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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1919년 임시정부 정통성 이어야”
“1919년 임시정부 정통성 이어야”(내일신문, 10.01.27)
中日 공동역사연구 26일 착수-뉴시스(06.12.18)
中日 공동역사연구 26일 착수 중국과 일본의 역사 해석 차이 해소를 위해 구성한 중일 공동 역사연구가 26일 시작된다.일본 정부는 18일 양국 역사 전문가 각 10명이 오는 26∼27일 이틀 일정으로 중국 베이징에서 역사 연구를 위한 첫번째 만남을 가질 것이라고 발표했다.이번 만남은 2차대전 당시 일본의 중국 침략과 지배를 해석하는 데서 형성된 대립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논의는 고대사부터 ‘문화혁명’과 ‘톈안먼(天安門)사건’ 등 근현대사에 이르는 민감한 문제들까지 깊이 파고들 것으로 보인다.이와 관련, 시오자키 야스히사(鹽崎恭久) 일 관방장관은 “이번 만남에서는 근대 역사까지 포함하는 폭넓은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일본과 중국 외교관들은 지난달 전쟁 전후 역사에 대한 공동 연구를 실시하고 오는 2008년까지 결론 짓자는 데 합의한 바 있다.아소 다로(麻生太郞) 일 외상과 리자오싱(李肇星) 중국 외교부 부장은 고대, 2차대전, 그리고 근현대 역사 연구를 위한 전문가 두 팀을 구성하기로 결정했다.한편 중국은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군국주의 부활의 상징이라며 일본과의 관계를 경색시켜 왔다.
[오늘의 경제소사/8월13일] 조선토지조사령-서울경제(07.08.12)
[오늘의 경제소사/8월13일] 조선토지조사령 1912년 8월12일, 조선총독부가 토지조사령을 내렸다. 전문 19조, 부칙 2개항으로 이뤄진 토지조사령의 목적은 소유관계 조사. 땅 주인을 파악하자는 것이다.토지조사를 위해 일제가 동원한 인원만 연 15만2,600여명. 돈도 요즘 가치 3,978억원에 해당되는 2,040만엔을 투입했다. 일제는 왜 조선 땅을 샅샅이 뒤졌을까. 식민지 수탈을 위해서다. 1918년 끝난 토지조사 결과 실측된 경지면적은 434만2,091정보. 1910년 추정치 239만9,812정보보다 80.9%나 늘어난 새 땅의 대부분이 조선총독부와 동양척식회사, 일본 농업자본, 거대 지주의 몫으로 돌아갔다.반대로 농민들은 결정적인 타격을 입었다. 근대적 토지제도에 대한 몰이해와 일제 시책에 대한 반발로 조사에 응하지 않은 농민은 소유권을 빼앗겼다. 더 큰 문제는 대대로 누려온 경작권의 상실. 모든 땅은 본 주인은 임금이라는 왕토(王土)사상 아래 양반이나 지주라도 임금으로부터 수조권(收組權), 즉 사용료 징수권을 위임받은 데 불과할 뿐 경작권은 농민에게 있다는 토지제도의 근간이 무너져 농민은 노예적 신분으로 전락하고 말았다.전체 농가의 79.6%에 달하는 소작ㆍ자소작 등 영세농민들은 경작권뿐 아니라 개간권마저 잃었다. 황무지를 일궈 자영농이 될 기회마저 원천봉쇄당한 농민들의 선택은 유랑. 30만가구의 농가가 고향을 등지고 만주로 떠났다.반면 재산권을 보장받게 된 지주층은 더욱 부유해지고 친일집단으로 변해갔다. 토지조사에 따른 반사이익이 친일세력 확산으로 이어진 셈이다. 오늘날에도 일제토지수탈의 흔적은 여전하다. 독도 면적의 350배에 이르는 땅이 총독부나 일본인 명의로 남아 있다. 친일파 후손들은 시장논리를 들먹이며 조상 땅 찾기에 열을 올린다. – 편집위원
[사설] 역사 왜곡하는 역사박물관은 필요하지 않다
