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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전북일보] 파손된 ‘이두황 단죄비’ 복원 절차는 ‘깜깜’

2025년 8월 6일 280

차량이 들이받은 것으로 추정⋯CCTV 있지만 영상 흐려 판독 불가 민족문제연구소 “지자체 예산 부족 호소⋯복원 비용 마련 막막” 친일 잔재를 알리기 위해 설치된 이두황 단죄비가 차량이 들이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사고로 파손된 가운데, 복원 절차가 깜깜하다. 운전자를 찾아내 복원비용을 청구해야 하지만 인근에 설치된 방범용 CCTV는 성능이 떨어져 사고차량 특정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고, 예산 지원 또한 현재로써는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5일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에 따르면 지난달 24일로 추정되는 교통사고로 전주시 완산구 중노송동 기린봉 입구에 세워진 이두황 단죄비가 차량으로 추정되는 물체에 들이받혀 심하게 파손됐다. 인근에는 2016년 설치 당시 전주시가 설치한 방범용 CCTV가 있지만 사고 당시 촬영된 영상은 화질 저하 등의 문제로 사고 시간조차 판별이 불가능한 것으로 확인됐다. 전주완산경찰서 관계자는 “바로 앞에 CCTV가 있지만 녹화된 영상이 흐려 번호판 숫자 판독이 안된다”며 “현재로서는 명확한 사고 시간도 확인이 안된다. 조금 더 멀리 있는 CCTV를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두황 단죄비는 지난 2016년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가 친일파 이두황의 묘소 인근에 그의 만행을 알리기 위해 설치했다. 설치 당시 전주시는 이두황 단죄비 바로 옆에 이두황 단죄비 표시판을 설치하고, 파손 우려 등에 대응하기 위해 방범용 CCTV를 설치했다. 이두황(1858~1916)은 동학농민군을 무참히 살해했으며,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을미사변) 당시에 훈련대 1대대장으로 우범선, 이진호, 이주회와 함께 국모를 살해하는 범죄행각을 벌였다. 또 1908년에는 전라북도 관찰사에 임명돼 이른바 일본의 ‘남한 대토벌’로

[제주의소리]80년만에 ‘일제 블랙리스트’로 되살아난 제주 독립운동가들

2025년 8월 5일 413

민족문제연구소, 광복 80주년 맞아 독립유공자 37명 포상 신청 광복 80주년을 앞두고 민족문제연구소가 독립유공자 추가 발굴에 나선 가운데, 제주 출신 노동운동가 현호진 등 37명의 항일운동가가 국가보훈부 포상 신청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일제가 작성한 ‘요주의 인물 블랙리스트’ 약명부에 수록된 인물들로, 식민지 시기 일본 본토에서 활발한 독립운동과 사회운동을 벌인 사실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광복 80주년을 계기로 연초부터 독립유공자 추가 발굴 조사·연구에 착수한 결과, 1차로 37명의 독립운동가에 대한 정밀 행적 검증을 완료하고 지난 6월 30일 국가보훈부에 독립유공자 포상을 신청했다. 발굴 대상은 2023년에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약명부’에 실린 인물들이다. 1945년 3~4월 무렵 작성된 ‘약명부’는 일제 고등경찰이 요주의 조선인에 대한 인물정보를 각 도별로 정리해 일본과 조선 등지의 보안 관계자 그리고 연안·국경 지역의 경찰서와 헌병대 치안 책임자에게 배포한 문서철이다. 총 790명의 신상 정보와 함께 당시 주소와 직업, 항일 행적 등이 상세히 기록돼 있어 일제판 블랙리스트라 불릴만한 약명부는 역설적으로 독립운동가들의 항일운동을 입증할 강력한 근거가 될 수 있는 중요자료로 꼽힌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약명부 검토 결과 이중 168명은 서훈됐으나, 독립운동 업적이 명백하고 흠결이 없는 상당수가 포상에서 빠져있었다고 밝혔다. 연구소는 1차로 전라남도 관할 인물에 대한 정밀조사를 실시했고, 친일 행적이 확인되거나 해방 후 행적이 논란이 될 수 있는 인물을 제외한 37명의 독립유공자 포상을 신청했다. 약명부에는 제주도 성산면 성산리 237번지를 본적과 주소로 둔

