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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가요무대’ 남인수 헌정무대 씁쓸
오마이뉴스 양정석 기자 지난 봄 독도파문에 이어 일본의 새 왜곡역사교과서 채택 여부로 뒤숭숭한 요즘 KBS가 광복 60년 특집 <가요무대> ‘남인수 헌정무대’를 방영해 우리를 어리둥절케 하고 있다. 운다고 옛사랑이 오리오마는/ 눈물로 달래보는 구슬픈 이 밤.고요히 창을 열고 별빛을 보면/ 그 누가 불러주나 휘파람소리. 경남문화예술회관을 가득 메운 진주시민들, 고향이 낳은 불세출의 명가수 남인수의 히트곡 ‘애수의 소야곡’을 함께 부르는 감회가 사뭇 남다를 것이다. ‘꼬집힌 풋사랑’, ‘감격시대’, ‘낙화유수’, 그리고 ‘이별의 부산정거장’까지 그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주옥같은 노래들은 분명 한국인의 노래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한국의 가요황제 남인수가 진주의 자랑이요, 대한민국의 국민가수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더욱 KBS가 광복특집으로 민족의 가수라고 자리매김하는 데 대해서는 더 더욱 수긍할 수가 없다. 진주, 경상남도 진주는 역사의 고장이요 충절의 땅이다. 400년 전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을 지키기 위한 진주민들의 투혼은 우리 역사의 자랑이며, 진주성을 지키기 위해 호남에서까지 달려간 김천일, 최경회, 고종후 같은 명장들이 끝까지 싸우다 최후엔 남강 푸른물에 차례로 몸을 던진 충절의 땅이다. 그리고 논개의 충절에 이르면 숙연함이 가슴을 저미게 한다. 애국심은 진주의 자존심이다. 그런데 남인수는 친일가수다. 일본제국과 천황을 위해 노래했기 때문이다. 여기 반도의 아들, 딸들에게 제국군인 되자며 당시 대표적인 친일가수 백년설과 함께 남인수가 목놓아 부르는 박시춘 작곡의 ‘혈서지원’을 들어보자. 무명지 깨물어서 붉은 피를 흘려서/ 일장기 그려놓고 성수만세
민족문제연구소는 반미 친북 좌파 단체?
민족문제연구소 조선일보는 6월 23일자 2면 <조선일보 本社 점거계획도 세웠다> 제목의 기사와 6월 30일자 4면 <‘평화 향군’뒤에 지원세력있나> 제목의 기사에서 민족문제연구소를 거론하며 각각 ‘친노 성향 및 안티조선 성향의 단체’ 그리고 ‘반미친북성향좌파적 색채를 띤 단체’로 규정한 것에 대해서 이는 민간학술단체인 우리 연구소의 대외적인 공신력을 의도적으로 폄훼하려는 악의적인 행위로 보고 즉각 언론중재위원회에 정정보도를 신청하였다. 특히 조선일보는 그동안 연구소의 각종 성과에 대해서는 애써 모르쇠로 일관하던 태도와는 다르게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연구소를 지칭하며 악의적인 보도를 내보낸 것이다. 이는 아마도 다음 달에 있을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될 1차 명단 발표 등을 의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지난 7월 14일 언론중재위원회에서는 연구소에서는 방학진 사무국장이 그리고 조선일보에서는 문갑식 주용중 두 기자가 참석한 가운데 중재조정이 이뤄졌으나 결국 중재는 무산되고 말았다. 그러나 조선일보측은 이 날 제출한 서면 답변서와 구두 답변에서도 자신들의 뜻을 굳히지 않고 연구소에 대해서 ‘친노반미친북좌파단체’라는 주장을 거듭하였다. 특히 문갑식(사진)은 구두 답변에서 연구소가 송두율 석방운동에 동참한 점 등을 거론하며 친북 좌파 단체임을 주장했으며 연구소 지도위원이었던 고 김남식 선생과 임헌영 현 소장의 실명을 거론하며 자신들의 주장을 강변하였다. 이 날 출석한 문갑식 기자는 작년 12월 자신의 블로그에 KBS 2TV <생방송 시사투나잇>의 진행자였던 김윤지 아나운서에 대해서 ‘유흥업소 접대부’로 묘사해 물의를 일으킨 인물이기도 하다. 한편 서면 답변서에서는 연구소가 ‘친노 성향의 단체’라고 주장했는데 그 논거가
