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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연합뉴스(07.08.09)
<전쟁의 이중 희생양 조선인 전범> (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제2차세계대전 종전 이후 전범재판에서 A급 전범으로 교수형에 처해진 일본인은 7명이다.BㆍC급 전범은 아시아 전역에서 2만5천여 명이 용의자로 체포됐으며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은 5천700명, 그중 948명이 사형에 처해졌다.대부분은 일본인이지만 BㆍC급 전범 가운데는 조선인 148명이 포함돼 있었으며 이 중 23명은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들은 정말 ‘일제의 앞잡이’였을까?우쓰미 아이코 일본평화학회장이 펴낸 ‘조선인 BㆍC급 전범, 해방되지 못한 영혼(동아시아 번역ㆍ출간)’은 이중 희생양이 된 조선인 전범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저자는 “조선인 전범 가운데 군인은 필리핀 포로수용소장이던 홍사익 중장과 지원병 두 명 등 단 3명 뿐이었다”고 말한다.나머지 145명 가운데 16명은 통역으로 징용됐으며 129명은 타이, 자바, 말레이 등 동남아 지역 포로수용소에서 감시원으로 모집된 군속이었다. 오늘날 군무원에 해당하는 군속은 당시 이등병보다 못한 취급을 받았다.저자는 군마나 군견보다 못한 존재였던 그들이 전범이 된 까닭을 파헤쳤다.조선인 감시원은 날마다 연합군 포로와 접하고 살았다. 일본군 사령부가 내린 포로 학대 명령을 직접 실행한 것은 조선인 감시원의 몫이었다. 자연히 종전 후 연합군 포로의 분노가 그들에게 집중됐다.일본 군부가 포로 학대의 책임을 조선인 감시원에게 돌린 것도 한 이유였다.1945년 9월17일 시행된 ‘포로 취급과 관련 연합국 측의 심문에 대한 응답 요령 등에 관한 지시’는 당시 육군대신 시모무라 사다무가 하달한 문서로 ‘시모무라 문서’라 불린다.시모무라는 연합국이 포로 학대를 중요한 전쟁범죄로 여긴다는 것을 알고 연합국 측 신문에 ‘포로 학대의 원인은
-연합뉴스(07.08.13)
<학교현장에 아직도 남아있는 日帝 잔재> 액자 속 태극기ㆍ거수경례ㆍ두발검사ㆍ아침조회 등 “모두 일제 잔재라는 건 어불성설” 의견도(서울=연합뉴스) 박상돈 기자 = 교실 앞 벽에 걸린 액자 속 태극기, 교장 선생님 훈화를 듣는 아침조회, 머리털을 ‘빡빡’ 깎는 두발검사, 학생들의 군대식 거수경례, 선생님께 구령 붙여 인사하기, 수학여행과 운동회’13일 교육계에 따르면 교육 현장에 아직도 전통이라는 이유 등으로 학생과 교사, 학부모 및 교육당국조차 별다른 문제 의식 없이 하고 있는 통제와 규율 중심의 학사행정이 일제 잔재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그동안 민족 정기를 회복한다는 명분으로 `국민학교’ 명칭을 `초등학교’로 바꾸는 등 변화도 있었지만 아직 충분치 못해 이제 검증을 통해 받아들일 것은 수용하고 청산할 것은 깨끗이 털어버려야 한다는 것이다.황국 신민의 국가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던 일제 교육이 아니라 민주화ㆍ국제화시대에 발맞춰 학생 개인의 능력과 인성을 중요시하고 다양성을 소중히 여기는 교육을 펼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이야기다.우선 거수경례만 하더라도 오랜 역사를 지닌 사학을 중심으로 일부 학교에서는 아직도 입학ㆍ졸업식 등 각종 학교 행사에서 네모 반듯하게 도열한 학생들이 힘찬 구호와 함께 거수경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하지만 이런 모습은 제복 입은 교사들이 긴 칼을 옆에 차고 학생들에게 국가에 대한 충성을 부르짖던 일제시대의 잔재로 1970년대 군사정부시절 반공 구호 속에 집단의식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수용됐다는 비판이 있다.지난해 한 경찰 최고위 간부는 자신이 제복을 입고 수십년간 거수경례를 해왔지만 모교를 방문했을 때 까마득하게
[한·일 100년 대기획] 민족종교, 항일독립운동 구심점
[한·일 100년 대기획] 민족종교, 항일독립운동 구심점(서울신문, 10.01.20)
광복회 “역사박물관 철회때까지 장외투쟁”
