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이중 희생양 조선인 전범>
(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제2차세계대전 종전 이후 전범재판에서 A급 전범으로 교수형에 처해진 일본인은 7명이다.
BㆍC급 전범은 아시아 전역에서 2만5천여 명이 용의자로 체포됐으며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은 5천700명, 그중 948명이 사형에 처해졌다.
대부분은 일본인이지만 BㆍC급 전범 가운데는 조선인 148명이 포함돼 있었으며 이 중 23명은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들은 정말 ‘일제의 앞잡이’였을까?
우쓰미 아이코 일본평화학회장이 펴낸 ‘조선인 BㆍC급 전범, 해방되지 못한 영혼(동아시아 번역ㆍ출간)’은 이중 희생양이 된 조선인 전범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저자는 “조선인 전범 가운데 군인은 필리핀 포로수용소장이던 홍사익 중장과 지원병 두 명 등 단 3명 뿐이었다”고 말한다.
나머지 145명 가운데 16명은 통역으로 징용됐으며 129명은 타이, 자바, 말레이 등 동남아 지역 포로수용소에서 감시원으로 모집된 군속이었다. 오늘날 군무원에 해당하는 군속은 당시 이등병보다 못한 취급을 받았다.
저자는 군마나 군견보다 못한 존재였던 그들이 전범이 된 까닭을 파헤쳤다.
조선인 감시원은 날마다 연합군 포로와 접하고 살았다. 일본군 사령부가 내린 포로 학대 명령을 직접 실행한 것은 조선인 감시원의 몫이었다. 자연히 종전 후 연합군 포로의 분노가 그들에게 집중됐다.
일본 군부가 포로 학대의 책임을 조선인 감시원에게 돌린 것도 한 이유였다.
1945년 9월17일 시행된 ‘포로 취급과 관련 연합국 측의 심문에 대한 응답 요령 등에 관한 지시’는 당시 육군대신 시모무라 사다무가 하달한 문서로 ‘시모무라 문서’라 불린다.
시모무라는 연합국이 포로 학대를 중요한 전쟁범죄로 여긴다는 것을 알고 연합국 측 신문에 ‘포로 학대의 원인은 수용소가 조선인과 대만인에 의해 조직됐고 그들의 낮은 교육수준이 포로 학대를 유발한 원인임을 명확히 밝힐 것’이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연합군은 전범 재판에서 한국인 군속 대부분이 일본에 의해 강제로 징용됐다는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서류상 그들의 국적은 일본이었고 창씨개명으로 이름조차 일본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철저하게 이용당한 채 버려졌고 사형당한 23명은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됐다.
1991년 조선인 BㆍC급 전범 모임인 동진회 회원들은 전쟁의 책임을 전가한 일본 정부의 사과와 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1999년 최고재판소는 기각결정을 내렸다.
한국인의 태도도 일본에 비해 나을 것이 없었다. 돈을 벌기 위해 자원한 것이 아니냐며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이도 있었고 친일파, 일본군의 앞잡이라고 손가락질하기도 했다.
저자는 25년 전 일본에서 출간된 이 책의 한국어판 서문에서 “그 전쟁이 무엇이었는지, 그 책임이 어떻게 추궁돼 왔는지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 책을 통해 많은 일본인이 조선인 전범의 고뇌를 이해하고 그 운동을 지원해 준다면 그보다 기쁜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호경 옮김. 336쪽.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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