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요기사
‘국립대한민국관’→‘대한민국역사박물관’ 명칭확정
‘국립대한민국관’→‘대한민국역사박물관’ 명칭확정(뉴시스, 09.10.19)
[안중근-이토 ‘100년만의 만남’]일본에서 만난 사람들
[안중근-이토 ‘100년만의 만남’]<10>일본에서 만난 사람들(매일신문, 09.10.17)
“‘오키나와 유사시 핵 반입’ 공문서 발견”-ytn(07.10.08)
“‘오키나와 유사시 핵 반입’ 공문서 발견” 미국의 오키나와 일본 반환을 합의한 1969년 미·일 정상회담에 앞서 양측이 유사시 미군이 오키나와에 핵무기를 반입할 수 있도록 밀약을 맺은 사실을 뒷받침하는 공문서가 발견됐다고 일본 언론이 보도했습니다.이 문서는 정상회담에 앞서 당시 헨리 키신저 대통령 보좌관이 리처드 닉슨 대통령에게 보낸 2통의 각서로, 지난 2005년 기밀이 해제된 뒤 최근 공개됐습니다.키신저 당시 보좌관이 보낸 각서는 오키나와 반환 후 미국의 핵 반입과 관련된 비밀 합의라는 제목의 문서입니다.미 국립 공문서관에서 이 문서를 발견한 시노부 다카시 니혼대 교수는 문서에 비밀 합의의 구체적인 내용은 언급돼 있지 않지만 밀약 합의문서가 존재함을 거듭 보여주는 것으로서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발견라고 말했습니다.하지만 일본 외무성은 그 문서에 대해서는 논평할 입장이 아니라면서 지금까지 밝혀온 것처럼 밀약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미·일 정상회담에 앞서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의 밀사로 활동했던 와카이즈미 게이 전 교토산업대 교수도 자신의 저서에서 유사시 오키나와에 핵을 배치한다는 합의문은 1969년 11월 양국 정상이 서명했으나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독자칼럼] 오키나와 주민의 역사바로잡기-한겨레신문(07.10.11)
[독자칼럼] 오키나와 주민의 역사바로잡기 역사 왜곡에 항의하는 오키나와 주민의 분노 앞에 강경으로 일관하던 일본 정부는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의 자리를 마련했다. 지난달 29일 11만명에 이르는 오키나와 주민의 대규모 집회에 놀란 일본 정부는 이틀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한발짝 물러난 것이다. 오키나와 현지사와 현의회 의장 등은 문부과학상과 참의원 의장을 만나 오키나와 현민대회의 “집단자결이 군의 관여 없이는 일어날 수 없었다는 것을 전하는 것이 우리들의 책무”라는 결의문을 읽고, “현민의 뜻을 받아들여 달라”고 요청하였다.이에 대해 문부성은 “관계자들과 지혜를 모아 여러분들의 뜻이 반영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겠다”고 답변하였다. 2차 대전 끝무렵의 오키나와전투 때에 발생한 ‘집단자결’ 사건은 일본군에 의한 자국민 학살사건이다. 전투에 방해가 되거나 스파이 행위를 우려한 일본군은 주민에게 자결을 강요한 것이다. 미군 상륙 전에 마을의 병사주임을 통해 군으로부터 수류탄을 건너받아 유사시에 자결하도록 명령받았으나 불발탄이 많아 자결의 수단은 칼, 낫, 끈 등으로 가족 간, 주민 간에 서로 죽이는 참혹상이 발생했다.당시 일본에서는 천황을 위해 죽는 것이 최고의 국민도덕으로 추앙받는 철저한 황민화 교육이 시행되고 있었다. 그 황민화 교육은 천황의 군대가 관철시켜야 할 최대의 과제였다. 그러나 주민에게는 집단자결을 강요했지만, 당사자인 군인은 오히려 살아남았다. ‘살아서 포로의 굴욕을 받지 말고, 죽어서 죄과의 오명을 남기지 말라’는 전쟁 훈령이나 ‘군·관·민 공생공사의 일체화’도 무시된 채 무고한 주민만 희생양이 되었다.이번 역사교과서 검정은, 1990년대 이후의 일본의 우경화
“원주민란 동학 중심지 발전 토대”
“원주민란 동학 중심지 발전 토대”(강원도민일보, 09.10.17)
고당 조만식 선생 59주기 추모식 “민족화합정신 재조명해야”
고당 조만식 선생 59주기 추모식 “민족화합정신 재조명해야”(천지일보, 09.10.16)