조선인 강제연행자들 탄광에서 죽어갔네
-호슈탄광 갱구와 이이즈카 탄광 일대 조선인 징용자 흔적을 찾다- 글·사진 : 이윤옥·김영조 “대일본 제국군인은 전장에서 3일이고 4일이고 밥도 안 먹고 싸운다 아나?너희는 꼬박꼬박 세끼 먹고 있는데 웬 잔소리냐?”탄광에서 탄을 캐던 조선인들의 배고프다는 소리가 감독 귀에 들어갔는지 감독은 조선인들을 모아놓고 일장 훈시를 한다. 그래도 배고픈 징용자들은 참다못해 고향에 편지를 보냈다. “배가 고파요 어머니 보고 싶소 / 눈물을 흘리면서 편지를 내었네 / 고향으로부터 쌀가루 부쳐왔네 / 쌀가루 받아들고 눈물만 흘렸네/ 보따리 풀어서 쌀가루 집어 먹고 / 눈물을 흘리며 어머니 불러봤네 / 감독 놈 겁이 나서 숨죽여 불러봤네” 고향 어머니도 초근목피는 마찬가지련만 객지 나간 자식 위해 쌀가루 곱게 빻아 보내면서 또 얼마나 가슴 저렸을까? 일을 시키려면 밥이라도 든든히 먹일 것이지 기껏 견준다는 게 대일본제국주의 군인들이 삼사일 굶고도 용감했다는 말을 하다니… ▲ ‘2010 한일평화를 여는 역사기행’ 첫날 부산항을 막 출발한 배 갑판 위에서 답사단이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에서 출발하여 밤샘 항해 끝에 시모노세키 건너편 모지항(門司港)에 도착하자 반갑게 일행을 맞아준 것은 기타큐슈 다문화공생센터 교육지원팀 소속인 이정화 씨와 박환나 씨였다. 호리호리하고 늘씬한 정화 씨는 우리의 큐슈여행 전체를 기획해주었고 ‘이웃과 고리처럼 하나가 되어 잘 살기를 바란다.’라는 뜻으로 지어진 이름의 환나(環奈) 씨는 우리가 기타큐슈를 떠날 때까지 불편함 없이 그림자처럼 우리를 도운 맘씨 고운 재일동포 3세였다.한일여객선 세코마루호의 8인실 방 2층 침대는
“日,한국 문화재 추가반환 없다”
“日,한국 문화재 추가반환 없다”(서울신문, 10.08.26)
발족하다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청산전북연대발족선언문 내려받기 ‘친일청산을위한전북시민연대’ 사업계획 내려받기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지부장 최재흔)를 중심으로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시민행동21, 흥사단 전북지부, 전북 통일연대, 전북여성단체연합, 광복회 전북지부 등 전북지역 24개 시민사회단체는 7월 19일 오전 10시 30분 전주시 풍남동 동학혁명기념관에서 「친일잔재 청산을 위한 전북시민연대」 발족식을 갖고 본격적인 친일청산운동을 선언했다. 「친일청산 전북연대」는 지난 4월 19일 전북종합경기장 정문에 걸려 있던 친일 기업인 김연수(김성수의 친동생으로 삼양사 설립자)의 호를 딴 수당문을 전주시와 합의하에 철거하면서 발족 논의가 본격화되었고 여러 차례의 단체 간 내부 논의를 거쳐 이번에 출범하게 되었다. 「친일청산 전북연대」는 발족 선언문에서 “(일본의) 망언과 준동의 되풀이는 모두 일본이 그들의 과거를 청산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우리가 친일파 처단과 친일잔재 청산 중 그 어느 것도 제대로 완수한 것이 없기 때문”에 “일제의 망령된 행동 앞에 큰소리 칠 처지가 아니”라는 진단과 함께 “반민족적 행위자들을 국민적 합의 없이 기념하는 행사와 문학상을 제정, 시상하는 것은 반민족적이고 반역사적 행태”로 규정하고 “친일행적이 분명한 인물들을 역사적 평가 없이 업적을 기리고 기념하는 일체의 행사를 반대한다”고 밝혔다. 「친일청산 전북연대」는 당면사업으로 ▲고창 서정주 「미당 시문학관」과 국화꽃 축제 행사 폐쇄 ▲군산 「채만식 문학상」 시상 중단 ▲남원「만인의총」 박정희 글씨 현판 철거 ▲친일화가 김은호의 광한루 성춘향 영정과 전북 장수의 논개사당 논개 영정 철거 ▲남원 대산면의 친일 면장 이용묵 기적비 철거 ▲전주 덕진공원 「취향루」와
새역모 교과서 채택반대운동 펼치는 서중석 교수
