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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웬수와 함께 잠들고 싶지 않다. 야스쿠니에서 우리를 빼라!

2010년 10월 1일 756

<제10편>   – 마지막편 – 그동안 “경술국치 100년, 한일평화를 여는 역사기행” 답사기를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 말씀 올립니다. 이번 <제10편>으로 답사연재를 모두 마칩니다. 부산에서 출발하여 기타큐슈의 치쿠호 탄광을 시작으로 시모노세키, 오사카, 교토에 이어 도쿄의 야스쿠니 반대 촛불 행동까지 장장 11박 12일에 걸친 여정을보고, 듣고 모자라는 것은 문헌자료를 토대로 충실한 기록을 해야겠다는 심정으로 적어 나갔습니다. 조상의 고달팠던 강제연행 현장에서는 가슴 아파했으며 야스쿠니를 코앞에 두고 극성스런 우익의 저지 앞에서는 함께 분노했습니다. 그러나 가는 곳마다 양심 있는 일본 시민단체들의 친절한 안내에 우리는 닫힌 가슴을 조금씩 열었습니다. 군국주의를 휘두르던 일본정부의 잘못을 대신해서 학살현장에 추도비를 세우고 우리 대신 향을 사르던 일본의 양심 있는 시민들을 바라다보면서 아슴푸레하나마 실낱같은 작은 희망과평화도 보았습니다. 우리는 이번 답사를 단순한 여행으로 그치지 않고 모두 하나 되어 겨레의 큰 기둥이 될 것을 다짐했습니다.그리고 우리는 한일간에 진정한 평화를 여는 일에 앞장설 것도 다짐했습니다. 우리들의 추억이 어린 답사에 대한 기록을 끝까지 읽어 주신 독자 여러분께 다시 한 번 깊은 감사 말씀 올립니다.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이윤옥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김영조 사룀   야스쿠니 강제무단 합사와 야간 촛불행동에 협박하던 일본 우익의 현주소 김영조·이윤옥 ▲ 구단시타역에서 경찰은 우익으로부터 보호한다며 답사단의 야스쿠니행을 저지했다. (왼쪽), 지하철 안에서도 답사단은 경찰의 포위 속에 꼼짝을 못했다. ⓒ 김영조  ▲ 지하철 구단시타역에서 야스쿠니행을 저지당해 항의하는 모습(가운데 남자가경시청 사복형사)

日 불교종파 ‘과거사 반성’ 영상물 제작

2010년 10월 1일 333

日 불교종파 ‘과거사 반성’ 영상물 제작(연합뉴스, 10.09.19)

내 동심에 흐르던 일제 잔재

2005년 6월 10일 1292

  오까네가 나이? “오까네가 나이.” 갓 국민학교에 들어갈 무렵(그때는 초등학교를 국민학교라 불렀다), 아버지가 어머니와 얘기하시던 중에 뭔가 심각한 표정을 지으시며 하신 말씀이었다. 오까네가 나이? 무언가 비밀스런 말씀이겠거니 생각은 하였지만, 그 뜻은 도통 알 수 없었다. 나와는 관계가 없었기에 구태여 물어보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 말은 알아들었다. “한용아, 오차를 곱뿌에 담아 오봉에 내어 와라. 그리고 덴뿌라랑 다꽝과 닌진 그리고 다마네기랑 삼마 두 마리 사와라. 주리는 주봉 보겟또에 잘 챙겨오고. 참, 주리는 야마시이 하면 안된다.” 우리 말로 풀자면 이런 뜻이었다. “한용아, 차를 잔에 담아 쟁반에 내어 와라. 그리고 어묵과 단무지와 당근 그리고 양파와 꽁치 두 마리를 사와라. 거스름돈은 바지 주머니에 잘 챙겨오고. 참, 거스름돈은 속이면 안된다.” 나는 이것이 일본말인줄 몰랐다. 그렇다고 학교에서 이 말을 배운 적도 없었다. 그저 ‘부산 사투리라서 학교에서 가르치나 않는가 보다’ 라고 생각했다. 내 부모님은 일제시기 국민학교를 다니셨고, 일본어를 모국어로 배우셨다. 그것이 그분들의 학력 전부였고, 그분들이 사용하던 일제의 언어는 고스란히 내게로 전수되었다. 난 그 일본어를 부산사투리로 알고 배우며 자란 것이다. 1960년생인 내가….   학교를 다니면서 내가 익숙하게 들었던 일본말은 점차 내게로부터 멀어져 갔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곳곳에서 일제 잔재를 만났고, 그것은 나와 함께 자라왔다. 어린 시절의 추억과 자라난 일제의 흔적들   어린 시절 밤이면 동생과 함께 어머니가 가르쳐 준 ‘오재미’ 놀이를 즐긴

