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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순칼럼] 오키나와에서 본 한반도-한겨레신문(07.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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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순칼럼] 오키나와에서 본 한반도 

  
 
지난달 29일 일본 오키나와에서는 대규모 군중집회가 열렸다. 후텐마 미 해병대 항공기지가 있는 기노완시 해양공원에서 열린 집회의 이름은 ‘교과서 검정의견 철회를 요구하는 현민대회’로, 주최 쪽은 11만명이 참가했다고 말한다. 오키나와 본도의 인근 섬에서 따로 열린 집회에 나온 사람까지 합치면 11만6천명이다. 1995년 10월 미군 병사의 소녀 성폭행 사건의 규탄대회 때 모인 9만을 넘어섰으니 앞으로 상당기간 72년의 오키나와 반환 이래 최대 집회로 기록될 것이다.

한마디로 오키나와의 분노가 터진 것이다. 태평양전쟁 말기인 45년 3월 말부터 석 달 동안 지속된 오키나와 전투 때 일어난 주민 집단자결에 관한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이 촉매작용을 했다. 당시 현지 주민을 전장에 집단 동원한 일본군은 이들이 미군에 투항할 것을 우려해 전황이 불리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수류탄을 나눠주는 등 집단자살을 강요했다. 문부성은 지난 봄 2008년도에 사용될 고교용 역사교과서 검정과정에서 집단자결에 일본군의 명령이나 강요가 있었다고 언급한 일곱 가지 교과서에 대해 실태를 오해할 우려가 있다며 수정을 요구했다. 그 결과 모든 교과서에서 군이 집단자결을 강요했다는 부분이 사라졌다. 오키나와 주민들이 항의대표단을 꾸려 도쿄로 보냈으나, 문부성이 대꾸도 하지 않자 규탄대회 개최로 이어진 것이다.

규탄대회가 열리기 한 1주일 전쯤 필자는 오키나와에 머물면서 현지의 독특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나하시 현청 앞 공터에는 집회 참가를 독려하는 대형 펼침막이 걸렸고, 기노완 시청사 1층에는 교과서의 왜곡 내용을 비교하며 역사적 진실을 왜곡하지 말라는 구호가 적힌 대자보가 널려 있었다. 현지의 양대 신문인 <류큐신보>와 <오키나와타임스>는 연일 생존자들의 증언과 전문가들의 발굴 내용을 담은 특집을 대대적으로 실으며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집회 이틀 전 두 신문에 실린 집회 안내 대형광고에는 대회장까지 갈 수 있는 무료버스 승차권이 함께 인쇄됐을 정도다.

오키나와전 때 주민의 3분의 1이 숨졌고, 면적을 기준으로 하면 주일미군 전용시설의 74.6%가 집중돼 있는 오키나와의 터질 듯한 분위기는 도쿄나 오사카에 본사를 둔 매스컴의 보도만으로는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다. 집회 준비에 여념이 없는 야마시로 히로지(55) 오키나와 평화운동센터 사무국장에게 중앙 언론의 보도 자세를 물었더니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냉랭한 답변이 바로 돌아왔다. 원래 오키나와는 일본의 식민지였으니까 처음부터 이곳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것이 일본 정부와 중앙 매스컴의 일체화된 정책이라는 것이다. 공무원 노조인 자치로에서 평화운동센터에 파견된 그는 “우리가 중앙정부나 중앙매스컴이 무시하지 못할 정도의 운동을 만들지 못한다면 언제까지나 일본 국내의 식민지로서 남게 될 것”이라며 격한 말을 쏟아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냉전이 끝났다는 장밋빛 선언을 들은 지 한창 오래됐지만, 미사일 방어망 최신 병기가 속속 배치되는 등 군사력 증강이란 부담 아래 신음하고 있는 오키나와를 보면서 한반도를 생각했다. 한반도는 여전히 중무장한 수백만의 병력이 밀집해 대치하는 세계에서 유일한 지역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어제 걸어서 통과한 군사분계선은 극히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도처에 총부리가 서로 겨눠져 있다. 한반도가 냉전의 절해고도로 남지 않으려면 화해와 평화통일에 무관심한 세력들이 무시할 수 없을 계기를 스스로 만들어 내지 않으면 안 된다. 겨레의 염원이 이번 정상회담에 슬기롭게 모아지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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