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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美와 핵밀약 사실”… 양국 또 냉각
日 “美와 핵밀약 사실”… 양국 또 냉각(서울신문, 09.11.23)
아우라 없는 장소의 운명
김창수 인천학연구원 상임연구위원 인천 중구청은 지난 해 1월 23일부터 올해 2월 23일까지 총 예산 4억3천2백 여 만원을 들여 현 중구청 앞길이 개항기 당시 일본 조계지역이었음을 착안해 현재의 건축물들을 일본풍으로 리모델링하는 사업을 진행하였다. 중구청이 밝힌 사업 목적은 “볼거리 제공을 통한 관광객증진 및 지역경제 활성화”다. 그러나 이 사업에 대한 몰역사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다. 아래는 인천문화재단(www.ifac.or.kr)에서 발행하는 비평지 <플랫폼> 최신호에 실린 김창수 인천대 인천학연구원 상임연구위원의 글을 발췌한 것이다. 발췌하여 싣는 것에 동의해 주신 인천문화재단과 김창수 위원께 감사드린다. 이 글의 전문은 <플랫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편집자 주> 일본식 상가 건물을 재현하거나 복원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특정 국가와 관련된 문화유산라고 해서 배제할 필요는 없지만, 한국의 해방 6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일제가 남긴 식민지 잔재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독도 영유권 문제나 종군위안부 문제와 같은 한일간의 갈등이 산적해 있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의 유산도 역사의 한 부분이라고 강변하는 것은 적어도 현재의 국민 감정상 받아들이기 어려운 논리이다. 그러한 태도가 감정적으로 표출될 수 있으나 이를 식민체험의 콤플렉스라고 치부해서는 곤란하다. 우리가 과거에 체험한 모든 사건과 우리 앞에 남아 있는 모든 유물을 역사의 소산이라고 주장하는 태도는 일체의 가치를 상대화하는 것이며 결과적으로 일체의 가치를 부정하는 몰역사주의로 귀결되는 논리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과거’와 ‘역사’, ‘유물’과 ‘유산(전통)’은
[야스쿠니 캠페인] 조선 황족 이우, 야스쿠니에 있다
한겨레21 길윤형 기자 / 스나미 게스케 프리랜서 기자 “글쎄, 잘 모르겠는데.” 의친왕의 11번째 아들인 이석(67)씨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4월3일, 그를 만나러 전주 한옥마을을 찾은 <한겨레21> 취재진은 황망한 걸음으로 서울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아마 그랬을 수도 있을 거야. 이우 형님께서 돌아가실 때 일본 군인 신분이셨으니까. 야스쿠니신사라고 했나? 고약한 일이구만.” 이석씨는 헛기침을 했다. 늦은 오후, 전주 한옥마을의 공기는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 이우는 1945년 8월7일 숨져 14년 뒤 야스쿠니의 영령이 됐다. 이우의 죽음을 전한 1945년 8월9일치 <매일신보>1면.(사진/매일신보) <야스쿠니 100년사>에 짧은 기록 남아다른 친인척들도 사정은 비슷했다. 의친왕의 손자로 인정받고 있는 이혜원 국립고궁박물관 자문위원은 “그런 얘기를 들은 적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우 삼촌이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돼 있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긴 한데, 확인해본 적은 없습니다. 오랜 전 일이지 않습니까. 정확히 잘 모르겠네요.”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된 조선 황족들은 없을까? 야스쿠니신사에 강제 합사된 조선인들의 사연을 취재하던 <한겨레21>과 민족문제연구소는 옛 조선 황족 가운데 일부가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돼 있을 가능성에 주목하게 됐다. 이따금 언론에 동정이 소개되는 황족 후손들을 중심으로 취재가 진행됐다. 사람들은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거나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증언은 대부분 전언이어서 신뢰하기 힘들었다.야스쿠니신사에는 일왕을 위해 싸우다 목숨을 버린 군인·군속 246만여 명의 영령이 일본의 ‘수호신’으로 모셔져 있다. 이 가운데 조선인 출신 합사자는 2만1천여 명, 대만인 출신 합사자는 2만7천여