한겨레신문 한승동 기자 ▲ 성균관대 서중석교수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의 교과서는 한반도가 일본을 겨눈 비수와 같아서 그냥 둘 수 없다는 둥,어차피 러시아나 중국이 먹게 돼 있는 판에 우리가 먼저 먹었을 뿐이라는 둥, 그런 내용을 버젓이 실어놓고 있다.어떻게 교과서에서 그따위 짓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모욕적인 일이 어디 있나? 한반도와 한반도 사람들의 주체성을 깡그리 무시하고 자신들의 부도덕하고 야만적인 행위를 정당화하는 저런 뻔뻔스런 태도를 어찌 그냥놔둘 수 있나? 이웃 나라와 민족에 대한 멸시와 자기 과대망상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면, 어떻게든 단호한 대응으로충격을 줄 수밖에 없다.” 사람 좋아 보이는 서중석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의 목청이 이 대목에서 다소 격앙됐다. 서 교수를 만난 것은 지난 15일.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 상임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그를 성균관대에서 만나기 이틀 전 도쿄 인근 도치기현 오타와라 시 교육위원회가 후소사판 새역모 교과서를 중학교 역사교과서로 채택하기로 결정했다. 이로써교과서 채택률이 0.039%에 머물렀던 2001년 새역모 파동 때와는 확연히 다른 양상이 구체화됐고 한·중·일 3국에 긴장이 감돌기 시작했다. 서 교수가 더욱 목청을 높인 것은 다음 대목이었다. “정치·경제·언론 등 일본 각계의 우익들이 개헌을 통해 위대한 일본, 강력한 일본, 전쟁을 할 수 있는 일본을 만들기 위해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지금 우리는 그들이 그리로 가는 데 날개를 달아주느냐, 그것을 저지하느냐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이미
‘비운의 역사현장’ 덕수궁 중명전 복원 개방
‘비운의 역사현장’ 덕수궁 중명전 복원 개방(뉴시스, 10.08.26)
비운의 역사현장 ‘덕수궁 중명전’ 복원 개방
비운의 역사현장 ‘덕수궁 중명전’ 복원 개방(노컷뉴스, 10.08.26)
60주년 기념식
민족문제연구소 2005년 7월 24일은 부민관 폭파 의거 60주년이 되는 날로 당시 의거의 주인공인 조문기 이사장이 참석한 가운데 60년 만에 처음으로 의거 기념식 행사를 갖는다. 부민관 폭파 의거란 조국 해방 막바지인 1945년 7월 24일 오후 9시 경 당시 경성 부민관(오늘날의 시민회관에 해당하며 이 곳에서는 각종 친일관련 행사가 자주 열렸다)에서 친일거두인 박춘금이 당수인대의당(大義黨)이 주최하는 아세아민족분격대회(亞細亞民族憤激大會)라는 친일어용대회장에 조문기 류만수 강윤국 등이 몰래 들어가 미리 준비해간 다이너마이트 2개를 설치해 폭파시킨 사건을 말한다. 아세아민족분격대회는 전세가 불리해진 일제는 수 십 만 명에 달하는 항일사상과 반전사상을 지닌 조선인 지식인들에 대한 대량 학살을 자행하기 위한 음험한 첫 움직임으로 이미 1932년 일본에서 중의원으로 여러 차례 당선된 대표적인 친일파였던 박춘금이 대의당이라는 친일단체를 만들어 학살의 선봉대 역할을 수행하려던 참이었다. 학계에서는 이 의거에 대해 우리 민족의 반세기 걸친 항일투쟁사의 대미를 화려하게 장식한 사건인 동시에 마지막 순간까지 꺾일 줄 모르는 독립의지를 내외에 과시하며 잔혹한 일제의 우리 민족 학살 음모를 분쇄한 쾌거로 평가하고 있다. 관련 기사 1945년 ‘부민관 폭파’ 주역 조문기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한겨레신문, 05.07.22) 부민관 건물은 해방 후 국회의사당 등으로 쓰이다가 현재는 서울특별시 의회 본관 건물로 쓰이고 있다. <행사 안내> 때 : 2005년 7월 24일(일) 오전 11시 30분 곳 : 서울시의회 정문 앞 (지하철 시청역 3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