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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노래하는 자유마저 빼앗겼던 그 시대 유신”
노래와 역사의 만남 금지를 금하라 역사토크 콘서트 2012년 10월 26일 (금) 11:43:00 한별 기자ektlgofk@gmail.com ▲ 서울 홍대앞 클럽제스에서는 8월29일 – 11월7일 까지 매주 수요일 <금지를 금하라 역사토크 콘서트>가 열리고 있다. ⓒ에큐메니안 ▲ ⓒ에큐메니안서울 홍대앞 클럽제스에서는 8월29일 – 11월7일 까지 매주 수요일 <금지를 금하라 역사토크 콘서트>가 열리고 있다. 노찾사 문진오. 김은희, 노래마을 손병휘, 꽃다지 유금신, 사토유키에, 코지카페, 요술당나귀등이 출연하고 임헌영, 문성근, 이해학, 이영미, 박순희, 이수호, 홍세화, 김형태, 도종환, 전숙옥 등이 이야기 손님으로 출연한다. <역사정의실천연대 민족문제연구소, 유신잔재 청산과 역사정의를 위한 민주행동>에서 주관하는 토크콘서트는 ’40년 전 젊은 청춘들이 메마른 입술로 숨죽여 부르던 노래들을 오늘, 젊은이들의 거리 홍대 앞 한복판에서 자유를 얻은 그 노래를 부른다.’는 취지로 마련됐다. 10월 23일에는 노래마을 손병휘, 노찾사 활동을 했던 문진오, 라틴음악을 하는 라M 씨의 공연이 펼쳐졌고, 이야기 손님으로 홍세화씨와 배우 원창연씨가 특별 출연했다. ▲ 이야기 손님으로 찾아온 홍세화 씨. ⓒ에큐메니안홍세화 씨는 노래하는 젊은 후배들과 어려운 길을 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한마디 해달라는 질문에 대해 프랑스에서 역사교수와 나누었던 애기를 설명하며 “역사공부를 하는 이유는 부끄러움을 알기 위해서다. 라는 대답을 듣고 참신하게 생각했다. 과거를 모른다는 것은 또 다른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노력을 해야 한다. 당연히 우리가 가는 길은 길고 어렵다. 우리가 가는 길이 어려운 게 아니고 어려운
“긴 치마 입으세요” 팻말 든 여성…누구 때문일까
[유신의 추억 ⑤] 노래, 문학, 머리, 치마… 단속으로 모든 것 해결 민족문제연구소는 유신선포 40년을 맞아 유신독재의 본질을 조명하는 ‘식민의 유산, 유신의 추억’ 전국순회 특별전을 진행하고 있다. 6월 9일부터 30일까지 부산 민주공원, 8월 8일부터 9월 9일까지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특별전이 열렸다. 10월에는 고양, 광주, 인천, 울산, 춘천, 서울청계광장, 대구에서, 11월에는 창원, 진주, 원주에서 전시회가 진행될 예정이다. 전시회를 유치하려는 지역 시민단체들은 많지만, 예민한 전시 주제로 인해 예산확보는 물론 전시장조차 구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 탓에 서울, 부산, 창원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는 전시회가 패널 야외전시로 진행되며 실물자료는 전시되지 않는다. <오마이뉴스>는 실물전시를 볼 수 없는 독자들을 위해 서대문형무소 제12옥사에서 열렸던 ‘유신의 추억전’을 지상중계한다. [편집자말] ▲ 1970년대 미니스커트 단속. 위반하면 길에서 팻말을 들고 서 있어야 했다 ⓒ 민족문제연구소 관련사진보기유신시대는 ‘금지의 시대’였다. 문화·예술·출판에 대한 각종 심의와 검열 제도를 두어 수많은 금지곡과 금서들이 쏟아졌다.정권은 1975년 모든 대중가요를 재심사하여 225곡을 금지곡으로 묶었다. 김민기의 <아침이슬>은 발표 직후 우리 대중음악의 수준을 일약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명곡으로 찬사를 받았지만, 대학가에서 운동가요로 불리자 곧 금지되었다. ▲ 건전가요부르기 일제의 국민개창운동을 그대로 본떴다. ⓒ 민족문제연구소 관련사진보기<행복의 나라로>는 대한민국 말고 또 어디에 행복의 나라가 있느냐는 권력층의 불만이 작용해 방송 금지되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가수 김추자의 <거짓말이야>라는 노래는 ‘불신감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양희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비관적’이란 이유로 방송 불가 판정을 받았다.
