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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편지] 이땅을 사랑하신 석호필 박사께 드리는 편지

2010년 6월 24일 688

   석호필(石虎弼) 선생님, 어제 동작동 국립현충원 애국지사묘역 96호 선생님께서 영면하신 곳을 찾아 뵈웠습니다.  만년의 스코필드박사(사진제공:스코필드박사사이버기념관)  1919년 이 땅의 백성이 일제의 강제 병탄에 반대하여 고종황제의 인산일인 3월 1일에 맞추어 온 겨레가 독립만세를 부르던 날, 선생님께서는 그 현장 하나하나를 촬영하고 우리의 독립의지를 영자신문에 발표해 전 세계에 우리의 3 1운동을 알리는 고마운 일을 하셨습니다.   특히 일제의 의한 수원 제암리 양민집단살해사건의 현장을 방문해 촬영을 해서 세계에 알리신, 선생님의 위험을 무릅쓴 용기가 아니었다면, 영원히 사장될 번한 사건이었습니다.  일제치하당시 선교사겸 세브란스 병원의 수의사로 일하시며, 윌슨 미국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원칙을 우리 겨레에게 상세히 알리시고, 우리에게 독립심을 고취시키고 독립의지를 만방에 떨치게 하셨던 선생님의 가르치심은 우리 모두의 가슴에 감동으로 머물러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유관순 열사를 비롯한 많은 애국지사를 감옥으로까지 찾아가 격려하셨고, 일제 사이토 총독에게 폭탄을 투척하여 역시 우리의 독립의지를 만방에 떨친 강우규 의사의 공판정을 매회 방문하여 강우규 의사께서 사형선고를 받기까지의 소식을 세계에 알리시어 일제로부터 미움을 사신 일을 우리는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1919년 제암리 사건왜경과 이야기하는 선교사 뒤에서 몰래찍은사진(사진제공:스코필드박사사이버기념관)  영국태생으로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고장이기도 한 워릭셔에서 태어나시고, 젊은 시절 캐나나로 유학을 가 수의학을 공부하셨고, 졸업을 하시자마자 동양의 동쪽 끝에 있는 우리나라로 찾아와 대학에서 젊은이에게 수의학을 가르치시며 독립심을 고취시키고 평생을 이 땅에 서 선교사업을 하시다가 영면하신 프랭크 윌리암 스코필드 선생님,  금년이 상해 대한임시정부수립 91년이 되는

여야 의원 100명, 정신대 피해자 보상문제 서명

2010년 6월 24일 329

여야 의원 100명, 정신대 피해자 보상문제 서명(연합뉴스, 10.06.22)

[뉴스뜯어보기] 거꾸로 개정된 국립묘지법

-0001년 11월 30일 572

      한겨레신문 김도형 기자     율곡 비리로 구속기소됐던 6공 시절 국방장관인 이아무개(71)씨는 지난 21일 형법 등에 의해 3년 이상 형을 받아 서훈 취소가 결정된 93명 중 한명이다. ‘국립묘지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국립묘지법)은 서훈을 받아 국가유공자가 된 사람의 경우 서훈취소로 국립묘지 안장자격이 자동 취소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보훈처에 따르면 이씨가 사후 국립묘지에 묻힐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보훈처는 26일 “서훈이 취소됐다 하더라도 이씨처럼 장관급 장교(장군) 출신이거나 20년 이상 군복무한 사람 등 다른 안장 자격이 있는 사람은 묻힐 수 있도록 국립묘지법에 규정돼 있다”고 밝혔다. 보훈처는 최근 국립묘지법 시행을 위한 안장 대상 심의위원회를 새로 설치하고 규정을 만들면서 범법자의 국립묘지 안장조건을 완화했다. 과거기준을 적용하면 집행유예를 포함해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사람은 무조건 안장자격이 배제된다. 그러나 보훈처는 지난 14일 국립묘지 안장금지 대상을 ‘금고 1~2년 이상의 실형을 받은 사람’으로 높여, 이씨 같은 집행유예를 받은 사람들에게도 안장의 길을 열어놓았다. 살인·강도·뇌물수수 등 파렴치범의 경우도 집행유예나 금고 1년 이하를 선고받은 사람은 심의위를 통해 안장 여부를 결정한다고 보훈처는 밝히고 있다. 이 때문에 6공 시절 국방장관을 지내고, 율곡 비리에 연루돼 지난 대법원에서 징역 2년6개월, 집행유예 3년이 확정된 또다른 이아무개(73)씨, 1990년대 진급비리로 구속기소돼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이 확정됐던 해군총장 출신인 김아무개(69)씨도 안장 심사의 자격을 얻었다. 보훈처는 국립 대전현충원에

충남대 전정임 교수, “나는 안익태의 친일을 이해한다”