[헤럴드경제] 강북구 근현대사기념관 광복 80주년 맞아 다양한 기념행사 개최

2025년 8월 4일 301

특별전시‧학술회의‧체험행사 통해 독립정신 계승과 역사 재조명 [헤럴드경제=박종일 선임기자]서울 강북구(구청장 이순희)는 광복 80주년을 맞아 근현대사기념관을 중심으로 특별전시, 학술회의, 체험행사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지역에 깃든 독립운동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고 밝혔다. 먼저, 8월 1일 개막한 특별전시 ‘무너미에 깃든 독립운동가의 숨결’은 강북구 수유동 ‘무너미’ 일대에 안장된 15위 독립운동가들의 생애와 업적을 집중 조명한다. 사진, 유물, 어록 등 다양한 전시자료를 통해 독립운동의 역사를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됐으며, 전시는 12월 31일까지 이어진다. 이날 개막식에는 이순희 강북구청장, 함세웅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윤경로 근현대사기념관 관장 등이 참석했으며, 전시 관람이 함께 진행됐다. 이순희 강북구청장은 “강북구는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잠들어 계신 독립정신의 성지”라며, “이번 전시가 지역의 역사적 자긍심을 되새기고, 특히 청소년들에게 살아있는 역사 교육의 장이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이어, 8월 8일에는 ‘독립운동가들이 꿈꾼 나라’를 주제로 한 학술회의가 강북구청 4층 대강당에서 오후1시부터 6시까지 개최된다. 이번 학술회의는 강북구와 민족문제연구소가 공동 주최하고 근현대사기념관이 주관한다. 조국의 해방과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선열들이 어떤 나라를 꿈꾸었는지 조명, 대한민국의 미래상에 대한 지혜를 함께 모색하는 자리다. 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의 기조 발제를 비롯해 4건의 주제발표와 종합토론이 예정되어 있다. 또, 광복절 당일인 8월 15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근현대사기념관 내 강북탐구공간에서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근현대사기념관과 서울북부보훈지청이 공동 기획한 이번 행사는 ▲독립운동가 MBTI ▲전시 퀴즈풀기 ▲자개 틴케이스 및

[오마이뉴스] 친일 반민족 세력이 만든 국가보안법, 21세기 대한민국에 어울리지 않는다

2025년 8월 4일 715

유엔 인권이사회도 국가보안법 폐지를 강력히 권고해 특히 계엄령이 떨어진 1948년 11월 17일부터 ~ 1949년 2월 기간 집중적으로 학살을 자행합니다. 학살을 피해 간 마을이 단 한 군데도 없을 정도로 잔혹했습니다. 역사가들이 이승만 친일 반민족 세력을 분단 세력이라 칭하는 이유입니다. 실제로 이승만 친일 반민족 세력은 제헌의회 소장파 의원들이 주도한 반민족행위 처벌법(약칭 반민법)이 1948년 9월 22일 시행되자 화들짝 놀랍니다. 친일 반민족 세력들은 이에 맞서 자신들 생존 차원에서 즉각 반격을 시도합니다. 반민법 시행 이튿날인 9월 23일 서울운동장에서 반공 구국 총궐기 국민대회를 개최합니다. 이 대회에서 이승만 대통령, 이범석 국무총리, 김병로 대법원장이 참석해 대회를 치하합니다. 이승만 정권을 떠받친 친일 반민족 세력들은 반공을 전면에 내세워 ‘국론 통일과 화합에 방해된다’며 반민법 시행을 극구 반대합니다. 놀랍게도 이 반공 구국 궐기 국민대회를 주도한 자가 한국반공단 단장이자 대한일보사 명예 사장인 이종형입니다. 그는 일제 밀정으로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체포, 투옥, 살해한 인물로 독립운동가를 고문 치사한 노덕술, 하판락을 능가하는 친일 반민족행위자입니다. 2015년 개봉된 영화 『암살』에서 안옥윤의 모델인 항일투사 남자현 여사를 일제 경찰에 밀고했던 악질 친일파입니다. 친일 반민족 세력들은 대동청년단 출신 국회의원을 앞세워 반민법 시행 이틀 전인 1948년 9월 20일에 국가보안법 전 단계인 ‘내란 행위 특별처벌법’을 발의합니다. 그리고 그해 말 국가보안법을 전격 통과시킵니다. 1948년 12월 1일 국가보안법이 시행되자 친일 반민족 분단 세력들은 대규모 검거 선풍을

