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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랑

민족문제연구소는 오늘날의 독립운동 사령부 이준열사기념관을 만드는 것이 내 마지막 소원

2016년 9월 23일 718

∷ 인터뷰 │ 이양재 전 일성이준열사기념사업회 부회장 정리 : 박한용 교육홍보실장 낙원동 찻집에서 오랜만에 이양재 선생을 만났다. 인사동에서는 유명한 컬렉터이기도 한 이양재 선생은 근대시기 고서 등을 연구소 특별전시에 출품해 주신 계기로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사회가 급격히 수구화하면서 살림살이마저 팍팍해졌던 이명박 정부 초기 서울살이를 아예 접고 거처를 제주도로 옮겨간 지 8년째이다. 10년을 넘게 만나온 분이지만 이양재 선생이 인사동에서 유명한 컬렉터라는 사실이 떠올라 먼저 그의 직업부터 물었다. 선생님은 원래 어떤 일을 해 오셨습니까? 20대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하나의 직업을 가지고 매진하기 보다는 엎치락뒤치락 많은 활동을 해왔습니다. 애서가클럽, 고전문화진흥회, 한국고서동호회와 같은 단체의 발기인이나 임원 등을 역임했어요. 여행사 등 이런 저런 사업도 했지만 장사에는 소질이 없어 사업은 대부분 적자였죠. 좋은 옛 자료들을 부지런히 수집한 덕에 최근 10여 년간은 박물관에 그동안 수집한 자료들을 많이 납품하기도 했고요. 한국-일본-중국의 경매시장을 연결해 박물관 등에 자료를 제공하는 일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고미술품에 조예가 깊은 전문 컬렉터로 알고 있었는데요? 원래 고미술품보다는 고서에 관심이 많아, 고서에 나오는 옛 그림이나 판화를 보면서 연구를 시작했어요. 그렇게 회화사, 서지학, 판화사를 다룬 글을 쓰다 보니 발표한 글만도 100편이 넘습니다. <오원 장승업의 삶과 예술>, <안견연구> 등 저서도 3권 냈습니다. 이러다보니 조금 이름이 알려진 것 같아요. 보통 우리 같은 컬렉터들을 골동품이나 모으는 수집가들이라 보수적일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친일파는 한국판 전범

2016년 9월 23일 1587

∷ 미리보는 ‘식민지역사박물관’ 해방이 되자 제일의 민족적 과제가 친일파 숙정이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미군정의 친일파 재등용은 이러한 민심을 철저히 외면하는 것이었다. 정부가 수립되자 친일파에 대한 단죄는 다시 전면화하게 된다. 1948년 9월 22일, 제헌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를 설치하였다. 이어 친일파 기소와 재판을 담당할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를 구성하여 친일파 체포에 나섰다. 국민들은 반민특위의 활동을 적극 지지하며 반민특위에 친일파의 행적을 증언하거나 제보했다. 언론들의 취재 경쟁도 치열했는데 당시의 정황을 구체적으로 전해주는 자료 하나를 소개한다.특별재판부 재판정으로 들어가는 친일파의 모습이 실린 1949년 4월 4일자 <주간서울> 1면이 바로 그것이다. <주간서울>은 1948년 1월 창간되어 6·25전쟁 직전인 1950년 5월까지 간행된 해방이후 최초의 종합시사주간지이다. 1949년 3월 28일부터 반민족행위자특별재판이 개정하자 <주간서울>은 “한국판 <뉴른베르그> 피고들 궤변과 방청석의 공기”라는 제목으로 이 재판의 의의와 분위기를 상세하게 보도했다. 먼저 친일파 처단의 목소리는 해방과 동시에 일어났지만 미군정의 소극적인 태도로 4년이라는 긴 시간을 그대로 흘려보낸 점을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친일파 처단은 해방민족으로서의 절대 요청’으로 정부가 수립되자마자 반민족행위처벌법이 상정(1948년 8월 17일)되고 정식 공포(1948년 9월 22일)되어 법적 근거가 마련된 사실에 안도감을 표현하고 있다. 이어 1949년 1월 8일 친일파 박흥식의 수감을 시작으로 반민특위의 실질적 행동이 개시되어 3월 28일부터 개정된 8명의 피의자에 대한 반민족행위자특별재판에 대해 ‘도로 찾은 민족정기가 겨우 소생의 실마리’를 잡게 되었다고 평가하며 특급 친일파인 피의자들의 사진을 전면에

