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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오마이뉴스] ‘백범 암살범’ 안두희 격살했던 박기서 선생 별세

2025년 7월 10일 4915

향년 78세… 빈소 부천장례식장, 12일 발인 백범 김구 선생 암살자인 안두희를 격살했던 박기서 선생이 별세했다. 향년 78세. 10일 민족문제연구소는 “우리 시대의 의인, 21세기 독립군인 고 박기서 선생께서 별세했다”라며 “임정 주석 김구 선생 곁으로 가시는 길, 깊은 애도와 명복을 빕니다”라고 했다. 운전기사였던 고인은 김구 선생을 암살했던 안두희 집으로 찾아가 1996년 10월 23일 손수 제작한 ‘정의봉’으로 살해했다. 고인은 구속 이후 1998년 3월 1일 대사면에 포함됐고 같은 해 3월 13일 수감된 지 1년 5개월 만에 출소했다. 고인의 빈소는 경기도 부천장례식장 7호실에 마련됐고, 장례기간은 12일까지이며 발인은 12일 오전 5시다. 장지는 마석 모란공원이다. 윤성효 <2025-07-10>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백범 암살범’ 안두희 격살했던 박기서 선생 별세 ☞ 박기서 선생 온라인 부고장 ※관련기사 ☞한국일보: ‘백범 암살범’ 안두희 처단한 박기서씨 별세 과거청산의 빌런들 Ep.1-2편을 통해 박기서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한겨레] “민주주의 소중함 알리는 ‘현대사’ 교육에 학계 나서야”

2025년 7월 9일 397

[짬] ‘신흥무관학교와 망명자들’ 대중판 낸 서중석 교수 한국 현대사 연구 권위자인 서중석 성균관대 사학과 명예교수는 지난 대선 때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가 얻은 득표율 41.15%를 보고 두려운 마음이 들었단다. “앞으로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얼마나 또 위기에 부닥칠까, 걱정이 되더군요. 지난 12·3 계엄에 대한 태도가 의아해 보이고 또 박정희를 굉장히 찬양하고 지지하는 후보가 생각보다 많은 표를 얻었어요. 박정희 지지도 3공화국(1963~72년)을 주로 이야기하면 몰라도 그런 구분 없이 말하면 유신체제(1972~79) 지지로 들릴 수 있어요. 유신은 1인독재 파쇼체제로 전두환 신군부보다 더 강한 독재 체제였습니다. 유권자 중 일부라도 유신 체제를 지지하고 또 12·3 계엄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표를 던졌다면 참 두려운 일입니다.” 그는 이번 대선의 ‘20대 성별 투표’도 굉장히 두려운 현상이라고 했다. “세계적으로 이렇게 심하게 성별 투표하는 예를 본 적이 없어요. 이 문제도 우리가 참 고민을 많이 해야 합니다. 현 정부가 해야 할 일이 커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서 교수는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현대사처럼 잘 알려주는 것은 없다”며 “앞으로 민주주의가 왜 필요한지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교육과 20대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조사가 수행되어야 한다”고도 했다. “학계와 종교계를 포함해 국민융합적 단체를 만들어 왜 이렇게 되었는지 살피고 또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현대사 문제를 폭넓고 깊게 인식시킬 수 있는 길을 찾으면 좋겠어요.” 24년 전 저술 ‘신흥무관학교와 망명자들’(역사비평사) 개정판을 최근 펴낸 서 교수를 지난 2일