[오마이뉴스] 항일 명장 허형식 장군 순국 83주기에 부치다

2025년 8월 4일 290

2025년 8월 3일은 동북항일연군 제3로군장 겸 총참모장 허형식 장군 순국 83주기 일이다. 허형식 장군은 구한말 13도 창의군 군사장 왕산 허위 선생의 집안 조카로 1909년에 경북 구미시 임은동에서 태어나셨다. 1908년 10월 21일, 왕산 선생이 서대문 형무소에서 교수형으로 순국하신 이후, 가솔들은 일제의 등살에 견딜 수 없어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1915년 왕산 유족들은 괴나리봇짐을 싸서 북만주로 이주하였다. 이후 허형식은 항일 최전선에서 맹렬히 투쟁하다가 약관 28세 때, 동북항일연군 제3로군 총참모장 및 제3군장에 오른 만주 제일의 항일 명장 파르티잔이 되었다. 1940년대 초 일제의 항일 세력 토벌이 극심해지자 대부분 항일 빨치산들은 국경을 넘어 러시아로 피신하였다. 하지만 허 장군은 동북의 인민들을 그대로 둔 채, 또 다른 외세에 의존하여 자신의 목숨을 구차하게 구걸치 않고자 북 만주의 동포들을 끝까지 지키며 항일 활동을 전개했다. 그런 가운데 1942년 8월 3일 새벽, 헤이룽장 성 경안현 청송령 골짜기에서 일제 토벌대의 기습 공격을 받자 당신의 부하는 살리고, 자신은 장렬히 순국했다. 2025년 8월 3일, 구미시 임은동 왕산기념관에서 장군의 83주기 추모제가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부(지부장 정규환) 주최로 열릴 예정이다. 뜨거운 염천임에도 다수의 귀빈들이 참석, 장군의 장렬한 순국에 경배를 드리며 거룩한 희생을 드높이 기릴 것이다. 백마 타고 오는 초인 필자는 1999년 여름 중국 대륙 항일 유적지를 답사 하던 중, 하얼빈 동북열사기념관에서 허형식 장군의 거룩한 행적을 알게 된

[한겨레] “해방 전, 옛 음악이 얼마나 힙한지 아시나요” [.txt]

2025년 8월 4일 347

여기, 이 사람 ㅣ ‘동아시아 팝, 소실의 자취’ 저자 신현준·이준희 1945년 이전의 축음기 음반 공동연구 ‘아시아 팝’은 경계 넘나든 교류의 산물 “팝은 영미의 것”이라는 편견을 넘어 “음악으로 본 역사입니다. 정치는 이념의 이항 대립, 경제는 발전 논리가 중심이라면 음악에서는 인간 삶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제한된 조건에서 부족한 자원을 갖고 옛사람들이 음악으로 치열하게 놀았다는 거죠. 악기도, 공부할 책도 부족한 그때 음악인들은 노래를 만들고 대중은 재미를 위해 투쟁했다는 것, 의미를 위한 투쟁도 절박했지만 재미를 위한 투쟁도 그만큼, 또는 그보다 더 절박했다는 얘기죠.” (신현준 성공회대학교 사회융합학부 교수) 1910년대 초부터 1945년까지 동아시아 대중음악 교류는 지금 못잖게 국제적이고 활발했다. 당시 대중가요를 일컬어 일본과 조선은 ‘유행가’, 중국·홍콩은 ‘시대곡’이라고 불렀다. 다수의 음악인들이 조선, 일본, 중국, 대만을 오가며 경계를 넘어 가로질렀다. 낮에는 불편하게 상충하던 각국의 사람들이 밤에는 ‘같은 음악인’으로 화음을 쌓아 올리며 교류했다. 최근 ‘동아시아 팝, 소실의 자취’(아시아의 미 시리즈 24, 서해문집)를 펴낸 공동 저자 신현준·이준희를 29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옛 음악에 대한 관심으로 의기투합해 1945년 이전 에스피 음반(SP·축음기 음반)에 기록된 소리를 공동연구했다. 그 결과 1914년부터 1945년까지 탄생하고 잊힌 음악의 자취를 발굴하면서 동아시아 사람들의 감각과 시대적 풍경을 생생하게 복원할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 힘들었던 시대, 나라 잃은 백성들을 위로했던 음악’이라고 표현하는 서사에 반대하는 건 아니지만,