2006년 3월 29일 1659

    월간 말 김재중 기자     애국가의 작곡가 안익태 선생이 1942년 독일에서 일제의 괴뢰국인 만주국을 찬양하는 노래를 작곡하고 직접 지휘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친일논란이 불거짐과 동시에 “새 애국가를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논란의 한 가운데서 “안익태 선생의 음악은 오히려 민족적인 색채가 짙다”며  세간의 여론과는 사뭇 다른 주장을 펼치고 있는 한 학자가 있다. 국내에서 몇 안되는 ‘안익태 전문가’로 손꼽히는 충남대학교 음악학과 전정임 교수를 만나 그의 ‘안익태론’에 귀를 기울였다.   사실 모두들 말을 아끼려고 했다. 이번에 불거진 안익태 선생의 친일논란은 그저 주장 수준으로 펼쳐진 것이 아니라, 그가 일장기 아래에서 악단을 지휘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물이 직접 증거로 제시되면서 일파만파 커졌다. 때문에 친일파 논란이 벌어질 때마다 ‘소모적’이라며 목청을 높이던 학자들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과감하게 ‘안익태 옹호론’을 들고 나온 인물이 전정임 교수였다. 『안익태』라는 제목의 연구서를 저술하기도 한 전 교수는 최근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안익태 선생에 대한 친일논란은 성급하다”며 “오히려 그의 음악에서 조국애가 차지하는 비율이 크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사실 사회적 분위기로 볼 때, 친일논란의 한 가운데 선 인물을 옹호하려면 정확한 근거가 있거나, 혹은 일부 우익인사들처럼 매우 용감(?)해야만 한다. 물론 전 교수에게는 전자의 모습을 기대했다.“안익태 음악의 모티브는 ‘조국애’였다”   – 안익태 선생이 1942년 독일에서 만주국 창립

징용 피해자, ‘99엔 항의’ 삼보일배 시위

2010년 6월 24일 516

징용 피해자, ‘99엔 항의’ 삼보일배 시위(ytn, 10.06.24)

“일본과 미쓰비시의 양심은 99엔인가?”

2010년 6월 24일 333

“일본과 미쓰비시의 양심은 99엔인가?”(오마이뉴스, 10.06.23)

“달마야 동경가자! 조선왕조실록 찾으러”

-0001년 11월 30일 589

      문만기 경기동북지부장   조선왕조실록환수위원회 실행위원장인 문만기 경기동북지부장 일행은 3월14일부터 2박 3일간의 일정으로 동경대측에 조선왕조실록 반환을 요청하기 위해 일본을 다녀왔다. 회원들을 위해 방문 뒷이야기를 보내왔다. / 편집자주     100년 가까이 볼모로 잡혀있는 비운의 실록을 구출시키기 위해 우리 일행은 2006년 3월 14일 일본으로 출발하였다. 3월 3일 환수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일본대사관에 공문을 전달한 이후 12일 만에 실록이 유폐되어있는 동경대 측과 실록반환에 관한 협상을 위해서였다. 동경대. 일제강점기 한반도 지배의 이론 개발의 산실인 동경제국대학이 지금의 동경대가 아니던가. 일본 하네다로 가는 비행기 안. 나를 포함한 조선왕조실록환수위원회 실행위원 네 명(혜문 스님, 법상 스님, 송영한 회원 등)은 내내 아무 말이 없었다. 3월 3일 기세 좋게 기자회견까지 하며 언론과 국민들의 과분한 호응과 지지를 받으며 조선왕조실록을 찾아오겠다고 기세 좋게 출발했지만 환수 여부는 그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는 것을 동경대로 향하는 우리들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왕조실록은 조선 태조에서부터 철종 때까지 25대 472년간(1392∼1863)의 역사를 기록, 1,893권 888책으로 만든 방대한 역사서로 현재 국보 154호이자 유네스코등록 세계 문화유산이다. 조선왕조실록은 임진왜란 이후 태백산 사고, 적상산 사고, 오대산 사고, 강화도 사고의 4곳에 분산되어 보관되어 20세기 초까지 전래되었으나, 일본의 조선점령 이후인 1913년 조선총독 데라우찌에 의하여, 오대산 사고본 일체가 도쿄대학으로 강탈당했다. 현재 월정사 성보박물관에 보관중인 <오대산사적>에 보면  ‘총독부 관원 및 평창군 서무주임 오께구찌그리고 고용원 조병선 등이

일제말기 영화, 이렇게 친일로 나아갔다

2006년 3월 24일 606

      강성률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   한국영상자료원에서는 지난달 28일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영화 세 편을 발굴해 일반에 공개했습니다. 이 영화들을 보고 영화평론가 강성률씨가 민예총 컬처뉴스에 게재한 글을 필자의 허락을 얻어 전문을 싣습니다. 일제시대 영화 속에 친일의 역사가 어떻게 녹아들어 있는지를 엿볼 수 있는 글입니다. / 미디어오늘   지난 2월28일 한국영상자료원에서는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영화 세 편을 발굴해 소개하는 뜻깊은 자리를 가졌다. 2005년 봄에도 일제시대 영화 네 편을 발굴해 소개했던 영상자료원이 불과 1년 만에 또다시 세 편을 더 발굴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극영화 <미몽>의 한 장면. 이 영화는 놀라울 만큼 대담하게 여자의 외도를 그리고 있다. 더구나 이번에 발굴된 영화 가운데 1936년 작인 <미몽>(양주남)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그 의의를 아무리 격하하려고 해도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것이다. 이제 한국에서도 1936년에 제작된 영화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번 발굴로 인해 모두 열 편의 일제시대 영화를 소장하게 되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1943년작 두 편과 1945년작 한 편이 전부였던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발전인 셈이다. 이번에 발굴된 영화는 모두 세 편이다. <미몽> <반도의 봄>(이병일, 1941), <조선해협>(박기채, 1943) 등이 발굴작인데, 세 편은 일제 말기로 가면서 영화가 어떻게 군국주의와 만나는지 그 접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순수한 치정영화이고 조선어 위주인

파렴치한 ‘99엔’ 성난 민심 모였다

2010년 6월 24일 357

파렴치한 ‘99엔’ 성난 민심 모였다(광주드림, 10.06.17)

미쓰비시 징용피해자, 日서 삼보일배 시위

2010년 6월 24일 356

미쓰비시 징용피해자, 日서 삼보일배 시위(연합뉴스, 10.0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