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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일본, 진솔히 사과해야 평화공존”

2009년 11월 2일 332

“일본, 진솔히 사과해야 평화공존”(내일신문, 09.10.30)

마지막 일장기-‘문화'(07.08.21)

2007년 8월 28일 270

<오후여담> 마지막 일장기    누구나 죽을 때까지 숨기고 싶은 비밀이나 콤플렉스 한두개쯤은 지니게 마련이다. 그런 비밀 등이 탄로날 때 당사자는 물론 지켜보는 사람 역시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최근 계속되는 ‘가짜 학력’ 파문이 비근한 예일 듯싶다.국가나 민족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역사가 길수록 숨기고 싶은 사실(史實)과 기록도 많아지게 마련이다. 한국사에서 나라를 빼앗긴 경험은 치욕 중의 치욕이다. 일부에서는 그 역사를 애써 숨기려 하고 일부에서는 오히려 그 역사를 끄집어내 교훈으로 삼자고 주장하기도 한다.대표적인 게 서울 송파구 석촌동 삼전도비(三田渡碑). 치욕과 수난의 역사 상징인 만큼 수차례 훼손되는 굴욕을 겪었다. 올해 들어서도 지난 2월 ‘애국’를 앞세운 사람으로부터 붉은 페인트 세례를 받았다. 3개월의 복원 작업 끝에 지난 6월 제모습을 다시 찾았다.원래 명칭이 ‘대청황제공덕비’(大淸皇帝功德碑)인 이 비는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인조가 1637년 청 태종 앞에서 머리를 땅에 9번 찧는 항복의식을 치르고도 그의 공덕을 찬미하는 글을 담아 ‘치욕의 문화재’로 인식돼 왔다.고종 32년(1895년)에는 이 비를 강물에 수장시켰으나 일제에 의해 다시 건져올려졌다. 광복 후 주민들이 땅에 파묻었지만 1963년 대홍수 때 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모질게도 되살아나 굴욕의 한국사를 증언하고 있는 셈이다.최근 서울역사박물관이 유사한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박물관은 조선총독부 시절 현재의 서울시 청사인 경성부 청사에 마지막으로 걸렸던 일장기를 소장하고 있는데 상설전시 문제에 대해 결정을 못내리고 있다는 것이다.이 일장기는 8·15 광복 직후 시청을 접수한 미군

마지막 일장기-‘문화'(07.08.21)

2007년 8월 28일 265

<오후여담> 마지막 일장기    누구나 죽을 때까지 숨기고 싶은 비밀이나 콤플렉스 한두개쯤은 지니게 마련이다. 그런 비밀 등이 탄로날 때 당사자는 물론 지켜보는 사람 역시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최근 계속되는 ‘가짜 학력’ 파문이 비근한 예일 듯싶다.국가나 민족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역사가 길수록 숨기고 싶은 사실(史實)과 기록도 많아지게 마련이다. 한국사에서 나라를 빼앗긴 경험은 치욕 중의 치욕이다. 일부에서는 그 역사를 애써 숨기려 하고 일부에서는 오히려 그 역사를 끄집어내 교훈으로 삼자고 주장하기도 한다.대표적인 게 서울 송파구 석촌동 삼전도비(三田渡碑). 치욕과 수난의 역사 상징인 만큼 수차례 훼손되는 굴욕을 겪었다. 올해 들어서도 지난 2월 ‘애국’를 앞세운 사람으로부터 붉은 페인트 세례를 받았다. 3개월의 복원 작업 끝에 지난 6월 제모습을 다시 찾았다.원래 명칭이 ‘대청황제공덕비’(大淸皇帝功德碑)인 이 비는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인조가 1637년 청 태종 앞에서 머리를 땅에 9번 찧는 항복의식을 치르고도 그의 공덕을 찬미하는 글을 담아 ‘치욕의 문화재’로 인식돼 왔다.고종 32년(1895년)에는 이 비를 강물에 수장시켰으나 일제에 의해 다시 건져올려졌다. 광복 후 주민들이 땅에 파묻었지만 1963년 대홍수 때 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모질게도 되살아나 굴욕의 한국사를 증언하고 있는 셈이다.최근 서울역사박물관이 유사한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박물관은 조선총독부 시절 현재의 서울시 청사인 경성부 청사에 마지막으로 걸렸던 일장기를 소장하고 있는데 상설전시 문제에 대해 결정을 못내리고 있다는 것이다.이 일장기는 8·15 광복 직후 시청을 접수한 미군

질곡의 민족사, 아리랑의 품 속에!