日 정부, 미국과의 핵무기 밀약 발견
日 정부, 미국과의 핵무기 밀약 발견(내일신문, 09.11.22)
유학청년 윤동주와 정지용, 동지사대학에서 만나다
[문화기행] 일본 속 한국문화 톺아보기 제4편-시인 윤동주 교토 시비편 ① 이윤옥·김영조 ▲ 교토 동지사대학 이마데가와 교정에 세워진 윤동주 시비 ⓒ김영조 교토 일정 중 하루를 잡아 우리 일행(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은 교토 명문 사립대학 중 하나인 동지사(同志社, 도시샤)대학 이마데가와(今出川) 교정을 찾았다. 이 대학이 한국에서 유명한 이유 중 하나는 이곳에서 윤동주시인이 공부한 적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문 수위실에서 한국말로 “윤동주”라고만 해도 눈치 빠른 수위 아저씨는 동지사 교정 안내서를 꺼내 친절히 빨간 펜으로 시비(詩碑) 위치를 가르쳐준다. 그만큼 요즈음은 한국인들의 발걸음이 잦은 곳이다. 일제강점기 시절 많은 조선 지식인들이 조국을 배반하고 친일의 길을 걸었다. 특히 상당수 문학인이 황국신민을 외치며 참전을 부추기는 시와 소설로 동포를 짓밟고 자신의 안녕을 모색했다. 하지만, 이 시절에도 조국에 대한 사랑을 꺾지 않고 시로서 항거한 시인이 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로 우리에게 친근한 윤동주가 바로 그다. ▲ 윤동주 시인 ⓒ동지사대학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다.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동지사 대학 안의 작은 시비에는 이 시가 육필 원고와 일어 번역문으로 새겨져 있다. 그는 일제가 태평양전쟁에 광분했던 1941년 어느 날 조국을 잃은 슬픔을 달래며 이 시를 썼을 것이다. 윤동주 (尹東柱, 1917∼1945)는 북간도에서 출생하여 용정(龍井)에서 중학교를 졸업, 연희전문을 거쳐 1942년 일본으로
“일본군 하사가 자결하라며 수류탄 건네”
한겨레신문 김도형 특파원 오키나와 집단자결 사건은 전쟁의 광기와 전체주의 이데올로기 앞에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으며 맹목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가를 증언해준다. 끔찍한 집단적 동반 살육은 이성을 말살해버린황민화교육과 반복적인 세뇌작업의 결과였다. 태평양 전쟁이 좀더 지속되었더라면 오키나와의 비극이 한반도에서 재연되지 않았으리라는 단정은 어느 누구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총후보국’과 ‘결전태세’를 앞장서 외치던,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친일군상들을 떠올리면서, 이 땅에서 옥쇄가 벌어지지 않은 사실을 천행으로 여길 수밖에 없다. 일본정부와 우익은 전쟁이끝난 지 60년이 넘도록 반성은커녕 역사적 진실을 부인하면서 반인륜적 전쟁범죄를 미화하고 있다.이제 일본의 일부가 되어버린 오키나와에서 들려오는 절규조차 외면하고 있는 일본의 외눈박이 역사인식을 비극적으로 전해주는 한겨레신문의 르포기사를 전재한다. -편집자 주- » 일본 오키나와현 교직원노조 소속 교사 등이 지난달 29일 나하시의 번화가인 국제거리에서 오키나와전 주민 집단자결과 관련한 당국의 교과서 기술 변경을 규탄하고, 제소당한 노벨문학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를 지원하기 위한 서명운동 펼치고 있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지난 3월30일 오키나와전의 가장 처참한 사건인 주민들의 집단자결과 관련해 “일본군에 의한 강제 또는 명령은 단정할 수 없다”며 고등학교 역사교과서에서 ‘일본군의 강제’라는 기술을 삭제하도록 하는 검정 결과를 발표했다. 오키나와 집단자결은 태평양 전쟁 막바지인 1945년 3월 오키나와현 자마미섬, 도카시키섬, 게류마섬에 미국이 상륙하자 800명이 넘는 주민들이 수류탄과 면도칼 등으로 사랑하는 가족들을 서로
