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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일본군 필리핀서도 수십명 생체해부”-연합뉴스(06.10.19)
“옛 일본군 필리핀서도 수십명 생체해부”<마이니치> (도쿄=연합뉴스) 신지홍 특파원 = 2차대전 말 일본군이 필리핀에서 현지주민 30-50명을 상대로 생체해부를 했다는 증언이 나왔다고 마이니치(每日)신문이 19일 보도했다.당시 필리핀 민다나오섬에서 부상병의 치료를 담당했던 위생병(84)은 현지주민을 산 채로 해부하는 데 직접 참여했다고 증언했다.증언에 따르면 해군 제33경비대 의무대에 소속됐던 그는 1944년 8월부터 민다나오섬의 한 항공기지에서 부상병의 치료를 담당했다. 의무대는 대위인 군의관을 중심으로 20여명의 사병 등으로 구성됐다.생체해부는 그해 12월부터 미군의 스파이로 의심되는 주민들을 상대로 기지 안의 병원에서 실시됐다는 것이다. 군의관의 지시에 따라 마취를 한 뒤 2명이 집도했으며 10분-3시간에 걸쳐 팔다리를 잘라내거나 배를 갈랐다고 한다.증언자는 미 해군 상륙직전인 1945년 2월까지 사흘에서 2주 꼴로 생체해부가 실시됐으며 희생자는 30-50명에 달했다고 말했다.
‘서울1945’ 제작진 ‘명예훼손’으로 기소-연합뉴스(06.10.31)
‘서울1945’ 제작진 ‘명예훼손’으로 기소 “이승만, 장택상이 친일파?”…”관점 따라 달라”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는 31일 KBS 대하드라마 ‘서울 1945’를 방영해 고(故) 이승만 전 대통령 등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사자 명예훼손)로 이 드라마를 제작한 KBS 윤모 PD와 이모 작가를 각각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윤 PD와 이 씨는 이 드라마 34회에서 고(故) 장택상 전 국무총리가 이 전 대통령에게 ‘친일경찰’ 박모 씨를 “사건 해결의 최대 공로자입니다”라고 소개하는 장면을 내보내 이 전 대통령과 장 전 총리가 친일파로서 공산당 지폐위조 사건인 ‘정판사 사건’을 경찰을 동원해 해결한 것처럼 묘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드라마 38회에서 이 전 대통령이 “여운형 안 되겠어”라고 말하자 장 전 총리와 박씨가 여운형을 암살하려는 모의를 한 것처럼 표현된 장면도 등장인물들이 여운형의 암살배후였다는 허위 사실을 공표한 것이라는 사유로 제작진의 공소사실에 포함됐다. 윤 PD는 연합뉴스와 전화통화에서 “드라마에서 이 전 대통령 등을 친일파로 명시한 것도 아니고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른 사안이다”면서 “고인들의 명예를 훼손할 의도는 전혀 없었던 만큼 유ㆍ무죄는 재판을 통해 가려질 것이다”고 말했다. ‘서울 1945’는 해방 전후 한국 현대사 공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좌우익 젊은이들의 삶과 사랑을 다룬 대하드라마로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방영됐다. 이 전 대통령의 양자 이인수 씨와 장 전 총리의 3녀 장병혜 씨는 이 드라마가 허위사실로 두 고인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다며
울릉도 찾는 일본 ‘다케시마 문제 연구회’-오마이뉴스(06.10.31)
울릉도 찾는 일본 ‘다케시마 문제 연구회’ 내달 3일 소속 회원 4명 울릉도 방문… 방문 목적 등 관심 독도 문제를 조사하고 있는 일본의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지명) 문제 연구회’ 소속 회원들이 울릉도를 방문할 예정인 가운데 이 단체의 성격과 방문 목적 등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경북 울릉군과 대구대 최장근 교수 등에 따르면, 내달 3일 독도 문제와 관련 한·일 양국의 주장을 비교·분석하는 모임인 다케시마 문제 연구회의 시모조 마사우 회장 등 소속 회원 4명이 울릉도를 방문한다.이들은 앞서 2일 오후 4시 부산을 통해 입국한 후 다음날인 3일 여객선을 이용해 울릉도를 방문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시모조 회장 일행은 울릉도에 자리한 독도박물관을 들러 관람한 뒤 전망대를 방문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하지만 이들의 독도 방문은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가 관광 외 목적의 독도 입도를 허가제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 다케시마 문제 연구회 측도 독도를 방문할 계획은 없다는 뜻을 한국 쪽 인사에게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이들은 한국 체류 마지막 날인 5일 오후 부산으로 이동에 조선 숙종 당시 두 차례나 일본으로 건너가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출어금지 약속까지 받아냈던 안용복의 유적들을 둘러볼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이들의 방문 목적에 대해 대구대 최장근 교수(일어일문학과)는 “한일간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는 우산도와 죽섬간의 관계를 파악하는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특히 한일 고대사료에서 나타나는 지리적인 사항을 비롯해 한때
