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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역사현장 ‘덕수궁 중명전’ 복원 개방
비운의 역사현장 ‘덕수궁 중명전’ 복원 개방(노컷뉴스, 10.08.26)
60주년 기념식
민족문제연구소 2005년 7월 24일은 부민관 폭파 의거 60주년이 되는 날로 당시 의거의 주인공인 조문기 이사장이 참석한 가운데 60년 만에 처음으로 의거 기념식 행사를 갖는다. 부민관 폭파 의거란 조국 해방 막바지인 1945년 7월 24일 오후 9시 경 당시 경성 부민관(오늘날의 시민회관에 해당하며 이 곳에서는 각종 친일관련 행사가 자주 열렸다)에서 친일거두인 박춘금이 당수인대의당(大義黨)이 주최하는 아세아민족분격대회(亞細亞民族憤激大會)라는 친일어용대회장에 조문기 류만수 강윤국 등이 몰래 들어가 미리 준비해간 다이너마이트 2개를 설치해 폭파시킨 사건을 말한다. 아세아민족분격대회는 전세가 불리해진 일제는 수 십 만 명에 달하는 항일사상과 반전사상을 지닌 조선인 지식인들에 대한 대량 학살을 자행하기 위한 음험한 첫 움직임으로 이미 1932년 일본에서 중의원으로 여러 차례 당선된 대표적인 친일파였던 박춘금이 대의당이라는 친일단체를 만들어 학살의 선봉대 역할을 수행하려던 참이었다. 학계에서는 이 의거에 대해 우리 민족의 반세기 걸친 항일투쟁사의 대미를 화려하게 장식한 사건인 동시에 마지막 순간까지 꺾일 줄 모르는 독립의지를 내외에 과시하며 잔혹한 일제의 우리 민족 학살 음모를 분쇄한 쾌거로 평가하고 있다. 관련 기사 1945년 ‘부민관 폭파’ 주역 조문기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한겨레신문, 05.07.22) 부민관 건물은 해방 후 국회의사당 등으로 쓰이다가 현재는 서울특별시 의회 본관 건물로 쓰이고 있다. <행사 안내> 때 : 2005년 7월 24일(일) 오전 11시 30분 곳 : 서울시의회 정문 앞 (지하철 시청역 3번
경술국치 100년 민족자주 문화제 `아직 오지 않은 해방’
경술국치 100년 민족자주 문화제 `아직 오지 않은 해방’(광주드림, 10.08.26)
나라 팔아먹은 대가로 호사 누린 ‘조선 귀족’들
나라 팔아먹은 대가로 호사 누린 ‘조선 귀족’들(시사저널, 10.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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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마라톤대회에 즈음하여 모인 우리는 조선일보가 아름다운 강원도 땅에서 그 이름을 걸고 대규모 행사를 개최한다는 것을 더 이상 두고 볼 수만은 없다는데 인식을 같이하여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다. 조선일보로 말할 것 같으면, 일제시대 일왕을 숭배하며 우리 젊은이들을 일제의 총알받이로 내몰았으며, 군사독재시절에는 군부를 찬양하며 애국인사들과 민중들을 탄압하는데 앞장섰다. 오늘날에도 보수수구세력과 재벌들의 대변인 노릇을 톡톡히 하며 노동자민중과 진보진영을 탄압하고 있다. 또한 북미간의 갈등과 한반도의 전쟁위협이 날로 높아지는 상황에서, 민족의 이익보다 미국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으며, 남북대결과 대북적대감 유발을 공공연히 조장하고 있다. 이에 몇 해 전부터 안티조선 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고, 언론개혁의 시대적 요구가 한층 높아지고 있다. 사회적 진보운동의 흐름을 정면으로 가로막고 서있는 조선일보 마라톤이 열리기 전에 조선일보 반대 마라톤대회를 개최하기로 하였다. 조선일보에 반대하는 강원도 및 전국의 많은 단체들이 조선일보반대 춘천마라톤대회에 참가하고 있으며, 참가단체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더불어 조선일보를 반대하는 전국각지의 개별 인사들이 속속들이 참여 의사를 밝히고 있다. 조선일보반대 춘천마라톤대회는 조선일보 마라톤대회가 개최되는 한 매년 개최할 예정이다. 장기적으로 조선일보 마라톤대회 참가자들을 반대 마라톤으로 인입할 것이며, 대회 규모를 늘려가며 국민들, 민중들 힘으로 개최하는 행사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다. 춘천에서 대회를 개최하면서도 그 이익금을 한 푼도 지역에 환원하지 않고 자사의 배불리기에만 사용하는 조선일보의 춘천 마라톤은 더 이상 개최될 의미가 없다. 지역 경제 활성화와 춘천 알리기의 이득이
