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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화가 김은호 작 논개영정 떼어내다
오마이뉴스 윤성효 기자 [기사대체 : 10일 오후 2시] ▲ 시민단체 대표가 10일 오전 의기사 안에 봉안되어 있는 미인도 ‘논개’를 망치로 두드려 유리를 깬 뒤 떼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2005 오마이뉴스 윤성효 ▲ 시민단체 대표들이 떼어낸 미인도 ‘논개’를 의기사에서 밖으로 가져나오고 있다. ⓒ2005 오마이뉴스 윤성효 친일화가 김은호가 그린 미인도 논개(일명 ‘논개영정’)가 진주성 의기사에서 떼내졌다.진주지역 50여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독도수호 진주시민행동’은 11일 오전 호국성지인 진주성 의기사 안에 봉안되어 있던 ‘논개영정’ 폐출작업을 벌였다. 관련기사 뜯어낸 친일화가 ‘논개영정’ 어떻게?(오마이뉴스, 05.05.11) 뜯어낸 ‘논개영정’은 교육용으로 활용돼야"(오마이뉴스, 05.05.12) 논개영정, 정부가 뜯어내야 옳았다(오마이뉴스, 05.05.17) 시민단체 대표 50여명은 이날 오전 11시 촉석루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일제잔재 청산 차원에서 ‘논개영정’을 떼어낸다고 밝혔다. 이들은 호국성지인 진주성 안에, 그것도 충절의 상징인 논개를 기리는 곳에 친일화가가 그린 그림이 모셔져 있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진주시민행동은 김은호가 그린 ‘논개영정’은 진주성 안에 둘 수 없다면서, 다른 장소에 보관할 것을 요구했다. ▲ 시민단체 대표가 망치로 유리를 깨고 있다. ⓒ2005 오마이뉴스 윤성효 진주시민행동 대표들은 기자회견 뒤 곧바로 의기사 안으로 들어가 ‘논개영정’을 떼어냈다. 그림은 의기사 안에 별도의 상자를 만들어 유리 속에 보관되어 있었다. 시민단체 대표들은 망치로 유리를 깬 뒤 그림을 끄집어냈다.지역 여성단체 대표들은 떼어낸 그림을 들고 의기사 옆에 있는 진주성임진대첩계사순의단
달성공원, 일제시대 신사 참배 장소
오마이뉴스 허미옥 기자 광복 60주년이다. 오는 8월 15일까지 대구지역 곳곳에 배여 있는 일제잔재와 널리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사실을 취재해 5~6회 정도 싣고자 한다. <필자 주><1>달성공원 ▲ 일제하 신사, 신궁현황 ⓒ2005 문화관광부 “1906년, 11월. 달성공원. 나이 어린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1학년들도 이곳에 설치된 신사 앞에서 허리를 숙여야 했다. 매월 2회 꼴로 20~30리길을 걸어서 참배를 해야 했고 발가락이 부르트면 상급생 등에 업혀서라도 이곳을 방문해야 했다.”4월말 문화관광부 광복60주년기념 문화사업추진위원회에서 제공한 일제하 신궁, 신사는 총 1141곳이다. 이중 대구경북권을 보면 신사 6곳(대구, 김천, 포항, 안동, 경주, 울릉도)과 경주 등지에 설치된 작은 신사 46곳이었다. 그 중 대구신사는 1906년 현재 달성공원 자리에 건립되었다.대구시 중구청에서 발행한 <달구벌의 맥. 1990>은 “1905년, 일본 수비대장 야마다 중위 등은 달성공원에 표목을 세워 황조요배전(皇祖遙拜殿) 건립터를 정한 후 1906년 11월 봉헌식을 했다. 이때 대구에 거주하던 일본인 1,500명이 신사건립을 위해 2천 5백여원을 기부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달구벌의 맥>에서는 “대구시민들은 일제 총칼에 못 이겨 억지 참배를 했지만, 1945년 해방과 동시에 도리이(島居 ; 신사앞에 세워둔 돌문)를 부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해방 된 이후, 대구신사는 단군을 모시는 한 집단이 운용하게 된다. 일본 신을 모신 그 곳에 단군 신을 모시는 모순적인 현상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대구신사는 우여곡절 끝에 1966년에 완전 철거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일본이
日 A급전범 “태평양전쟁 승산 없어 운에 기대”
日 A급전범 “태평양전쟁 승산 없어 운에 기대”(연합뉴스, 10.08.19)
北, 日국회의원들 야스쿠니 참배 비난
北, 日국회의원들 야스쿠니 참배 비난(헤럴드경제, 10.08.24)
윤봉길 의사님 행복하십니까?
