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huge collection of 3400+ free website templates, WP themes and more http://jartheme.com/ at the biggest community-driven free web design site.
img-top-introduce[1]

주요기사

[야스쿠니 캠페인] 8월엔 ‘점프’를, 9월엔 쇼핑을

-0001년 11월 30일 542

    한겨레21 길윤형 기자   8월이 왔다. 지난 4월 시작된 ‘야스쿠니신사 합사 피해자 돕기 모금운동’(이하 캠페인)도 어느새 넉 달째로 접어들었다. 그동안 캠페인은 한국에 살아 있는 야스쿠니 생존 합사자들과 일본 식민 지배의 피해를 온몸으로 떠안아온 대만 원주민들, 오키나와 전쟁으로 섬 주민 4분의 1이 희생되는 고통을 겪은 오키나와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왔다. 일제 침략이라는 비슷한 고통을 받아온 대만과 오키나와인들의 시선은 우리와 닮은 듯하면서도 미묘한 차이를 보였다.  평소 관람가 절반으로 공연 서우영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야스쿠니신사를 바꾸지 못하면 일본을 바꿀 수 없고, 일본을 바꾸지 못하면 동아시아의 평화를 만들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만큼 야스쿠니신사는 동아시아를 화해와 협력의 길로 이끌기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지만, 이 문제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여전히 ‘타자의 시선’이다. 김은식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 한국위원회 사무국장은 “중요성은 인식하면서도, 그것을 내 문제로 절실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서우영 실장은 “침체된 관심을 끌어올리기 위해 8∼9월에는 다양한 행사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먼저 <난타>에 이어 우리나라 넌버벌 퍼포먼스의 새 장을 연 뮤지컬 <점프>팀이 8월13일 저녁 7시 서울 종로2가 시네코아빌딩 지하 2층 점프 전용관에서 캠페인을 지원하기 위한 공연을 연다. <점프>는 태권도와 태껸의 고수인 한 가족이 와이어나 카메라 연출 없이 맨몸으로 놀라운 점프와 발차기 동작을 선보이는 무언극으로,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어워드 위너’상과 2006년 올해의 프로듀서상 등 국내외 유명한 상을 휩쓸었다.

[중국내 항일유적지]광복군 제3지대 창설 건물 나이트클럽으로-세계일보(07.08.09)

2007년 8월 10일 456

[중국내 항일유적지]광복군 제3지대 창설 건물 나이트클럽으로 中 재개발 붐에 유적지 대부분 사라지거나 훼손아예 발굴 않은 곳도… 항일 애국혼 ‘망각 속으로’     세계일보는 지난 3월 ‘해외 독립운동 현장 찾아서’ 기획을 통해 중국 내 항일유적지 가운데 상당수가 엉터리로 지정됐다고 보도했다. 국가보훈처는 이 같은 지적에 따라 지난달 22∼31일 중국에 충북대 박걸순 교수를 비롯한 답사단 4명을 파견해 독립운동 사적지를 재조사했다. 세계일보는 답사단과 동행, 중국 내 항일 유적지의 실태와 현주소를 취재해 4회에 걸쳐 연재한다. ‘아파트가 들어선 임시정부 청사, 나이트클럽으로 바뀐 광복군 창설 건물, 흔적조차 없는 광복군 주둔지….’ 중국에는 우리 독립운동가들이 활동했던 항일운동 유적지가 셀 수 없이 많다. 하지만 보존 상태를 확인한 답사단은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웠다. 아예 발굴조차되지 않은 채 방치되거나 형체도 없이 사라진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항일유적지는 그렇게 역사 속에서 점차 잊혀져 가고 있었다. ◆발굴조차 안 된 광복군 주둔지=답사단이 찾은 독립운동가들의 사적지는 상당수 망각 속에 묻혀 있었다. 1940년 김학규 장군이 창설한 광복군 제3지대는 안후이(安徽)성 푸양(阜陽)을 근거지로 국내 진공작전을 모색한 부대다. 제3지대가 1차로 주둔한 당시 푸양현 산타지(三塔集)는 김우전 전 광복회장의 증언을 토대로 본지가 현장 확인, 지난 3월 보도한 이후 국내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곳이다. 주둔지의 현재 정확한 주소는 푸양시 푸난(阜南)현 산타진(三塔鎭) 허우자오펑좡(後趙棚莊) 58호. 하지만 이곳이 주둔지라는 사실은 마을을 가로지르는 호수와 허름한 옛 건물로만 추정할 뿐이다. 산타지를