이회영, 허위, 이상룡…기억해야 할 이름들-프레시안(06.10.29)
이회영, 허위, 이상룡…기억해야 할 이름들[노블레스 오블리주 이야기(5)] 독립운동 명문가 온 가족을 이끌고 만주로 간 우당 이회영 집안 우당(友堂) 이회영(李會榮) 일가 역시 우리나라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특히 독립운동을 논하는 데 있어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집안이다. 이회영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삼한갑족(신라, 고려, 조선 3조에 걸쳐 대대로 문벌이 높은 집안)인 경주 이씨 백사공파 집안 출신으로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 1556~1618)의 11세손이다. 경주 이씨 백사공파는 이항복 이래 8대에 걸쳐서 연이어 10명의 재상(4명의 증영의정(贈領議政)을 포함, 9명의 영의증과 1명의 좌의정)을 배출한 조선조 최고의 명문이다. 해방 후에는 이회영의 동생인 성재(省齋) 이시영(李始榮)이 초대 부통령을 역임해 집안의 명성을 이었다. 이회영의 아버지는 고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이유승이다. 이회영은 1901년 근대적 신교육을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삼포(蔘圃)를 경영하다가 일본인들의 약탈로 실패한 뒤 1908년 장훈학교(長薰學校)를 설립하고 안창호, 이동녕 등과 함께 청년학우회를 조직하여 무실역행(務實力行)을 행동강령으로 독립운동에 진력하였다. ▲ 우당(友堂) 이회영(李會榮). ⓒ프레시안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이회영과 그의 형제들은 만주에 무력항쟁 기지를 설립할 구상을 하고 전 재산을 처분한 뒤 1910년 12월 추운 겨울에 60명에 달하는 대가족을 이끌고 만주로 떠나게 된다. 이 망명을 주도했던 인물이 넷째인 이회영이었다. 그때 처분한 재산이 사료에 따라 조금씩 추정치가 다르나 요즘 가치로 환산하면 600억 원에 이르는 거금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때 만주로 간 우당 6형제는 첫째 이건영(李健榮, 1853~1940), 둘째 이석영(李石榮,
아베정권의 대외정책과 군사대국화
손열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 [편집자 주] 아래 글은 2006년 10월 25일 흥사단 강당에서 ‘동북아 평화 실현을 위한 대일행동네트워크’가 주최한 <북핵 이후 아베정권과 군사대국화>란 주제의 정책토론회 발제문이다. 발제문 전재를 허락해 주신 연세대 국제대학원 손열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1. 들어가며아베정권을 전망하는 데 있어 고이즈미 정권 5년은 특별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왜냐하면 아베가 고이즈미의 후계자란 측면에서가 아니라 아베를 고이즈미란 기준으로 재단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고이즈미는 전후일본에서 최장수 수상 중의 하나일 뿐만 아니라 그 정치적 능력 면에서도 최고급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를 실행에 옮긴 흔치 않은 정치지도자이다. 아베는 과연 제2의 고이즈미인가? 향후 일본의 정치와 외교에 대한 전망은 아베를 읽음으로써 가능한가? 그렇지 않다면 아베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2. 고이즈미-아베의 외교노선현재 일본의 전체적 흐름은 뚜렷한 보통국가노선이라 하겠다. 이는 과거 경제중심주의에 근거한 저자세외교, 실용주의외교로부터 일본의 경제력에 걸맞는 정치군사적 역할을 해야 하겠다는 사고, 보다 명시적인 국익추구의 자세에서 세력균형외교, 주장하는 외교로 전환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의 사상적 기반은 1980년대를 풍미한 신보수주의(neoconservatism)이다. 전통을 중시하고 내셔널리즘의 고양, 강한 국가, 주장적 외교로 대표되는 정책이념이다. 이러한 보통국가노선은 21세기 들면서 세 가지 시대적 흐름을 타고 있다. 첫째는 9.11 이후 미국의 반테러/비확산 전략을 일본이 적극적으로 뒷받침해야 하는 상황적 조건이다. 미일동맹체제 속에서 일본은 미국의 전쟁에 일정한 기여를 해야
日 정권교체도 교과서 반영엔 한계
日 정권교체도 교과서 반영엔 한계(연합뉴스, 10.03.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