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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박정희 성공한 정책, 알고보니 일본과…치욕
ㆍ민족문제연구소 ‘유신 40년 기념’ 전시회ㆍ일제 군국주의 파시즘을 조국 근대화로 포장 “마치 일본의 메이지유신을 성공시킨 청년 지사와 같은 의욕과 사명감을 품고 그분들을 모범으로 삼으려 합니다.” 5·16 군사 쿠데타 직후인 1961년 11월,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A급 전범 출신인 기시 노부스케와 도쿄 요정에서 만나 이렇게 말했다. 박정희가 말한 메이지(明治)유신의 지사들은 바로 정한론을 펼친 사이고 다카모리, 조선침략의 원흉으로 불린 이토 히로부미 같은 인물들이었다. 박정희는 1930년대 일본 군부의 급진세력들이 추구한 일왕중심의 국가 개조론인 ‘쇼와(昭和)유신’에도 깊은 영향을 받았다. ‘쇼와유신’은 국가가 혼란할 때 군부가 직접 정치에 개입하는 것을 당연시하고, 정당정치와 대중의 다양한 여론을 사회 혼란이라 생각하고, 민주주의를 방종 또는 국가의 ‘적’으로 돌리며 강력한 반공정책을 내세운 사상이다. 그 사상은 박정희가 1972년 장기집권을 위해 단행한 ‘10월 유신’에 고스란히 담겼다. ‘유신’이라는 용어 자체가 메이지유신과 쇼와유신에서 비롯됐다. 유신체제가 표방한 ‘총력안보’ 또한 일제가 1937년 중·일전쟁에 돌입하면서 구축한 전시총동원체제(총후국방)라는 개념에서, ‘고도국방’은 만주국이 표방한 ‘고도국방체제국가’에서 따왔다. 용어만 아니라 내용도 빼닮았다. 일제의 농촌진흥운동과 국민총력운동이 새마을운동으로, 애국반상회가 반상회로, 조선기류령(寄留令)이 주민등록제로 또다시 등장했다. 결국 유신체제는 겉으로는 ‘조국근대화와 민족중흥’ ‘한국적 민주주의의 토착화’를 내세웠지만 실상은 일제 군국주의 파시즘으로부터 각종 통치 시스템을 차용한 ‘부끄러운 유산’에 불과했던 셈이다. 유신 40주년인 올해 광복절을 맞아 민족문제연구소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식민의 유산, 유산의 추억’ 전시회를 다음달 22일까지 연다. 장소는 일제강점기와 군사독재 정권 시절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에 투신한 이들이 산화해
“일제의 잔재 여전… 사회 구조 뒤틀어”
1960~70년대 고도성장은 일제강점기에 쌓은 물적·인적 기반이 바탕이 됐다는 게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하는 뉴라이트의 생각입니다. 우리는 정반대죠. 일제의 군국주의와 파시즘을 그대로 이어받은 유신체제가 오늘날 한국사회의 총체적 후진성과 장애요소를 만들어냈다고 봅니다. 조국 근대화가 아니라 조국 낙후화를 불러온 셈이죠.”이번 전시를 기획한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사진)은 지난 16일 인터뷰에서 “흔히 일제 청산을 얘기할 때 인맥 부분만을 거론하는데 친일 인사들이 그대로 남겨지면서 심어놓은 일제 잔재가 우리 사회를 구조적으로 비틀어놨다는 점은 간과하고 있다”고 말했다. 2~3년 전부터 유신 40주년 맞이를 준비하면서 한국사회가 박정희 시대를 넘어서지 않고는 이성적이고 건전한 시민사회로 진입하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을 갖게 됐습니다. 호불호를 떠나 우리가 유신체제에 대해 일반적으로 가진 상식의 배후에 있는 본질은 무엇인가, 유신체제를 통해 일제 잔재가 어떻게 구조적·총체적으로 부활됐는가를 보여주고자 했습니다.”무엇보다 박 실장은 유신체제가 특정 민주화운동 인사들에 대한 고문과 탄압만으로 비치는 것을 경계했다. “유신체제는 전 국민들을 통제하고 감시하면서 권력을 유지했던 전무후무한 총동원체제입니다. 유신체제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가해진 폭력성을 조명하고 싶었습니다.”유신의 잔재, 나아가 일제의 잔재는 아직도 우리 주변 곳곳에 남아 있다. 그는 “아직도 어떤 기숙사 학교에서는 아침 점호를 실시한다고 들었다”며 “일제 말기 학교가 군대 시스템으로 변모했던 잔재들이 한국사회에서는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명목하에 정당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12.08.17)
일본을 잊지 말자고? 불꺼진 역사관…충격
