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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삶과 문화] 구하라! 한국 가곡-한국일보(06.10.31)

2006년 11월 1일 500

[삶과 문화] 구하라! 한국 가곡     1933년 채동선의 <고향>은 빅 히트였다. 심금을 울리는 단조 가락에 얹혀진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로 시작하는 정지용의 시로 인해 이 가곡은 당시 교양인이라면 반드시 불러야 할 노래였다. 그러나 정지용이 월북하면서 그가 지은 시들은 남으로부터 축출당했고 그의 시에 의한 노래들도 금지되었다. ● 멸종 위기 처한 20세기 문화유산 채동선은 <고향>을 구하기 위해, 아니 그 가락을 구하기 위해 박화목에게 부탁, ‘꽃 피는 봄 사월 돌아오면…’으로 시작하는 <망향>으로 가사와 제목을 바꿨다. 가사의 대체 가능성이 알려지자 이은상의 <그리워>도 등장했다.같은 시에 여러 작곡가가 곡을 붙이는 경우는 있어도 같은 가락에 다른 시인의 가사를 붙이는 예는 예술음악에서는 흔치 않다. 일반인들은 노래를 살리기 위한 작곡가의 이러한 행위를 작가적 진정성과 같은 근원적인 면을 거론하며 지탄하기보다는 자연스레 수용했다.이 과정에 가곡의 중요한 보급 루트인 중고교 음악시간과 교과서의 힘이 컸다. 이러한 일이 가능했던 것은 좋은 노래는 살려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였다. 즉 채동선의 가락은 작곡가만의 것이 아닌 한 시대 우리의 것이기 때문이었다.일제강점기에 형성된 가곡은 서구 예술음악에 대한 우리 민족의 소화력을 보여준 성공적인 예이다. 유려하면서 서정성 넘치는 선율은 대체적으로 예술적 품위가 있으며, 김순남의 <철공소>와 같은 가곡에서의 실험적인 화성과 극적 표현은 경이로울 정도이다.일제강점기 생성되어 우리 전통문화에 더해진, 새로운 문화유산으로서의 가곡. 20세기 초 혼란스런 우리 시대의 정신과 더불어 민족의 여유로운 정서가 담겨진 가곡은 시공을 초월,

‘독도는 조선땅’..日지도 첫 공개

2010년 4월 1일 389

‘독도는 조선땅’..日지도 첫 공개(연합뉴스, 10.04.01)

“안 의사 유해 찾아오도록 최선의 노력”

2010년 4월 1일 428

“안 의사 유해 찾아오도록 최선의 노력”(한겨레신문, 10.03.26)

“한국인 원혼 편히 잠드소서…”-부산일보(06.10.31)

2006년 11월 1일 478

“한국인 원혼 편히 잠드소서…”  일제 강점기 홋카이도 탄광사고 사망 473명 “일제 강점기 때 일본 홋카이도 비바이시로 끌려가 탄광사고로 죽은 한국인 473명의 원혼을 달래러 왔습니다.”지난 28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센텀시티 인근 수영강변 옆 APEC나루공원. 전통 제례 복식을 갖춘 일본인 13명이 2006 부산비엔날레 특별전 조각프로젝트(5.27~8.31) 영구전시 출품작인 칸 야수다의 작품 앞에서 위령제를 준비 중이었다.‘고요한 강’이란 제목의 작품은 화강석 재질로 가로 3m80㎝,폭 1m55㎝,높이 2m50㎝. 손바닥 형상의 부드러운 곡선미를 지닌 작품에는 일제 식민정책으로 희생된 한국인의 영혼을 위로하고 사죄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이날 온 일본인들은 홋카이도 비바이시 시민들로 천리교 신자들. 사람들을 모아 방문을 주도한 이는 히로오카 분타로씨(70·천리교 비바이 분교회 전 회장). 히로오카씨는 칸 야수다의 고교 9년 선배.히로오카씨는 “야수다씨가 비엔날레에 출품된 작품의 의미를 설명하고 자신의 작품 앞에서 위령제를 지내달라는 요청을 해 와 방문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억울하게 죽은 한국의 원혼들이 고향의 품에서 편안하게 잠들었으면 좋겠다는 작가의 바람을 실현하기 위해 왔다”고 했다.위령제는 이날 오후 4시부터 5시40분까지 엄숙하고 경건하게 거행됐다. 참석자들은 현해탄 건너 이국 땅에서 죽은 한국인들의 넋을 위로하고 한국과 일본의 우호와 평화를 염원하는 내용의 제문을 읽었다.이들은 지난 10월 3일 일본 홋카이도 비바이시에 있는 칸 야수다의 조각 앞에서 야수다씨와 함께 한국인의 원혼들을 위로하고 한국에 보내는 의식을 치뤘다. 이 조각은 1980년 칸 야수다가 만든 작품으로 세 개의 기둥으로 이뤄져 있다. 일본에서

장수군, 전해산 의병장 추모제례-뉴시스(06.10.30)

