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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랑

돌모루 동네배움터 ‘우리 동네 박물관 둘러보기’ 실시

2022년 7월 26일 752

[초점] 돌모루 동네배움터 ‘우리 동네 박물관 둘러보기’ 실시 • 국세현 기획실 회원사업부팀장 민족문제연구소·식민지역사박물관은 지역주민과 후원회원을 대상으로 돌모루 동네배움터 Part1 <우리 동네 박물관 둘러보기-마을역사해설사 양성>을 6월 13일부터 7월 11일까지 진행하였다. 동네배움터는 지역의 의미 있는 공간을 지역 주민을 위한 학습공간으로 활용하는 서울시의 평생학습 지원 사업이다. <우리 동네 박물관 둘러보기>는 자료로 보는 일제강점기1~3, 기증자료에 깃든 사연, 일 출신문조선쌍륙 실습 등으로 강동민 자료팀장, 안미정 주임연구원, 김슬기 연구원 강의로 식민지역사박물관 상설전시실에서 유물과 기증자료를 실제로 확인하며 총 5회를 진행하였다. “자료를 집중해서 볼 수 있었던 귀한 시간이어서 매우 좋았습니다. 식민지역사박물관이 앞장서서 식민지 시대를 바라보는 시선을 제시해 주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조선 폭압의 상징물이라 할 수 있는 일제의 긴 칼을 박물관에 전시하기까지의 이야기가 무척 감동적이었습니다.” “좀더 충분한 시 간을 확보하여 한 번 더 진행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이런 프로그램이 수강 참여로 끝나지 않고 참가자가 지역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으면 합니다.” 등등 유물과 기증자료를 바로 눈앞에서 직접 보며 생동감 있게 진행된 강좌여서 참석자들의 의견과 호응도 매우 적극적이었다. 민족문제연구소와 식민지역사박물관은 ‘돌모루 동네배움터’를 통해 6월~10월까지 <우리 동네 박물관 둘러보기>, <독립운동을 활용한 문화콘텐츠 제작 사례1, 2>, <우리 동네 민주 역사 자원 활용하기>,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의 목소리를 들어라> 강좌들을 운영할 예정이다.

뜨겁고 의로운 이름, ‘미스터 션샤인’

2022년 7월 26일 4530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오.      그러나 일본의 노예로 살기보다      자유로운 인간으로 죽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오.” 어린 소년부터 장년까지 가지각색의 복장을 착용한 채 어정쩡한 자세로 어설프게 집총執銃했지만 결의에 찬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는 사람들. 한국의 독립운동 관련 도서에서는 어디서나 한 번쯤은 마주한 대표적인 의병 사진이다. 이 사진은 영국 데일리 메일(Daily Mail)의 기자 프레드릭 아서 맥켄지(Frederick A. Mackenzie)가 남긴 것으로, 1907년 대한제국의 군대가 일제에 의해 해산당한 직후 경기도 양평에서 만난 의병을 인터뷰하면서 찍었다. 의병은 일제가 이 땅을 유린蹂躪하기 시작한 때부터 해방이 찾아올 때까지 끊임없이 저항하였지만 그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미지는 찾기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그마저도 대부분 일본 군경에 잡혀 일제의 ‘성과기념’으로 기록된 사진이다. ‘영롱한 눈과 자신만만한 미소’라고 표현한 결의에 찬 의병의 모습은 맥켄지가 촬영한 장면이 거의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박제되어 책으로만 접하던 이 사진 한 장이 2018년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다. 한 방송사에서 ‘역사는 기록하지 않았으나 우리는 기억해야 할 무명의 의병들’이라는 기획으로 ‘의병 사진’을 소재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을 제작해 방영한 것이다. 유명 배우들이 출연하고 잘 짜여진 시나리오와 볼거리 많은 연출로 인기리에 방영되었는데 몇 가지 역사 왜곡으로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나라를 잃기 직전의 암울한 대한제국 시기, ‘자유’를 위해 이름도 없이 싸우다 사라진 이들의 기록을 극화한 경우가 드물었고, 다양한 계층이

‘반민특위’ 표석은 왜 아직도 제자리를 찾지 못하나?