[연재기사] 긴급전시행동 민주주의와 깃발

2025년 7월 9일 384

긴급전시행동 민주주의와 깃발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긴급전시행동 민주주의와 깃발은 518명의 기증자와 140여명의 이야기를 토대로 만들어졌습니다. 전시 공간에서 소개하지 못한 기증자의 이야기를 연재 기사를 통해 전하고자 합니다. 1화 깃발이 된 518명의 사람들, 민주주의를 향해 휘날리다 [보러가기]  [현장] 민족문제연구소⸱식민지역사박물관, ‘민주주의와 깃발’ 전시… 민주주의를 지켜온 깃발의 역사 2화 혁명을 ‘예술’하는 사람들 [보러가기]  긴급전시행동<민주주의와 깃발>에 모인 작품들의 사연 3화 ‘뭐라도 하자’는 마음이 만든 찬란한 연대 [보러가기]  긴급전시행동<민주주의와 깃발>에 모인 작품들의 사연 4화 TK의 딸이 제작한 피켓 앞에서 눈물 흘린 대구 시민 [보러가기]  긴급 전시 행동을 하는 이유 8월 17일까지 진행되는 긴급전시행동<민주주의와 깃발>과 기록집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온라인 전시 보러가기 기록집 제작 응원하기

[성명] 인권 침해의 현장, 메이지 산업유산의 강제노동 역사를 제대로 기록하라! 일본 정부는 국제사회를 향한 약속을 지켜라!

2025년 7월 9일 399

[성명] 250709_인권 침해의 현장, 메이지 산업유산의 강제노동 역사를 제대로 기록하라 인권 침해의 현장, 메이지 산업유산의 강제노동 역사를 제대로 기록하라! 일본 정부는 국제사회를 향한 약속을 지켜라! 지난 7월 7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제47회 총회에서는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 제철·철강, 조선, 석탄산업’(이하 메이지 산업유산)과 관련하여 세계유산위원회 결정의 이행 상황에 대한 평가 안건의 정식 채택 여부가 논의되었다. 논의 끝에 이루어진 투표 결과(일본의 수정안에 대한 찬성 7, 반대 3, 기권 8, 무효 3) 이 사안은 세계유산위원회가 아니라 양자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할 문제라는 일본의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은 인류가 공유해야 할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닌 유산으로 인권과 평화를 상징하는 현장이어야 한다. 그러나 메이지 산업유산에서 강제노동을 은폐하려는 일본 정부의 이러한 행태는 평화와 인권을 존중하고 보편적 정신의 함양을 지향하는 유네스코 정신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다. 우리는 일본 정부의 끊임없는 강제노동 은폐 시도를 규탄하며, 일본 정부가 메이지 산업유산에 강제노동의 역사를 제대로 기록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메이지 산업유산 시설 가운데 미쓰비시 다카시마·하시마(군함도) 탄광, 일본제철 야하타제철소, 미쓰비시 나가사키조선소, 미쓰이 미이케 탄광 등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조선인과 중국인, 연합군 포로들이 강제노동을 당한 인권 침해의 현장들이다. 일본 정부는 2015년 세계유산 등록 당시에 조선인 강제노동을 비롯한 메이지 산업유산의 ‘전체 역사’를 설명하겠다고 국제사회에 분명히 약속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도쿄에 있는 산업유산정보센터의 전시를 통해

[한겨레] 강제동원 783만명…진상규명도 유해 발굴도 ‘80년째 미완’

2025년 7월 8일 440

광복 80돌 한일 국교정상화 60년 여름 눈부신 햇살 아래 에메랄드빛과 쪽빛이 어우러져 넘실거리는 일본 오키나와의 바다는 아름다웠다. 오키나와 본섬에서 40여분 거리 도카시키섬으로 가는 페리 안내문에는 ‘바다의 낙원 도카시키’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이곳은 ‘지옥’이었다.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던 지난달 22일 도카시키항에서 200여미터 떨어진 조용한 시골집들 사이의 ‘빨간 기와집’ 터는 평화로운 공간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곳은 일제강점기 일본군 위안부였던 고 배봉기 할머니에게 끔찍한 기억을 새겼다. 10평 남짓 터에 태평양 전쟁 말기이던 1944년 11월 도카시키에 일본군 위안소가 만들어졌고, 배 할머니는 위안부 삶을 강요당했다. 이날 만난 주민 요시카와 요시카쓰(87)는 “소학교 시절 마을에 위안소가 생겼는데 조선인 여성 7명이 살았고 그중 ‘배봉기’라는 사람이 있었다”고 기억했다. 그는 “빨간 기와집은 원래 ‘나카마조’라고 부르던 우리 삼촌 집이었는데 일본군이 가족들을 내쫓고 위안소로 만들었다”며 “한번은 우리 집에서 일본군 장교들이 위안부를 데리고 술자리를 가졌던 적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어렸을 적이었지만 내 또래들이 위안부를 ‘조센피구아’라고 불렀던 기억이 있다”고 덧붙였다. ‘조센피’는 일본군 위안부를 뜻하던 속어이고, 오키나와에서 ‘구아’라는 말을 뒤에 붙이면 애칭처럼 들린다고 한다. 배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세상에 처음 밝힌 증언자였다. 그는 일제강점기 ‘여자 소개꾼’의 말에 속아 1944년 11월 오키나와에 도착했다. ‘정산소’에서 표를 산 군인들이 줄을 섰고, 끔찍한 일이 매일 이어졌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그의 비극은 멈추지 않았다.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미군