2007 민족문제연구소 여름 수련회
민족문제연구소 우리 연구소 여름 수련회가 6월 2일(토)~3일(일) 1박 2일 일정으로 광주광역시에서 열립니다.올해 여름수련회는 6월 민주항쟁 20주년과 615 남북공동행사 일정 그리고 장마철을 피해 한 달가량 앞당겨 진행합니다. 친일과거사청산을 위해 전국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회원들이 서로의 노고를 격려하고 배우며 굳건한 동지애를 확인하는 자리에 많은 회원들의 참여를 바랍니다. ▶ 때 : 2007년 6월 2일(토)∼3일(일) 1박 2일. (2일 오후 6시까지 도착 바랍니다.) ▶ 곳 : 광주 적십자 청소년수련원 (http://www.rctc.or.kr) ▶ 회비 : 어른 3만원 / 학생 2만 5천원 (단, 초등학생 이하 어린이는 회비 없음) ▶ 오시는 길 고속도로 이용 : 용봉IC→광주 북부경찰서→수련원 대중교통 이용 : 광주 광천동 고속버스터미널에서 37번 버스 또는 택시(약 5천원정도) 이용 찾아오시는 길 문의 : 062-573-6620 (광주광역시 북구 매곡동 256번지 / 수련원 누리집을 꼭 참고하십 시오. 수련원은 전라남도 지방공무원교육원과 같은 지역에 있습니다. 전라남도 지방공무원교육원 정문으로 들어오시면 됩니다.) 주요일정 2일(토)18:00-19:30 _ 집결, 숙소 배정, 저녁 식사19:30-20:30 _ 소장 인사, 지부장 환영사, 사무국 인사, 회원 소개, 모범지부 시상20:30-20:40 _ 휴식20:40-21:40 _ 우리문화특강1 : 송순섭 명창(현 광주시립국극단장, 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보유자)21:40-21:50 _ 휴식21:50-24:00 _ 우리문화특강2 겸 뒤풀이 : 김태훈(풍물놀이패 굴림 대표 http://cafe.daum.net/gullim)3일(일)08:00-09:00 _ 아침 식사09:00-09:30 _ 짐 정리,
의병만으로 싸운 부안 호벌치 싸움을 아시나요?
의병만으로 싸운 부안 호벌치 싸움을 아시나요?(문화저널21, 09.11.18)
‘호국 의병의 날’ 기념일 제정 74% “공감”
‘호국 의병의 날’ 기념일 제정 74% “공감”(부산일보, 09.11.18)
한평생 민주화투쟁의 길을 걸어온이돈명 변호사가 기증한 장서와 소장품
김승은 민족문제연구소 자료팀장 연구소 초대 이사장을 역임하신 이돈명 변호사께서 장서와 소장품을 기증해 주셨다. 지난 4월 21일 자택에 1.5톤 트럭까지 동원해 가면서 한편으로는 좁아져만 가는 자료실 공간에 너무 많이 주시면 어쩌나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머리에 이는 한이 있더라도 감사한 마음이 앞서서 일찍 서둘러 댁에 도착했다. ▲ 왼쪽부터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 이돈명 변호사, 박중기 추모연대 의장 지난 2005년 조문기 이사장님 출판기념회 후로 뵌 적이 없었는데, 침대에서 우리를 맞아주시는 표정은밝았으나 다리와 허리를 감고 있는 보조기구는 선생의 건강이 심각한 상태임을 바로 알게 해 주었다. 그래도 『돈명이 할아버지』표지에 실린 ‘촌놈 이돈명’의 푸근하고 재미난 웃음은 여전하셨다. ▲ 이돈명 민족문제연구소 초대 이사장 보유 장서 선생의 손때 묻은 책만도 1600여 권에 달하고, 선생이 걸어오신 역정을 알려주는 상패와 임명장들, 격동기였던 1961~63년 판사재직 시절 판결문 원고 초고, 변호 연설문 원고와 이돈명 변호사 구속사건 변론요지서, 주요 민주인사들의 항소이유서 원고 등 귀중한 민족민주운동 자료 130여 점을 기증해 주셨다. 1922년생으로 해방 직후 조선대학교를 졸업하신 후, 1950년대에 판사를 지내신 터라 일제시대 고서들이나 해방직후 책들을 기대했으나 의외로 최근 책들이 대부분인 것이 조금은 의아했다. 어느 회고에서“책은 시골에 파묻혀 있는 나를 다른 세상으로 안내해준 길잡이였다. 제대로 된 스승 하나 없는 촌구 석에서 책을 통해 처음 넓은 세상을 접했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