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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07.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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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관리가 13년간 지켜본 순종과 주변> 
 

 
곤도 시로스케 회고록 번역 출간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1917년 6월, 강압에 못 이겨 내키지 않는 일본행에 나선 망국 조선의 군주 순종 이척은 도쿄 체류 3일째인 그달 14일 오전 9시30분 메이지 천황을 알현하고는 이런 “말씀을 올리셨다”고 이 장면을 목도한 당시 증인은 말한다.

“성상 폐하, 저 이척이 좀 더 일찍 방문해 알현해야 하나 숙병(宿病)에 시달리는 너무 병약한 몸이라 전례를 수행하지 못할까 해서 날을 미루다가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다행히 오늘에야 용안을 지척에서 뵈옵고 친히 알현함으로써 오랜 소원을 이루게 되어 진심으로 기쁜 일이며…또한 이번에 저 이척의 도쿄 방문에 즈음해 폐하의 극진하고 융숭한 대접에 송구스럽고 감격하여 이에 삼가 감사를 드립니다.”

이튿날인 15일, 순종은 일본 황족들이 사는 9개 궁가를 차례로 방문했다. 이 장면 역시 목격한 같은 증인은 “이 때의 방문은 직접 만나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이척’이라고 석판으로 인쇄한 아름다운 명함을 궁성 수석집사나 사무관에게 건네주는 방식에 그쳤다”고 증언한다.

한 때 대한제국 황제였던 순종은 일본 제국의 꼭두각시가 되어 천황을 알현하고 다른 일본 천황가 황족들에게 문지기를 통해 명함을 돌리는 신세로 전락했다.

이 때의 일본행이 어떻게 성사되었는지를 이 증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애초 총독부는 이 일을 후작 이완용에게 추진하라 했다. 하지만 이완용은 순종에게 면박만 당하고는 물러났다. 이에 하세가와 조선총독은 자작 윤덕영에게 일을 대신하게 했다.

윤덕영은 순종이란 정공법을 피하고 그의 아버지이자 덕수궁에 칩거한 고종을 공략하는 우회전법을 택했다. 윤덕영은 협박과 버티기, 그리고 괴롭힘이란 고전적인 수법으로 고종을 짓눌렀다.

“전하(고종)께서 역정을 내시며 물러가라 했으나, 윤 자작은 완강하게 버티면서 고압적인 태도로 압박을 가하고 허락을 강요하면서 매일 오후 2-3시부터 밤 2시 무렵까지 전하 앞에 똑바로 서서 움직이지 않은 채, 전하께 정신적인 고뇌와 육체적 피로를 안겨주었다.”

이완용은 도대체 어떤 인물이었을까? 우리는 친일파라는 단 한마디로 그의 모든 것을 규정하곤 했다. 하다 못해 친일파로 군림하기 위해 그가 어떻게 ‘분투’해야만 했는지도 묻지 않았다.

하지만 1907년 이후 1920년까지 13년간 순종을 시종하고, 나아가 그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 일본인 곤도 시로스케(權藤四郞介)는 이완용이 식민지 조선에서 살아남기 위해 벌인 ‘눈물겨운 투쟁’들을 생생하게 알려준다.

예컨대 같은 친일파지만 윤덕영에게 번번이 밀린 그가 이런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나름의 회심작으로 “창덕궁을 일본 황실에 헌상하자”는 제안을 내놓기도 했다고 한다.

덕수궁을 나온 뒤 곤도는 조선왕실에서 그 자신이 보고 듣은 일화들을 1926년 ‘이왕궁비사'(李王宮秘史)라는 단행본으로 정리해 조선에서 출간한다.

고려대 사학과 출신으로 일본어 번역ㆍ통역 전문가인 이언숙씨가 옮기고 부경대 사학과 신명호 교수가 감수하고 해설을 부친 ‘대한제국황실비사'(이마고)는 ‘이왕궁비사’를 옮긴 것이다.

한국 근대사의 여러 이면을 그 어떤 기록보다 풍부하게 담고 있음에도 지금껏 번역조차 이뤄지지 못한 까닭은 “조선황실 관련 서술이나 그밖의 표현에서 (독자들이) 참기 어려운 분노를 느끼게 될 것”(이언숙)이라든가 “일제의 침략 만행을 이처럼 미화하는 곤도 시로스케의 생각에 동의할 한국인은 어디에 있겠는가?”(신명호)라는 반응에서 잘 드러난다.

이 때문인지 이번 번역본은 곳곳에서 독자를 향해 일제의 강점에 분노하고 치를 떨어야 한다고 강조하는가 하면, 심지어 독자보다 앞서 역자와 해설자가 흥분하기도 한다. 나아가 본문 기술이 조작이거나 엉터리임을 입증하기 위해 그것에 반대되는 또 다른 기록들을 갖다 대면서 “봐라. 새빨간 거짓말이지 않느”고 목청을 높인다.

이는 이번 번역본이 갖는 결함이다. 논설이나 웅변이 아닌 글에서 독자에게 특정한 관점과 감정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독자에게 어떤 관점을 강요한다는 것은 독자는 무지몽매하니, 우리와 같은 전문가에게 반드시 교육을 받고 훈시를 들어야 한다는 계몽주의적 시각일 뿐이다.


367쪽. 1만3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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