[한겨레] 시민단체 “리박스쿨 협력 단체 ‘대한교조’ 실태 파악해야”

2025년 7월 8일 489

뉴라이트교사연합 상임대표가 설립하고 지난 대선 당시 김문수 전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의 교육정책 파트너였던 ‘대한민국교원조합’(대한교조)이 리박스쿨의 협력단체인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시민단체들이 “뉴라이트 역사관이 공교육의 장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교육부의 조속하고 적극적인 조처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민족문제연구소, 교육노동자현장실천, 정치하는엄마들 등 8개 시민단체는 8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교육부의 대한교조 실태조사 및 뉴라이트 교육 근절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권태영 전국민주화운동동지회 운영위원장은 “지난날 국정교과서에 관여해 문제를 일으켰던 인사들이 다시 리박스쿨, 대한교조에 등장하는 현실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며 “교육부는 대한교조의 실태를 철저히 조사하고 리박스쿨의 시대착오적 행동들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히길 촉구한다”고 했다. 지혜복 교육노동자현장실천 활동가는 “리박스쿨과 협력하고 있는 대한교조의 행보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뉴라이트 역사관을 바탕으로 일제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고 독재를 찬양·미화하는 반민주적 교육 등을 하며 실제로 (대한교조) 위원장과 사무총장은 국가교육위원회에도 깊숙이 관여했다는 게 밝혀졌다”며 “새 정부는 독재 옹호, 역사 왜곡, 차별과 혐오에 기반한 위장 교육단체 퇴출을 시작으로 관리·검증 강화를 위한 사회적 논의에도 나서주길 바란다”고 말헀다. 10대 청소년 자녀를 둔 김숙영 정치하는엄마들 공동대표는 “지난해 대한교조가 출간한 청소년용 대안 도서만 보더라도 일제를 긍정하고 독재를 비호하는 등 편향된 서술로 가득하다. 입시교육에 떠밀려 학교 현장에서 역사교육이 홀대받고 있는 것도 안타까운데, 대한교조 및 뉴라이트계 교사들이 교단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역사관을 심고 있다는 사실이 양육자로서 경악스럽다”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대한교조가 표방하는 뉴라이트 역사관을

[성명] 메이지산업유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록 10년, 일본 정부는 세계유산에 강제노동의 역사를 제대로 기록하라

