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가로지르기]‘우리학교’
다큐멘터리 ‘우리학교’에는 홋카이도(北海道) 조선초중고급학교에서 김명준 감독이 보낸 3년 반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김감독은 두 시간 남짓 동안 재일조선인들의 순수한 내면을 고스란히 영화 안에 녹여낸다.

하지만 이 아이들을 단지 ‘순수한’ 아이들로만 기억해도 되는 것일까. 물론 아이들은 순수하다. 그러나 ‘우리학교’의 아이들은 지극히 순수하면서도, 자신들의 신념에 지극히 투철한 사람들이다. 스스로 규칙을 정해 조선말과 치마저고리를 지켜내는 아이들은 누구보다 의연하고 단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을 그저 해맑고 천진한 아이들로만 기억하려는 것은 아이들의 순수성을 신비화하려는 관찰자의 월권이거나 아이들의 신념에 대한 은밀한 폄훼일 수 있다. 이들의 순수성은 가혹한 현실에 맞서는 의지와 열정의 결정체일 뿐, 신비한 ‘동화적 순수성’은 아니기 때문이다.
같은 민족이라는 이유로 남측에서 온 김감독을 따뜻하게 대하는 아이들은 이미 민족이라는 추상명사를 현실 속에서 치열하게 구체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그저 순수하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나 미흡하다. 오히려 그것은 ‘너무나 고마운’ 혹은 ‘너무나 존경스러운’ 모습이다. 아이들이 순수한 것은 무엇보다 그들의 신념이 순수하기 때문이 아닐까.
아이들이 북한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유리창에 ‘우리나라 통일’이라고 손가락으로 글씨를 쓸 때, 아이들은 우리를 한없이 부끄럽게 만드는 동시에 우리를 한없이 감동시킨다. 탈민족주의가 친일과 친미를 정당화하는 세련된 알리바이로 엉뚱하게 악용되는 이 땅의 현실에서, 아이들의 삶과 말에 치열하게 살아 있는 ‘민족’은 이 영화가 선사하는 감동의 원천이다. 일본 우익의 탄압이 일상화된 상황 속에서 자신들의 신념을 온전히 지켜내려는 그들의 노력이 바로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은 아닐까.
영화는 북한 방문을 준비하는 고급반 아이들의 꾸밈없는 설렘과 방문에서 돌아온 아이들의 진솔한 기쁨
까지도 겸허하게 담아낸다. 김명준 감독은 ‘어설픈 중립성’을 벗어던지고 진심과 진심이 만나는 길을 택한다. 그의 이러한 진심이 거둔 대표적 성과는 아이들의 조선말이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관객에게 전혀 서툴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외견상 서툰’ 그들의 조선말이 오히려 재일조선인들의 의지와 열정이 고스란히 담긴 ‘완전한 언어’처럼 보이는 것이다. 삶과 혼이 담긴 것이 진정한 언어라면, ‘우리학교’ 교사들과 아이들의 언어야말로 그 자체로 이미 완전한 언어이기 때문이다. 형식과 내용의 관계를 강조하며 조선말을 고집하는 이 아이들의 신념 앞에서, 우리의 ‘외견상 유창한’ 언어가 오히려 부끄러워지는 것이다.
혹시 그들을 그저 순진무구한 아이들로만 기억하려는 태도에는 그들의 신념을 교묘하게 외면하려는 저의가 담겨 있는 것이 아닐까. ‘민족’에 대한 그들의 신념을 존중하지 않은 채 그들의 순수성에만 감동하는 것은 일종의 위선이 아닐까.
영화의 후반부에서, 아이들을 ‘우리학교’에 보낸 어느 학부모는 아이들과 함께 자신들도 성장한 것 같다고 말한다. 일본 사회에서 아이들을 조선학교에 보내는 것 자체가 용기와 의지를 요구하는 결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정으로 성장한 것은 아마도 이 영화를 관람한 남측의 관객이 아닐까. 아이들의 순수함에만 감동하는 것은, 오히려 이 영화의 감동을 우리의 이데올로기적 편견을 조금도 거스르지 않는 ‘가짜 감동’으로 박제하는 것이다. 그런 ‘가짜 감동’에 만족하지 않고 ‘우리학교’를 통해 우리 내면의 자성과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은 온전히 우리 자신의 몫이다.
‘우리학교’는 그 자체로 재일조선인에 대한 우리들의 편견을 성찰할 수 있는 소중한 계기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취해야 할 태도는 아이들의 순수함에 그저 감동하는 ‘감탄’이 아니라, 그동안 남측 사람들이 재일조선인들을 의도적으로 타자화했던 것은 아닌지 스스로 돌아보는 ‘자성’이어야 한다. 아이들의 순수한 신념에 즐겁게 ‘감염’되어 마침내 우리 안의 냉전의식과 당당히 맞설 수 있을 때, ‘우리학교’의 감동은 비로소 완성될 것이기 때문이다.
홋카이도의 유일한 조선학교인 이 학교를 아이들과 선생님들은 ‘우리학교’라고 부른다. 그러나 고급반 담임인 박대우 선생님이 졸업식에서 ‘여기는 동무들의 영원한 모교입니다’라고 울먹일 때, 이 학교는 이미 우리학교 졸업생들만의 모교는 아니다. 이미 ‘우리학교’는 영화를 관람한 수많은 남측 사람들의 영원한 ‘정신적 모교’가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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