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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병합 무효” 양국 지식인 공동성명
“한일병합 무효” 양국 지식인 공동성명(한겨레신문, 10.05.10)
한·일 지식인 214명 “한일병합 원천무효”
한·일 지식인 214명 “한일병합 원천무효”(국민일보, 10.05.10)
野의원 등 日우익 돈으로 방일-경향신문(06.09.07)
野의원 등 日우익 돈으로 방일 한나라당 황우여·송영선 의원이 지난 5월 일본 내 대표적인 극우단체 ‘구조회’(납북 일본인 구출을 위한 전국협의회)로부터 항공료·숙박비 등 체재비용 일체를 지원받아 일본을 방문한 것으로 6일 뒤늦게 밝혀졌다.황의원 등은 당시 납북 고교생 김영남씨와 결혼한 일본인 메구미의 납치 문제가 이슈화되면서 구조회 니시오카 쓰토무 부회장의 초청을 받아 방일했다.니시오카 부회장은 ‘새로운 역사교과서 만들기 모임’(새역모)의 초창기 멤버로 활동하면서 “종군위안부와 조선인 강제연행 운운은 한국측의 날조”라고 주장해왔다.황의원 등의 방일에는 조갑제 월간조선 편집위원, 한나라당 김철기 경기도당부위원장 등이 동행했다. 이들도 체류경비 일체를 지원받은 것으로 전해졌다.황의원 등은 방일 후 5월28일 일본의 납북관련 단체들이 주최한 ‘납치자 송환을 위한 국민대집회’에 참석했으며, 일부 인사는 다음날 아베 신조 관방장관을 예방해 납북자 문제와 관련해 아베 장관 지지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황의원은 당일 일정으로, 송의원은 2박3일 일정으로 일본에 체류한 뒤 귀국했다.황의원은 당시 한나라당 납북자 인권특위 위원장을 지냈다.황의원은 이날 밤 기자와의 통화에서 “비용 부분은 보좌관이 처리해서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일본측에서도 (경비)일부를 부담했을 수도 있다”며 “나는 순수한 시민단체의 초청인 줄 알고 방문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전화를 걸어와 “구조회는 처음 들어보는 단체이며 처음에는 항공료를 내가 부담했으나 귀국한 뒤 항공료를 정산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송의원은 “초청자측에서 경비를 부담하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 나를 친일로 몰려는 것 아니냐”며 “그 문제에 대해서는 더이상 얘기하지 않겠다”면서 전화를 끊었다.▷ ‘구조회’·‘새역모’1997년 3월 결성된
독립유공자 변성현 선생-제주일보(06.09.07)
<나의의견>독립유공자 변성현 선생 우리는 한 때 참담한 일제 통치를 경험했다.그 암울한 세상을 철권통치 아래서 우리 민족은 착취당하면서 노예 같은 생활로 연명해야 했다. 물론 개중에는 자기만 잘살면 그만이라는 이기주의자들이나 친일로서 영화를 누리며 살아가는 반민족주의자들도 없지 않아 있었다.그러나 많은 동포가 망국의 설움을 안은 채 중국이나 시베리아 등지로 삶을 찾아 유랑하면서 반일 투쟁을 전개했다. 한편 국내에 남아 있는 뜻있는 인사들도 탄압에 굴하지 않고 분연히 일어나 독립을 외쳤다. 이는 을사조약 때부터 의병·독립군·광복군의 대일 항쟁과 3·1운동 등 국내외의 독립운동으로 번져 나갔다. 그래서 대한민국이 다시 건국되기까지 수많은 선열과 우국지사가 나타났으니 우리 모두 엄숙하게 그 넋을 추모하고 있다. 그러는 중에 나는 국가보훈처가 광복 61년을 계기로 지난 8월 15일 서귀포시 법환동 출신인 변성현 선생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이에 서귀포시민의 한 사람으로써 감격스러움이 남달라 그 분의 생애를 재조명해 보려고 한다.변성현 선생은 1916년 12월 20일 서귀포시 법환마을에서 아버지 변용화씨와 어머니 곡산 강씨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릴 때부터 총명했으며 19세 때는 나름대로 사회에 봉사하는 길을 찾게 됐다.당시는 왜정의 압박과 유린, 탄압 속에서 농촌은 찢어지도록 가난해 기아와 무지 속에서 처참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이런 현실을 직시한 변 선생은 1934년 6월부터 지역에서 독서회와 골갱이(호미)회를 조직하고 야학을 시작했으며 주경야독식으로 열심히 수눌음으로 농사일을 하니 인원이 점점 늘고 협동심도 생겨났다. 이런 단체정신으로 독서회와 골갱이회는