2025년 7월 7일 443

[성명] 250706_일본 정부는 세계유산에 강제노동의 역사를 제대로 기록하라 메이지산업유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록 10년, 일본 정부는 세계유산에 강제노동의 역사를 제대로 기록하라 7월 5일 ‘메이지(明治) 일본의 산업혁명유산 제철·철강, 조선, 석탄산업’(이하 메이지산업유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지 10년을 맞았다. 일본 정부는 2015년 등록 당시에 조선인 강제노동을 비롯한 메이지산업유산의 ‘전체 역사’를 설명하겠다고 국제사회에 약속했다. 그러나 10년 동안 일본 정부는 약속을 지키기는커녕 도쿄에 있는 산업유산정보센터의 전시를 통해 강제노동을 부정하고 중국인과 연합군 포로의 강제노동은 철저하게 감추는 등 역사부정론으로 국제사회를 기만해왔다. 강제동원의 진실규명을 위해 노력해온 우리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일본 정부의 행태에 깊은 유감을 표하며, 지금이라도 일본 정부가 메이지산업유산에 강제노동의 역사를 제대로 기록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2021년 7월 제44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일본 정부가 세계유산위원회의 결정(39 COM 8B.14 & 42 COM 7B.10)을 충분히 이행하지 않고 있는 점을 지적하고, 이례적으로 ‘강한 유감’을 표명하면서 강제동원의 역사를 포함한 ‘전체 역사’에 대해 해석전략을 마련하라는 결정문(44 COM 7B.Add2)을 채택했다. 세계유산위원회의 결정은 국제사회가 일본 정부의 역사부정론을 더는 용인하지 않겠다는 것을 분명히 밝혔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이기는커녕 산업유산정보센터의 전시에서 ‘조선인의 차별은 없었다’는 등의 역사왜곡을 전혀 시정하지 않고 있다. 메이지산업유산 등록 당시 일본 정부는 강제동원의 역사를 숨기기 위해 등록 대상 시기를 메이지시대로 한정하여 신청했지만, ‘전체 역사를 설명하라’라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의 결정을

[경향신문] “강제동원·위안부 문제…1965년 한일협정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

2025년 7월 4일 322

  경향신문 후마니타스연구소 ‘해방 80주년’ 기획 ④ 한일협정 60년, 미완의 과거청산과 한·일관계   미 주도 냉전체제 구축하기 위해 전범국 일본에 ‘관대한’ 배상 책임 1965년 협정도 사죄·배상 ‘봉인’   2018년 한국 강제동원 배상 판결 ‘65년 체제’의 사실상 해소 선언   위안부 합의·제3자 대위변제 등 박근혜·윤석열 때 ‘퇴행적’ 합의 새 정부가 지속적으로 협의 제안 한·일 시민사회 연대로 풀어내야   “2019년 한국과 일본 정부 사이에 이른바 ‘화이트리스트 배제 사건’이라는 큰 이슈가 불거졌죠. 자유롭게 수출, 수입하던 소재 품목들을 일본 아베 총리가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갑자기 규제하며 일으킨 경제전쟁이었는데, 한국도 일본과의 군사 정보 교환을 중단시키면서 양국 관계가 심각한 국면으로 치달았습니다. 그 배경엔 2018년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판결 문제가 있었죠. 첨단기술에서 한국을 동생 취급하던 일본이, 이젠 어깨를 겨누게 된 한국을 위험하다고 판단한 것도 또 다른 이유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2025 현재사’ 시민강좌의 네 번째 강좌 제목은 ‘한일협정 60년, 미완의 과거청산과 한·일관계’. 강사는 1990년대 초반부터 과거청산 문제와 씨름해 온 김민철 경희대 교수 겸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이었다. 지난달 26일 김 교수는 복잡하게 얽혀 있는 양국의 역사와 경제, 안보, 정치 지형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몇년 전 상황을 예로 들며 강의를 시작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과 1965년 협정 올해는 1965년 6월22일 한국과 일본이 한일협정을 체결하며 국교를 수립한 지 60주년이다. 꼬여만 가는 양국 관계의 시작은