광복회 “역사박물관 철회때까지 장외투쟁”(연합뉴스, 10.01.25)
천안 ‘역사 왜곡’ ‘표절 의혹’ 만신창이
천안 ‘역사 왜곡’ ‘표절 의혹’ 만신창이(한국일보, 10.01.19)
한일 강제 병합 100년, 무엇이 필요할까
한일 강제 병합 100년, 무엇이 필요할까(오마이뉴스, 10.01.24)
민영환 선생 후손, 땅 찾기 소송-파이낸셜뉴스(07.08.09)
민영환 선생 후손, 땅 찾기 소송 1905년 일본에 의해 강제로 체결된 을사조약에 항의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충정공 민영환 선생의 자손들이 민 선생 아들의 토지를 돌려달라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9일 서울중앙지법에 따르면 선생의 자손인 민모씨(65) 등 4명이 국가를 상대로 진정 명의 회복에 의한 소유권이전 등기 청구 소장을 제출했다.이들은 소장에서 “1912년 일제의 토지조사령에 의한 토지조사 당시 양주군 별내면 고산리에 있던 토지가 현재 경기 의정부시 고산동으로 행정구역이 변경됐고 (선생의 삼남) 민광식이 사정(査定.조사하거나 심사해 결정)받은 토지”라며 “원고(민씨 등 4명)는 민광식의 후손으로 상속자”라고 주장했다.이들은 “이 부동산은 6.25 한국전쟁 과정에서 지적과 등기부가 멸실됐다가 1961년 3월에 지적복구됐으며 이에 앞서 같은해 2월 국가로 소유권보존등기가 됐다”고 덧붙였다.이어 “국가는 이 부동산에 관해 아무런 권원 없이 소유권보존등기를 하고 현재까지 점유, 사용하고 있는 등기명의자로, 이 부동산에 관해 원고로부터 매매, 증여 등 어떠한 승계 취득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따라서 원고들의 부친인 토지 사정자 민광식으로부터 승계, 취득사실을 입증하지 못하는 한 국가 명의의 소유권보존등기는 원인 무효로 말소돼야 한다는 것이다.이들은 또 “민광식은 선생의 삼남이고 선생이 자결하신 뒤 가세가 기울기 시작해 친일파로부터 재산을 강탈당하기도 했다”며 “최근 산재한 선생의 자료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이 부동산이 국가소유로 소유권보존등기가 된 사실을 알게 됐다”고 소송 배경을 설명했다.이들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토지는 경기 의정부시 고산동의 424㎡ 등 3필지 8억원 상당(공시지가)이다.
[해방 62주년, 뒤바뀐 진실을 바로 세우자]③ 반민족 친일행위 단죄 시급하다
내일신문 백만호 기자 일제로부터 해방된지 62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비정상적인 모습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굴절된 역사를 바로세우는 작업이 비난받고 친일은 변명을 넘어 찬양으로까지 나가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역사의 진실을 바로 세우지 않고 민족의 미래를 논할 수는 없다는 취지에서 해방 62주년을 맞아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 진실을 밝히는 기획을 마련했다. 환수규모 1차 때보다 크게 늘어날 듯 수백억원대 토지 친일재산 분류 완료 광복절 62주년을 앞두고 친일파 재산에 대한 2차 국고환수가 있을 예정이다. 환수 규모는 지난 5월의 1차 때보다 크게 늘어나 수백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직속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친일재산조사위·위원장 김창국)는 조만간 전원위원회를 열어 국고환수의 대상과 규모 등을 결정할 예정이다.◆속도 내는 친일재산 환수 = 친일재산조사위원회는 9일 친일재산에 대한 2차 국고환수를 곧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위원회 관계자는 “1차 때와 대상자는 비슷하지만 규모는 몇 갑절 늘어날 것”이라며 “조만간 전원위원회를 열어 환수대상 재산과 규모 등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위원회는 지난 5월 이완용과 송병준 등 친일반민족행위자 9명의 토지 154필지, 25만4906㎡, 추정시가 63억원 상당의 친일재산을 환수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따라서 이번 2차 국고환수의 규모는 1차 때보다몇 배에 달하기 때문에 시가로 수백억원대의 친일재산 토지가 국고로 환수될 것으로 보인다. 위원회는1차 국고환수 이후 친일반민족행위자 93명의 1857필지, 1317만㎡ 공시지가 1185억원 상당의 토지에 대해서 친일재산 여부를 조사해왔다. 관련기사 ② 독립유공자 서훈 기준이 없다(내일신문,