한겨레신문 ..1948년 8월15일을 ‘건국절’로 제정하자는 뉴라이트 계열 인사들의 주장과 맥이 닿아 있다. 이들은 2008년 민관기구인 ‘건국60주년 기념사업위원회’를 중심으로 건국절 제정을 여론화하고자 했다. 정갑윤 한나라당 의원 등은 그해 7월 광복절을 건국절로 개칭하자는 법안을 발의했으며, 이어 12월 문화체육관광부는 임시정부 법통을 부인하는 내용의 홍보책자를 만들어 전국 학교과 공공기관에 뿌리기까지 했다. 당시 건국60주년 기념사업위 집행위원장을 맡았던 김진현 세계평화포럼 이사장이 역사박물관 건립위원장을 맡고 있으니, 똑같은 세력이 틈만 나면 그릇된 역사인식 ..<기사 발췌> [사설] 역사 왜곡하는 역사박물관은 필요하지 않다(한겨레신문, 10.01.26)
[한·일 100년 대기획]일제시대 어떻게 볼 것인가
[한·일 100년 대기획]<5>일제시대 어떻게 볼 것인가(서울신문, 10.01.27)
천황은 왜 순종에게 부드러운 고기만 대접했을까-한국일보(07.08.10)
천황은 왜 순종에게 부드러운 고기만 대접했을까‘대한제국 황실비사’ 곤도 시로스케 지음ㆍ이인숙 옮김 / 이마고 발행ㆍ367쪽ㆍ1만3,000원 순종의 초상화. 일제는 순종의 메이지 천황 알 현을 집요하게 추진한 끝에 1917년에 이를 성 사시켰다. 이마고 제공 로열패밀리들의 삶은 시대를 막론하고 대중들의 호기심을 끄는 소재다.비록 망국의 왕실일지언정 ‘대한제국’ 사람들에 대한 대중들의 궁금증도 마찬가지였나보다. 1907년부터 1920년까지 조선왕실을 관리하는 일제의 행정기구인 이왕직(李王職)의 하급관료로 일했던 곤도 시로스케(權藤四郞介).조선의 마지막 군주인 순종을 창덕궁에서 만 13년간 ‘보좌’(사실상의 감시)했던 그는 서울에서 1926년 9월 이왕가(李王家) 사람들의 면모를 담은 <이왕궁비사(李王宮秘史)>를 펴냈다.나라가 망한 지 10여년이 흘렀지만 ‘만백성의 어버이’ 였던 왕과 왕족들이 어떻게 사는가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을 반영하듯 이 책은 당시 신문에 비중있게 소개됐다.이 책을 번역한 <대한제국 황실비사>는 당시 왕가 사람들이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건강상태는 어땠는지, 이들의 행차에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가 내밀하게 기록돼있다.일본 천황을 알현하기 위해 도쿄에 간 순종에게 천황이 왜 부드러운 육류만 대접했는지, 창경원 개원식을 할 때 순종이 서양식 모닝코트를 입어야하는지 전통 복식을 차려야하는지를 둘러싼 논란 등 시시콜콜한 이야깃거리가 가득하다.책의 장점 또 한가지는 관찰자가 일본인이기 때문에 비교적 핵심정보에 접근했다는 점. 왕실을 농락하던 친일권력자인 이완용과 윤덕용의 파워게임, 왕실이 총독부와 친근해 보이도록 함으로써 민중들을 순치시키려 했던 식민지 권력자들의 음험한 계략 등이 생생하게 그려진다.그러나 책을 읽다보면 ‘그들이 어떻게 살았나’ 에 관심이 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천황은 왜 순종에게 부드러운 고기만 대접했을까-한국일보(07.08.10)
천황은 왜 순종에게 부드러운 고기만 대접했을까‘대한제국 황실비사’ 곤도 시로스케 지음ㆍ이인숙 옮김 / 이마고 발행ㆍ367쪽ㆍ1만3,000원 순종의 초상화. 일제는 순종의 메이지 천황 알 현을 집요하게 추진한 끝에 1917년에 이를 성 사시켰다. 이마고 제공 로열패밀리들의 삶은 시대를 막론하고 대중들의 호기심을 끄는 소재다.비록 망국의 왕실일지언정 ‘대한제국’ 사람들에 대한 대중들의 궁금증도 마찬가지였나보다. 1907년부터 1920년까지 조선왕실을 관리하는 일제의 행정기구인 이왕직(李王職)의 하급관료로 일했던 곤도 시로스케(權藤四郞介).조선의 마지막 군주인 순종을 창덕궁에서 만 13년간 ‘보좌’(사실상의 감시)했던 그는 서울에서 1926년 9월 이왕가(李王家) 사람들의 면모를 담은 <이왕궁비사(李王宮秘史)>를 펴냈다.나라가 망한 지 10여년이 흘렀지만 ‘만백성의 어버이’ 였던 왕과 왕족들이 어떻게 사는가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을 반영하듯 이 책은 당시 신문에 비중있게 소개됐다.