간첩잡는 아빠, 신고하는 엄마… ‘살벌하네’
[유신의 추억④] 전국민을 통제하는 시대…노래 ‘거짓말이야’가 간첩 신호? 민족문제연구소는 유신선포 40년을 맞아 유신독재의 본질을 조명하는 ‘식민의 유산, 유신의 추억’ 전국순회 특별전을 진행하고 있다. 6월 9일부터 30일까지 부산 민주공원, 8월 8일부터 9월 9일까지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특별전이 열렸다. 10월에는 고양, 광주, 인천, 울산, 춘천, 서울청계광장, 대구에서, 11월에는 창원, 진주, 원주에서 전시회가 진행될 예정이다. 전시회를 유치하려는 지역 시민단체들은 많지만, 예민한 전시 주제로 인해 예산확보는 물론 전시장조차 구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 탓에 서울, 부산, 창원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는 전시회가 패널 야외전시로 진행되며 실물자료는 전시되지 않는다. <오마이뉴스>는 실물전시를 볼 수 없는 독자들을 위해 서대문형무소 제12옥사에서 열렸던 ‘유신의 추억전’을 지상중계한다. [편집자말] ▲ 민방위훈련 중 대피장면. ⓒ 민족문제연구소 관련사진보기박정희는 1972년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면서 국가안보를 위해서는 “국민이 스스로 자유를 제한할 수 있어야” 하며, 비상사태에 순응하지 않으면 계엄령을 각오해야 한다고 협박했다. 이러한 위협적 분위기 아래 ’10월유신’을 단행했다. 유신체제는 ‘고도국방’과 ‘총력안보’를 앞세워 1인 종신집권의 길을 열었다.고도국방은 만주국이 강력하게 표방한 안보개념인 ‘고도국방체제국가’에서 따왔다. 대한민국도 이른바 누란지세(累卵之勢)라 할 안보위기에 처해 있으니, 모든 국민이 전시하의 비상생활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총력안보’는 일제가 1937년 중일전쟁에 돌입하면서 구축한 전시총동원체제(총후국방)와, 현대전은 전선과 후방이 따로 없는 총력전이라는 개념에서 나왔다. 총력안보란 ‘군관민(군인, 관료, 국민)’이 지도자를 중심으로 일치단결하는 것을 의미했다. ▲ 일제하 민방공훈련과 군사훈련. ⓒ 민족문제연구소 관련사진보기이를 위해서는 이른바 국론통일이 필요했다. 반대를 허용하지 않기 위해
[보도자료] 제6회 ‘임종국상’ 수상자 선정
제6회 ‘임종국상’ 수상자 선정 학술부문 김승태 역사학자 사회부문 유현미 방송작가 특별상 심정섭 독립운동 연구가 1965년 국민적 반대 속에 굴욕적인 한일협정이 체결되자, 임종국 선생(1929∼1989)은 우리 근현대사 왜곡의 근본 원인이 과거사 청산의 부재에 있음을 직시하고, 반민특위 와해 이후 금기시되고 있던 친일문제 연구에 착수했다. 그는 1966년 <친일문학론>을 발표하여 지식인 사회에 충격을 던졌으며, 그 외에도 문학과 역사를 아우르는 방대한 역작들을 남겨 한국지성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임종국선생기념사업회(회장 장병화)가 제정한 <임종국상>은 ‘친일청산’, ‘역사정의 실현’, ‘민족사 정립’이라는 선생의 높은 뜻과 정신을 오늘날의 현실 속에서 올바르게 계승하고 있는 개인과 단체를, 학술·문화와 언론·사회 두 부문에서 선정해 수여한다. 올해부터는 부문을 막론하고 탁월한 업적을 세운 공로자가 있을 때에 한해 예외적으로 특별상을 시상하기로 결정했다. 2005년부터 매년 수상자를 배출하였으나, 2008년과 2009년도는 친일인명사전 편찬과 관련한 주관단체의 사정으로 시상이 잠시 중지되었으며, 올해가 6회째이다. 지난 10월 10일 열린 예심에서 3배수의 수상후보가 추천되었으며, 10월 23일 본심에서 제6회 수상자가 최종 결정되었다. 본심에는 심사위원장인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을 비롯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윤경로 전 한성대 총장,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 언론인 주섭일 선생, 함세웅 신부 등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본심 심사위원들은 각 부문별로 추천된 후보자들에 대해서 열띤 토론 과정을 거쳐 수상자를 결정하였는데, 치열한 경합 끝에 학술부문에 김승태 박사가, 사회부문에 유현미 작가가, 특별상에 심정섭 선생이 최종 선정되었다. 학술부문 수상자인 김승태 박사는, 기독교사 전문가로서 오랜 기간
