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huge collection of 3400+ free website templates, WP themes and more http://jartheme.com/ at the biggest community-driven free web design site.

주요기사

경남일보 친일논쟁 학계서 ‘재점화’

2005년 6월 21일 1035

        경남도민일보 표세호 기자    속보 = 창간호 친일파 축시로 시작된 <경남일보> 친일논쟁이 학계로 파장이 이어지고 있다.<5월230일자 17면 보도> 경상대 역사교육학과 김준형 교수는 <진주신문> 6월13일자(762호) ‘경남일보 유감’이라는 기고글을 통해 “과거의 경남일보를 계승했다고 주장하는 현재의 경남일보에 대해 독자의 한사람으로서 묻고 싶다. 장지연의 언론의 혼을 계승했다고 하는데 장지연의 무엇을 계승하고 실천해 왔는지”라며 쓴소리를 했다. 특히 “장지연을 이야기할 때 흔히 ‘시일야방성대곡’을 떠올린다. 그러나 한일합방 이후 ‘매일신보’ 여러 곳에도 잘 나타나고 있듯이 그의 예리했던 필봉은 무뎌지고 민족적인 입장이 상당히 약화되어 있었다. 그 단초는 이미 ‘경남일보’시절부터 나타나고 있었다. 현재의 경남일보는 ‘황성신문’의 장지연을 본받자는 것인지, 아니면 ‘경남일보’이후의 장지연을 계승하자는 것인지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경남일보>친일 논쟁은 〈일제강점기 인명록Ⅰ-진주지역 관공리·유력자>를 펴낸 김경현 경남근현대사연구회 연구원이 <진주신문〉에 ‘친일파 축하 속에 태어난 경남일보’라는 글을 실은 데 이어 <경남일보> 강동욱 문화부팀장이 반론을 올리면서 시작됐다. 관련기사 친일파 축하 속에 태어난 경남일보(진주신문, 05.05.10)‘친일파의 축하속…경남일보”를 읽고(진주신문, 05.05.17)‘항일지’ 경남일보의 상징조작(진주신문, 05.05.30) 경남일보 유감(진주신문, 05.06.13)   1차 지면논쟁, 김 연구원의 시민단체 강연에 강 팀장의 재반박으로 이어져 왔다. 특히 김 교수의 글은 강 팀장이 재야역사학자인 김 연구원의 주장에 대해 ‘역사학회나 언론학회에 정식 논문으로 발표하라’고 반박한 뒤 이어진 것이라 더욱 주목된다. 이에 앞서 강동욱 팀장은 <진주신문> 6월7일자(671호) 재반박글을 통해 “‘항일지 또는 민족지’라고 상징 조작된 경남일보의 진실을

‘단재 신채호 선생 국적 회복하자’ 운동 확산

2005년 6월 20일 1112

      민중의소리 이동권 기자              △단재 신채호 선생 ⓒ국가유공자회자료실      마음 깊은 곳까지 슬픔의 얼굴로 파고드는 친일의 역사, 그 이글대는 반역의 불꽃은 아직도 식지 않은 채 이 땅에 뜨거운 열기를 내뿜고 있으며, 지금도 우리는 그 역사의 지배 아래 살고 있다.      올바른 친일청산과 진상규명에 칼을 대지 못하고 한민족의 망연자실한 상실감의 상징이 되어온 친일역사. 목숨이 멎는 그날까지 줄곧 잊으려고 발버둥쳐봐도 잊을 수 없었다는 독립유공자들의 핏빛 통곡처럼, 이는 우리의 독립운동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친일파들은 나라와 민족의 눈물 앞에 어찌 이리도 당당한 것일까? 민족을 배신하고 양심을 팔아먹으면서 일만의 가책도 느끼지 않았을까? ‘친일’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꼼짝하지 못하고 끔찍한 일제강점기의 영상에 사로잡히고 만다.      서원대학교 역사교육학과 김정기 교수, 일본제국주의 주민정책이 낳은 당연한 결과      독립투사로서, 역사학자로서, 보훈처에서도 독립유공자로 인정하면서도 국적 정리조차 안 된 단재 신채호 선생. 국적회복의 문제는 피와 땀을 바친 독립유공자로서 조국에 받아야 할 가장 기본적이고 실질적인 대우 중의 하나일 것이다.      반공의 시대를 넘어,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도 한 민족의 문제로 보고 역사적으로 평가하고 인정하는 마당에 독립유공자의 국적조차 없다는 사실은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올바른 친일청산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민족의 역사에 있어서는 안 될 부끄러운 일이 분명하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국적회복문제와 관련, 서원대학교

