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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오마이뉴스] “남인수, 정부 보고서에 빠졌다 해서 친일 없어지는 게 아니다”

2025년 6월 27일 593

가요제 열겠다는 남인수기념사업회 “친일파 아냐” 주장… 민족문제연구소 즉각 반박 일제강점기 때 <강남의 나팔수> <그대와 나> <남쪽의 달밤> <낭자일기> <병원선> <혈서 지원> <이천오백만 감격>의 군국가요를 불렀던 가수 남인수(본명 강문수, 1918~1962)에 대해 남인수기념사업회가 “가황(가요황제) 남인수는 친일파가 아니다”라고 주장하자 그를 등재해 <친일인명사전>을 펴냈던 민족문제연구소가 반박했다. 남인수기념사업회는 26일 진주시청 브리핑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남인수는 결코 친일인사가 아니다”라고 했고, 민족문제연구소는 반박 입장을 냈다. 남인수는 해방 이전 일제강점기 때 모두 7곡의 군국가요를 불렀다. <그대와 나>는 내선일체와 지원병을 선전하기 위해 제작한 영화의 주제가였고, <이천오백만 감격>과 <혈서지원>은 조선징병제 실시 축하 기념으로 만들어졌다. 남인수는 1944년 9월 부민관에서 조선연극문화협회 주최로 열린 <성난 아세아>에 출연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2009년 11월 남인수를 포함한 친일파 4300여 명의 행적을 기록한 <친일인명사전>을 펴냈다. 남인수의 고향인 진주에서는 한때 그의 이름을 딴 ‘남인수가요제’를 진주시 지원금으로 열어오다가 친일행적이 드러나면서 ‘진주가요제’로 이름이 바뀌기도 했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설립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아래 위원회)는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를 내면서 1006명의 친일반민족행위자를 발표했는데, 이 명단에 남인수는 들어가 있지 않았다. 남인수기념사업회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심의과정에서 기각” 남인수기념사업회는 이날 회견문을 통해 “최근 정부의 공식 기구인 대통령 직속 위원회가 남인수 선생이 친일인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한 국가문서를 확인했다”라며 “정부의 공식기관에서는 남인수 선생이 친일인사가 아니라는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위원회가 발표한 명단에 따르면, 대중가요 부분에서는 10명이 친일 명단에 포함됐지만 남인수 선생은 포함되지 않았다”라며

[새책소개] “독립운동의 역사사회학 – 의열투쟁, 신채호 사상, 조선의용대 심화연구”

2025년 6월 26일 772

도서구매  ☞ 알라딘: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4895736 ☞ 교보문고: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6664381 ☞ 예스2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47051068 올해는 일제 식민지통치로부터의 민족해방 80주년이다. 감회가 크고 깊음을 많이들 얘기할 것이다. 8.15 하루만을 기려서가 아니라, 그 80년 사이의 한국현대사를 점철했던 수많은 기복과 부침, 갖가지 파행과 굴절이 자연히 떠올려지고, 그 와중에도 우리 국민이 이루어낸 놀라운 도약과 드높은 성취에 뿌듯함을 느끼어 그럴 것이다. 하지만 작금의 사태는 그런 말과 느낌을 더없이 무색하게 만들어버리는 형국이다. 어이 알았으랴? 역사의 시침을 40년, 아니 80년 전으로 확 돌려놓고 시대의 공기를 전제의 공포와 한없는 묵종으로 가득 채우려는 반동의 시간이 엄습해올 줄을. 그래서일까? 학창시절 배웠던 사회변동 이론들 중에서 소로킨(Pitirim A. Sorokin)의 순환론이 긴 호흡의 시간 리듬에서는 가장 설득력 있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진다. 사실 그것은 고대 이래 동양인들의 자연관과 역사관의 요체이기도 했다. 역사를 연구하고 서술하는 이유는 거대 기념비를 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미 세워진 그것을 비판하고 허물기 위해서라는 니체(F. Nietzsche)의 선견적 충고에 더욱더 공감이 가는 것도 그런 연관에서일 것이다. 그렇다면 현대사 80년에 대한 회고와 평가는 더 긴 안목으로 다시 해보는 것이 바람직하겠다. 또한 오늘 우리가 겪는 중인 낙담과 우울도 그런 견지에서 해소하고 걷어내 가야 하리라는 생각이다. 이 대목에서 요청되는 것이 바로 독립운동사 공부이다. 그것이야말로 한국적 근대 속의 선조들이 일제 타도 후에 어떤 나라를 어떻게 세우고 만들어가려 했는지에 대한 본격적 탐구가 되고,