일제시대 당시 우리나라에 대한 일본의 수탈과 침략에 관한 사료들을 전시하고 있는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의 민족문제연구소 시민역사관. 광복 67주년을 전후해 불거진 한일간 독도 갈등 등으로 인해 일제식민지 침탈사에 대한 관심이 고조됐음에도 불구하고 역사관은 관람객 하나 없이 ‘덩그러니’ 고요한 모습이었다.김승은(41·여) 민족문제연구소 자료팀장은 어두컴컴한 역사관에 전등을 켜며 취재진을 맞았다. 김 팀장은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 지금은 관람객이 있을 경우에만 불을 켜고 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 귀중한 일제시대 사료들, 창고에 그대로 ‘방치’ 민족문제연구소 시민역사관은 ‘3.1 독립선언서’ 원본 등 일제시대 귀중한 유물과 서적 6만여점을 소장하고 있지만 이곳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은 높지 않아보였다. 식민지 시대의 실상과 친일 행적에 대한 세세한 자료를 수십년간 모아 전시하고 있지만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지속적인 관심이 없다면 ‘교실 안에서 배우지 못하는 것을 교육하는 장’으로서의 역사관의 의미가 무색해질 수 밖에 없기에 민족문제연구소의 아쉬움은 더욱 컸다.더욱 안타까운 것은 귀중한 6만여점의 자료들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역사관에 전시된 것 외에도 수만점의 유물들이 역사관 지하실과 빈방 한켠에 보관돼 있다. 귀중한 사료들을 보관하기에는 터무니없이 열악한 환경인 것이다. 서늘한 기온이 유지돼야 하는 유물보관실은 에어컨마저 고장나 후텁지근했고, 대부분의 고서가 비닐봉투 안에 넣어져 책장 안에 꽂혀있는 상황이었다. 퀴퀴한 냄새가 나는 지하실에도 유물들이 종이박스에 넣어져 쌓여있거나 바닥에 그냥 놓여있었다. 사람 한명 지나다니기에도 좁아 수만여점의 유물들이 어디 있는지도 찾기 어려워 보였다. 김 팀장은 “대개 박물관에서는
광복절, 위안부 할머니들과 함께하는건 어떤가요?
광복절인 오는 8월 15일(수) 청계광장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과 동아시아의 화해와 상생을 기원하는 정신대해원상생대동한마당이 열린다. 8월 8일부터 시작되는 해방 67주년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세계 연대행동 <마침내 해방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게 정의를>의 대미를 장식하게 될 이번 행사는 15일(수) 정오에 1035차 수요집회를 시작으로 일본대사관 앞에서 청계광장까지의 행진과 청계광장에서의 해원상생대동한마당으로 이어진다. 행진 중에는 광화문 이순신장군 동상 앞에서 한일협정재협상국민행동, 항일독립운동가단체연합회, 역사정의실천연대, 한일시민선언실천협의회주최로 한미일 군사동맹 저지와 2012 대선예비후보들에게 보내는 공개질의서 발표 기자회견이 진행된다. 오후 1시부터는 서울시 교육청 후원으로 한국작가회의가 주관하는 <전국어린이글짓기> 행사가 진행된다. 이어 오후 4시부터는 돌아가신 170여 위안부 할머니들의 위패가 모셔진 무대를 배경으로 동해안 별신굿의 부정굿과 전통 무악, 류진규(춘천 마임축제 예술감독)의 현대적인 마임과 퍼포먼스, 미연재천의 재즈연주 등이 함께 어우러지는 굿판이 벌어진다. 오후 8시경에는 초망자굿의 형식을 빌어 <평화콘서트>가 진행된다. 노정렬의 사회로 진행되는 평화콘서트에는 강허달림, 손병휘, 우창수, 노래를 찾는 사람들, 안치환 등의 대중가수와 성악가 임정현 등이 출연한다. 특히 일본인인 곱창전골의 사또 유키에도 행사의 취지에 공감하여 출연한다. 행사의 마지막은 김선우 시인의 시 <열 네살 무자>를 일인극으로 형상화한 작품이 연행되며 평화를 기원하는 뱃노래굿과 공연 참가자 전원이 함께하는 주제 공연과 이애주 서울대 교수의 춤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이번 행사는 (사)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나눔의 집, (사)민족미학연구소, (사)민족문제연구소, (사)백산안희제기념사업회, (사)한국민예총, 전교조, 민교협 등이 함께 주관하며 서울시와 서울문화재단,
신중현 ‘미인’ 금지곡 된 이유는..유신의 아픈 추억
▶ [현장]‘유신의 추억’은 과거 아닌 현재와 미래 문제 (민중의 소리, 8.8) ▶ 민족문제연구소, 유신 선포 40년 특별전 (뉴시스, 8.7)
과거사 참회 없는 대통령 후보…딱하다