혼다 의원, 위안부결의 채택 직후에 명언-산케이신문(07.08.03)

-0001년 11월 30일 296

혼다 의원, 위안부결의 채택 직후에 명언 美하원은 위안부문제에서 일본을 규탄하는 결의를 채택했으나, 이 결의를 주도한 마이클 혼다 의원(민주당, 캘리포니아주 선출)은 채택 직후의 기자회견에서 가장 먼저 주미중국계 반일단체에 대한 감사를 전하고, 동 단체가 긴 시간에 걸쳐 위안부문제에 관한 동 의원의 일본비난 활동에 가장 큰 원동력이 되어 왔다고 명언했다.혼다 의원은 7월 30일의 동 회견 첫머리에서 ‘감사’의 가장 첫 대상에 주미중국계단체인 ‘세계항일전쟁사실 유지보호연합회(이하 항일연합회)’의 이름을 들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1999년 이 단체가 아시아에서 일어난 일의 영상전시회를 열었고 그 중 하나가 위안부문제였다. 그리고 동 단체의 지도와 주창한 내용이 우리 의원사무소와 나 자신에 있어 첫 (동 문제에 대한) 만남이었다. 동 단체가 주창하는 내용이야말로 나에게 정보와 추진력을 주었고 캘리포니아 주의회에서 공동결의를 채택하게 만들었다.”주 의회에서의결의안은 항일연합회의 간부련이 혼다 의원과 ‘함께 쓰고 함께 싸워 성립시켰다’고 명언했다. 동 간부련은 이후에도 혼다 의원이 연방의회 하원선거에 출마할 때 정치헌금 등에서 전면지원하고, 2001년부터 이번까지 총 4번의 위안부결의안 제출에서도 배후의 추진력이 되어 왔음을 같은 식으로 현지 매스컴 등에 밝혀 왔다.한편 이번 위안부결의에서는 일본 측의 최근 동향에 대응하여 미국 의회가 자주적으로 비판의 움직임을 취하며 한국계 단체가 동조한다는 구조가 제시되어 왔다.그러나 혼다 의원이 항일연합회야말로 일본규탄의 진정한 추진역할이라는 점을 처음으로 밝히고, 게다가 그 단체가 중국당국의 의향을 반영하여 항상 역사문제로 일본을 비난하는 자세를 취해 왔다는 실태를 볼

[중국내 항일유적지]광복군 제3지대 창설 건물 나이트클럽으로-세계일보(07.08.09)

2007년 8월 10일 431

[중국내 항일유적지]광복군 제3지대 창설 건물 나이트클럽으로 中 재개발 붐에 유적지 대부분 사라지거나 훼손아예 발굴 않은 곳도… 항일 애국혼 ‘망각 속으로’     세계일보는 지난 3월 ‘해외 독립운동 현장 찾아서’ 기획을 통해 중국 내 항일유적지 가운데 상당수가 엉터리로 지정됐다고 보도했다. 국가보훈처는 이 같은 지적에 따라 지난달 22∼31일 중국에 충북대 박걸순 교수를 비롯한 답사단 4명을 파견해 독립운동 사적지를 재조사했다. 세계일보는 답사단과 동행, 중국 내 항일 유적지의 실태와 현주소를 취재해 4회에 걸쳐 연재한다. ‘아파트가 들어선 임시정부 청사, 나이트클럽으로 바뀐 광복군 창설 건물, 흔적조차 없는 광복군 주둔지….’ 중국에는 우리 독립운동가들이 활동했던 항일운동 유적지가 셀 수 없이 많다. 하지만 보존 상태를 확인한 답사단은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웠다. 아예 발굴조차되지 않은 채 방치되거나 형체도 없이 사라진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항일유적지는 그렇게 역사 속에서 점차 잊혀져 가고 있었다. ◆발굴조차 안 된 광복군 주둔지=답사단이 찾은 독립운동가들의 사적지는 상당수 망각 속에 묻혀 있었다. 1940년 김학규 장군이 창설한 광복군 제3지대는 안후이(安徽)성 푸양(阜陽)을 근거지로 국내 진공작전을 모색한 부대다. 제3지대가 1차로 주둔한 당시 푸양현 산타지(三塔集)는 김우전 전 광복회장의 증언을 토대로 본지가 현장 확인, 지난 3월 보도한 이후 국내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곳이다. 주둔지의 현재 정확한 주소는 푸양시 푸난(阜南)현 산타진(三塔鎭) 허우자오펑좡(後趙棚莊) 58호. 하지만 이곳이 주둔지라는 사실은 마을을 가로지르는 호수와 허름한 옛 건물로만 추정할 뿐이다. 산타지를