오마이뉴스 이정희 기자 ▲ 박정희 전대통령의 친필현판이 다시걸린 충의사 본전을 무인 감지기가 지키고 있다. ⓒ2005 이정희 지난 3월 1일 민족정기 회복을 주장하며 양수철씨에 의해 철거되었던 충의사(윤봉길 의사 기념 사당, 충남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 박정희 전대통령 친필 현판이 예산군수에 의해 원본글씨를 바탕으로 복원되어 지난달 26일 새벽 슬그머니 다시 걸렸다. 현판만 다시 걸린 것이 아니라 그 현판을 지키기 위한 갖가지 최첨단 철통보안 시스템도 함께 설치되었다. “현판을 다시 떼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섰는데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 관리소 담당자의 말이다. 4일 그 현장을 다녀왔다. 열명의 경계병(?)이 충의사 현판을 24시간 지키다 ▲ (위)철거 당시의 빈자리, (아래)다시 설치된 현판과 감지기, 현판을 덮은 투명 아크릴 판위로 본전 정면의 출입문인 충의문이 반사되어 보인다 ⓒ2005 이정희 현판이 철거되어 휑하던 자리에는 예전에 걸렸던 모양과 똑같은 현판이 다시 걸렸다. 대신 물감색이 선명한 깨끗한 현판으로 바뀌었고 현판 전체는 투명 아크릴 판으로 덧씌워져 있었다. “누군가에 의한 페인트 등 오물을 투척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 투명판 위로 반사되는 사람들의 얼굴이 묘한 기분을 자아내게 했다. 현판 주위에는 떼어지면 즉시 감지가 가능한 센서가 부착되어 있었다. 보안 경비 업체 직원의 말에 따르면 “창문이 열리면 경보가 울리는 그런 종류와 같은 감지센서”라고 한다. 또한 현판
5월16일 만화박정희 출간!! , 출판기념 기자회견- 책에 관한 문의는 각 인터넷 서점으로
민족문제연구소 보도자료 내려받기 ‘만화 박정희’ 판매처 인터파크 / YES 24 / 교보문고 / 알라딘 (왼쪽에 나열된 인터넷 서점 이름을 클릭하시면 해당 인터넷서점으로 바로 이동합니다. 여기에 나열되지 않은 나머지 모든 인터넷 서점에서도 구입가능하며 비회원도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연구소에서는 판매하지 않으며 책에 관한 문의는 각 인터넷서점으로 해주십시오.) 기획 민족문제연구소뉴스툰 | 글 백무현 | 그림 박순찬 | 대국판 | 각 권 9,900원 관련기사 "박정희의 삶만큼 만화적인 건 없다"(오마이뉴스, 05.05.15) 1년여의 작업 끝에 탄생한 『만화 박정희』는 민족문제연구소와 뉴스툰이 공동 기획, 서울신문사 백무현 화백이 글을 쓰고, 경향신문사 박순찬 화백이 그림을 맡아 출간한 본격 정치사회극화이다. 만화가 제작되는 동안 정치사회적으로 박정희에 대한 논란이 증폭되고,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이 책 역시 이러한 의문들에 대한 정확한 사실과 고증을 위해 관련 자료를 찾고 각계 전문가의 감수를 받는 등 심혈을 기울였다. 책은 박정희의 기회주의적 인생행로를 통해 굴절된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되짚어보고 그의 친일행각과 군부독재의 잔악상을 살펴본다. 특히 박정희의 친일은 그의 만주군관학교 입학을 위해 혈서를 쓰는 등 일본군 장교가 되기 위한 일련의 행동과, 항일 토벌대의 황군 소위로서
일본 국회의원 41명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일본 국회의원 41명 야스쿠니 신사 참배(헤럴드경제, 10.08.16)
日 야스쿠니신사 젊은층 참배 느는 이유
日 야스쿠니신사 젊은층 참배 느는 이유(헤럴드경제, 10.08.16)
유달산 정상에 있는 일본 불상들