식민의 유산, 유신의 추억
10월유신 40년 행사 준비한 서우영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 최대현 기자 | 기사입력 2012/10/23 10월17일이 무슨 날인지 아시나요? 무슨무슨 데이가 아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2년 이른바 ’10월유신’을 선포한 날이다. 박 전 대통령은 40년 전 이날 오후 7시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헌법 효력 중지, 국회 해산 등의 특별선언을 발표했다. 초헌법적 비상조치였다. 장기집권을 목적으로 한 유신독재 체제의 시작이었다. 이날을 꼭 일주일 앞둔 10일 서울 청량리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실에서 만난 서우영 기획실장은 유신 체제를 “식민통치의 부활, 폭력에 기반한 경찰국가”라고 정리했다. “일제 식민체제에 뿌리를 두고 모든 분야에서 국민을 억압한 독재를 폈다. 그런데 아직도 이 체제를 추종하는 세력이 많은 것이지요. 이명박 정부 들어서 나타난 뉴라이트 등이 그들이예요. 당시 박정희 체제에 기대어 부를 누렸던 사람들이 퇴행적인 우익역사관으로 역사를 되돌리려 합니다. 박근혜 후보가 말한 ‘두 개의 판결’이 나온 배경이예요, 무식해서가 아니지요.” 오는 17일부터 28일까지 서울에서 열리는, 민족문제연구소 등이 참여한 ‘유신잔재 청산과 역사정의를 위한 민주행동’의 유신 40주년 학술대회, 금지곡 노래자랑, 특별기획전 등 집중행동에 온 힘을 기울이는 이유다. 서 기획실장은 “독재 체제 잔재가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교육이 보다 나은 교육이 되는 데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학생들에 대한 두발 단속, 일제고사, 국기에 대한 맹세 등이 그 방증이란다. “10월 중순에 ‘식민의 유산, 유신의 추억’ 자료집이 나와요. 처음으로 유신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거예요. 선생님들이 많이 보셔서 아이들과 박정희 체제에 대한 얘기를 나눴으면
“백선엽, 반민족 행위 스스로 고백했다”
“백선엽, 반민족 행위 스스로 고백했다”[기고]31세 김광진이 아니라 92세 백선엽의 ‘과거’를 보자신명식 민족문제연구소 이사 민주통합당 김광진 의원을 두고 네티즌들이 설왕설래 하고 있다. 발단은 김 의원의 백선엽 비판 발언이다. 그가 지난 19일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국방부의 백선엽 씨 미화 뮤지컬 제작을 비판하자 <조선일보>는 기자 칼럼을 통해 “지금 우리 국회에선 31세짜리 의원이 92세의 전쟁 영웅을 ‘민족반역자’라 부르며 모욕을 주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적었다. 당시 “잘못된 과(過)를 가지고 있는 이 민족 반역자가 대한민국 국군 지도자로 설 수 있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말한 김 의원은 졸지에 버릇 없는 국회의원이 됐다.물론 이 기자 칼럼에는 허술한 지점도 발견된다. 칼럼은 “백 장군은 일부에서 자신이 ‘독립군 토벌을 했다’고 주장하는 데 대해 2009년 인터뷰에서 ‘독립군을 구경도 해보지 못했는데 무슨 토벌을 하느냐’고 했다”고 지적했는데, 백 장군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가 직접 그의 손으로 독립군을 죽였다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속한 간도특설대가 독립군을 토벌했다고 하는 것이다. 실제 백 씨는 회고록을 통해 “우리(간도특설대)가 추격했던 게릴라(팔로군, 항일광복군 등) 중에는 많은 조선인이 섞여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백선엽 씨가 민족 반역자인지 아닌지 논쟁은 사라지고, 김 의원의 과거 트윗 발언이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김 의원이 “새해 소원은 뭔가요? 명박 급사(急死)”라는 글을 리트윗했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그가 20대 때 한 ‘채찍 발언’ 같은 것들이 기사화됐다. 그는 지금 ‘국가 원수 모독’을
학교에서 수류탄 던지기 훈련, 정말이냐고요?
