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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익태의 ‘황제’는 일본천황이었나

2006년 3월 31일 838

    오마이뉴스 손병관 기자     ▲ 1940년 부다페스트발 로마행 기차에 오른 안익태. 그의 1940년대 행적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 안익태기념재단 ‘애국가’의 작곡자 안익태씨가 1940년대 독일주재 일본외교관의 집에 머물며 베를린 일본공관과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또한 일본 천황을 ‘한국인의 첫 황제’로 지칭한 듯한 안씨의 1938년 인터뷰 기사도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음악연구가 송병욱(훔볼트대 음악학과 석사과정)씨는 지난달에 이어 공연예술전문지 <객석> 4월호 기고문을 통해 안씨가 은사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에게 보낸 편지 2통을 소개했다. 편지는 1942년 3월 24일과 44년 2월 23일에 각각 작성됐다.베를린 전출입 문서 보관소에 따르면, 발신지는 1940년 부임한 일본 외교관 이하라의 집이었고 서류에 ‘치외법권’이라는 문구가 함께 기재되어 있다. ‘외교관 이하라’는 최근 논란이 된 ‘만주국’의 작사자 이하라 고이치와 동일 인물로 추정된다.안씨는 1942년 편지에서 “이하라씨와 저는 진심으로 선생님(슈트라우스)의 6월 베를린 체류시 선생님과 사모님을 저희 집에 손님으로 모시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저희 집’이라는 표현과 발신지를 종합해 보면 안씨는 1942∼44년 일본 외교관의 사저에 머물고 있었던 것으로 해석된다.안씨는 같은 편지에서 “베를린에 오시면 부디 사무실로 저나 이하라씨 앞으로 도착하셨다는 전보 한 통 보내주십시오”라고 썼다. 송병욱씨는 “이 ‘사무실’은 외교관 이하라와 관계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이 일본 외교공관이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안씨의 부인 로리타 탈라베라가 1974년에 쓴 회고록 <나의 남편 안익태>에는 “1940년 부다페스트의 일본대사관 주최 파티에서 안익태와 인사를 나눴다”는 ‘헝가리 귀족 부인’ 릴리 카시안의 얘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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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 31일 598

    민족문제연구소   박정희 바로알리기 국민모임 ‘새로운 물결21’ 소속 회원 30여명은 3월 31일 오후 2시부터 우리 연구소 앞에서 집회를 열고 ‘친북세력의 온상, 민족문제연구소는 즉각 해체하라!’는 제목의 유인물을 만들어 행인들에게 나눠주는 등 시종일관 임헌영 소장을 포함해 연구소를 맹비난하는 한편 지난 3월 3일 이들의 행위에 대해 서울중앙지검에 민형사상 손해배상과 명예훼손 소송을 제출한 것에 대해 분풀이성 발언을 이어갔다.       ▲ 민족문제연구소해체투쟁위원회 명의의 “친북소굴 민족문제연구소 심판하여 역사정의 실현하자”란 플래    카드가 걸려있다.   <민족문제연구소 해체투쟁위원회(소송대책위원회)일동> 명의의 유인물에는 ‘소송 취하와 공개 사과’를 요구하면서 ‘근거 없는 친일청산 망동으로 북한 공산집단의 요구에 부합하는 주장과 행동을 자행하여,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훼손해 온 민족문제연구소는 즉각 해체하라!’ 내용이 빼곡하다.          ▲ 집회 주최측이 뿌린 선전물 앞면        ▲ 집회 주최측이 뿌린 선전물 뒷면 이들은 집회 장면을 촬영하던 연구소 최진아 영상팀장의 6mm 카메라를 강제로 빼앗으려 하면서 최 팀장의 멱살을 잡는 등 행패를 부리며 건물 내부로 10여 명이 욕설과 함께 진입하여 연구소 상근자들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는데, 이 과정에서 최진아 팀장이 손에 타박상을 입기도 했다.(병원 진단 결과 2주 치료) 이날 동대문경찰서 소속 형사 두 세 명이 현장이 있었으나 이들을 말리기에는 중과부적이었고 대응 또한 소극적이었다. 이 날 집회에는 연구소에 의해 고소된 인사 대부분이 참석해 발언했는데, 이들은 집회를 마무리하면서 락 그룹 <크라잉 넛>이 부른

‘항일기지’ 신흥무관학교 100周 기념사업 추진

2010년 6월 25일 354

‘항일기지’ 신흥무관학교 100周 기념사업 추진(뉴시스, 10.06.22)

신흥무관학교 구국정신 되살린다

2010년 6월 25일 284

신흥무관학교 구국정신 되살린다(헤럴드경제, 10.06.22)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문제 처음으로 인정하다

2010년 6월 25일 329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문제 처음으로 인정하다(오마이뉴스, 10.06.25)

“애국가 논란은 건달 정권의 행패”

-0001년 11월 30일 2221

      월간 말 이오성 기자     애국가 작곡자 안익태의 친일행적과 이로 인한 친일논란이 뜨겁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월간 ‘말’의 협조를 얻어 안익태 관련 기사를 게재한다. 기사 전재를 허락해준 월간 ‘말’에 감사드린다. <편집자 주>     애국가 작곡자 안익태 선생의 탄생 100주년인 올해, 한 독일 유학생에 의해 그의 친일 행적 사실이 드러났다. 1942년, 일본이 세운 괴뢰국인 민주국 창립 10주년 기념 음악회의 작곡 및 지휘를 안익태가 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안익태가 작 곡한 만주국 칭송곡과 애국가의 모태가 된 ‘한국환상곡’의 두 선율이 흡사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되면서 사태는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친일음악 연구자인 중앙대 노동은 교수는 “이번 기회에 애국가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내놓았다. 안익태의 반민족 행위가 명백한 사실이라면 나라의 국가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은 그야말로 상식적인 일이다. 하지만 명백한 역사적 판단을 내리긴 아직 이르다. 이 번 사실을 공개한 당사자인 송병욱씨는 물론 친일문제를 꾸준히 추적해온 민족문 제연구소도 “이번에 공개된 자료만으로 친일여부를 판가름하기는 어렵다”거나 “애국가 교체를 논하는 건 성급하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문제를 누구보다 더 민감하게 예의 주시할 이들이 있다. 한국사회의 친일행위자 처리 문제에 회의적인 이들, 이른바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이 그들이다. 그들은 일제 치하 일본 통치의 긍정적인 역할을 인정하고 이를 통해 문제를 바라봐야 친일행위자들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이뤄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말』은 이들로부터 안익태의 친일 논란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이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