친일재산 알고 있었다면 귀속 결정 적법

2010년 1월 20일 421

친일재산 알고 있었다면 귀속 결정 적법(bbs, 10.01.20)

미쓰비시 ‘99엔’ 내놓고 침묵일관… ‘보소, 좀!’

2010년 1월 25일 439

미쓰비시 ‘99엔’ 내놓고 침묵일관… ‘보소, 좀!’(뉴스천지, 10.01.23)

“친일재산 알고 샀다면 국고환수해야”

2010년 1월 20일 357

“친일재산 알고 샀다면 국고환수해야”(ytn, 10.01.20)

“원자폭탄 피폭 2세 환우들도 우리 곁에 함께 살고 있어요”

2010년 1월 25일 385

“원자폭탄 피폭 2세 환우들도 우리 곁에 함께 살고 있어요”(국민일보, 10.01.22)

미 국무부 부장관, 위안부문제 정부에 이해-아사히신문(07.08.04)

2007년 8월 7일 332

미 국무부 부장관, 위안부문제 정부에 이해 일본을 방문중인 네그로폰테 미국무 부장관은 3일 미국대사관에서의 기자회견에서 일본군위안부문제에 대하여 일본의 총리가 공식적으로 사과하도록 요구한 결의를 미하원본회의가 채택한 것을 언급, ‘2차대전 중에 일어난 여성의 인신매매에 대해서는 유감으로 생각하며, 중대한 인권침해이다. 피해자에게 깊은 동정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일본에 역사적 책임이 있다는 생각을 제시했다. 나아가 ‘일본정부는 이 문제에 대하여 역대정부의 사과를 포함한 조치를 취해왔다. 작년 10월 아베 총리는 과거의 성명(고노관방장관담화)을 재확인하였다’고 말하고 일본측의 대응에 이해를 표시했다. 또한 ‘미일관계는 강고하며, 위안부결의에 의해 그 상황이 변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단독]단재 신채호 항일운동 상해근거지 찾았다-세계일보(07.08.10)

2007년 8월 10일 357

[단독]단재 신채호 항일운동 상해근거지 찾았다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1880∼1936·사진) 선생이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항일운동을 하던 시절의 거주지와 당시 발행한 국한문 주간신문 ‘신대한(新大韓)’의 발행 장소가 처음으로 확인됐다.세계일보 취재팀과 국가보훈처가 지난달 22∼31일 상하이 등 독립유적지를 답사한 결과, 단재가 상하이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시기(1919년 4월∼1920년 4월)에 머물던 프랑스 조계의 바이얼로(白爾路) 455호는 현재 상하이시 루완구(盧灣區) 타이충로(太倉路) 233번지 일대로 변경된 것으로 파악됐다. 또 당시 신대한이 발행된 프랑스 조계 바오캉리(寶康里) 54호는 현재 루완구 화이하이중로(淮海中路) 333번지 일대로 바뀌었다.신대한은 외교독립론을 주장하는 이승만 박사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이 되자 임시정부를 나온 단재가 1919년 10월 창간한 잡지다. 하지만 옛 건물은 모두 철거되고 그 자리에는 대형 오피스텔과 백화점 건물이 자리를 잡았다.학계에서는 중국의 대규모 도시개발 과정에서 여러 차례 주소가 바뀌어 추적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당시 지적도를 바탕으로 고증한 이번 성과는 뜻 깊다고 평가했다.구한말과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민족사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단재는 1910년 중국 칭다오(靑島)로 망명, 초기에는 만주 등지에서 활동했다. 1919년 4월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해 이듬해 4월까지 상하이에 머물며 신대한의 주필 등으로 활동했다.충북대 박걸순 교수(사학)는 “단재는 독립운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지만 그간 임정에서의 활동이나 유적지 발굴에 소홀한 측면이 있다”면서 “이번 고증 작업은 향후 단재 독립운동 연구에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