2022년 6월 24일 2039

해마다 맞는 6월 6일은 전몰장병과 호국영령을 추모하는 기념일인 ‘현충일(顯忠日)’이다. 반기(半旗, 조기)를 다는 공휴일에다 오전 10시에 울리는 사이렌 소리에 맞춰 일제히 묵념을 하는 날로 기억되며, 특히 전국의 유흥업소도 이날만큼은 가무음곡(歌舞音曲)을 삼간다는 뜻에서 경찰당국의 요청 및 지도에 따라 관례적으로 문을 닫고 있다. 그런데 6월 6일이라고 하면 비단 ‘현충일’뿐만이 아니라 또 하나 결코 잊을 수 없는 역사적 폭거가 있었던 날이기도 한데, 1949년 6월 6일에 친일경찰세력에 의해 저질러진 ‘반민특위 사무소 습격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조선일보> 1949년 6월 7일자에 수록된 「경찰(警察) 돌연(突然) ‘특위(特委)’를 포위(包圍), 무기압수(武器押收), 20명(名)을 인치(引致)」 제하의 기사에는 이날의 사건 진행이 이렇게 채록되어 있다. 서울시 경찰국에서는 최운하(崔雲霞) 사찰과장이 반민특위에 피검된 지 하루를 경과한 5일 오후에 이르러 440여 명의 경찰관이 사표를 제출하고 오후 2시부터는 사찰과원 전체가 파업에 돌입할 것이라고까지 하고 있었으며 4, 5 양일간 간부회의를 개최하고 모종 중요한 협의를 한 바 있어 그 결과 여하가 주목되고 있던바 작 6일 오전 8시 반 경 돌연 중부서(中部署) 윤기병(尹箕炳) 서장 지휘 하에 중부서원을 주동으로 하는 각 서원 약 80여명은 남대문로 있는 특위를 포위하고 때마침 출근하는 조사관 및 직원들이 휴대하고 있던 권총을 압수하는 한편 특경대원(特警隊員) 20여 명을 인치하여 갔다. 그런데 이에 앞서 작 6일 아침 7시부터 8시 사이에도 특별조사위원 박우경(朴愚京), 특별검찰관 서성달(徐成達), 동 서용길(徐容吉) 씨 댁에 무장경찰관이 와서 무기의 유무를

문학인들은 도덕과 윤리의 상징적 존재 친일문학상 반드시 폐지돼야 권위상 민족문학연구회 사무국장 인터뷰

2022년 6월 24일 1392

[인터뷰] 문학인들은 도덕과 윤리의 상징적 존재 친일문학상 반드시 폐지돼야 권위상 민족문학연구회 사무국장 인터뷰 인터뷰 : 방학진 기획실장 최우현 주임연구원   “친일파가 전부 다 주도하고 해서 친일 청산이 안 됐고.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요즘에 무슨 친일파 자꾸 얘기하고 그러냐고. 지금 세상이 어떤때인데. 꼭 그런 분들 보면요. 낮도깨비 만나고 온 사람들 같아요.” 대선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던 작년 여름, 모 라디오 프로그램 패널로 출연했던 정치인 김재원 씨의 발언이다. 아마도 이런 논리인 듯하다. 첫째, 요즘 세상에 친일파는 없다. 즉 다 죽었다. 둘째, 애초부터 청산하고 말고 할 친일이란 게 없었다. 친일청산이란 마치 ‘낮도깨비’처럼, 그 실체가 없는 것이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지극히 단순한 접근이지만) 2022년 현재, 생물학적 수명을 유지하고 있는 친일행위의 당사자들은 없다. 그렇다면 친일청산은 어떨까? <친일인명사전>이 나왔으니, 국가차원에서 친일반민족행위를 조사했으니 그걸로 마무리 됐다고 볼 수 있을까? 답은 ‘아니’다. 일제 부역자들에 의해 고착화된 인적, 물적, 문화적 잔재는 아직 우리 곁에 남아 있다. 친일파 현창을 위한 기념사업, 문학·가요제, 언론·학술상 등은 여전히 ‘성업’ 중이고 친일의 장물(贓物)인 ‘친일재산’은 2005년 관련 법 제정 이래 환수가 이어지고 있으며 징용노동자와 같은 친일행위의 직·간접적 피해자들은 재판 투쟁에 나서고 있다. 이번에 민족문제연구소가 만난 권위상 민족문학연구회 사무국장은 이 같은 친일잔재의 거대한 한 축이라고 볼 수 있는 ‘친일문학상’ 폐지를 위해 전력을 투구해온 인물이다. 우리 연구소