[시사IN] 탄핵 광장의 그 깃발, 우리가 기증한 민주주의

2025년 8월 1일 500

[사람IN] 〈시사IN〉이 주목한 이 주의 사람. 더불어 사는 사람 이야기에서 여운을 음미해보세요. 깃발이 차가운 공기를 가른다. 응원봉은 새카만 밤을 밝힌다. 누군가는 플루트로 혁명의 노래를 연주하고, 누군가는 열 번째 멜로디언을 분다. 그 사이를 분주히 헤치고 다니는 몇몇 사람들. 가슴팍에 ‘민주주의 기록단’이라는 명찰을 단 채 불쑥 내민 명함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당신의 민주주의를 기증받습니다.’ 김승은 식민지역사박물관 학예실장(54)과 동료들은 지난겨울부터 봄까지 시민들이 윤석열 탄핵 집회에 가져온 ‘시위 용품’을 모집했다. “1월부터 이 명함을 들고 나가기 시작했어요. ‘당신의 민주주의를 기증받습니다. 시위 용품을 기증해주세요. 깃발, 응원봉, 손팻말 어떤 것이든 괜찮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졌어요. ‘전국 눈사람 안아주기 운동본부’ 이런 깃발을 보면 저희도 궁금하잖아요(웃음).” 5월16일부터 서울 용산구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긴급 전시행동 〈민주주의와 깃발〉의 비하인드 스토리다. 과연 얼마나 들어올까, 처음의 반신반의가 무색하게 시민 518명이 2300여 개에 이르는 시위 물품을 기증했다. 현장에서 바로 받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기증 신청서를 쓴 시민들이 4월4일 윤석열 탄핵 선고 이후 우편으로 보내준 것이다. “파면된 날 밤에만 150명이 신청하더니, 며칠 동안 택배 박스가 우르르 쏟아졌다”라고 김 실장은 회상했다. 직접 박물관을 방문해 기증품을 전달한 이도 70명가량 된다. ‘민주주의와 깃발’ 전시는 박물관에 들어서기 전에 이미 시작된다. 기증받은 깃발 367개를 똑같이 본떠 만든 프린트로 건물 외벽을 감쌌다. 윤퇴청(윤석열 퇴진을 위해 행동하는 청년일동)에서 집회 포스터를 만든 ‘금손’ 활동가가

[보도자료]〈광복 80주년 기념 학술회의〉독립운동가들이 꿈꾼 나라

2025년 7월 31일 403

[보도자료] 〈광복 80주년 기념 학술회의〉 독립운동가들이 꿈꾼 나라 주최 : 민족문제연구소 · 서울특별시 강북구 주관 : 근현대사기념관 후원 : 재단법인 ‘역사와 책임’ 때 : 2025년 8월 8일(금) 오후 1시~6시 곳 : 강북구청 4층 대강당 광복 80주년을 맞아 조국의 해방과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선열들은 어떤 나라를 꿈꾸었는지를 조명해보고, 대한민국의 미래상에 대한 지혜를 모아보는 학술회의가 8월 8일 강북구청 대강당에서 열린다. 〈독립운동가들이 꿈꾼 나라〉라는 주제로 민족문제연구소가 주최하고 강북구 근현대사기념관이 주관하는 이번 학술회의에서는, 항일투쟁을 전개한 제 세력의 이념적 지향과 건국방략 그리고 국가 구상을 분석 정리하고, 나아가 이들이 해방 이후 정국 전개와 정부 수립에 미친 영향까지 가늠해본다. 불법적인 비상계엄과 극우세력의 내란 사태를 시민의 힘으로 극복한 지금, 우리는 한층 성숙한 민주공화국의 굳건한 정착을 소망하고 있다. 이때야말로 대한민국이 지향하고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를 근본적으로 다시 성찰해 봐야 할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이 ‘독립국가 건설의 이상과 지향’이라는 제목으로 기조발제를 맡았으며, 독립기념관 김은지 연구위원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가보훈부 류동연 학예연구관이 조선민족혁명당, 홍종욱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가 사회주의 계열, 이규수 동농문화재단 강덕상자료센터장이 조선건국동맹의 국가구상에 대해 발표한다. 토론에는 김민철 경희대 교수, 장세윤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수석연구원, 윤덕영 연세대 국학연구원 전문연구원, 조형열 동아대 교수 등이 참여한다.