경술국치 현장, ‘통감관저 터’ 표석 제막식
민족문제연구소보도자료 내려받기 / 행사자료 내려받기 일본제국주의의 강요에 의해 ‘병합조약’이 조인된 서울 남산 ‘통감관저 터’에 ‘경술국치’의 현장임을 알리는 표석이 세워진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강제병합조약’이 공포된 국치일 100주년이 되는 8월 29일 현장에서 시민들의 힘을 모아 제작한 표석 제막식을 가진다고 밝혔다. 강제병합 100년이 되도록 치욕의 현장에는 역사의 교훈을 새길만한 어떤 표지도 없는 상태이다. ‘강제병합조약’은 1910년 8월 22일 일본의 3대 통감 데라우치 마사다케와 대한제국 총리대신 이완용 사이에 조인되었으며, 8월 29일 일본군이 서울에 집결한 삼엄한 ▲ 순종의 칙유 ▲ 데라우치 유고 분위기아래 순종의 조칙으로 공포되었다. 이 조약은 체결과정의 강압성은 물론 황제 칙유(勅諭)에 순종의 서명과 대한제국 국새(國璽) 날인이 없는 등 최소한의 인준 요건을 갖추지 못해 불법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으나, 일본은 지금까지도 “국제법상 합법적”이라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순종의 칙유와 데라우치 유고 자세히 보기> 지난 18일 서울시는 ‘표석설치자문위원회’를 열어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출한 ‘통감관저 터’보다 ‘녹천정 터’ 라는 명칭이 적합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녹천정은 철종 때 영의정을 지낸 박영원이 지었다고 전해지고 있 으며, 개항 이후 일본공사관이 들어서면서 철거된 것으로 추정된다. 공사관은 ‘을사늑약’ 이후인 1906년 2 월부터 통감관저로, 병합 이후부터 1939년 9월 22일 경복궁 경무대 터(현 청와대 자리)에 신축하여 이전할 때까지 총독관저로 사용되었다. 시민단체와 학계는 서울시의 결정에 대해 한마디로 “어처구니없는 심의 결과”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 서울시가 역사적 의미의 경중을 따지지 않고 편협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日 차수정 보좌관 “각의 결정, 시행령이나 특별법으로 발전될 가능성”
日 차수정 보좌관 “각의 결정, 시행령이나 특별법으로 발전될 가능성”(노컷뉴스, 10.08.18)
정신 못 차리는 대구시와 경북도
민족문제연구소 ‘번지 없는 주막’, ‘나그네 설움’ 등으로 유명한 가수 백년설(본명 이창민 ; 1914-1980)의 이름을 딴 <백년설가요제>가 지난 2003년 그의 고향인 경북 성주에서 성주군과 백년설추모사업추진위원회 주관으로 제1회 대회가 열렸다. 그러나 1회 대회는 대회 개최 전부터 그의 친일경력 제기한 민족문제연구소를 비롯한 지역의 전교조 농민회 등의 반대로 파행 속에 진행되었고 결국 이듬해인 2004년과 2005년도는 <성주가요제>로 명칭이 변경되었으며 규모도 축소되었다. 그러나 최근 대구시(시장 조해녕)와 경북도(도지사 이의근)는 다시 <백년설가요제>를 부활시키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여기에는 경북 성주 출신의 백년설추모사업추진위원회 회장으로 있는 이상희씨(전두환노태우 정권 당시 내무건설부 장관, 현 대구대학교 이사장)의 영향력도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대구시의 경우 가요제 장소를 제공하며 경북도 역시 가요제 예산을 지원하기로 했다. (사진은 이상희) 광복 60년인 올해 대구시와 경북도가 왜 굳이 친일 음악인의 이름을 딴 가요제를 부활시키려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한편 경북도는 3월 16일 독도영유권 문제로 인해 그동안 자매결연을 맺고 있던 일본 시마네현과 관계 단절을 선언한 바 있으며, 경북도의회 역시 6월 9일 ‘독도의 달’ 조례안을 통과시키는가 하면 도 공무원들의 공무상 일본 방문을 규제하는 조례안도 통과했다. 독도 문제에 대해서는 가장 앞장서 수호 의지를 드러내는 이들이 우리 안의 친일문제에 대해서는 왜 이토록 너그러운 것인지 그들의 이중적이고 이율배반적인 태도가 의아스러울 따름이다. 관련기사 1) ‘백년설가요제’ 가을에 대구 개최 추진 친일행적 논란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