미디어다음 / 글, 사진 = 고양의 프리랜서 기자 목포시 죽교동에 위치한 유달산은 높이 228m의 아담한 산이지만, 목포 시내와 그 주위를 둘러싼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고, 기암괴석이 아기자기하게 분포돼 ‘목포 8경’으로 손꼽히는 명소다.그런데 이 유달산 정상쯤에 오르면 전망대 난간 너머 일등바위에 새겨진 왜색 짙은 암각화가 눈에 띈다. 일본 밀교의 불상 중 하나인 부동명왕(不動明王)과 일본 승려인 홍법대사(弘法大師)를 묘사한 암각화다. 유달산 정상쯤에 오르면 일등바위 아랫부분에 새겨진 두 폭의 일본식 암각화가 한눈에 들어온다. 일반인들은 가까이 가기도 힘겨운 가파른 바위 한가운데 자리 잡은 저 불상은 언제부터, 무슨 연유로 저곳에 새겨진 것일까? 인자하고 넉넉한 미소를 띤 한국 불상과 달리 음산한 느낌마저 풍기는 이 그림의 이면에는 일제 강점기의 치욕이 숨어있다.목포는 1897년 자주적 개항과 더불어 근대화의 길을 걸었던 항구도시 중 하나다. 그러나 1906년 일본이 각국 거류지를 관리하는 권한을 박탈하면서 목포 시내 곳곳에는 일본 강점기의 자취가 남게 되었다.오늘날에도 그 흔적을 볼 수 있는 곳으로 1900년 건축돼 현재 목포문화원 건물로 쓰이는 구 일본영사관을 비롯해, 구 동양척식회사 건물, 일본식 조경으로 유명한 이훈동 정원 등을 들 수 있다. 일본식으로 오른쪽부터 읽게 새긴 ‘부동명왕(不動明王)’ 네 글자가 선명하다. 화염 형상의 얕은 부조에 둘러싸인 왼편 불상은 대일여래가 악마를 항복시키기 위해 분노한 모습으로 나타난 형상이다. 오른편으로 조그맣게 보이는 것은
김상덕 선생님 첫 기일에 다녀왔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 지난 4월 26일은 반민특위 위원장을 역임한 김상덕 선생의 기일이었다. 김상덕 위원장의 기일을 맞은 연구소 조월희 회원의 소회를 가감없이 공개한다. 아울러 김위원장 기일 소식은 다음 ‘민족사랑’에 기사로 다룰 예정이다. <편집자 주> 김상덕 선생님 기일에 다녀와서 많은 생각이 교차하더군요,혹시나 여기 민족문제연구소 임원 그리고 회원 여러분들이 잘 모를실 것 같아 이렇게 몇 자 적어봅니다.김상덕 선생님은 일제 치하에 의열단에 계셨었고 임시정부 문화부장관직을 하셨으며, 해방후 반민족 처벌 특별법(반민특위) 초대 위원장이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당시 이승만 정권하에서 반민특위를 제대로 시행몿하고 급기야 그 위원장직을 스스로 박차고 일어나셔야만 했죠. 6.25때 납북당하신 이후로 지금은 그 분의 아들이신 김점육선생님께서 그 분의 기일을 모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 기일이 확실치 않아 전혀 다른날에 보내셔야 했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요,그래 요번 4월 26일이 처음으로 맞이 하는 제대로 된 날짜에 그기일을 맞이하게 된것입니다. 그래도 북에서는 월북위인이라 하며 나름대로 묘자리를 그럴 뜻 하게 모셔 놓았더군요-그것이 선전용 일지라도-위인을 알아보고있다는 것에 조금은 위안이 되었습니다.그러나 이번 김상덕선생님 기일에 찾아오는 손님이 이렇게 없다니 조금은 실망이었습니다.(부천지부-사무국장,나. 경기북부지부-지부장, 사무국장, 자문위원 이상5명 참석) 너무도 조촐한 기일이었던 것 같습니다.민문연 여러분 혹여나 나중에 내년이라도 김상덕 선생님 기일에 가시고 싶으신 뜻이 있으신 분으 경기북부지부에 연락해 보세요. 자세한 날짜를 알려드릴 겁니다.-선생님 댁이 경기도 양주입니다. 경기북부지부와 가까운 거리죠-김상덕 선생님 기일이 이렇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