임진왜란 왜장 이름 딴 다리, ‘코바야카와교’ 돌기둥 최초 확인

2022년 6월 24일 1498

[초점] 임진왜란 왜장 이름 딴 다리, ‘코바야카와교’ 돌기둥 최초 확인 • 편집부 최근 <용산, 빼앗긴 이방인들의 땅>(전2권)을 펴낸 이순우 책임연구원이 ‘출간 기념 용산답사’를 준비하던 과정에서 ‘코바야카와교(小早川橋)’ 돌기둥[橋名柱]의 존재를 최초로 확인했다. 이 돌기둥은 전쟁기념관 북문의 길 건너편 지금은 폐쇄된 캠프 킴(Camp Kim) 구역의 동남쪽 모서리에 위치하고 있다. 이 자리는 이태원 쪽에서 발원하여 미군기지 안쪽을 가로질러 흐르는 하천이 한강로와 만나는 지점에 해당한다. 코바야카와교의 ‘코바야카와’는 임진왜란때 왜장 코바야카와 타카카게(小早川隆景, 1533~1597)이다. 코바야카와는 일본 전국시대(戰國時代)의 무장으로 임진왜란 때 벽제관에서 명군(明軍)을 대파하는 등 명성을 얻었으나 행주대첩에서 권율 장군에게 패배했다. ‘코바야카와교’는 일제강점기 용산 주둔 일본군 병영지 외곽에 군사적 목적으로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오카다 코(岡田貢)가 <경성휘보> 1942년 3월호에 남긴 자료에 의하면 이번에 발견된 돌기둥이 1926년 11월에 기존의 다리를 석교(石橋)로 개조하면서 조성된 것이다. 일제는 이 다리 외에도 지금의 전쟁기념관 구역 북쪽을 따라 흐르는 소하천에도 ‘코바야카와(小早川)’라는 이름을 붙였다. 연구소는 관련 기록과 함께 이를 입증하는 사진자료도 공개했다. 이순우 책임연구원은 “옛 둔지미와 이태원리 일대를 강제점유한 일본군은 용산병영지 곳곳에 일본의 언어 관행을 좇아 융경산(隆景山, 류케이잔)이라거나 사방견산(四方見山, 시호미야마), 선견산(船見山, 후나미야마), 월견대(月見台, 츠키미다이), 용대(勇台, 유다이), 하강(霞ケ岡, 카스미가오카), 학강(鶴ケ岡, 츠루가오카) 따위의 일본식 지명을 부여하였다. 소조천(小早川, 코바야카와)도 이런 유형의 하나이지만 임란 때의 왜장을 기념한 명칭이라는 점에서 그 의도가 매우 불순하다”고 그 의미를 설명했다.  연구소는 이를 계기로 용산 미군기지

전기호 지도위원 별세

2022년 6월 24일 1048

[초점] 전기호 지도위원 별세 전기호 지도위원이 6월 14일 별세했다. 고인은 경남 밀양 출신으로 1960년 경희대 민족통일연구회를 만들어 민주화와 통일운동에 나섰고 이후 경희대 교수로 재직했다. 고인의 대표 저작인 <일제시대 재일 한국인노동자계급의 상태와 투쟁>은 일제강점기 재일 한국인 노동자계급의 형성요인, 일본 자본주의의 후진성·반봉건성·군사성이 한국인 노동자계급의 노동조건과 생활조건에 미친 영향을 논증하였다. 고인은 2004년부터 2008년까지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을 지내며 징용·징병으로 인한 강제동원 피해의 진상 규명과 보상에 힘썼다. 그 밖에 사월혁명회 이사장,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공동대표를 지낸 고인은 2016년 6월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에 써달라며 성금 1천만원을 기부하여 박물관 건립에도 큰 힘을 보탰다. 한편 6월 16일 오후 6시 경희의료원 장례식장 영결식장에서 열린 ‘전기호 교수 추모의 밤’에 임헌영 소장, 윤경로 식민지역사박물관장, 조세열 상임이사, 박수현 사무처장 등이 참석해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반민특위가 패망하던 날의 비극