[오마이뉴스] ‘명성황후 시해 가담’… 친일파 단죄비는 왜 훼손되었을까

2025년 7월 31일 1071

[김종성의 히,스토리] 일제에 충성한 ‘이두황’의 삶 명성황후 민씨가 시해된 1895년 10월 8일(음력 8.20), 경복궁 입구를 지킨 인물이 37세의 이두황이다. 그는 중전을 지키는 쪽이 아니라 시해하는 쪽의 경비 책임자였다. 그런 이두황을 단죄하는 전북 전주시 완산구 중노송동의 친일 단죄비와 안내판이 훼손됐다는 보도가 29일에 나왔다. 단죄비와 안내판이 찌그러져 있고 그 옆의 교통신호 제어기 받침대가 긁혀 있는 사진이 보도되고 있다. 훼손 사실이 민족문제연구소에 제보된 것은 24일이라고 한다. 명성황후 시해 가담하고 일본으로 도피 고종 임금의 전임자인 철종 때 한양에서 태어난 이두황은 24세 때인 1882년에 무과 급제를 하고 훈련원 주부 등을 지낸 뒤 31세 때인 1889년 9월에 흥해군수직을 받았다. 무과 급제 8년 만에 지금의 포항시장이 됐던 것이다. 그렇게 조선왕조의 녹봉을 받으며 승승장구하던 그가 벌인 일이 왕조의 중전 시해에 가담하는 만행이다. 1929년에 발행된 <고(故) 설악 이두황옹 추회록>에 실린 구라타 이츠지로의 ‘추회록(追懷錄)’이 그 상황을 증언한다.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서> 제4-12권 이두황 편에 인용된 ‘추회록’은 “이두황은 제2대대장으로서 광화문을 경위”했다고 말한다. 이두황이 속한 곳은 훈련대였다. 이 부대에 관해 최문형(1935~2022) 한양대 명예교수의 <명성황후 시해의 진실을 밝힌다>는 “훈련대란 미국의 다이 장군이 육성한 왕실 직속 부대인 시위대와는 달리 일본군 장교가 육성한 군대”라고 설명한다. 을미사변 그날 새벽, 일본군과 조선 훈련대의 광화문 진입은 수월치 않았다. 1882년 임오군란 때 중전 민씨를 탈출시킨 일로 유명한 홍계훈이 그곳에

[KBS] 친일반민족행위자 이두황 단죄비 파손…경찰 수사

2025년 7월 30일 381

[KBS 전주]친일반민족행위자인 이두황의 친일 행각을 알리기 위해 지난 2016년 전주 기린봉 입구에 세운 단죄비가 부서져, 경찰이 수사에 나섰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에 따르면, 일주일 전 쯤 누군가 차량으로 단죄비를 들이받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경찰은, 인근 CCTV 등을 통해 사고 차량을 추적 중입니다. 이두황은, 구한말 동학농민군을 학살하고 을미사변 때 명성황후 시해에도 가담했고, 경술국치 이후 초대 전북도장관을 지냈습니다. 오중호 기자 (ozoz@kbs.co.kr) <2025-07-29>KBS ☞기사원문: 친일반민족행위자 이두황 단죄비 파손…경찰 수사   광복 80주년을 앞두고 명성황후 시해 등에 가담한 이두황의 친일 행각을 알리기 위한 단죄비가 부서졌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는 오늘(29일) “전북 전주시 기린봉 입구에 세워진 이두황 단죄비가 파손됐다”고 밝혔습니다. 김재호 지부장은 “지난 24일 시민이 이야기해 파손된 사실을 알았다”며, “지난 22일~23일쯤 교통사고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고의든 과실이든 단죄비가 부서진 만큼 경찰에 신고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두황은 대한민국 정부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구한말 동학농민군을 학살하고 을미사변 때 명성황후 시해에도 가담했습니다. 이 단죄비는 이두황 사후 100년 만인 2016년 민족문제연구소 회원들이 돈을 모아 이두황 묘로 올라가는 길목에 세웠습니다. 이두황의 묘를 포함한 임야 4만㎡가 아직 후손들의 소유이기 때문에 묘소에는 설치하지 못했습니다. [사진 출처 :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 제공] 서윤덕 기자 <2025-07-29>KBS ☞기사원문: ‘친일 행각’ 이두황 단죄비 파손…“경찰에 신고” ※관련 기사 ☞연합뉴스: 광복 80주년 앞두고 ‘친일파 이두황’ 단죄비는 누가 파손했나 ☞연합뉴스TV: 광복절 앞두고 ‘친일파 이두황 단죄비’ 파손…”수사 의뢰” ☞노컷뉴스: 친일반민족행위자 이두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