한일 지식인 “병합조약 무효”
한일 지식인 “병합조약 무효”(MBC, 10.05.10)
[사설] 한·일 지식인의 ‘한일병합조약 무효’ 선언
[사설] 한·일 지식인의 ‘한일병합조약 무효’ 선언(세계일보, 10.05.10)
황토현 전봉준 장군동상, 장난하냐?-오마이뉴스(06.09.06)
황토현 전봉준 장군동상, 장난하냐? 1987년, 황토현 전봉준 장군 동상… 머리는 ‘죄수’, 몸체는 농민군 ‘지도자’ 불을 뿜는 듯한 박준성 선생님의 강연은 70년대 박정희 정권을 넘어 80년대 전두환 정권으로 접어들었다. ▲ 강연 모습. ⓒ2006 최장문 1983년에 전두환 대통령의 유시로 ‘전봉준장군 유적정화사업’이 시작 되었다. 그렇게 건립된 기념관의 중심 시설물은 전봉준 장군 동상이다. 5.6미터 되는 높은 화강암 받침대 위에 청동으로 주조하여 만든 2.7미터 높이의 동상은 오른손을 불끈 쳐든 모습으로 우람하게 우뚝 서 있다. ▲ 황토현 전적기념관 전봉준 장군 동상. ⓒ2006 최장문 그런데 전봉준 장군 동상 머리는 맨 상투다. 어떤 상황의 사진인지는 논란이 있으나 ‘압송당하는 전봉준’으로 알려진 사진을 모델로 하여 두상을 만들었기에 머리는 맨 상투의 ‘죄수’ 모습인 데 반하여, 몸체는 백산에서 격문을 낭독하는 농민군 ‘지도자’의 모습이다. ▲ 압송당하는 전봉준 장군(좌)과 백산 봉기 기록화(우) ⓒ2006 최장문 동상 뒤쪽에서 좌우로 날개처럼 동상을 감싸고 있는 농민군 부조는 높이가 동상 받침대와 비슷하다. 장군의 동상이 농민군 부조를 밟고 있는 꼴로 보인다. 전체로 보아 자신이 스스로 농민이었으며, 농촌 지식인으로 농민들과 아픔을 같이 했고, 결국 사형을 당한 녹두장군의 모습과 거리가 멀다. 농민군 모습 어디에도 죽창과 농기구를 무기로 들고 목숨 걸고 싸움터로 나가는 비장한 표정은 보이지 않는다. 마치 도시락 싸들고 소풍가는 듯하다. ▲ 전봉준 장군 동상 밑에 있는 농민군
또다시 불거진 ‘친일가수’ 남인수 논란-미디어오늘(06.09.05)
또다시 불거진 ‘친일가수’ 남인수 논란 경남민언련 가요제 폐지 촉구…진주MBC “그대로 치를 것” 경남민주언론시민연합(공동대표 강창덕·김애리)이 오는 10월9일 열리는 남인수 가요제와 관련해 녹화 중계를 맡은 진주MBC에 이의 중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경남민언련은 지난 4일 성명에서 “공영방송인 진주MBC가 친일인사를 단죄는 못할망정 그의 업적을 기리는 가요제에 들러리를 선다는 것은 공영방송으로서의 책임을 망각한 행동”이라며 “진주MBC는 ‘남인수 가요제’ 주관사와 녹화방송 계획을 반드시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남민언련은 또, “같은 공영방송인 KBS 창원총국은 박시춘의 친일행위가 드러나자 가요제를 중단했는데, 진주MBC는 왜 이 같은 결정을 못하고 있느냐”고 따져 물었다. 가수 남인수는 친일인사로 알려져 있으며 지난해 8월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 대상자’ 1차 명단에도 올라있다. 이에 대해 진주MBC 제작국 관계자는 “친일인사 명단 등재가 아직 확정되지 않았고, 남인수 씨가 친일 가요를 부른 건 사실이지만 강제로 했다는 정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며 “이번에는 일단 행사를 치르고 이후 여론의 추이를 봐서 존폐 논의를 결론지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日측 선언참가 지식인 “젊은이 참여 절실”
日측 선언참가 지식인 “젊은이 참여 절실”(연합뉴스, 10.05.10)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인터뷰>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연합뉴스, 10.05.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