-연합뉴스(07.08.08)
<일본관리가 13년간 지켜본 순종과 주변> 곤도 시로스케 회고록 번역 출간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1917년 6월, 강압에 못 이겨 내키지 않는 일본행에 나선 망국 조선의 군주 순종 이척은 도쿄 체류 3일째인 그달 14일 오전 9시30분 메이지 천황을 알현하고는 이런 “말씀을 올리셨다”고 이 장면을 목도한 당시 증인은 말한다.“성상 폐하, 저 이척이 좀 더 일찍 방문해 알현해야 하나 숙병(宿病)에 시달리는 너무 병약한 몸이라 전례를 수행하지 못할까 해서 날을 미루다가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다행히 오늘에야 용안을 지척에서 뵈옵고 친히 알현함으로써 오랜 소원을 이루게 되어 진심으로 기쁜 일이며…또한 이번에 저 이척의 도쿄 방문에 즈음해 폐하의 극진하고 융숭한 대접에 송구스럽고 감격하여 이에 삼가 감사를 드립니다.”이튿날인 15일, 순종은 일본 황족들이 사는 9개 궁가를 차례로 방문했다. 이 장면 역시 목격한 같은 증인은 “이 때의 방문은 직접 만나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이척’이라고 석판으로 인쇄한 아름다운 명함을 궁성 수석집사나 사무관에게 건네주는 방식에 그쳤다”고 증언한다.한 때 대한제국 황제였던 순종은 일본 제국의 꼭두각시가 되어 천황을 알현하고 다른 일본 천황가 황족들에게 문지기를 통해 명함을 돌리는 신세로 전락했다.이 때의 일본행이 어떻게 성사되었는지를 이 증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애초 총독부는 이 일을 후작 이완용에게 추진하라 했다. 하지만 이완용은 순종에게 면박만 당하고는 물러났다. 이에 하세가와 조선총독은 자작 윤덕영에게 일을 대신하게 했다.윤덕영은 순종이란 정공법을 피하고 그의 아버지이자 덕수궁에
캐리커처로 보는 ‘한 시대의 다른 삶 -항일과 친일’
전주역사박물관 ▶ 기획의도 한국의 근현대사 속에서 친일의 잔재를 확인하고 올바른 역사인식을 일깨우고자 함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기획한 전시로 이를 통해 일제하 친일과 항일에 대한 역사적 평가 및 화해와 반성의 자리를 마련하고자 함 항일인물과 친일인물의 행적을 극명하게 대비함으로써 역사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 확립 ▶ 전시개요 전 시 명 : 기획초대전 한 시대의 다른 삶 전시기간 : 2007년 8월 15일∼9월 16일 전시개막일 : 2007년 8월 14일 오후 2시 전시장소 : 전주역사박물관 민화실(2층) 주 최 : 전주역사박물관 주 관 :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 전시유물 :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초상화(캐리커처) 40여점 ▶ 전시내용 일제시대 미술, 문학, 언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는 친일인물과 같은 시대 다른 길을 선택한 항일인물을 분야별로 비교 전시함 40인의 인물을 캐리커처(caricature)로 표현. 캐리커처는 사건의 양상이나 인간의 자태 등을 그 특징을 잡아 익살스럽고 과장되게 표현한 그림으로 항일·친일 인물을 특징적으로 한 눈에 보여줌 분야별 초상화(캐리커처) 목록 주요인물 ① 학술 지조와 변절의 상징 – 근대사의 두 거인 ▲ 신채호 ▲ 최남선 ☞ 신채호(1880-1936) : 대한제국 시기 <황성신문>, <대한매일신보> 사설을 통해 민족주의계몽사상 고취. 1910년 신민회 동지들과 중국으로 망명. 1919년 상해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참여.「조선상고사」「조선사연구초」등을 출간하여 한국 근대사학의 기초 확립 ☞ 최남선(1890-1957) : 1919년 삼일운동 당시 <독립선언문> 기초. 한국 근대문학의 선구자였으나 1927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