100년 전, 경복궁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 식민통치의 치적을 자랑하기 위해 벌인 난장판, ‘조선물산공진회’

2018년 4월 4일 1616

[식민지 비망록 5] 이순우 책임연구원 2015년은 무엇보다 광복 70주년을 기리는 뜻이 가장 클 것이고, 여기에 한일수교 50주년과 을미사변 120년을 되새기는 의미도 적지 않다. 그외에 이목을 크게 끌지는 못했지만, 올해가 ‘조선물산공진회’가 열린 지 100년이라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행사의 정식명칭은 ‘시정오년기념 조선물산공진회(始政五年記念 朝鮮物産共進會)’이다. 총독정치가 시작된 지 다섯 번째가 되는 해를 기념하기 위해 조선의 온갖 물산을 진열 전시하는 행사인 셈이었다. 이 대규모 행사는 1915년 9월 11일부터 10월 31일까지 50일간이나 벌어졌다. 조선총독부 출범 기념일이 10월 1일이었으므로, 이를 전후한 때에 맞춰 행사 일정이 결정되었다. 조선물산공진회장 전경도에는 근정전을 비롯한 주요 전각 몇 군데만을 남겨놓고 온통 박람회 전시공간으로 돌변한 경복궁 일대의 훼손상황이 잘 묘사되어 있다. (『매일신보』 1915.9.3.)   그런데 식민통치 5년간의 치적을 자랑하기 위해 열린 박람회 공간은 하필이면 경복궁이었다. 총독부는 행사를 빌미로 근정전을 비롯한 주요 전각 몇 군데만 겨우 남기고 무수한 건물들을 헐어냈다. 뿐만 아니라 그 이듬해에는 공진회가 벌어졌던 바로 그 자리에서 조선총독부 신청사 건립을 위한 지진제(地鎭祭)를 거행하였다. 경복궁을 공진회장으로 선정한 저의가 무엇이었는지는 명확히 파악할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박람회라는 널리 알려진 표현을 제쳐두고, 공진회라는 조금은 생소한 이름으로 부른 이유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공진회는 ‘경진대회(競進大會)’의 성격을 띠는 전시행사이다. 이렇게 행사명을 부친 데는 그냥 흘려듣기 곤란한 뜻이 담겨 있었다.   …… 그런데 그 후에 박람회라고 부르는 것이

기증자료소개

2016년 8월 22일 434

▪ 6월 28일, 심정섭 지도위원 겸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이 44번째로 소장자료를 정리해 보내왔다. 이번에 기증한 자료는 <유신회규칙>(1921), <국회사>(1971) 등 도서류다. 이 중 <유신회규칙>(1921)은 전남 순천의 친일단체인 유신회(維新會)가 발행한 책자로 유신회의 회장은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김정태이다. 김정태는 당시 순천 군수로 재직하고 있었으며 뒤에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낸 거물 친일파이다. 유신회는 취지서에서 조선의 낡은 것을 새롭게 한다고 밝혔으나 실은 미풍양속을 폐지하고 민족혼을 없애는데 중점을 두고 활동하였다. ▪ 7월 1일, 군산에 있는 동국사(東國寺)의 종걸 주지스님이 도서 <석전 박한영>(2016) 1권을 기증했다.▪ 7월 5일, 양승국 회원(서울강남서초지부)이 <조선민족혁명당과조선의용대(朝鲜民族革命党与朝鲜义勇队)>(1997) 1권을 기증했다.▪ 독립운동가 구영필 선생의 손녀 구미능 특별회원이 7월 11일 구영필 선생의 동지로 의열단 창설 주역 중 한 사람인 김대지 선생의 아들 김명 씨의 증언 녹음 파일과 녹취록을 보내왔다. ▪ 7월 11일, 나가사키 재일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회의 대표인 다카자네 야스노리(髙實康稔)씨가 <원폭과 조선인(原爆と朝鮮人)> 제7집(2014), <나가사키의 세계유산 다카시마, 하시마의 조선인·중국인의 기록군함도(長崎の世界遺産 高島·端島と朝鮮人·中国人の記録 軍艦島)>(2015) 등 2점을 기증했다. ▪ 지난 7월 15일, 故 임종국 선생의 부인 이연순 여사가 ‘요산재’(樂山齋, 작자미상) 액자를 기증했다. 요산재는 선생이 만년에 은거해 주경야독하던 서재이다. ▪ 7월 20일, 최종극(서울서부지부) 회원이 40년 동안 수집한 우리나라 및 세계 각국의 주화, 해방 이후 발행한 우표류 등 수량을 헤아리기에도 벅찬 귀중한 자료를 연구소에 기증했다. 인수를 위해 상근자 4명이 자택을 방문하였는데 세월의 흔적이 엿보이는 자물쇠 달린 보관함과 그 안에 개별