신(新) ‘시일야방성대곡’

2005년 6월 10일 1010

        김경현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         ▲ 출두 직전 청량리경찰서 앞에서    지난 날 위암 선생의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이 날을 목놓아 통곡한다)’을 읽었을 때 순진하게도 우리들은 서로 말하기를, “위암은 평소 우리 민족의 기개와 언론인으로서의 사명감을 높이 보여주어 항일언론인으로 추앙받던 사람이다”하여 언론인뿐만 아니라 온 국민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 삼척동자가 그의 항일정신을 오랫동안 환영하여 마지 않았다. 그러나 세상 일 가운데 예측키 어려운 일도 많도다. 천만 뜻밖에 위암 선생의 친일의혹이 어찌하여 나오게 되었는가. 경남일보 주필을 하고 있을 때 신문에 실린 왜왕 명치의 생일을 축하하는 천장절 기념시가 발단이었다. 이 시를 두고 위암 선생이 썼느니 아니 썼느니 논란이 분분하여 위암 선생에 대한 친일진상규명을 하지 않고 지나칠 수 없게 되었다. 이 의혹으로 인해 비단 우리 근현대사학계뿐만 아니라 언론사학계가 분열을 빚어낼 조짐인 즉, 그렇다면 위암 선생의 본뜻이 어디에 있었던가. 일찍이 위암 선생은 왜적 군대와 작배한 을사오적이 체결한 치욕의 을사늑약의 소식을 접하고 그날을 목놓아 통곡하며 ‘시일야방성대곡’을 썼다. 후세 사람들은 위암 선생의 이러한 올곧은 기개와 민족정신을 언론인의 사표로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 국민 다수의 민족적 감정은 강경하여 오늘날 누구든지 반민족행위에 대한 의혹이 있다면 진상규명하기를 마다 하지 않았으니, 친일의혹에 대해서는 사자명예훼손과 허위사실유포란 것이 죄로 성립되지 않은 것인 줄 구천에 있는 위암 선생 스스로도 잘 알았을

행운아 이완용…저승길에서 살아난 까닭은?

2010년 9월 30일 325

행운아 이완용…저승길에서 살아난 까닭은?(프레시안, 10.09.27)

옛 선비정신 깃든 항일운동의 거점 영주 ‘아도서숙’ 복원 움직임

2010년 9월 30일 316

옛 선비정신 깃든 항일운동의 거점 영주 ‘아도서숙’ 복원 움직임(경향신문, 10.09.27)