2009년 11월 2일 326

질곡의 민족사, 아리랑의 품 속에!(ytn, 09.10.30)

-연합뉴스(07.08.28)

2007년 8월 28일 322

<한-일, 유엔서 동해 표기 놓고 설전>(유엔본부=연합뉴스) 김계환 특파원 = 27일(현지시간)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9차 지명표준화회의에서 동해 표기 문제를 놓고 한국과 일본의 설전이 재연됐다.   이날 회의에서 송영완 외교통상부 국제기구정책관은 수석대표 연설을 통해 동해 표기의 정당성을 역사적, 규범적 차원에서 접근했다.   송 정책관은 국제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지도 가운데 근 24%가 동해를 병기하고 있어 일본해라는 표기가 국제적으로 확립됐다는 일본측 주장은 어불성설이라고 강력 반박하면서 동해 병기는 지명표준화회의와 국제수로기구의 기존 결의에도 부합되는 조치라는 점을 강조, 참가국들의 호응을 얻어냈다.   송 정책관은 지명표준화회의와 국제수로기구의 기존 결의는 명칭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인근 국가들이 사용하는 명칭을 병기하는 것을 권고하고 있다면서 동해 표기 문제도 이 같은 관련 결의에 따라 병기돼야 한다는 말로 일본의 비타협적 태도를 비판했다.   이스라엘 대표단도 동해를 일본해와 같이 병기하는 것이 맞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는 등 우리 입장에 지지를 보냈다.   이에 대해 일본 대표단은 일본해가 국제적으로 확립된 명칭이며 한국이 동해 표기 문제를 정치적인 목적으로 제기하고 있다는 주장을 되풀이 했다. 지명표준화회의가 동해표기 문제를 논의하기에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도 내놨다.   수단 대표단은 이번 회의에서 동해 병기 문제를 다루는 게 의미가 있느냐면서 동해 병기문제에 대한 논의 중단을 주장, 일본측에 동조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으나 참석국가들로부터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했다.   대표단 관계자들은 일본이 동해문제가 국제회의에서 논의되는 것 자체를 반대하고 있는 가운데 동해 병기가 추진된

자칫 ‘친일파 공원’ 될라?

2007년 8월 27일 473

    오마이뉴스 윤성효 기자         ▲ 경남 마산시 합포구 현동에 있는 장지연 묘소는 경상남도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대한주택공사 울산경남지역본부가 마산시 합포구 현동 일대에  주택지 개발사업을  추진하면서 친일인사 묘소 주변을 공원으로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어 시민단체는 ‘친일파 공원’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주택공사는  마산 현동 일대 7만㎡(2만1000평)에 대단위 택지개발사업을 벌이고 있다. 2005년 지구지정에 이어 현재 보상절차를 밟고 있다. 앞으로 문화재 시굴조사과정을 거쳐 2008년 12월부터 공사에 들어간다. 이곳에는 임대 주택을 포함해 3000세대의 아파트가 들어선다.주택공사는 주민들의 휴식공간을 위해 한 복판에 공원을 조성할 계획이다. 공원 예정지 안에 묘소가 있는데,  그 주인공은 위암 장지연(언론인·1864∼1921)이다.  주택공사는 공원 안에  광장과 분수, 휴게소, 어린이 놀이터, 배드민턴장, 자연학습원, 야외무대 등을 조성할 예정이다.  장지연은 친일인명사전 수록 대상자에 포함됨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친일청산’ 운동단체들은 자칫 ‘친일파 공원’이  되지 않을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장지연은 2005년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에서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 1차 명단에 포함되었기 때문.장지연은 1905년 <황성신문> 사설 ‘시일야 방성대곡’을 발표하고,  대표적 독립운동가 중  한 사람으로 추앙받아왔지만, 곧 친일파로 공식 기록될 예정이다.장지연은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에 많은 친일시와 논설 등을 썼으며, 특히 1916년 12월 10일자 2면에  신임 총독으로 부임하는 하세가와를 환영한다는 ‘환영 하세가와(長谷川) 총독’이라는 제목의 친일시를 쓰기도 했다.하지만 장지연은 1962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국민장을 받았으며  중·고교 교과서에는 ‘우국지사’ 등으로 기술해 놓았다. 중3

[뮤지컬 리뷰] 영웅

2009년 11월 2일 402

[뮤지컬 리뷰] 영웅(서울신문, 09.10.30)

판소리 독립 열사가 40년대 필사본 발견

2009년 11월 2일 342

판소리 독립 열사가 40년대 필사본 발견(연합뉴스, 09.11.01)

“강제징용 4000명 희생된 섬에 왜 가해자 日 추모비뿐인지…”-서울신문(07.08.24)