열전 친일파·6, 을사오적의 후손들, 친일과 항일로 갈라서다

2016년 8월 22일 5671

열전 친일파·6조선귀족 편(2) 을사오적의 후손들, 친일과 항일로 갈라서다 이용창 편찬실장·책임연구원 지난 호 이 글 말미에 자작 박부양(박제순의 습작자)의 장남 박승경이 학병에 지원한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차남의 독립운동 투신도 살짝 언급했다. 내친 김에 두 차례에 걸쳐 박제순-박부양의 친일행적과 후손 박승유의 독립운동 관련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1999년 8월 14일자 <강원일보>에 「을사오적 손자 자괴감, 일본군 탈출 독립운동」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소개되었다. 내용의 일부를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을사보호조약 체결 당시 외무대신(외부대신-필자)이었던 박제순(1858∼1916)의 친손자인 박승유(1924∼1990·전 ○○대 ○○과 교수-○은 필자) 선생이 할아버지의 친일행동을 속죄하기 위해 광복군으로 활동했던 사실이 새롭게 밝혀져 유족이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는다. 박 선생은 서울법대 전신인 경성법학전문대를 졸업한 1944년 10월 일본군에 징집돼 중국 저장성 의오현에 주둔중인 횡정부대에 배치될 예정이었다.그러나 박 선생은 할아버지가 나라를 일본에 넘겼다는 주변사람들의 이야기에 심한 자괴감을 느끼고 가문을 대신해 속죄하기 위해 일본군에 징집된 지 한 달 만에 함흥에서 탈출, 광복군에 들어가 활동했다. 광복군 제2지대에 편입한 이후 박 선생은 중국무석과 무호 난징 등을 순회하며 국내 진공작전을 준비하는 한편 대일 선전공작활동을 벌였다. 또 경기중학교 시절부터 익힌 특출한 음악실력을 발휘해 최초로 독립군들에게 애국가를 가르치면서 항일의지를 고취시켰다.” 요약하자면 외부대신으로 을사조약을 체결한 조부의 매국행위를 속죄하기 위해 손자가 독립운동에 헌신해 건국훈장을 받았다는 것이다.<독립유공자공훈록> 제5권에 따르면 박승유는 1944년 10월 일본군을 탈출, 광복군 제2지대에 입대해 활동한 공적으로 1963년에 대통령표창을 받았다(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으로 승격). 현재까지 확인된

카리브해의 조선인들(1) – 임천택과 헤로니모 임, 이민과 혁명

2016년 8월 22일 3943

해방70년 특별기획 / 사건과 인물로 보는 우리 근현대사 18 카리브해의 조선인들(1) – 임천택과 헤로니모 임, 이민과 혁명 김선호 선임연구원 아주 매력적인 아가씨께“당신을 본 지 많은 시간이 흘러서 바로 그대를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우정의 달콤함을 맛 본 후, 전 행복을 경험했습니다. 절 믿어주세요. 당신은 나에게 어둡고흐린 밤이 지나간 후, 밝게 떠오르는 한 줄기 아름다움입니다. 당신의 어투와 상냥한 성격, 그 눈길은 절 지독히도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고, 그대와 진실한 우정을 나누지 못한다는 것이 절 시들게 만들죠. 그대가 이 글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지만, 모든 것은 진심입니다. 그렇지만 아무 예의 없이 그 감미로운 우정을 설명하려 했다는 생각은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자신감 없던 지난 날로 인해 저를 책망하지도 마시고 다만,저를 용서하시길 바래요. 당신께 글을 쓸 기회를 주신다면, 전 그 순간만을 기다리겠습니다. 당신께 폐를 끼쳤군요. 당신을 그토록 사랑하고 당신을 잊지 못하는 이의 진실된사랑과 애정을 받아주세요.”마딴사스, 1945년 12월 26일, 우리가 만난 지 2일 뒤.헤로니모 임(Gerónimo Im) 헤로니모 임과 크리스티나 장(출처 : 다음블로그) 상냥한 말씨, 감미로운 글투. 유려한 스페인어로 이 편지를 쓴 청년은 스무 살의 조선인, 헤로니모 임이다. 수신자는 크리스티나 장, 편지를 쓴 장소는 마딴사스(Matanzas). 한반도의 지구 반대편, 카리브 해의 보석이라 불리는 쿠바 제2의 도시였다. 마딴사스는 스페인 점령자들이 세운 항구도시로, 문학과 예술이 발달해 쿠바의 아테네로 불렸다. 헤로니모와 크리스티나는 모두 조선인 2세였고, 부모님들은

