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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고향 구미에 독립운동기념관이 건립되기를 바라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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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서울역 근처 민족문제연구소를 처음 찾았다. 과거사 청산을 연구하는 시민모임 ‘즐기게’에서 ‘네팔의 이행기 정의’를 발제하기 위해서였다. 서울로 가는 길에 마침 식민지와 이행기 정의에 관한 논문을 읽었다. 이행기 정의란 독재나 전쟁, 식민 지배 등 과거의 불의를 청산하고 사회가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제도적 노력을 뜻한다.

발제를 하러 도착한 곳이 민족문제연구소였으니, 그 우연이 어쩐지 필연처럼 느껴졌다.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는 민족문제연구소 창립 35주년을 맞아 기획전으로 ‘세상을 바꾼 시민, 함께 만든 역사’가 열리고 있었다.

▲식민지역사박물관 ⓒ 여경수

나는 발제 전에 이들 전시물을 천천히 둘러보며 오래전부터 품어온 생각들이 다시 떠올랐다. 민족문제연구소 하면 임종국 선생이 먼저 떠오른다. 평생을 친일파 연구에 바친 학자로, 그의 유지를 이어받아 연구소가 완성한 <친일인명사전>은 우리 사회가 외면해온 불편한 진실을 기록한 귀중한 문헌이다.

창립 35주년, 사람으로 치면 장년에 접어든 이 연구소가 걸어온 길이 결코 순탄하지 않았음을 전시물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법학을 공부하면서 <친일인명사전>을 여러 차례 참고했다. 사전에 등재된 법학자로는 전봉덕, 유진오, 홍진기 등이 있다.

전봉덕은 일제강점기 고위직 경찰이었고, 유진오는 조선임전보국단 등 친일 단체에서 활동했으며, 홍진기는 일제 판사로 복무했다. 이들은 광복 이후 친일 행적을 지운 채 법조계와 학계, 언론계의 사회지도층으로 행세했다. 그들의 후학들 중에 이들을 여전히 찬양하는 행태가 남아 있으니, 무지의 소치인지, 아니면 그 삶을 은근히 동경하는 것인지, 어느 쪽이든 씁쓸하기는 마찬가지다.

고향 구미로 눈을 돌리면 마음이 더 무거워진다. 간혹 구미 시내에서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시지부 현수막을 볼 때마다 지역 차원의 친일 청산이 얼마나 더딘지를 새삼 실감한다. 지역에서 친일 인사를 조사하고 밝히는 일은 중앙보다 훨씬 더 어렵다. 연고와 인맥이 얽혀 있고, 지역 유지의 후손들이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구미에는 장진홍 의사 동상, 왕산 허위 기념관, 박희광 의사 동상 등이 있다. 하지만 기려야 할 인물이 아직 너무 많다. 항일 무장투쟁을 이끈 허형식 장군은 이육사가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을 노래할 때 떠올렸다는 인물로 알려져 있으나, 정작 고향에서의 기념사업은 보잘것없다.

대한민국임시의정원에서 활동한 해위 김정묵, 신간회에서 항일운동을 펼친 최관호와 박상희 등도 마찬가지다. 박상희는 훗날 대통령이 된 박정희의 형이기도 하지만, 그 자신이 일제에 맞서 싸운 독립운동가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복원하는 일은 단순한 추모에 그치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같은 시대, 같은 지역에서 친일 행적을 저지른 이들의 행위도 드러나기 마련이다.

▲임종국의 친일인명조사자료 ⓒ 여경수

언젠가 고향 구미에 독립운동기념관이 건립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그것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역사 위에 서 있는지를 직시하는 용기의 표현일 것이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그 용기가 부족했다. 법학 논문을 쓰면서도, 헌법 수업 시간에도, 나는 끝내 그 이름들을 정면으로 불러내지 못했다.

여경수 기자

<2026-03-23>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고향 구미에 독립운동기념관이 건립되기를 바라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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