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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고려인 아리랑 자료 체계화

2009년 11월 3일 348

고려인 아리랑 자료 체계화(강원도민일보, 09.10.30)

[설왕설래]사할린 동포-세계일보(07.08.21)

2007년 8월 28일 471

[설왕설래]사할린 동포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 풍파 사나운 바다를 건너 / 한 많은 남화태(南樺太·남사할린섬) 징용 왔네 / … / 철막 장벽은 높아만 가고 / 정겨운 고향길 막연하다.” 러시아 사할린의 한인 1세들이 즐겨 부르는 사할린 아리랑의 한 대목이다. 2차대전 당시 일제에 의해 강제 징용된 아버지를 찾아 사할린에 갔다가 머물러 사는 회한과 돌아가기 힘든 조국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사할린은 천연자원이 풍부해 17세기부터 러시아와 일본이 영유권을 둘러싸고 신경전을 벌이던 곳이다. 당시 제정 러시아는 자발적 이민이 쉽지 않게 되자 죄인들을 보내는 정책을 폈다. 1869년에는 공식 유배지로 설정해 죄수와 혁명가들이 형기를 마친 뒤 이곳에 정착하도록 했다. 사할린을 3년간 여행한 러시아 극작가 안톤 체홉은 이 섬을 ‘슬픔의 틈새’라고 표현했다.사할린은 한민족에게도 눈물과 한숨의 땅이다. 러일전쟁의 승리로 이 섬을 차지한 일제는 1939년부터 한인을 강제로 이곳에 끌어가기 시작했다. 탄광이나 군수공장에서 혹사당하던 이들은 종전을 맞지만 상당수가 귀국하지 못한 채 무국적자로 남았다. 현재 사할린에는 한인 1세와 그 후손 약 4만3000명이 살고 있다.세월은 고통스런 삶의 얼룩을 지워주는 것일까.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한인들은 대부분 사할린 잔류를 원하고, 귀환 희망자는 약 7000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정부는 이들을 상대로 92년부터 영주귀국 사업을 벌이고 있다. 현재 안산 ‘고향마을’ 등에 정착한 사할린 동포는 1600여명이다. 정부는 올해부터 3년 동안 한인 1세 1500∼2000명의 영주귀국을 추진하고 있다.이들 가운데

[설왕설래]사할린 동포-세계일보(07.08.21)

2007년 8월 28일 322

[설왕설래]사할린 동포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 풍파 사나운 바다를 건너 / 한 많은 남화태(南樺太·남사할린섬) 징용 왔네 / … / 철막 장벽은 높아만 가고 / 정겨운 고향길 막연하다.” 러시아 사할린의 한인 1세들이 즐겨 부르는 사할린 아리랑의 한 대목이다. 2차대전 당시 일제에 의해 강제 징용된 아버지를 찾아 사할린에 갔다가 머물러 사는 회한과 돌아가기 힘든 조국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사할린은 천연자원이 풍부해 17세기부터 러시아와 일본이 영유권을 둘러싸고 신경전을 벌이던 곳이다. 당시 제정 러시아는 자발적 이민이 쉽지 않게 되자 죄인들을 보내는 정책을 폈다. 1869년에는 공식 유배지로 설정해 죄수와 혁명가들이 형기를 마친 뒤 이곳에 정착하도록 했다. 사할린을 3년간 여행한 러시아 극작가 안톤 체홉은 이 섬을 ‘슬픔의 틈새’라고 표현했다.사할린은 한민족에게도 눈물과 한숨의 땅이다. 러일전쟁의 승리로 이 섬을 차지한 일제는 1939년부터 한인을 강제로 이곳에 끌어가기 시작했다. 탄광이나 군수공장에서 혹사당하던 이들은 종전을 맞지만 상당수가 귀국하지 못한 채 무국적자로 남았다. 현재 사할린에는 한인 1세와 그 후손 약 4만3000명이 살고 있다.세월은 고통스런 삶의 얼룩을 지워주는 것일까.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한인들은 대부분 사할린 잔류를 원하고, 귀환 희망자는 약 7000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정부는 이들을 상대로 92년부터 영주귀국 사업을 벌이고 있다. 현재 안산 ‘고향마을’ 등에 정착한 사할린 동포는 1600여명이다. 정부는 올해부터 3년 동안 한인 1세 1500∼2000명의 영주귀국을 추진하고 있다.이들 가운데

김해시, 사할린동포 영주귀국자 교육

2009년 11월 3일 350

김해시, 사할린동포 영주귀국자 교육(뉴시스, 09.10.27)

음성에 사할린동포 영주귀국 새 둥지

2009년 11월 3일 321

음성에 사할린동포 영주귀국 새 둥지(뉴시스, 09.10.27)