2006년 11월 1일 591

장수군, 전해산 의병장 추모제례     대동의병장 전해산 장군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한 제 96기 추모제가 30일 전북 장수군 번암면 원촌마을 묘소에서 열렸다.번암면 유도회 주관으로 열린 이날 추모제는 일제강점기 때 남원, 장수, 광주, 장성, 영광 등 전라도 일대에서 의병대를 이끌고 왜군과 맞서 싸운 전해산 장군의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마련됐다.이날 추모제에는 도홍기 장수부군수를 비롯해 각급기관단체장, 유도회 각면 지회장 및 유도회원, 유족, 지역주민 등 150여명이 참석했다.추모제는 도 부군수의 초헌례와 유경호 산서면 유도회장의 아헌례, 배정상 유도회원의 종헌 순으로 진행됐다.한편 전 장군은 지난 1905년 을사보호 체결 이듬해인 1906년 최익현 선생의 순창의거에 참가, 실패로 끝나자 의병 300명을 이끌고 남원, 순창, 임실, 장수 등지에서 유격전을 펼치다 영광 오동촌 전투후 의병을 일시 해산하고 고향에서 은거하던 중 일본에 체포돼 1910년 7월19일 생을 마감했다.

“해방직후 해야 했을 독립운동사 이제야 정리”

2010년 4월 1일 413

“해방직후 해야 했을 독립운동사 이제야 정리”(연합뉴스, 10.03.30)

‘보수천 검정다리’를 아십니까?-부산일보(06.10.30)

2006년 11월 1일 835

‘보수천 검정다리’를 아십니까?   부산보훈청 ‘우리고장 현충시설 탐방지’ 발간  “보수천 검정다리를 아십니까?” 부산지역의 나라사랑 정신이 서려있는 현충시설 및 장소를 소개하는 책이 발간돼 눈길을 끌고 있다.부산보훈청은 30일 ‘우리고장 현충시설 탐방지'(사진)를 제작,출판했다고 이날 밝혔다.검정다리는 부산 중구 보수동 보수천에 있던 통나무다리로 구한말에서부터 일제강점기 시절 대신동형무소로 끌려가던 애국지사들이 건넜던 곳. 현재 다리는 사라졌으며 다리를 기념하는 추억비만 남아 있다. 검정다리라는 이름은 당시 애국지사들이 입었던 검의 수의 때문에 지어졌다고 전해진다.이번에 발간된 책에는 검정다리 외에도 3·1운동 당시 범어사의 불교학생들이 만세운동을 벌인 것을 기념하는 범어사 3·1운동유공비 등 우리 지역 근현대사 속 선열들의 애국심을 느낄 수 있는 50여곳이 소개된다.보훈청은 부산시내 초·중·고등학교와 공립도서관,지하철역사 등에 2천부를 배포하는 것은 물론 보훈청 홈페이지에도 책자의 내용을 자세히 소개해 시민들에게 널리 알릴 계획이다.보훈청 관계자는 “지난 3월부터 보훈청 직원들이 자체 선정한 장소에 대해 직접 방문해 사진을 촬영하고 글을 써 이번에 출판하게 됐다”며 “부산시민들에게 우리 지역의 현충시설에 대해 홍보함으로써 애국선열의 나라사랑 정신을 되새기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日 이와키씨 “한·일 불행한 과거 치유 도움된다면…”-경향신문(06.10.29)

2006년 11월 1일 468

日 이와키씨 “한·일 불행한 과거 치유 도움된다면…”  [경향신문 2006-10-29 18:51]        조국이 과거에 지은 죄를 씻기 위해 한국에 건너와 홀로 노인들의 병 수발을 들고 있는 일본인 이와키 구니히사(71·岩木邦久).이와키는 자신이 노인이지만 노인병원에서 치료받는 한국인 노인들을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돋보이는 자원봉사자’다.이와키는 8월 한국에 입국, 9월부터 서울 중랑구에 있는 서울시립북부노인병원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펴고 있다.그는 현재 한국에서 홀로 하숙을 하며 치매환자, 거동이 불편한 노인 등을 간병하고 있다.지난해까지만 해도 일본인 관광객 중 한 명이었던 그이지만, 여행을 하면서 이 땅에서 여생을 보내겠다는 마음을 먹게 됐다. 이와키는 “아픈 노인들을 돌보면서 한·일 간의 불행한 기억을 지우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의미있는 새 출발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일본인에 대한 한국인의 잘못된 인식들을 바로잡고 싶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마침 그의 아버지는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경찰로 근무한 적이 있었다.아버지 때문만은 아니라도 늘 마음 한 구석에 깊이 갖고 있던 한국에 대한 ‘빚’을 몸소 갚고 싶었던 것이다.이와키는 고령의 가장이 타국땅에서 자원봉사를 하겠다는 말에 걱정하던 아내와 두 딸에게 “몸이 건강할 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면서 설득했다.회사원 시절부터 퇴직 후 봉사활동을 하며 살고 싶다는 마음을 먹고 2004년 일본에서 홈케어(간병인) 자격증을 따는 등 자원봉사에 대한 열정이 남다른 그였다.현재 이와키의 간병을 받고 있는 오병순 할머니(92)는 “말은 통하지 않지만 마치 친 자식처럼 자신을 모시는

“독도 일본령으로 표기된 초등학교 교과서 채택 막아야”

2010년 4월 1일 332

“독도 일본령으로 표기된 초등학교 교과서 채택 막아야”(뉴스천지, 10.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