[커버스토리]한국사 다시 써야 한다-뉴스메이커(07.10.11)
[커버스토리]한국사 다시 써야 한다 경향신문 ‘코리안루트 탐사취재단’ 1만km 대장정 ‘우리역사 바로보기’동아시아 고대문명 건설 주역인 우리민족사 새로운 시각과 접근 시도 중국을 여행할 때 도시와 시골 곳곳에서 ‘문명성시건설(文明城市建設)’이라는 표어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내년 올림픽을 앞두고 길에 침을 뱉는다든가 아파트 베란다에 빨래를 너는 등 ‘비문명적’인 요소를 척결하자는 뜻이다.고대 4대 문명 가운데 하나인 황하(黃河) 문명의 주인공이었고 역사시대에는 동아시아 문화의 중심이었던 중국이 이제 와서 “문명도시 건설에 매진하자”고 외치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로 치더라도 지독한 아이러니처럼 보인다.그런데 그게 아니다. 중국은 지금 경제뿐 아니라 역사, 민족사, 심지어 문명사까지 ‘문명적으로’ 바꾸려고 애쓰고 있다. 고구려사를 중국 역사에 편입하여 우리와 마찰을 빚고 있는 동북공정은 그 한 단면에 불과할 뿐이다. 부신 사해 유적 입구에 세워진 여신상. 중국 최초 용 형상의 돌무더기가 발견돼 ‘중화제일촌’ 으로 부르고 있다. <김문석 기자> 동이족의 ‘요하문명’ 중국사 새로 써 1980년대 이후 중국 고고학계는 커다란 충격에 빠졌다. 동이족(東夷族)의 영역이었던 요하(遙河)·대릉하(大凌河) 유역에서 황하 문명보다 시기적으로 앞서고 질과 양 면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 문명의 증거들이 무더기로 나왔기 때문이다. 1982년 사해(査海), 1983년 흥륭와(興隆窪)에서 발견한 주거 유적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집단 취락지로서 각각 ‘중화(中華) 제일촌’, ‘화하(華夏) 제일촌’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 취락이 조성된 시기인 8200~7600년 전 이곳은 화하족의 중심지가 아니었을 뿐 아니라 출토된 유물인 빗살무늬토기, 옥장식(귀고리) 등도 동이족, 나아가서 한반도 문화 유형과 더
“‘또 하나의 조국’을 선물했습니다”-프레시안(07.10.11
“‘또 하나의 조국’을 선물했습니다” [기고]에다가와 조선학교 지원모금 2차 전달식에 다녀와서 일본 도쿄도 정부의 운동장 부지 반환 소송에 맞서 법정 다툼을 벌이던 도쿄조선제2초급학교(에다가와 조선학교). 학교의 위기가 국내에 알려지자 국내에서는 시민들의 지원활동이 벌어졌다. 결국 재판에서 학교는 시가의 1/10에 운동장 부지를 도쿄도로부터 살 수 있게 됐고, 국내에서 학교 지원을 모금한 돈이 에다가와 조선학교에 전달됐다. 지난 6월 있었던 1차 모금 전달식에 이어, 지난 2일 2차 모금 전달식이 도쿄의 에다가와 조선학교에서 열렸다. 국내에서 모금해 전달한 금액만 무려 7억 원에 이른다. 2차 모금 전달식에 다녀온 홍승권 삼인출판사 부사장이 편지글 형식으로 방문기를 보내왔다.<편집자> S형, 선선한 가을 날씨가 여름 내내 늘어진 몸에 상쾌한 자극을 줍니다. 이런 상쾌한 계절, 지난 10월 1일부터 3일까지 일본 동경에 있는 에다가와조선제2초급학교를 방문하고 돌아왔습니다. 지난봄에 SBS의 다큐프로를 통해 동경도지사 이시하라 신타로의 학교 운동장 반환소송 때문에 60년의 역사를 가진 이 학교와, 60여 명의 동포 아이들이 졸지에 배움의 터를 잃을 뻔한 이야기를 잘 알게 되었었죠. 결국 법원은 시가의 1/10 가격에 불하하라는 중재명령을 내려 사실상 학교 측과 동포들의 손을 들어준 셈이 되었지만 넉넉지 못한 에다가와 지역의 동포들에게는 1억4000만 엔도 적지 않은 부담이 되었던 게 사실입니다. 오랜 세월동안 일본 땅의 동포들에게 무관심하거나 외면해왔던 우리의 부끄러운 역사를 돌이켜 생각해보며 프로를 보는 내내 눈시울을 훔쳐야 했습니다. ‘아이들아 이것이
“정율성은 중국을 여는 일급 문화코드”
“정율성은 중국을 여는 일급 문화코드”(경향신문, 09.10.16)
[길,숲,섬]시대에 맞선 신여성을 기념하며…수원 나혜석거리
[길,숲,섬]시대에 맞선 신여성을 기념하며…수원 나혜석거리(경향신문, 09.10.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