는 중명전의 1897년 건립 당시의 원형과 1925년 화재 발생 직후의 모습이 촬영된 사진이 새롭게 발굴되었는데 서울시는 이 사진의 발굴이 향후 중명전의 원형 복원 및 관리에 크게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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