인터뷰 │ 이용길 임종국선생조형물건립추진위원장, 역사와 기억을 둘러싼 고독한 투쟁 – 임종국 조형물 건립은 그의 뜻을 알리는 첫걸음

2016년 8월 22일 582

정리 : 김혜영 연구원 지난 7월 9일 임종국 선생이 친일청산을 위해 마지막 열정을 불태웠던 천안에서, 그의 뜻을 잇는 이들이모여 ‘임종국선생조형물건립추진위원회’를 발족했다.임종국 선생은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회담 당시 박정희 정권의 반민족적 성격에 분노해 친일문제 연구에 착수했다. 1966년 그가 저술한 <친일문학론>은 친일파 연구의 기원을 연 기념비적 저작으로 지식인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던졌다. 민주화운동 시기에는 옥중필독서로 널리 읽혀졌으며 ‘운동권의 교본’으로도 활용됐다. 임종국 선생은 <친일문학론> 외에도 <일제침략과 친일파> <일제하의 사상탄압> <일본군의 조선침략사> 등 수많은 일제침략사 연구서를 저술하였으며, 필생의 목표였던 <친일파총서>를 준비하던 중 1989년 폐기종으로 별세했다. 그 유지를 이어 1991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출범하였으며, 2009년 <친일인명사전>이 빛을 보게 되었다. <친일문학론> 출간 50주년을 맞이해 선생의 실천적 삶과 선구적 학술 업적을 기리는 기념조형물을 세우기 위한 모금운동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회원이 있다. 조형물 건립과 임종국 선생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이용길 추진위원장을 만났다.이용길 위원장은 고등학생 시절 이광수의 소설을 읽고 최남선의 시를 암송하며 존경하는 박정희 대통령처럼 군인이 되어 나라에 충성하겠다는 꿈을 가진 야심만만한 청소년이었다.학도호국단 단장으로 활동하였고 선생님들과 주위의 어른들도 철없는 영웅주의를 부추겼다. 그러다가 대학 신입생 시절에 임종국선생의 <친일문학론>을 읽으면서 인생의 커다란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임종국 선생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셨는지요? 자세한 말씀 부탁드립니다.대학 신입생 시절 <친일문학론>을 통해 임종국 선생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1974년도니까 박정희 유신정권 시기였죠. 제가 읽은 <친일문학론>은 저에게는 그냥 단순한 책 한권이 아니었습니다. 청소년기에 형성되었던 나의 역사관과 가치관에 엄청난