[야고부] 賣國과 親日 이후

2010년 10월 4일 419

[야고부] 賣國과 親日 이후(매일신문, 10.10.02)

덕풍계곡 일제 산림철도 내일 제거

2010년 10월 4일 324

덕풍계곡 일제 산림철도 내일 제거(강원도민일보, 10.10.01)

조영남씨, 친일 발언 사과하기까지

2005년 6월 18일 845

          경기남부지부장 신용승     (6월 16일 정동 세실레스토랑에서 공식사과하는 조영남씨와 배석한 신용승 지부장) 조영남씨는 아시다시피 ‘맞아죽을 각오로 쓴 100년만의 친일선언’이란 책을 발간하고 일본의 대표적인 우익 신문인 산케이신문과 한 인터뷰 내용이 알려지면서 전국민적인 비난을 받은 바 있습니다. 조영남씨는 ‘친일’이라는 말이 결코 일본에 대한 개인적인 좋고 싫음을 뜻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의적으로 ‘친일선언’운운하는 부적절한 언행을 통해 결과적으로 친일문제를 규명하고 친일잔재를 청산하려는 역사학자들과 뜻 있는 국민들을 희화화시켰으며, 더불어 일제치하에서 친일파들의 행태에 치를 떨었던 수많은 독립운동가들과 그 유족들에게 지울 수 없는 마음에 상처를 주었습니다. 이에 경기남부지부는 조영남씨가 6월 18일 수원 아주대체육관에서 이미자, 패티 김 등과 함께 [빅3 콘서트]를 연다는 소식을 접하고 전교조 경기지부, 경기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수원 여성회 등 수원지역 시민단체들과 함께 6월 5일 모임을 갖고 <조영남의 수원공연 저지를 위한 특별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또한 7일부터 본격적으로 연대할 시민단체를 넓혀 나갔으며 11일에는 본격적으로 성명서를 수원지역 각 신문에 보냈습니다. 13일 오후 1시에는 수원역 광장에서 참가 단체들과 함께 집회를 열었고 14일에는 우리들의 요구를 전하기 위해 조영남씨 측과 첫 만남을 가지려했으나 무산되었습니다. 다음 날인 15일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최대범, 송지영 회원과 수원역에서 일인 시위를 했습니다. 그러던 중 16일 조영남씨 측에서 연락이 만남을 진행하고 서로의 입장을 확인한 후 다음과 같은 성명서에 합의하였습니다. 그리고 같은 날 오후

경남일보 유감

2005년 6월 14일 806

        경상대학교 역사교육학과 김준형 교수   최근 진주지역 내에서는 구한말 한국인에 의해 만들어진 최초, 유일의 지방지로서 진주의 자랑거리의 하나라고 여겨왔던 ‘경남일보’가 어떤 신문이었던가를 두고 논란이 격렬하게 벌어지고 있다. 이 논란은 상대방을 비하하는 감정적인 언사까지 동원되는 듯한 느낌마저 들 정도로 격앙되고 있다. 필자는 경남 서부지역의 역사, 문화를 연구하면서 ‘경남일보’도 역사자료로서 많이 애용해 왔다. 따라서 ‘경남일보’의 성격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언급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이런 입장에서 ‘경남일보’에 대한 소회를 밝히고자 한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에 들어가기 전에 하나 밝혀둘 것이 있다. 흔히 우리 ‘국사’ 교육에서는 구한말에 전개된 ‘애국계몽운동’이라는 내용을 배우게 된다. 일제의 침략에 맞서는 애국운동의 일환으로서, 우리도 빨리 근대화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교육, 언론, 학술, 경제 부문에서 실력양성운동을 전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이에 대한 연구가 상당히 축적되면서 이 운동에 ‘애국’이라는 글자를 붙이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는 견해가 제기되고 확산되어 갔다. 즉 단순히 ‘계몽운동’이라 부르거나 ‘자강운동’으로 불러야 한다는 것이다. 계몽운동에 참여하는 자들은 여러 부류들이 포함되어 있다. 노골적인 친일단체에서부터 일제의 침략에 저항적인 단체까지 다양한 입장의 세력이 뭉뚱그려져 있다. 이후 저항적인 입장의 세력은 저항운동이나 독립운동을 계속하기 위해 한국을 떠나거나 지하화한다. 그러나 나머지 세력은 친일화하거나 개량주의적인 운동을 전개하면서 일제에 협조해 나가는 입장을 취하는 경우가 많았다. 침략에 대한 저항이나 독립운동 등 정치적인