2022년 6월 24일 1663

[자료소개] 반민특위가 패망하던 날의 비극 김상돈 민의원 의원 글은 1949년 당시 반민특위 부위원장이었던 김상돈 의원이 <진상(眞相)> 1957년 12월호에 기고한 것이다. 김상돈 의원은 반민특위 설치 초부터 1949년 6월 6일 특경대 습격 때까지 이승만 정권과 친일파들이 얼마나 집요하게 반민특위의 활동을 방해했는지를 상세히 설명하고 위정 당국자의 맹성(猛省)을 강력히 촉구하였다. 1949년 1월 8일부터 기소 만료일인 8월 31일까지 반민특위가 체포, 소환한 친일파는 688명이고 이 중에서 특별검찰부가 기소한 자는 293명이었다. 특별재판부가 해체되기 전까지 판결 받은 자는 78명이고 미결수가 215명이었다. 78명 중 징역 1년 이상의 금고형(禁錮刑)을 받은 자는 10명뿐이고 나머지는 집행유예, 공민권정지, 무죄, 형면제, 공소기각으로 미약한 처벌을 받거나 무죄 방면되었다. 금고형을 받은 자들도 6·25전쟁의 혼란 속에서 모두 풀려나 실제로 온전히 처벌받은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 편집자 주   정부가 수립된 지 얼마 안 되어 설치되었던 ‘반민족특별조사위원회’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자못 컸었다. 그러나 당초에는 매우 활발하게 움직이는 듯 하더니 나중에는 자취조차 사라지고 말았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이제 당시의 부위원장이었던 김상돈(金相敦) 씨의 말을 들어보기로 하자. 선수(先手)를 쓰는 친일파 정부가 수립되자 국가와 민족의 기강을 살리기 위해 지극한 소수 악질 친일파들을 일단 숙청하여야 된다는 것이 국민들의 공통된 여론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그리 조급하게 처리할것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조사에 임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해괴한 것은 반민법에 저촉되고

역사와 진실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 5.18연극 <고백, 나는 광주에 있었습니다> 감상 후기

2022년 6월 24일 779

[후원회원 마당] 역사와 진실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 5.18연극 <고백, 나는 광주에 있었습니다> 감상 후기 김진주 서울서부 후원회원(<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홍보위원) “아버지, 아버지가…!” 무대 위 영은의 절규 속에, 오래된 영화 한편이 떠올랐다. 중고서점을 뒤져 <뮤직박스>를 다시 열었다. 사랑하는 아버지의 추악한 진실과 대면한 순간, 앤(제시카 랭 분)이 표정으로 보여준 ‘소리 없는 절규’가 영은의 비명과 겹쳐졌다. ‘내게는 이토록 자상한 아버지가, 수많은 사람들을 잔혹하게 죽인 학살자라니!’ 영은과 앤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진실을 결국 수용하지만, 그녀들의 아버지는 각기 다른 선택을 한다. “나도 피해자야!”, “나는 명령에 따랐을 뿐이야! 진짜 가해자는 국가권력”이라고 울부짖던 영은의 아버지는 결국 죄를 인정하고 피해자들의 묘소를 찾지만, 앤의 아버지는 끝끝내 죄를 부정한다. 그러나 죄에 대한 사회의 태도는 또 달랐다. 앤의 아버지 미쉬카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지은 죄를 40년 넘게 숨겨왔지만, 1980년대에 법정에 서고 죗값을 치른다. 반면, 영은의 아버지 정하는 죄를 인정했음에도 2022년 대한민국 법은 그를 심판하지 않았다.   왼쪽부터 연출가인 이당금 푸른연극마을 대표, 이명화 국민재산환수 집행위원, 그리고 김진주·박선영 회원. 지난 5월 14일, <고백, 나는 광주에 있었습니다> 대학로 공연장에서 서로 인사를 나눴다. 박선영 회원이 손에 쥔 것은 연대의 정신을 상징하는 ‘광주 주먹밥’이다.   지난해 3월, 5·18계엄군의 첫 공식사죄가 있었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 이후 41년 만이다. 올해 5월에는 계엄군 3명이 광주를 찾아 유가족에게 “진심으로 사죄”했다고 한다. 언론의