을사늑약 현장 수옥헌(중명전), 원형 사진 최초 발굴

2016년 8월 22일 817

<러일전쟁 사진기록>(1905)에 수록된 수옥헌 원형사진이다. 나뭇가지와 경비병의 옷차림으로 보아 1904년 러일전쟁 발발 직후에 촬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2010년 복원공사 이후의 중명전 모습이다. 옛 사진으로 확인된 원형과는 달리 2층부분의 포치(돌출부분)가 없고, 지붕의 모양도 달라져 있다. 1905년 11월 일제의 겁박으로 강요된 ‘을사조약’의 역사 현장이었던 수옥헌(漱玉軒, 1906년에 중명전으로 개칭)의 건물 원형을 보여주는 사진자료가 새롭게 발굴되었다. 연구소 이순우 책임연구원이 1905년 미국에서 출간된 러일전쟁 기록사진집에 수록된 것을 발굴하여 <한겨레> 2016년 7월 26일자를 통해 공개한 이 사진에는 2010년 복원된 현재의 중명전과는 정면 외형이 크게 다른 모습이 담겨 있어 잘못된 원형 고증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중명전과 바로 이웃한 미국공사관 앞뜰에 도열한 경비병들 뒤로 드러난 이 건물의 모습을 살펴보면 정면 가운데 부분이 2층 지붕 위까지 함께 튀어나온 포치(Porch) 형식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현재 복원된 중명전은 1층 현관만 튀어나와 있고, 2층 부분의 전면에는 아무런 구조물이 설치되어 있지 않는 상태이다.이번에 새롭게 발굴된 자료에 대해 문화재청과 관계 전문가들은 향후 재복원 때 중요한 근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하고 전문가 자문회의를 통해 원형사진을 검토해 재복원 여부 등을 논의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연구소에서는 지난 2002년 이후 보존위기에 처한 중명전의 복원운동을 적극 전개하는 한편 이곳을 근대역사교육의 현장으로 활용할 것을 제안하여 그 이후 건물보존과 활용에 있어서 의미있는 결과를 이끌어내는 데 크게 기여한 바 있다. ∷ 이순우 책임연구원

국정화 고시 효력정지 가처분 제기 “깜깜이 집필 중인 국정 교과서 편찬·발간·배포 중단 요구”

2016년 8월 22일 356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사무국 민족문제연구소, 이하 국정화저지넷)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하 민변)은 지난 7월26일(화) 10시 30분, 헌법재판소 앞에서 “국정화 고시 효력정지 가처분 제기 기자회견”을 열고 가처분신청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 가처분 신청 대상은 ▶ 지난해 11월 3일 고시한 교육부 고시 제2015-78호 ‘중·고등학교 교과용도서 국·검·인정 구분 고시’ 중 중학교 역사 1·2와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용 도서를 각 국정도서로 구분한 부분 ▶ 지난해 12월 1일 고시한 교육부 고시 제2015-80호 ‘초·중등학교 교육과정’ 고시 중 중학교 사회(군)의 ‘역사’와 고등학교 기초 교과 영역의 ‘한국사’ 과목으로 내년 3월 1일부터 적용하기로 한 부분을 헌법재판소 선고 때까지 정지하도록 하는 것이다. 또 위 교육부 고시에 의거해 중학교 역사 1·2와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용 도서를 편찬·발간·배포하는 행위 역시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지난해 12월 역사교과서 국정화 고시에 대해 학부모·학생·학자 등 3,374명의 청구인을 모집해헌법소원을 제기한 바 있는 민변과 국정화저지넷은 기자회견을 통해 현재 깜깜이 집필 중인 국정 교과서가 그 내용과 수준이 어떻든 간에 당장 내년 3월부터 학교에서 쓰일 예정이라 헌법재판소 결정만을 기다리고 있기에는 ‘급박한 상황’이라는 판단에서 국정화 고시 효력정지 가처분소송을 제기했다고 이유를 밝혔다.이들은 만일 ‘효력이 정지’되지 않은 채 본안 심판이 위헌으로 결정될 경우 교육현장은 물론이고 학부모, 학생들에게 최악의 혼란이 가중될 것이며 잠정 338만 4,507명 학생이 정부의 일방적인 국정화 강행으로 끝내 국정 교과서로 배우게 된다면 ‘국정 역사 교과서 세대’로 각인되어 무엇으로도 회복할 수 없는 중대한 손해를 입게 될 것이라고

초등학생 대상 역사 캠프 ‘어린이백범학교’ 열려

2016년 8월 22일 421

제33회 어린이백범학교가 연구소와 청년백범 공동주최로 7월 28일부터 30일까지 강화도 산마을고등학교에서 열렸다. 초등학교 4~6학년생을 대상으로 열린 이번 어린이백범학교에는 모두 28명의 어린이가 참가했다. 참가자들은 먼저 효창원의 임정요인 묘소, 삼의사 묘소, 백범 묘소를 참배한 뒤 백범기념관을 견학했다. 이어 산마을고등학교로 이동해 연극 민요 독립운동사 독립군가 등을 배우고 인근 수영장에서 물놀이 시간도 가지는 등 유익하고 즐거운 시간을 함께 했다. 청년백범은 홍소연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비롯해 조선동(예원학교 교사), 안성균(산마을고교 교장) 회원 등이 주축이 되어 활동하고 있는 역사운동단체이다. ∷ 방학진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