과거로 행진하는 군인들의 퍼레이드

2010년 10월 4일 517

과거로 행진하는 군인들의 퍼레이드(한겨레21, 10.10.01)

최승희 선양사업 ‘정체성’ 논란

2010년 10월 4일 318

최승희 선양사업 ‘정체성’ 논란(강원도민일보, 10.10.04)

자랑스런 이대인은 김활란이 아닌 유관순

2005년 6월 13일 1130

      오마이뉴스 박상규 기자     ▲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 소속 이화여대 학생들이 지난 3월 25일 오후 이화여대 본관 옆 김활란 동상 앞에서 친일청산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자료사진)   ⓒ2005 오마이뉴스 남소연 이화여자대학교 교정에 유관순 열사의 동상이 세워질 수 있을까.이화여대 교정에 유관순 열사의 동상을 세우려는 학생들의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유관순 동상 건립을 위해 이화여대 학생모임 ‘이구동성’은 13일 정오 학내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학교 쪽에 동상 건립을 정식으로 요청했다.이구동성은 유관순 열사의 동상 건립을 위해 지난달 중순부터 약 3주 동안 학생들의 서명을 받았다. 이 서명에는 이화여대 학생 약 3500여 명이 참여했다. 장유진(철학과 4학년) 이구동성 대표는 “전체 학생 5분의 1일이 서명에 참여할 만큼 이화인의 친일 청산 욕구는 높다”고 밝혔다.이화여대의 초대 총장인 김활란은 일제시대 때 징병제를 추동하고 황국 신민으로서의 자세를 촉구했던 대표적인 친일 인사로 평가받고 있다. 이화여대 교정에는 김활란 동상이 세워져 있다.이와 관련 이구동성은 “김활란 초대 총장은 그동안 ‘여성박사 1호’, ‘여성운동의 선구자’라는 이유로 제대로 된 역사적 평가를 받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구동성은 “이화여대의 부끄러운 역사로 남아있는 김활란 초대 총장보다 독립운동을 위해 목숨을 받친 유관순 열사가 이화여대의 자랑스런 선배가 돼야 한다”며 “유관순 열사는 이화인과 우리 국민이 본받아야 할 인물이다”고 말했다. 이어 “이화여대의 부끄러운 역사를 다시 쓰기 위해 과오는 철저히 비판하고 공은 높이 사 기려야 한다”며 “유관순

포털 사이트, 박정희 일제시대 경력 대부분 누락

2005년 6월 13일 995

      김진한 충북지부장   최근 <만화 박정희> 출간으로 박정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청소년들이 자주 이용하는 국내 주요 포털사이트에 박정희의 일제시대 경력이 대부분 빠져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많은 누리꾼(네티즌)들이 방문하는 <네이버>의 경우 학력란에는 육군사관학교만이 기재되어 있고 경력란 역시 1937년 문경소학교 교사 1960년 제2군 부사령관 등으로 되어 있어 무려 23년간의 일제시대 경력 즉 만주군관학교와 일본 육군사관학교 경력 등이 빠져 있다. <파란> 역시 <네이버>와 같은 자료를 사용하고 있다. <엠파스>의 경우도 1937년~1940년 문경공립보통학교 교사에 이어 곧 바로 1950년 육본 정보국 1과장으로 기록하고 있다. <야후>는 연도 표시고 없이 가장 간략하게 처리되어 있으며, <드림위즈>는 1937년 문경소학교 교사에 이어 1946년 육군대위 등 주로 해방 후 군 경력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을 뿐 역시 일제시대 경력은 찾아 볼 수 없다. 그나마 <다음>의 경우에도 학력란에 ‘만주군관학교-육군사관학교’로 표시하고 있을 뿐이다. 한편 최근 박정희 시절 부총리, 전두환 시절 국무총리를 역임하며 독재정권의 양지에서 권력을 누린 남덕우씨는 지난 10일 한 강연에서 “우리나라의 이념적 지도자로는 백범 김구 선생, 도산 안창호 선생 등을, 실천적 지도자로는 이승만, 박정희 두 대통령을 꼽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일부 정치세력이 허구와 관념으로 과거를 평가하고 맹목적으로 과거의 지도자들을 폄하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그릇된 역사의식부터 고쳐나가는 것이 선진화의 과제라고 본다”고 말했다. 더욱이 ‘이승만 대통령이 친일파를 중용해 민족정기를 말살했고 그 결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