2007년 8월 24일 338

“강제징용 4000명 희생된 섬에 왜 가해자 日 추모비뿐인지…”   |마주로(마셜제도)윤설영 특파원| “아버지. 막내딸이 왔어요. 대답 좀 해보세요. 아버지….” 65년 전 백일을 갓 넘긴 막내딸은 어느덧 이마에 주름이 깊게 팬 백발의 할머니가 되었다. 이원순(67)씨의 아버지는 일제 때 강제징용돼 1944년 마셜제도 콰잘린 섬에서 사망했다. 이씨는 목놓아 아버지를 불러보지만 코발트빛 바다는 출렁대기만 할 뿐 말이 없다.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가 주관한 ‘마셜제도 해외추도순례’가 유족 17명          이 참가한 가운데 8월17일부터 22일까지 마셜제도 마주로 섬에서 진행됐다. ●식량 끊기자 日軍 ‘식인’자행 1945년 식량보급이 끊기자 일본군이 한국인을 살육한 ‘인육사건’이 발생한 밀리 섬까지는 뱃길로 12시간. 비행기로 14시간이 걸려 이곳 마주로 섬까지 왔지만 일행은 밀리 섬을 향해 선상위령제를 지내는 것으로 위로를 삼아야 했다.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바다를 향해 울부짖은 음성은 멀리 가지 못하고 국화꽃과 함께 찰랑이는 바닷물에 묻혀버렸다. 유족 대표로 추도순례에 참가한 정진영(66)씨는 “아버지는 ‘인육사건’이후 일본군에 저항하다가 총살을 당했다고 들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곳의 흙이라도 만져보고 싶었는데….”라며 울먹였다. 윤진민(66)씨는 “그동안 오고싶어도 올 방도가 없었는데 이제 소원 하나 풀었다.”면서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되어 있는 아버지의 영혼도 어서 모셔오고 싶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 1996년 세워진 ‘한국인 희생자 추모비’가 관                                          리인도 없이 주택 마당에 나뒹굴고 있다.                                          마주로(마셜제도) 윤설영특파원 마주로 섬의 추모비는 유족들을 두 번 울렸다.1996년 정부의 예산을 받아 건립된 한국인 희생자 추모비는 훼손된 채 관리자도

“강제징용 4000명 희생된 섬에 왜 가해자 日 추모비뿐인지…”-서울신문(07.08.24)

2007년 8월 24일 319

“강제징용 4000명 희생된 섬에 왜 가해자 日 추모비뿐인지…”   |마주로(마셜제도)윤설영 특파원| “아버지. 막내딸이 왔어요. 대답 좀 해보세요. 아버지….” 65년 전 백일을 갓 넘긴 막내딸은 어느덧 이마에 주름이 깊게 팬 백발의 할머니가 되었다. 이원순(67)씨의 아버지는 일제 때 강제징용돼 1944년 마셜제도 콰잘린 섬에서 사망했다. 이씨는 목놓아 아버지를 불러보지만 코발트빛 바다는 출렁대기만 할 뿐 말이 없다.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가 주관한 ‘마셜제도 해외추도순례’가 유족 17명          이 참가한 가운데 8월17일부터 22일까지 마셜제도 마주로 섬에서 진행됐다. ●식량 끊기자 日軍 ‘식인’자행 1945년 식량보급이 끊기자 일본군이 한국인을 살육한 ‘인육사건’이 발생한 밀리 섬까지는 뱃길로 12시간. 비행기로 14시간이 걸려 이곳 마주로 섬까지 왔지만 일행은 밀리 섬을 향해 선상위령제를 지내는 것으로 위로를 삼아야 했다.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바다를 향해 울부짖은 음성은 멀리 가지 못하고 국화꽃과 함께 찰랑이는 바닷물에 묻혀버렸다. 유족 대표로 추도순례에 참가한 정진영(66)씨는 “아버지는 ‘인육사건’이후 일본군에 저항하다가 총살을 당했다고 들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곳의 흙이라도 만져보고 싶었는데….”라며 울먹였다. 윤진민(66)씨는 “그동안 오고싶어도 올 방도가 없었는데 이제 소원 하나 풀었다.”면서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되어 있는 아버지의 영혼도 어서 모셔오고 싶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 1996년 세워진 ‘한국인 희생자 추모비’가 관                                          리인도 없이 주택 마당에 나뒹굴고 있다.                                          마주로(마셜제도) 윤설영특파원 마주로 섬의 추모비는 유족들을 두 번 울렸다.1996년 정부의 예산을 받아 건립된 한국인 희생자 추모비는 훼손된 채 관리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