중앙으로 들어가다 – 제주지부 온라인 만남 후기

2022년 6월 24일 716

[후원회원 마당] 중앙으로 들어가다 – 제주지부 온라인 만남 후기 이호빈 제주도 후원회원 참으로 신기한 경험을 했다. 항상 변방에서 행부와 화상회의를 통해, 나도 중앙무대에 깊숙이 발을 디딜 수 있었다는 것이다. 마치 2003년, 제주4·3이 ‘중앙의 역사’로 들어선 것처럼 나도 중앙인이 된 기분이었다. 임헌영 선생님 글이 좋아 <민족사랑>에 실린 글은 죄다 외우다시피 읽었는데, 그 선생님을 먼발치에서나 뵐 수 있을까 하는 소망이, 이런 과학의 힘을 통해 대화를 나누었다는 게 나에겐 행운이랄 수밖에. 글에서 강한 힘을 느꼈던 방학진 선생도 직접 대면하니 생각보다 젊었고, 제주도에서 함께 살면서도 면식이 없었던 회원들을 볼 수 있어서도 좋았다. 이제는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으로 민족문제연구소 식구들을 훤히 들여다보고, 서로의 소통을 통해 인권 평화 미래를 생각하는 역사행동을 함께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벅차다. 그리고 역사연구와 내 정체성을 쌓는 일에 좀 더 노력해야겠다는 마음을 다져본다.

4월 후원회원 온라인 만남에 참가하며

2022년 6월 24일 565

[후원회원 마당] <4월 후원회원 온라인 만남>에 참가하며 박종선 부천지부장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느낀 점은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일상생활이 소중하다는 것과 추억은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지난 10년간 부천에서 회원들과 부천시민 역사강좌, 독립운동유적지답사, 부천독립운동재현행사, 평화기행, 안중근음악회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본부의 임종국상 시상식, 전국회원수련회, 운영위원회의 등을 참여한 추억은 저에게는 소중했습니다. 코로나로 2년 동안 진행하지 못하 고 회원들도 만나지 못해 답답하면서도 그래도 되돌아볼 수 있는 추억이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코로나를 극복하고 5월부터 방역이 완화되면서 예전과 같은 활동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있었는데 본부에서 <후원회원 온라인 만남>을 추진해주셔서 감사한 마음으로 참여하였습니다. 대면이 아닌 비대면이지만 임헌영 소장님과 방학진 기획실장님을 비롯해 대전, 광주, 부산, 진주, 포항 등 전국의 후원회원님들을 뵙게 되어 반가웠습니다. 친일청산을 통해 역사를 바로세우기 위해 연구소에 모인 회원님들을 보면 뜨거운 사랑과 열정을 느끼게 됩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목적은 친일청산을 통한 역사를 바로 세우는 것이지만 넓게 보면 인간이 인간답게 살고 국가라는 공동체 안에 서로 조화를 이루면 행복하게 사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친일파는 개인과 가족만의 이익을 위해 나라와 민족을 팔아먹었는데 이것은 반인륜적 행위의 끝입니다.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상식과 정의를 추구하면서 보편적 인권과 민주를 생각하는 사람들의 선두에 우리 민족문제연구소 회원분들이 계시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뜻을 지니고 함께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이 제게는 영광입니다. 코로나라는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였으니 예전처럼 전국회원대회나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