[오마이뉴스] 리박스쿨 사태, 헌법정신에 기반한 역사교육으로 풀어보자

2025년 6월 26일 388

[주장] 공무원 역사교육 강화하고 평생교육기관 활용해야 민주시민들이 12·3 내란을 막아냈다. 사후 대책은 내란·김건희·채해병 특검과 검찰개혁·사법개혁·언론개혁을 내세운 집권 민주당의 몫처럼 보인다. 그러나 최근 리박스쿨 문제가 밝혀지면서 여당의 구체적 역사교육 대책이 궁금하다. 이재명 후보 공약집에는 ‘학교 역사교육 강화 및 역사연구기관 운영의 정상화’만 명시되어 있다. ‘역사연구기관 운영의 정상화’는 독립기념관을 비롯해 뉴라이트 인사들이 장악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한국학중앙연구원, 동북아역사재단, 국사편찬위원회 기관장 교체일 것이다. 그 기관장들이 스스로 사표 쓰고 나가면 좋겠지만 버틸 것이 분명하다. 당장 그들을 몰아낼 법규도 마땅치 않다. 그렇다고 그들이 그 기관을 좌지우지하지는 못한다. 1~3년 남은 임기를 혈세만 축내고 나갈 것이다. 아쉽지만 매몰비용으로 여기고 상급 기관인 보훈부, 행안부, 교육부가 실질적으로 운영하면 될 것이다. 문제는 ‘학교 역사교육 강화’이다. 이 글은 ‘학교 역사교육 강화’라는 국민주권정부의 공약을 어떻게 풀어나갈지에 대한 제언이다. 박근혜, 윤석열 파면이라는 헌정사의 중요한 고비를 거치며, 우리 사회는 헌법의 규범적 위상을 다시금 확인했다. ‘헌법은 국민 생활의 최고 도덕 규범이자 정치 사회 질서의 가치 규범(헌재 1989. 9. 8. 88헌가)’임을 민주시민들이 입증했다. 헌법의 권위와 정신을 수호하고 실현하는 것은 민주사회의 근간이며, 이는 모든 국가기관은 물론 주권자인 국민 각자의 책무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바탕으로,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해 정의·인도와 동포애로 민족단결을 공고’히 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즉 헌법의 3대 이념은

민족사랑 2025년 6월호

2025년 6월 24일 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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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한일 시민단체, 도쿄서 징용 배상·위안부 문제 해결 촉구

2025년 6월 20일 342

수교 60주년 맞아 항의 집회…’정의에 기반한 역사 화해’ 제언 (도쿄=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한국과 일본 시민단체가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아 20일 도쿄에서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 배상과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모임 등은 이날 징용 배상 소송 피고 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제철 앞에서 항의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판결 이행 사죄 배상’, ‘피해자의 인권 회복을’ 등을 외치며 한국 대법원의 배상 판결을 이행하라고 요구했다. 일본 측 시민단체는 한국 정부가 ‘제3자 변제’ 해법을 제시했지만, 원고 유족은 일본 기업이 사죄와 배상을 하지 않는 해결책에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제3자 변제 해법은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민간의 자발적 기여로 마련한 재원을 통해 소송에서 배상 확정판결을 받은 피해자들에게 일본 피고 기업 대신 배상금과 지연이자를 지급하는 것을 뜻한다. 시민단체들은 이어 총리 관저 앞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집회를 개최했다. 참가자들은 한국 법원의 위안부 피해자 배상 판결 이행과 위안부 관련 역사 왜곡 중단 등을 요구하는 요청서를 총리 관저에 제출했다. 한일 종교·시민단체로 구성된 ‘한일 화해와 평화 플랫폼’은 이날 오후 참의원(상원) 의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한일 기본조약 60년을 맞는 한일 시민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이 단체는 선언에서 “한일 양국은 ‘정의에 기반을 둔 역사 화해’를 시민 차원에서 핵심 과제로 삼아야 한다”며 “역사를 직시하는 일은 가해국과 피해국 시민 간 이해를

[보도자료] 한일협정 60년, 역사정의 실현을 위한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대표단 방일행동

