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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일보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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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대학교
역사교육학과 김준형 교수

 

최근 진주지역 내에서는 구한말 한국인에 의해 만들어진 최초, 유일의 지방지로서 진주의 자랑거리의 하나라고 여겨왔던 ‘경남일보’가 어떤
신문이었던가를 두고 논란이 격렬하게 벌어지고 있다. 이 논란은 상대방을 비하하는 감정적인 언사까지 동원되는 듯한 느낌마저 들 정도로 격앙되고
있다.


필자는 경남 서부지역의 역사, 문화를 연구하면서 ‘경남일보’도 역사자료로서 많이 애용해 왔다. 따라서 ‘경남일보’의 성격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언급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이런 입장에서 ‘경남일보’에 대한 소회를 밝히고자 한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에 들어가기 전에 하나 밝혀둘 것이 있다. 흔히 우리 ‘국사’ 교육에서는 구한말에 전개된 ‘애국계몽운동’이라는
내용을 배우게 된다. 일제의 침략에 맞서는 애국운동의 일환으로서, 우리도 빨리 근대화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교육, 언론, 학술, 경제 부문에서
실력양성운동을 전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이에 대한 연구가 상당히 축적되면서 이 운동에 ‘애국’이라는 글자를 붙이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는 견해가 제기되고 확산되어 갔다. 즉 단순히 ‘계몽운동’이라 부르거나 ‘자강운동’으로 불러야 한다는 것이다.


계몽운동에 참여하는 자들은 여러 부류들이 포함되어 있다. 노골적인 친일단체에서부터 일제의 침략에 저항적인 단체까지 다양한 입장의 세력이
뭉뚱그려져 있다. 이후 저항적인 입장의 세력은 저항운동이나 독립운동을 계속하기 위해 한국을 떠나거나 지하화한다. 그러나 나머지 세력은
친일화하거나 개량주의적인 운동을 전개하면서 일제에 협조해 나가는 입장을 취하는 경우가 많았다. 침략에 대한 저항이나 독립운동 등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하고 오로지 근대화를 위한 운동에만 매진하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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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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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신문,
05.05.10)

‘친일파의
축하속…경남일보"를 읽고
(진주신문, 05.05.17)
‘항일지’
경남일보의 상징조작
(진주신문, 05.05.30)
 

‘경남일보’도 1909년 창간되는 과정에서부터 독자확보운동의 전개, 폐간과정에 이르기까지 이런 세력들의 영향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창간과정에 간여했던 인물들중에는 다양한 부류들이 있었지만, 일제에 협조적인 입장에 있었던 자들도 많았다. 특히 친일관료로서 일제의 정책을
앞장서서 홍보했던 경남도지사 황철(黃鐵)은 인쇄시설 구입과정에 적극적으로 나서 주선하였고, 또 도지사 및 각군의 친일관료들이 독자확보를 위해 각
면리에 지령을 내려 면리 단위로 1부 이상씩 구독하도록 권유하기도 하였다.


이런 이유로 인해 ‘경남일보’의 내용도 일제에 의해 새로 반포되는 여러 가지 법령 등을 소개하거나 민지개발(民智開發), 실업장려 등을
홍보하는 일에 관심을 쏟게 된다. 일제에 저항적인 입장을 취하는 경우는 오히려 예외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았다. 따라서 당시 격렬하게 전개되던
경남지역의 의병투쟁에 대해서도 ‘폭도’로 규정할 뿐만 아니라 이에 대한 토벌이나 회유작업에 대해 자세하게 언급하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당시
일본 경찰의 토벌보고서에서 간단하고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는 것과도 확연히 대조될 정도이다. 당시 친일관리들이 벌이던 여러 가지 홍보나 천장절
행사에 대한 보도태도에서도 경남일보는 매우 긍정적인 입장에 서 있었다.


이런 이유때문인지 한국인에 의해 세워진 전국적인 수준의 신문사들이 한일합방 직후 모두 폐간되는 와중에서도 ‘경남일보’는 폐간되지 않았다.
물론 드물긴 하지만, ‘경남일보’도 일부 기사 때문에 해당 기사 전부나 일부를 삭제당하거나 또는 정간당한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행적이 위에
언급한 부분을 덮을 수는 없다.


일부 기사가 문제가 되어 자주 기사가 삭제되고 정간까지 당한 예는 현재 민족지라 자부해 왔던 일부 족벌신문들에서도 나타난다. 그러나 이런
신문들은 1930년대 후반 이후 일제의 정책에 적극적으로 동참해 앞장서서 홍보했던 행적 때문에 친일잔재로서 혹독하게 비판을 받고
있다.
우리 사회의 여론을 주도하는 올바른 언론이라면, 과거의 잘못된 행적이 제기된 즉시 이에 대해 충심으로 반성, 사죄하고 새롭게
출발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러나 이런 신문들은 구차한 논리로 변명하면서 과거를 덮어버리려 하고 있다. 반성은 커녕 과거사에 대한 규명운동을
불순한 세력의 책동으로 몰아가고 있다.


현재 과거사에 대한 철저한 규명과 반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모습으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은 국민 다수의 소망이다. 과거 수 차례 이런 시도를
하였지만, 친일파 기득권세력의 방해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 때문에 우리 민족의 정기를 바로잡을 수 없었고 기회주의가 판을 쳤던 것이다.


과거의 ‘경남일보’를 계승했다고 주장하는 현재의 경남일보에 대해서도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묻고 싶다. 장지연의 언론의 혼을 계승했다고
하는데, 장지연의 무엇을 계승하고 실천해 왔는지.


장지연을 이야기할 때는 흔히 ‘시일야방성대곡’을 떠올린다. 그러나 한일합방 이후 ‘매일신보’ 여러 곳에도 잘 나타나고 있듯이 그의 예리했던
필봉은 무뎌지고 민족적인 입장이 상당히 약화되어 있었다. 그 단초는 이미 ‘경남일보’ 시절부터 나타나고 있었다.
현재의 경남일보는
‘황성신문’의 장지연을 본받자는 것인지, 아니면 ‘경남일보’ 이후의 장지연을 계승하자는 것인지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

<진주신문. 2005년 6월 13일자(76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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