사할린동포 600여명 내달부터 한국 이주-연합뉴스(07.08.21)

2007년 8월 28일 289

사할린동포 600여명 내달부터 한국 이주   (모스크바 AFP=연합뉴스) 러시아 사할린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 노인 610명이 오는 9월부터 11월까지 고국으로 이주할 계획이라고 인테르팍스 통신이 20일 보도했다.사할린 거주 한인회장 니콜라이 박은 “610명의 노인들이 11월까지는 모두 이주하게될 것”이라며 “그들에겐 300채의 아파트가 제공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이 통신은 전했다.그는 이어 “일본 정부가 한인 노인들의 이주와 주택비용 지원을 위해 280만달러를 책정했다”며 “한국 정부는 러시아에 거주하는 모든 제1세대 한인들을 오는 2010년까지 귀국시키도록 약속했다”고 덧붙였다.앞서 4만여명의 한인 동포들이 지난 1945년 이전 일제 강점기에 사할린으로 강제이주됐으며 현재 이곳에는 약 4천명의 한인노인들과 3만여명의 한국계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사할린동포 600여명 내달부터 한국 이주-연합뉴스(07.08.21)

2007년 8월 28일 288

사할린동포 600여명 내달부터 한국 이주   (모스크바 AFP=연합뉴스) 러시아 사할린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 노인 610명이 오는 9월부터 11월까지 고국으로 이주할 계획이라고 인테르팍스 통신이 20일 보도했다.사할린 거주 한인회장 니콜라이 박은 “610명의 노인들이 11월까지는 모두 이주하게될 것”이라며 “그들에겐 300채의 아파트가 제공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이 통신은 전했다.그는 이어 “일본 정부가 한인 노인들의 이주와 주택비용 지원을 위해 280만달러를 책정했다”며 “한국 정부는 러시아에 거주하는 모든 제1세대 한인들을 오는 2010년까지 귀국시키도록 약속했다”고 덧붙였다.앞서 4만여명의 한인 동포들이 지난 1945년 이전 일제 강점기에 사할린으로 강제이주됐으며 현재 이곳에는 약 4천명의 한인노인들과 3만여명의 한국계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하토야마 “집단적 자위권 행사금지 계승”

2009년 11월 3일 358

하토야마 “집단적 자위권 행사금지 계승”(연합뉴스, 09.11.03)

윤동주 모교 용정 명동학교 복원한다

2009년 11월 3일 335

윤동주 모교 용정 명동학교 복원한다(아시아투데이, 09.11.01)

조선총독부 수신서 번역…제국주의 분석자료 역할-뉴시스(07.08.24)

2007년 8월 28일 417

조선총독부 수신서 번역…제국주의 분석자료 역할  일제가 한국인들의 동화정책이나 소위 황민화정책에 활용했던 조선총독부 수신서가 처음으로 번역돼 일본 제국주의를 분석하는 자료로 사용될 것으로 기대된다.24일 전남대에 따르면 김순전 교수(전남대 일어일문과)를 비롯해 군산대.광주대.서남대 교수들과 전남대 일본문화연구센터 연구원들은 2005년부터 ‘조선총독부 발간 수신서를 통해 본 일본제국 만들기 분석-소생하는 제국주의 일본의 원류 탐색’이라는 연구를 수행, 최근 수신서를 번역 출간했다.이는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영인한 자료 중 누락된 부분을 추가로 발굴, 번역한 것으로 역사학.사회학 등 인문 사회과학 분야의 기초연구자료로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전남대 측은 설명했다.1910년대부터 30여년간 발간된 이 수신서들은 일제가 조선을 식민지화한 뒤 교육을 통해 학생들의 인간관. 국가관 지배방법과 한국 역사왜곡 등을 조명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또 일제 강점기 교육정책과 내용에 대한 비판적 고찰이 가능해져 식민지 발전론의 허구성을 불식시키는 이론적 토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수신서 1기(1911-1921년)는 교육침략.동화정책을 시도하고 있고, 2기(1922-1927)는 문화정치.내선융화를 강조하고 있다. 또 3기(1928-1937)는 근로존중 등 실천도덕 중시, 4기(1938-1941)는 내선일체 등 동화정책.황민화교육 강화, 5기(1942-1945)는 전시체제 하의 파쇼적.군사적 내용을 담고 있다.특히 역사왜곡. 침략정당화, 야스쿠니 신사참배 등을 주장하는 일본의 우익들도 수신서 4-5기 내용과 60~70% 동일한 내용을 배우고 자라났던 것으로 분석됐다.김 교수는 “그동안 한일관계와 근대사 연구는 감성적이고 민족주의 성향으로 흐른 경향이 있다”며 “수신서 자료는 일본 강점기 역사에 대한 구체적 실증과 연구에 유용하게 사용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