[유신의 추억 ③] 70년대 학교, 그 잔혹한 풍경 민족문제연구소는 유신선포 40년을 맞아 유신독재의 본질을 조명하는 ‘식민의 유산, 유신의 추억’ 전국순회 특별전을 진행하고 있다. 6월 9일부터 30일까지 부산 민주공원, 8월 8일부터 9월 9일까지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특별전이 열렸다. 10월에는 고양, 광주, 인천, 울산, 춘천, 서울청계광장, 대구에서, 11월에는 창원, 진주, 원주에서 전시회가 진행될 예정이다. 전시회를 유치하려는 지역 시민단체들은 많지만, 예민한 전시 주제로 인해 예산확보는 물론 전시장조차 구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 탓에 서울, 부산, 창원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는 전시회가 패널 야외전시로 진행되며 실물자료는 전시되지 않는다. <오마이뉴스>는 실물전시를 볼 수 없는 독자들을 위해 서대문형무소 제12옥사에서 열렸던 ‘유신의 추억전’을 지상중계한다. [편집자말] ▲ 1974년 대학가에서는 일제히 교련과 학교의 병영화 반대 시위를 격렬하게 일었다. ⓒ 민족문제연구소 관련사진보기유신정권이 표방한 ‘국적 있는 교육’은 실은 ‘국적 상실 교육’이었다. 왜냐하면 일제의 황국신민화교육과 일란성 쌍둥이였기 때문이다. 유신교육은 놀라우리만치 일제의 전체주의 교육을 답습했다. 유신시대 학교는 국가와 지도자에게 절대 충성하고 복종하는 국가주의를 훈육하는 도구였다. 여기에 총력안보체제 수립이 강조되면서 학교는 병영으로 변모했고, 교과서 또한 영도자와 유신체제를 찬양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일제의 천황제 파시즘 교육에서 기본원리를 빌려온 유신교육은 정권안보의 버팀목으로 활용되었다. ▲ 일제시대 교과서에 실린 교육칙어. ⓒ 민족문제연구소 관련사진보기 ▲ 일제 때 애국조회에서 교육칙어를 봉독하는 모습. 박정희 시대와 꼭 닮았다. ⓒ 민족문제연구소 관련사진보기 ▲ 일제의 애국조회 장면 교육칙어와 황국신민서사를 외어야 했다. 천황에게 충성과
[모십니다] 제6회 임종국상 시상식
▶ 보도자료 – 제6회 임종국상 수상자 선정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보상 입법’ 한일 서명운동
▲ 한국과 일본의 시민단체와 지식인들이 ‘일본의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 보상법’ 입법을 촉구하는 공동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사진은 서울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045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수요시위’에 동참한 신일본부인회 소속 일본 여성들.(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황윤정 기자 = 한국과 일본의 시민단체와 지식인들이 ‘일본의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 보상법’ 입법을 촉구하는 공동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일본에서는 시민단체 ‘강제연행·기업책임을 묻는 재판 전국 네트워크’가 주축이 돼 서명 운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한국에선 민족문제연구소 등이 서명을 받고 있다. 서명운동을 처음 시작한 것은 일본 ‘강제연행·기업책임을 묻는 재판 전국 네트워크’. 지난 20여 년간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 진상 규명과 피해자 지원 활동을 해온 이 단체는 2010년부터 ‘일본의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 보상법’ 입법을 촉구하는 서명 운동을 전개해왔다. 지난해 5월과 10월, 그리고 올해 5월 3차례에 걸쳐 일본 정부에 서명서를 전달한 데 이어 이번에 한일 양국 공동 서명운동에 나서게 된 것은 올해 5월 한국 대법원의 판결이 계기가 됐다. 대법원은 1심과 2심을 뒤집고 일제강점기 강제 징용된 피해자들에게 일본 기업체가 손해 배상을 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 단체는 서명서에 “이 판결에 입각해 조선인 강제동원에 대한 피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입법 실현 운동을 진행해 새로운 국면을 만들어 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민족문제연구소 김민철 책임연구원은 24일 “‘강제연행·기업책임을 묻는 재판 전국 네트워크’가 서명운동을 함께하자고 연락을 해왔다”면서 “학자, 전문가

