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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일장기-‘문화'(07.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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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여담> 마지막 일장기 
 
 
 
누구나 죽을 때까지 숨기고 싶은 비밀이나 콤플렉스 한두개쯤은 지니게 마련이다. 그런 비밀 등이 탄로날 때 당사자는 물론 지켜보는 사람 역시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최근 계속되는 ‘가짜 학력’ 파문이 비근한 예일 듯싶다.

국가나 민족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역사가 길수록 숨기고 싶은 사실(史實)과 기록도 많아지게 마련이다. 한국사에서 나라를 빼앗긴 경험은 치욕 중의 치욕이다. 일부에서는 그 역사를 애써 숨기려 하고 일부에서는 오히려 그 역사를 끄집어내 교훈으로 삼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게 서울 송파구 석촌동 삼전도비(三田渡碑). 치욕과 수난의 역사 상징인 만큼 수차례 훼손되는 굴욕을 겪었다. 올해 들어서도 지난 2월 ‘애국’를 앞세운 사람으로부터 붉은 페인트 세례를 받았다. 3개월의 복원 작업 끝에 지난 6월 제모습을 다시 찾았다.

원래 명칭이 ‘대청황제공덕비’(大淸皇帝功德碑)인 이 비는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인조가 1637년 청 태종 앞에서 머리를 땅에 9번 찧는 항복의식을 치르고도 그의 공덕을 찬미하는 글을 담아 ‘치욕의 문화재’로 인식돼 왔다.

고종 32년(1895년)에는 이 비를 강물에 수장시켰으나 일제에 의해 다시 건져올려졌다. 광복 후 주민들이 땅에 파묻었지만 1963년 대홍수 때 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모질게도 되살아나 굴욕의 한국사를 증언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서울역사박물관이 유사한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박물관은 조선총독부 시절 현재의 서울시 청사인 경성부 청사에 마지막으로 걸렸던 일장기를 소장하고 있는데 상설전시 문제에 대해 결정을 못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 일장기는 8·15 광복 직후 시청을 접수한 미군 로저 마이요트씨가 보관해 오다 1995년 서울시에 기증했다. 당시 함께 걸렸던 ‘나치’독일기도 기증받았다. 식민지시대 오욕의 유물이라는 이유로 10년 넘도록 창고 속 유물로 방치하는 것은 기증 취지를 훼손함은 물론 또 다른 소극적 역사왜곡일 수 있다.

숨기고 묻어버리고 싶지만 그럴 때마다 얼굴을 내미는 삼전도비처럼 치욕과 비밀의 역사일수록 더욱 더 끈질긴 생명력을 지니는 속성이 있다. 최근 서점가와 극장가에서 인기 있는 소설 ‘남한산성’과 영화 ‘화려한 휴가’가 그 ‘부활’의 예일 듯싶다.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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