2025년 6월 19일 708

☞ 다운로드: [보도자료] 한일협정 60년, 역사정의 실현을 위한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대표단 방일행동 □ 평화의 인사를 전합니다. □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은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의 피해자와 연대하여 역사정의 실현과 피해자의 인권회복을 위해 노력해 온 한국, 재일, 일본 시민사회가 한일협정 60년을 맞아 한일시민연대의 성과를 확인하고 남겨진 과제의 해결과 식민주의 청산, 새로운 한일관계를 위한 향후 시민연대의 방향을 모색하는 방일 행동을 전개합니다. [별첨1. 방일행동 주요일정] □ 이번 방일 행동을 통해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대표단은 강제동원 대법원판결 이행을 촉구하는 전범기업 항의 행동과 일본군 성노예제 소송 판결의 이행을 촉구하는 일본 정부를 대상으로 하는 항의 행동을 벌일 예정입니다. □ 또한, 한일협정 60년 한일시민대회를 통해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역사적인 과제의 해결을 한일시민들이 함께 모색하고자 합니다. [별첨2. 시민대회 발언 자료] □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방일행동 대표단은 민족문제연구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일본군‘위안부’문제 대응 TF 변호인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 평화너머 등 한국 시민단체 대표로 구성되었습니다. □ 많은 취재 부탁드립니다

[성명] 피해자가 극복한 ‘65년 체제’ 이제 식민주의 청산과 강제동원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로 나아가자

2025년 6월 19일 517

[성명서] 250619_한일국교정상화_60년_민족문제연구소_성명 <한일국교정상화 60년 민족문제연구소 성명> 피해자가 극복한 ‘65년 체제’ 이제 식민주의 청산과 강제동원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로 나아가자 2025년은 을사늑약 체결 120년, 해방 80년, 한일국교정상화 60년을 맞는 역사적인 해이다. 우리는 이 뜻깊은 해를 맞아 식민주의 청산과 강제동원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촉구한다. 1965년 6월 22일 박정희 군사독재는 냉전과 분단체제 아래에서 일본의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에 대한 책임을 명확히 하지 않은 채 1965년 한일기본조약을 체결했다. 식민지에서 침략전쟁에 강제동원된 피해자의 인권은 무시되었고, 이후 60년 동안 피해자들은 인권과 존엄의 회복을 가로막아온 ‘65년 체제’를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해왔다. 지난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제철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피해자들의 역사적인 승소 판결을 확정했다. 일본제철에 강제동원된 피해자들이 1997년 일본에서 시작한 20여 년의 소송투쟁 끝에 쟁취한 대법원판결은 ‘일본의 한반도에 대한 식민지배가 불법’이라는 점과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강제동원·강제노동이 반인도적 불법행위’라는 점을 명확히 밝혔다. 이 판결은 식민주의 극복을 촉구한 ‘더반 선언’(2001년)의 정신을 반영한 것이며, 국가 중심의 국제법에서 개인의 인권 중심으로 발전해 온 국제인권법과 국제인도법의 성과를 반영한 것이라는 점에서 세계사적으로도 그 의미가 작지 않다. 또한, 이 판결은 강제동원 피해자들 그리고 그들과 연대한 한일시민사회가 일본과 한국에서 벌인 20여 년의 소송투쟁을 통해 ‘65년 체제’를 극복한 역사적인 판결이다. 2018년 대법원판결은 피해자들이 역사 정의 실현과 식민주의 청산을 향한 길을 열어젖힌 인권선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역발상 시즌4] 광복 80주년 기념, 해방·분단·통일의 노래 6부

2025년 6월 18일 333

MC:노기환 출연:이영미,이준희 PD:김세호 1. 부용 박기동 작사, 안성현 작곡. 1948년 8월 ‘안성현 작곡집’ 수록. 당초 사상적 배경과 무관한 곡이었으나, 안성현이 월북한 데에다 빨치산 애창곡이라 하여 금지곡 아닌 금지곡이 되었던 노래. 악보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구전으로 전해지면서 변형이 생기기도 했으나, 자료가 공개된 뒤에는 원형을 살려 녹음. 한영애 노래(2003년 BEHIND TIME 수록) 2.인민항쟁가 임화 작사, 김순남 작곡, 1947년. 1946년 10~11월 ‘대구 사건(항쟁과 폭동 사이)’을 소재로 만들어진 곡. 1940년대 후반 널리 불렸던 곡이고, 전쟁 중에는 북한군 점령지에서 우선 학습 대상이 되기도. 이규봉 노래(2015년 일본에서 제작된 ‘해방의 노래’ 수록). 3.바우고개 이서향 작사, 이흥렬 작곡. 1934년 9월 간행 ‘이흥렬 작곡집 제1집’ 수록. 작곡집 표기에 의하면 1932년 9월 7일 창작. 이서향이 1948년 8월 이후 월북한 뒤에는 그 이름을 공식적으로 쓰기가 곤란. 1956년 신신레코드에서 첫 음반이 발매될 때 이흥렬 작사로 표기(가사지에는 문예부 작사로도 표기). 명의뿐만 아니라 가사도 살짝 개작. ‘바우고개 위에서 혼자 쉬자니’ ‘바우고개 언덕을 혼자 넘자니’. 심연옥 노래. 4.고향 정지용 시, 채동선 작곡. 시는 1932년 7월 ‘동방평론’에 발표. 곡은 1937년 발표. 정지용이 전쟁 중 북으로 간 C급 작가로 규정되면서 문제가 발생. 다만 앞서 1949년 10월에 국가이념 위반을 이유로 중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던 ‘고향’이 삭제되었고, 11월에 정지용이 보도연맹에 가입한 데에서 이미 단초가 보이기도. 해방 직후 문학가동맹 활동