[오마이뉴스] ‘뭐라도 하자’는 마음이 만든 찬란한 연대

2025년 6월 27일 488

긴급전시행동 <민주주의와 깃발>에 모인 작품들의 사연 기자말 자연에서 육각형은 완벽하게 대칭을 이루는 도형이다. 그래서 완벽한 사람에게 ‘육각형 인간’이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한다. 오늘은 광장의 동지들이 만들어낸 아름답고 찬란한, 더없이 완벽한 연대에 ‘육각형’을 사용하고자 한다. 오늘 소개할 내용은 ‘육각형 연대’를 만들어낸, 광장에서 처음 만났지만, 서로를 ‘동지’라 부르는 이들의 이야기다. ‘뭐라도 하자’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놀라웠던 점은 많은 이들이 ‘뭐라도 하자’는 마음으로 광장에 함께 있던 것이다. 단순히 ‘머릿수 채우기’를 위해 광장에 나간 것이 아니라 자신의 힘으로 무엇이든 해보려 했던 능동적 자세로 광장에 참여했다. “깃발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많이 없었는데, 생각보다 (집회 기간이) 길어지더라고요. 다들 깃발을 들고나오시길래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에서 저도 이렇게 쓱싹쓱싹 만들어서 가져왔습니다.” _기증자 장세은님 인터뷰 중 “회사에 다닐 때는 저 스스로 제가 아닌 기분이었거든요. 그러니까 남의 말만 듣고 내가 정작 해야 할 말은 모르겠고, 그냥 그렇게 흘러갔는데, 투쟁하면서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일은 이런 거구나. 적극성 있게 나가고 뭘 해도 같이하려고 하고, 연대하고 이런 걸 보면서 그래도 외면하던 그 시절보다는 일단 뭐라도 하는 게 좋구나. 이거를 깨달았었던 것 같아서 지금의 제가 좀 더 괜찮다고 생각해요.” _기증자 이휘은(콘푸)님 인터뷰 중 “그때가 국회에서 ‘탄핵 가결해라’라고 했었을 때였고, 당시에 친구들이랑 일단 우리도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 해서 갔었는데 핫팩을 좀 많이 가져갔었어요.” _기증자 윤예원님 인터뷰 중

[오마이뉴스] “남인수, 정부 보고서에 빠졌다 해서 친일 없어지는 게 아니다”

2025년 6월 27일 640

가요제 열겠다는 남인수기념사업회 “친일파 아냐” 주장… 민족문제연구소 즉각 반박 일제강점기 때 <강남의 나팔수> <그대와 나> <남쪽의 달밤> <낭자일기> <병원선> <혈서 지원> <이천오백만 감격>의 군국가요를 불렀던 가수 남인수(본명 강문수, 1918~1962)에 대해 남인수기념사업회가 “가황(가요황제) 남인수는 친일파가 아니다”라고 주장하자 그를 등재해 <친일인명사전>을 펴냈던 민족문제연구소가 반박했다. 남인수기념사업회는 26일 진주시청 브리핑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남인수는 결코 친일인사가 아니다”라고 했고, 민족문제연구소는 반박 입장을 냈다. 남인수는 해방 이전 일제강점기 때 모두 7곡의 군국가요를 불렀다. <그대와 나>는 내선일체와 지원병을 선전하기 위해 제작한 영화의 주제가였고, <이천오백만 감격>과 <혈서지원>은 조선징병제 실시 축하 기념으로 만들어졌다. 남인수는 1944년 9월 부민관에서 조선연극문화협회 주최로 열린 <성난 아세아>에 출연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2009년 11월 남인수를 포함한 친일파 4300여 명의 행적을 기록한 <친일인명사전>을 펴냈다. 남인수의 고향인 진주에서는 한때 그의 이름을 딴 ‘남인수가요제’를 진주시 지원금으로 열어오다가 친일행적이 드러나면서 ‘진주가요제’로 이름이 바뀌기도 했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설립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아래 위원회)는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를 내면서 1006명의 친일반민족행위자를 발표했는데, 이 명단에 남인수는 들어가 있지 않았다. 남인수기념사업회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심의과정에서 기각” 남인수기념사업회는 이날 회견문을 통해 “최근 정부의 공식 기구인 대통령 직속 위원회가 남인수 선생이 친일인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한 국가문서를 확인했다”라며 “정부의 공식기관에서는 남인수 선생이 친일인사가 아니라는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위원회가 발표한 명단에 따르면, 대중가요 부분에서는 10명이 친일 명단에 포함됐지만 남인수 선생은 포함되지 않았다”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