국회 심장부에 친일 조각가 작품

2005년 6월 8일 1149

    여의도 통신 이정환 기자 대한민국 국회 심장부에 친일 미술가로 알려진 김경승의 작품이 버티고 있다. 문제의 작품들은 충무공상과 세종대왕상 등 2점으로, 1991년 이후 지금까지 국회 의사당에 전시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김경승은 친일 행적 뚜렷한 인물”국회 의사당 중앙 현관으로 들어서면 붉은 카펫이 깔린 넓은 로비와 오르막 계단이 나타난다. 그리고 그 계단 입구의 좌우에 흰색 위인상이 버티고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왼쪽에는 문(文)을 상징하는 세종대왕상이, 오른쪽에는 무(武)를 상징하는 이순신 장군상이 자리하고 있다.그런데 이 작품들을 만든 김경승(1992년 사망)은 최근 민족문제연구소에 의해 윤효중과 함께 일제 시대를 대표하는 친일 경력 조각가로 지목된 인물이다. 여의도통신 김진석기자  7일 국회 본회의장 입구에 세워진 세종대왕(왼쪽)과 이순신장군상의 모습. 민족문제연구소 박한용 연구실장은 “김경승은 대표적 친일미술단체로 꼽히는 조선미술가협회 평의원이었다는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친일 행적을 보여주는 것은 그의 작품”이라며 “조선미술전람회 출품작 ‘여명'(1942년)과 ‘제4반'(1944년)은 각각 보국·총후(銃後) 활동에 나선 모습들을 묘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민족문제연구소 조선미술 전람회에 출품된 김경승의 작품 ‘여명’ (1942년) 박 실장은 “또한 김경승은 1944년 대동아 전쟁의 전의를 다진다는 명목하에 열렸던 결전미술전의 심사위원이었다”며 “최악의 친일 전시회에 ‘대동아 건설의 향'(響 : 울림이란 뜻)이란 작품을 출품했을 정도로 친일 행적이 뚜렷한 인물”이라고 잘라 말했다.또 민족문제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김경승은 공공연하게 친일 의지를 밝힌 인물이기도 하다. 1942년 6월 3일자 매일신보를 통해 김경승은 “일본인의 의기와 신념을 표현하는데, 새 생명을

2005 민족문제연구소 여름수련회, 이렇게 진행합니다

2005년 6월 8일 1242

       민족문제연구소   ▶ 때 : 2005년 7월 2일(토)~3일(일) (1박 2일) ▶ 곳 : 천안 류관순청소년수련관 (천안시 병천면 병천리, 전화 041-564-1391~3) ▶ 회비 : 어른 3만원 / 중고교 대학생 2만5천원 (단, 초등학생 이하 어린이는 회비 없음) ▶ 신청 : 02-969-0226 vacationjin@empal.com (가족의 경우 이름, 나이를 알려주세요) ▶ 오시는 길 ① 승용차 이용 할 경우경부고속도로 목천(독립기념관) IC→우회전→병천면 소재지까지 직진→병천우체국 지나자마자 죄회전→병천초등학교→병천면사무소→신세계아파트 입구에서 좌회전→시멘트 포장길로 직진→류관순청소년수련관 (목천 IC에서 약 10㎞) ② 전철이나 기차 이용할 경우 천안역에서 류관순청소년수련원까지 사무국에서 준비한 차량을 타고 오실 분은 오후 5시까지 천안역 광장으로 나오셔야 합니다. 아래 소요시간표를 참고하십시오. (서울, 경기 지역 회원의 경우) 청량리역→천안역 127분 / 서울역→천안역 112분 / 구로역→천안역 92분 / 금정역→천안역 68분 / 수원역→천안역 52분  ③ 고속(시외)버스로 오시는 경우 천안고속(시외)버스터미널에 나오셔서 사무국에서 준비한 차량을 타시면 됩니다. ④ 오후 5시30분을 지나 천안역이나 버스터미널에 도착하실 경우 – 천안버스터미널 앞에서는 병천 방면 401번, 402번 좌석버스를 타시고 병천까지 오신 다음 아래 회원들에게 연락하시면 됩니다. – 천안역 동부광장으로 나오셔서 기업은행 앞에서 병천 방면 401번, 402번 좌석버스를 타시고 병천까지 오신 다음 아래 회원들에게 연락하시면 됩니다. <아래> 김남열 충남지부 회원017-713-6666 정하진 충남지부 회원 011-404-8490 이정학 충남지부장 011-432-7761  ▶ 오후 6시까지 류관순청소년수련관으로 도착해주십시오.   <여름 수련회 일정> ▣ 7월 2일(토)오후 6시∼7시30분 _ 도착 /

러 ‘안중근 외교문건’ 내용과 입수 경로는

2010년 9월 30일 313

러 ‘안중근 외교문건’ 내용과 입수 경로는(연합뉴스, 10.09.30)

러, ‘안중근 외교문건’ 한국에 처음 전달(종합)

2010년 9월 30일 319

러, ‘안중근 외교문건’ 한국에 처음 전달(종합)(연합뉴스, 10.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