[오마이뉴스] 친일거두 ‘최남선기념호’ 내기도

2025년 6월 18일 408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 실록소설 장준하 60] 육당 최남선에 대한 장준하의 인식은 대단히 왜곡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사상계> 1957년 12월호에는 표지에 ‘육당 기념호’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육당’은 육당(六堂) 최남선을 말한다. 표지 맨 윗자리에 ‘육당기념 구고재록-백제 구강(舊疆)으로’란 최남선의 구고를 알리고, 권두논문으로 이 글을 실었다. 최남선의 글은 1926년 백운사에서 발간한 <심춘순례>에 이미 실렸던 글이다. 이 무렵 장준하는 친일문인 김동인의 문학상을 제정한데 이어 친일학자 최남선을 기리는 ‘육당 기념호’를 발행하여 뜻 있는 분들의 분노와 의구심을 사게 되었다. 12월호 <사상계>는 표지 안쪽에 “사상계 편집위원회는 뜻을 문화의 소장과 민족의 명운에 두는 모든 인사들과 더불어 충심으로 고 육당 최남선 선생을 추도하고 그 출중한 인격과 생전에 남기신 업적의 위대성을 명감(銘感)하여, 이를 영세에 전하고자 선생이 서거하신 이해 1957년 송년호를 육당 기념호로 삼가 재천(在天)의 영전에 드리나이다.” 라는 글을 고딕체로 박았다. 그리고 뒷 쪽에는 ‘육당 최남선 선생 유영(遺影)’이란 캡션과 함께 전면에 사진을 실었다. 장준하는 또 ‘육당 최남선 선생을 애도함’이란 권두언을 썼다. 우리는 이 해를 보내면서 돌이켜 생각할 때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면에서 한스러운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 중에서도 뜻 있는 모든 인사들이 가장 애석하여 마지 않은 것은 육당 최남선 선생의 서거였다. 선생은 약관 18세에 이미 궤란을 기도에서 구하려는 큰 뜻을 품고 우선 민족의 명영을 영원히 부지하려는 원대한 의도 밑에 문화의 황무지를

[오마이뉴스] 혁명을 ‘예술’하는 사람들

2025년 6월 13일 407

긴급전시행동 <민주주의와 깃발>에 모인 작품들의 사연 광장의 악사들 민족문제연구소와 식민지역사박물관은 “당신의 민주주의를 기증받습니다”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시위용품을 기증받기 시작한 지 3개월이 넘어가던 즈음, 박물관에 플루트 기증 신청이 들어왔다. 악기를 기증하겠다는 신청은 처음이었고 기증 사연은 매우 강렬했다. “폭력이 아닌 음악으로, 예술로 이 세상을 이기고 싶었습니다.” _ 플루트 기증자 기증사연 중 세월호 리본과 이태원 참사 열쇠고리, 여성의 날 리본 등으로 알록달록 꾸며진 플루트를 기증하겠다고 찾아온 이는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문화제에 참석하면서 악기를 들고 다니는 사람을 보게 되었고, 자신도 그때 플루트를 사게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저는 문예창작과를 다니고 있는 대학생이고, 1월 중순쯤부터 악기를 들고 여러 시위 현장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 사실 악기도 기증받으실까, 많이 고민했는데 단두대 같은 다양한 시위용품들도 기증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친구가 ‘얘는 새로운 시대를 같이 노래한 악기라고 충분히 가치가 있다’라고 말해줘서 기증을 결심하게 됐습니다.” _플루트 기증자 인터뷰 중 플루트 기증자는 다양한 시위 현장에서 악기를 연주하면서 합주자들과의 커뮤니티가 형성되었다고 했다. 그는 합주자들과 함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다이인(Die-in) 행동, 세종호텔 문화제, 한화 오션 본사 앞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문화제 등에서 공연을 하면서 이전과 달라졌다고 했다. “이전에는 정치나 역사에 관심이 많았지만,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12월 3일 이후 상식선의 파괴가 일어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잖아요. 그래서 여태 너무 무관심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