과거사 참회 없는 대통령 후보 박한용 연구실장 최근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예비후보의 발언이 온갖 논쟁을 낳고 있다. 7월15일 신문방송편집인협회 토론에서 “5·16은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며 “5·16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초석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또 “전 국민의 50퍼센트 이상이 5·16이 구국의 혁명이라고 지지하고 있으며, 유신헌법을 제정할 때에도 유권자의 80퍼센트 이상이 지지했다”고 말해 쿠데타와 유신독재를 사실상 정당화했다. 박근혜 후보는 독재와 인권유린으로 얼룩진 박정희 시대를 대한민국의 영광의 시기로 보고 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18년 6개월, 6738일. 1961년 5월16일부터 1979년 10월26일까지 박정희가 집권한 기간이다. 집권 6738일 가운데 군정이 945일이었고, 긴급조치 제9호는 그 기간이 무려 1669일 9시간으로 4년 6개월에 달했다. 박정희 18년 집권기 가운데 절반 정도가 사실상 계엄상태였다. 박근혜, 5.18참배 독재만 문제였을까. 박 정권은 1961년부터 1965년까지 한일회담을 진행하면서 일본 기업으로부터 6600만 달러의 뒷돈을 받았다. 온 국민의 반대 속에서 한일회담을 강행하면서 뒷돈을 받아먹었으니 어찌 매국회담이 아니겠는가. 1971년 대통령선거 때는 야당의 김대중 후보를 꺾고자 그해 국가 예산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600억원 이상을 선거비로 쏟아 부었다. 1973년에는 ‘기생관광도 일종의 애국’(당시 문화공보부 총무과장 발언)이라며 외화벌이를 명목으로 국가 차원에서 매춘산업을 장려해 망신살이 뻗쳤다. 또 미국의 칼덱스사와 걸프사로부터 각각 400만 달러와 300만 달러의 정치헌금을 받고 한국의 석유산업을 이들에게 넘겨주었다. ‘조국근대화의 기수’라던 생산직 노동자들의 1978년 월 노동시간은 260시간 주당 65시간이나 되었다. 일요일을
[강좌] 유신40년 기획강좌 “끝나지 않은 유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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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막말’ 벗길수록 구린내 나는 박근혜의 역사인식
[기고] ‘5.16 막말’ 벗길수록 구린내 나는 박근혜의 역사인식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 ⓒ양지웅 기자 5.16과 관련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경선 후보의 발언이 도마위에 올랐다. 이거 야단났다. 박근혜 후보의 막무가내 역사인식이 폭주하고 있다. 박근혜씨는 일련의 대통령 예비후보 토론이나 공사석에서 도저히 일국의 대통령 후보라고 보기 힘든 막말을 하고 있다. 박근혜씨는 몇 년 전 아버지 박정희는 두 번의 구국의 결단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한번은 일제 강점기 교사직을 그만 두고 만주군관학교에 들어간 일, 또 하나는 5·16을 일으킨 것이라고 했다. 요새 들어 막말을 더 보탰다. 1972년 유신헌법 개정을 80퍼센트 이상이 지지했으며(이게 부정선거임은 당시 일선 공무원들이 증언하고 있음에도), 5·16이 구국의 혁명이었다는 것을 전 국민의 50퍼센트 이상이 지지한다고 했다. 일본군 앞잡이, 헌법 유린도 모두 구국의 결단? 요컨대 일제 강점기에 “개나 말처럼 목숨을 바쳐 충성을 다 하겠다”고 혈서를 쓰고 일본군 앞잡이가 된 친일반민족행위도, 정치군인들이 작당해 총칼로 헌법을 유린한 5·16쿠데타도,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고 부정선거로 통과시켜 전제군주보다 막강한 권력을 누린 유신체제마저 이제는 구국의 결단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본의 아니게 피해를 끼쳤다’거나 ‘어쩔 수 없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말조차 팽개치고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과실은 벗길수록 향기롭고 깨끗한 속살이 드러난다. 헌데 박근혜 씨의 역사인식은 벗길수록 구린 냄새가 난다. 한심한 일이다. 대통령 후보자는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믿는다고 자신의 생각이 옳은 것은 아니다. 대통령은 국헌을 준수하고 국민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