이 책을 번역한 <대한제국 황실비사>는 당시 왕가 사람들이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건강상태는 어땠는지, 이들의 행차에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가 내밀하게 기록돼있다.일본 천황을 알현하기 위해 도쿄에 간 순종에게 천황이 왜 부드러운 육류만 대접했는지, 창경원 개원식을 할 때 순종이 서양식 모닝코트를 입어야하는지 전통 복식을 차려야하는지를 둘러싼 논란 등 시시콜콜한 이야깃거리가 가득하다.책의 장점 또 한가지는 관찰자가 일본인이기 때문에 비교적 핵심정보에 접근했다는 점. 왕실을 농락하던 친일권력자인 이완용과 윤덕용의 파워게임, 왕실이 총독부와 친근해 보이도록 함으로써 민중들을 순치시키려 했던 식민지 권력자들의 음험한 계략 등이 생생하게 그려진다.그러나 책을 읽다보면 ‘그들이 어떻게 살았나’ 에 관심이 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광복회 “가짜 유공자, 가짜 건국절… 가짜가 판친다”
광복회 “가짜 유공자, 가짜 건국절… 가짜가 판친다”(노컷뉴스, 10.01.27)
“친일 잔당들이 집요하게 역사박물관 추진”
“친일 잔당들이 집요하게 역사박물관 추진”(노컷뉴스, 10.01.27)
[성지를 찾아서] 천도교 성지 ④-항일 독립운동 유적지-매일신문(07.08.09)
[성지를 찾아서] 천도교 성지 ④-항일 독립운동 유적지 독자 여러분은 3·1운동 하면 누가 생각나십니까?정확한 설문조사를 해본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사람의 절대다수가 유관순을 떠올린다. 코흘리개에서부터, 연세 드신 분들까지 우리나라 삼일운동의 상징 아이콘은 ‘유관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유관순은 독립을 위해 목숨을 초개처럼 내던진 정의의 여신으로 당연히 숭앙받을 만하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면, 3·1운동의 핵심인물로 유관순이 너무(?) 강조되는 면이 없지 않아서 다른 독립운동가들이 손해(?) 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할 때가 있다. 재조명되어야 할 독립운동가는 여럿 계시지만, 그 가운데에는 천도교 제3대 교조 의암 손병희 선생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의암은 수운 최제우, 해월 최시형에 이은 천도교 제3대 교조로서 신앙인의 길과 독립운동가로서의 삶을 완전히 일치시킨 위대한 인물이다. 천도교 성지를 담기 위해 서울 지역을 취재하다 보니, 독립운동의 현장과 천도교 성지가 맥을 같이하고 있었다. 서울 도심에서 만날 수 있는 천도교 성지는 올해로 건립 85년째인 종로구 경운동 천도교 중앙대교당, 기미년 3·1독립선언서 배부터, 삼일만세운동이 울려퍼진 탑동공원, 종로구 수운회관 앞 세계어린이운동발상비, 3·1 독립선언서를 인쇄했던 보성사 기념비(서울 조계사 뒤쪽), 명월관 분관인 태화관에서 3·1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이종일 동상, 33인이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태화관 터, 해월 최시형 참수터, 한때 천도교가 운영하였던 고려대학교 내 기념물과 의암흉상, 몰려드는 천도교인들로 인하여 형성되기 시작한 인사동 일대를 들 수 있다. 외곽으로는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무명전사들을 수련시킨 강북구 우이동 봉황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